00701 76. 시베리아 =========================================================================
바이칼 호수 북변에서 발생한 산불을 함께 끄면서 몽골 여러 부족들과 많이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동몽골 부족 유력자들의 자식인 유학생들도 고산국을 같은 편으로 인정해줬다. 역시 공동의 적이 있으면 뭉치게 된다는 말이 맞았다.
부리야트 족과 여진 기병들 등 한때 동료로서 함께 산불을 껐던 사람들이 울란우데 역에 몰려 나와 유학생들이 탄 기차를 배웅했다. 이제는 인질이 아니라 고산국 백성이 된 유학생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떠났다.
이민호는 재해지역을 지원하는 문제로 며칠 더 남기로 했다. 집을 잃은 부리야트 사람들에게 임시로 도시에 연립주택을 내주었다. 양과 곡식 위주로 식량도 공급했다.
타이가의 숲에 산불이 정기적으로 발생하더라도 널리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벌목회사 사업가들을 불러서 산불 방지용 도로를 삼림에 격자무늬로 내는 문제를 협의했다. 이 도로가 벌목용 도로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마침 공병대가 울란우데에 있으니까 도로 개설에 도움이 될 거야.”
“감사합니다, 전하.”
“감사할 것은 없네. 공병대가 투입된 만큼 그 비용을 벌목회사에 투입된 자본으로 산입해야지. 자본이란 돈뿐만 아니라 용역을 포함한다네.”
“크윽!”
매번 이런 식으로 사업가는 창업자본의 대부분을 투입하고도 땅과 공장부지, 기계와 용역을 투자한 정부에 지분을 빼앗겼다. 결국 전체 자본의 3할 정도 지분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벌목공으로 고용한 부리야트 현지인들도 일단 도로 건설에 투입하게. 잔불이 남아있어서 언제 다시 산불이 크게 일어날지 모른다네.”
“예. 대신 사업 시작할 때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목재를 왕도로 가져가기만 하면 가격이 몇 배로 뛰어오르지 않나? 기차 운임은 아직 싼 편이라네. 원주민들 중에서 유목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으니 당분간 화물 운임도 올리지 않을 거야.”
“크윽! 감사합니다.”
자원은 이 지역 주민 모두의 것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현지 주민들이 목재회사를 설립하는 편이 좋았다. 어쨌든 부리야트 족을 최대한 고용하면서 동시에 세금으로 거둔 목재회사의 이익 절반은 이 지역, 바이칼 호 주변에 투자하기로 했다.
탐사단장이 최근 멀리 타이가 북쪽 탐사를 마치고 돌아온 소령을 이민호에게 소개했다. 뭔가 아주 특별한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
“전하! 제5 탐사대가 바이칼 호수 북동쪽, 레나 강과 빌류이 강의 합류 지점에서 야쿠트 족과 교역을 하면서 금강석을 많이 구해왔습니다.”
“이게 금강석인가? 엄청나게 크군.”
탐사대장이 희뿌연 유리처럼 생긴 달걀만 한 돌 다섯 개를 이민호에게 바쳤다. 가공 전 다이아몬드 원석의 생김새는 유리돌이나 자갈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민호가 원석을 살피는 동안 탐사단장이 이번 교역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했다. 마음에 안 드는지 탐사단장이 혀를 마구 찼다.
“그런데 문제는 탐사대장 박 소령이 이걸 사면서 야쿠트 족에게 화승총 다섯 정 외에 충분한 양의 총알과 화약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소 열 마리를 주지 말입니다. 전하! 과연 야쿠트 원주민들과 약속을 지켜서 화승총을 넘겨줘야 합니까?”
“단장님도 아시다시피 원주민들도 오랫동안 교역을 해서 보석 원석의 값어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대충 속아 넘어갈 사람들이 아닙니다.”
탐사단장과 탐사대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민호가 물었다.
“마침 보석 세공업자를 데리고 오지 않아서 진짜인지 잘 모르겠군. 박 소령은 이것들이 다이아몬드 원석이 맞다면 가치가 어느 정도 될 것 같아?”
“원석 가공 공정에서 무게의 절반 정도가 사라진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장 큰 원석의 무게가 5천 캐럿, 1킬로그램이 넘습니다. 오스만 제국이나 페르시아에 판다면 가격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믿습니다.”
“원주민에게 화승총을 넘긴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화승총이 우습게 보이지만 탐사단에 위험할 수도 있어.”
