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91화 (640/1,000)

00691  74. 타이가  =========================================================================

울란우데의 행궁에 국왕 일행이 머무는 동안 항공대 수상비행기들이 매일 같이 출격해 시베리아의 타이가와 수목한계선 바로 남쪽 지역까지 포함된 지도를 작성했다. 풍속이 강한 겨울에는 비행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기에, 날씨가 좋을 때 충분히 정찰과 측량을 위해 조종사들이 연속 비행에 나섰다.

“추운 지역인데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는 이유가 뭘까요? 이 지역은 비도 적게 오잖아요?”

“글쎄.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는 날이 적으면 맑은 날이 많아지고 보통은 수목 생장에 유리하지. 하지만 햇빛을 받는 각도가 너무 낮아 나무가 자라기에는 불리해. 대신에 수분 증발량이 강수량보다 적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

“여러 가지 생장 조건을 합해봐야 하는군요.”

오후에 행궁 후원에서 호위들과 함께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울란우데를 비롯한 바이칼 호수 주변 지역은 한여름인데도 아주 시원해서 좋았다. 나무 아래 그늘이 지면 여름에도 추웠다. 왕도에서 거리가 멀지만 기온만으로 따지면 여름 궁전으로 적당한 곳 같았다.

바이칼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싶어 가봤는데 물이 너무 차가워서 도저히 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추위에 강한 여진 호위들도 물에 발을 담근 다음 치를 떨면서 겨우 2분을 버틴 것이 한계였다.

그런데 뜻밖에 겨울에도 바이칼 호수의 수온은 여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면적으로 따지면 북미 오대호 중에서 가장 큰 호수 하나보다 작지만 수심이 깊어서 오대호 전체 수량의 두 배, 전 세계 민물의 2할이 바이칼 호수에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바이칼 호수 말고도 주변에 호수나 웅덩이가 흔해서 그런지 벌레가 너무 많아요.”

“맞아. 벌레를 먹고 사는 새들이 온 천지에서 울어대서 정말 시끄럽다.”

여름의 타이가 숲에서 온갖 새들이 저마다 지저귀고 있었다. 그러나 겨울에도 타이가 지역에 사는 텃새 종류는 극히 적었다. 여름에는 타이가 지역에 풍부한 벌레를 먹고 살다가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에서 보내는 철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겨울에도 같은 지역에서 계속 살아야 했고, 그래서 온갖 지혜를 동원해서 식량을 비축했다. 이들에게는 잉여 식량이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민호는 몽골 초원처럼 타이가 숲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도 세금을 받을 생각을 아예 접었다. 대신 자원을 채취해서 고산국에 이익이 되고 주민들도 풍족히 살 방법을 고민했다.

유목은 농업과 달리 완전한 자급자족이 되지 못했다. 곡식이나 차를 사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일정한 수입을 얻어야 하는데, 약탈 말고는 유목민들이 은이나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만약 자원 채취 과정에서 유목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들에게 고정 수입이 생기게 되면 유목민 전체가 약탈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일시적인 건설업 외에 꾸준히 수입을 얻을 일자리가 필요해. 뭐가 좋을까?”

“유목민들을 군인으로 고용하세요. 몽골인들은 최고의 기병이잖아요.”

“으윽! 또 용병이야?”

이민호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나 호위들의 말이 맞는 것이, 이럴 때는 괜히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었다.

“필요할 때 몽골인들을 병사로 징병하고 월봉을 주기로 했으니까 평소에 용병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어. 평시에 자기 부족을 지키고 특별한 사건이 생겼을 때 다르항에 연락할 직업적인 치안대를 유지하자.”

“그게 그거 아닌가요?”

“달라.”

용병과 치안대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외국에서 작전하는 용병 부대와 달리 치안대는 몽골 내부에서 작전한다는 차이밖에 없었다.

앙가라는 넓은, 혹은 갈라진, 쪼개진 틈 등을 뜻하는 몽골어다. 바이칼 호수 남서쪽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앙가라 강은 북쪽으로 흘러 예니세이 강, 몽골어로 고를록 강에 합류해 북해로 유입된다.

얼마 전에 완공된 앙가라 철도역은 구소련의 이르쿠츠크 시에 해당하는 지역에 건설됐다. 나중에 여력이 생기면 이곳 강변의 넓은 평원에 도시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국왕 일행이 기차에서 내리자 항공대장 이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이칼 호와 주변 지역을 가장 많이 조사한 부대는 탐사대가 아니라 항공대였다.

“전하! 바이칼 호수로 들어가는 강이 280개가 넘습니다. 그런데 바이칼 호에서 밖으로 빠져 나가는 유일한 강이 바로 이 앙가라 강입니다.”

“물이 참 시원하게 잘 빠져 나간다.”

“여기서 수력 발전을 하면 엄청난 양의 전기가 생산될 것 같습니다. 알루미늄을 생산하려면 막대한 전기가 들지 않습니까? 어떤 자원이든 아이슬란드 한 곳에서만 생산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 수력발전소를 지어 알루미늄을 나눠서 생산하면 어떨까 합니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비행기 동체가 마음에 드나봐?”

“가볍고 단단해서 비행기 재질로는 최고의 금속입니다.”