조선이나 명나라처럼 이미 화승총이 폭넓게 사용되는 지역이라면 상관없었다. 그러나 시베리아 깊은 지역에 화승총을 가진 원주민 부족이 있다면 탐사대를 쉽게 진입시키기에 부담스러웠다. 17세기 중반에 북미에서 흔히 그랬듯이, 화약무기 몇 개만으로도 그 지역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면서 여파가 다른 지역에 크게 미칠 수도 있었다.
“단발총도 아닌 화승총이라면 속국이나 우호적인 부족에게 꾸준히 공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멀지만 야쿠트 족은 타타르 족에게서 화승총을 싼 값에 구할 수도 있습니다. 야쿠트 족이 곰이나 호랑이 사냥에 사용할 총이므로 우호적인 교역으로서 큰 문제가 안 될 것으로 압니다.”
“알겠네. 화승총 5정이 아니라 10정을 넘기고 화약과 총알도 충분히 주도록 해. 사격 방법도 친절히 가르쳐 줘. 만약 다른 부족에서 원하더라도 적당한 숫자의 화승총을 넘겨주게. 그렇게 하고, 앞으로도 그 부족에게는 금강석 외에 다른 상품도 좋은 조건에 교역해주도록.”
야쿠트 족이 숲속 깊이 산다지만 야만족도 아니고, 시베리아 전체 교역 루트 상에 접근해 있었다. 여진족이나 몽골족, 혹은 타타르나 명나라 상인들이 가끔 들르는 곳에 거주하므로 상인이나 이웃 부족들보다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편이 장기적인 교역에 유리했다.
“전하. 가치가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 클수록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진다고 들었습니다.”
“가공하기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겠지. 그런데 제일 작은 것이 녹색이야. 가공하면 천 캐럿 정도 나오겠군.”
“예. 녹색입니다만 원석 다섯 개 중에서 가장 작습니다.”
탐사단장과 탐사대장이 어리둥절했다.
“이 하나가 나머지 네 개보다 훨씬 비쌀 거야. 이렇게 큰 녹색 다이아몬드는 아직 이 세상에 발견된 적이 없다는 거지.”
“가치를 추정하기도 어렵습니까?”
“이 정도 크기면 나도 몰라. 이것 하나만 잘 가공해도 가격이 최소한 은 백만 냥보다 싸지는 않을 거야.”
“에이, 설마요.”
“믿지 마. 큭큭!”
이민호가 유쾌하게 웃어서 탐사단 지휘관들이 더 안 믿게 됐다. 그런데 탐사대장이 가져온 것은 다이아몬드 원석뿐만이 아니었다. 뭔가 작은 유리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는 돌덩이를 잔뜩 가져왔다.
“그건 뭔가?”
“원석은 아니고, 특이한 돌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아주 작은 금강석이 조금씩 박혀 있습니다. 상업적인 가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상업적인 가치는 없지.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묻힌 곳을 알려줄 수는 있어.”
“강물에 굴러다니고 있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870년대에 남아프리카에 킴벌리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도록 만든 킴벌라이트가 탐사대장이 가져온 자루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땅속 깊이, 지표면 150에서 450km 사이에서 생성된 암석이었다.
“수집한 위치는 기록해뒀겠지?”
“그렇습니다, 전하. 빌류이 강을 따라서 상류로 올라가면서 하나씩 찾았습니다. 찾은 곳마다 위치 측량을 하고 돌에도 따로 표시를 했습니다.”
빌류이 강 중류 노천 다이아몬드 광산인 미르 광산에서 1957년부터 40년 넘게 다이아몬드를 채굴했다. 1960년대에는 매년 천만 캐럿, 2톤 넘게 다이아몬드를 생산했다. 원광 1톤에 4캐럿, 0.8그램이라는 높은 비율로 채광됐고, 원석의 20퍼센트가 보석으로 활용될 정도로 품위가 높았다.
당시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 가격을 통제하고 있던 드 비어스(De Beers) 사가 시장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미르 광산에서 채굴된 모든 다이아몬드를 비싼 값에 사들이는 것이었다.
미르 광산은 구소련 다이아몬드 채굴량의 99퍼센트, 전 세계 생산량의 20퍼센트를 차지했다. 광산 하나 때문에 수백 km에 이르는 도로와 공항이 건설됐고 심지어 선별 작업을 위해 수력발전소도 세워졌다. 나중에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다이아몬드 광상(鑛床) 두 곳이 추가로 발견됐다.
“그 근처에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을 거야. 다 좋은데 추운 것이 걱정이군. 그래도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다면 광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돌아갈 거야. 자원탐사대를 보내서 광산을 찾아야겠어.”
“올해는 이미 늦었으니 자원탐사대는 내년 봄에 보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전에 저희 탐사대가 가건물을 짓고 겨울 동안 버티면서 주변을 탐색해보겠습니다, 전하.”
탐사대장의 말에 이민호가 몹시 감동했다. 그러나 영하 40도에서 며칠 버티던 탐사대장이 뼈저리게 후회하다가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탐사대원들이 반란을 일으킨 다음 남쪽으로 도망칠 가능성도 높았다.
“박 소령이 가장 고생하겠군. 준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하게. 그리고 탐사대장 박 소령과 탐사단장에게 은 1만 냥씩, 5탐사대 나머지 대원들에게 5천 냥씩 상금을 하사하겠네.”
탐사단장과 탐사대장이 입을 떡 벌렸다. 호위들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냥을 원으로 단순 치환하면 한 끼 식사 값도 안 되겠지만, 표준 가격으로 은 1만 냥은 백미 2만 석이었다.
“헉! 아직 광산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전하.”
“오해 말게. 이건 다이아몬드 원석을 교역해온 데 대한 포상이야.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게 되면 따로 포상을 내리겠네. 탐사단장은 제5 탐사대에게 최대한 지원을 해주도록.”
“예! 전하!”
시베리아에는 여러 가지 유용한 금속과 자원이 다량 매장돼 있었다. 하나씩 찾아서 천천히 개발한다면 매년 쏠쏠한 이익을 얻는 동시에 그 지역을 개발하는 효과가 있었다. 타이가 북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개썰매나 순록 썰매 대신 스노모빌을 타고 다닐 날이 멀지 않았다.
“탐사대장! 연료가 얼어붙는 곳이야. 너무 추우면 썰매를 타고 퇴각하도록 해. 괜히 부하들 얼려 죽이지 말고. 알았나?”
“예.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추우면 야쿠트 족의 땅굴집에 신세를 지겠습니다, 전하. 아!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땅굴집을 만들어두겠습니다.”
“그것도 좋지. 무선통신을 유지하고, 난방을 해도 도저히 못 참겠다 싶거나 환자가 발생할 경우 즉각 항공대에 지원을 요청하게. 수상비행기가 눈밭에도 착륙하도록 개조해놓겠네.”
탐사대는 시베리아에서 눈과 귀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당연히 탐사대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영하 40도 이하의 끔찍한 추위에서 견뎌야 할 탐사대원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9월 초에 울란우데에서 동쪽 300여 km에 위치한 치타에 도착했다. 이곳은 시베리아에서 드물게 농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몽골족과 투르크족 외에 명나라 상인들이 교역을 위해 방문하는 북쪽 끝에 해당되는 지역이었다.
치타에는 투르크계 야쿠트 족 외에도 여러 부족들이 살았으나, 몽골족이 그에 못지않게 많이 살면서 목축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곳 남동쪽부터 몽골 고원이었다.
그리고 이곳부터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남동쪽으로 급히 꺾였다. 정치적 고려보다는 산악지대를 피해 평원에 철도를 놓으려고 노력했기에 어떻게 보면 이 지역은 몽골 유목민들의 공격에 노출돼 있었다. 그래서 여진족 기병 1천여 기가 고정 주둔하는 곳이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여진족 보병 두 명이 화승총을 들고 시청 정문 양쪽에 서서 크게 소리를 질러 국왕 일행을 맞이했다. 고산국 정규군에 비하면 한심한 무장이었으나, 이 지역에서는 충분히 강군으로 통했다.
그리고 경비병이 보병이라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병이었다. 몽골족과 기병으로 싸우면 숫자가 적은 여진 기병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기에 일부를 보병으로 전환시켰다. 시청 건물도 유목민 기병의 포위공격에 대비한 요새나 다름없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전하.”
임시 시장을 맡은 관료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3층 석조 건물 중에서 2층 응접실로 안내했다. 레드카펫은커녕 시청 건물 마당이 진창으로 질퍽거리는 곳이었다. 임시 시장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민호가 충분히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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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편은 앞으로 한 회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