이곳은 수력 발전치고는 엄청난 양의 전기가 생산될 수 있는 곳이 맞았다. 구소련에서 1950년에 건설을 시작해 1956년에 완공한 이르쿠츠크 수력발전소는 한때 세계 2위의 발전용량을 자랑했다.

이르쿠츠크 수력발전소는 82.8메가와트 발전기 8대를 합해 고리 1호기나 2호기보다 조금 많은 662.4메가와트 용량이며 매년 평균 41억 킬로와트시의 전기를 생산했다. 물론 당연하다는 듯이 이르쿠츠크 시의 알루미늄 생산 공장에서 전기 대부분을 사용했다.

주변 지역이 무척 추운 곳인데도 바이칼 호 남부의 표면 수온은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겨울에도 전력 생산이 가능했다.

특히 바이칼 호 남부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수온이 좀 더 높고 물 흐름이 빨라 겨울에도 수면에 살얼음이 살짝 어는 정도였다. 빙하기에도 유독 바이칼 호 주변에서 인간의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다.

“알루미늄 원료가 나는 곳에서 여기까지 실어오려면 운송비가 얼마나 들까? 어휴!”

앙가라 강의 수계 여러 곳에서 효율적인 수력발전을 할 수 있었다. 구소련에서 이르쿠츠크 북쪽 브라츠크 수력발전소에서 250메가와트 터빈 18기가 돌아갔다. 캐나다의 처칠 폭포나 퀘벡의 발전소보다는 적은 용량이지만 한 번 건설하면 연료를 소모할 필요 없이 줄기차게 전기를 뽑아 쓸 수 있다는 것이 수력발전의 확실한 장점이었다.

“아이슬란드의 지열발전소보다 효율이 많이 떨어지나 보군요.”

“좀 그래. 초기에 건설비가 많이 들더라도 수력발전소가 있으면 좋지. 하지만 전기를 사용할 곳이 없다면 앙가라 강을 가로지르는 큰 발전소를 만들 필요는 없겠다.”

전력소모가 심한 알루미늄 생산 공장을 이 지역에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단 아이슬란드에서 알루미늄을 대량 생산하고, 나머지는 재활용 공정을 통해 알루미늄 제품을 만드는 편이 훨씬 싸게 먹혔다.

재활용할 방법이 있으니 알루미늄 제련은 생산 초기에만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알루미늄 원료를 수송하기 쉬운 바닷가 가까운 곳에 수력발전소를 세우기로 했다.

“그럼 지금처럼 석유를 가져와서 화력 발전을 합니까?”

“그건 아냐. 철도 가로등이나 울란우데에 전력을 공급하는 용도로 작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게 좋겠어. 다르항에 제철소가 생기면 거기에도 공급할 수 있겠지. 그 전에 먼저 석유가 나오는지 찾아보고, 없으면 갈탄이라도 구해야겠어.”

바이칼 호 서쪽 이르쿠츠크부터 북쪽과 서쪽으로 이르쿠츠크 탄전이 분포했다. 주로 산출되는 석탄은 갈탄이었고, 화력발전소 연료로 적당했다. 자원학자들이 벌써 몇 군데 시험 채굴을 마쳤다.

“갈탄이 많이 생산되면 본토나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면 좋겠습니다. 생산비는 많이 들 것 같지 않다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

“생산비에 육상과 해상 운송비까지 계산해야 해. 아마 석탄 종류는 바다 건너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기 어려울 거야. 인근 지역에서 제철소 원료나 화력발전소 연료로 써야겠어.”

2005년 대한광업진흥공사가 이르쿠츠크 탄전의 석탄 도입 비용을 추산해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 톤당 생산원가를 15달러로 추정하고 내륙운송비 23.1달러, 항만처리비 10달러, 해상운송비 8달러를 더해 합계 56.1달러에 달했다.

운송비가 생산원가의 두세 배가 들기 때문에 이르쿠츠크에서 생산한 석탄을 수출할 이점은 적었다. 그래서 갈탄이 대량 채굴되면 수력발전이 어려운 지역에 전기를 공급할 화력발전소 연료로 쓰기로 했다.

“전하께서 루스 차르국의 동진을 유달리 몹시 경계하십니다.”

“그들이 곧 올 테니까.”

“루스 차르국과 바이칼 호수 사이에는 숲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원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데 루스인들이 타타르계 기마민족들을 모두 물리치고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겠습니까?”

“루스인들은 몽골제국의 분국인 킵차크 칸국이나 그 후계 칸국에게 2백여 년 동안 지배당했어. 그래서 초원에서는 절대 안 싸울 거야.”

차르의 명령을 받은 돈 코사크들은 전쟁 때 기마병으로 동원되는 주제에 시베리아를 정복할 때는 철저히 강을 이용해 이동했다. 그리고 한 곳을 점령하면 요새부터 세우고 대포를 배치했다. 투르크계나 몽골계 기마병의 무서움을 잘 아는 탓이었다.

그래서 시베리아 정복 과정에서 대부분 강 아니면 요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심지어 오호츠크 해에 도달한 후에 벌어진 나선정벌과 그 이전 청나라와의 전투도 요새나 강에서 벌어졌다. 1차 정벌 때 지휘관 변급과 2차 정벌 지휘관 신유는 모두 배에서 전투를 수행했다고 보고했다.

코사크들은 큰 강에 도착하면 즉시 원주민이나 청나라에서 운행하는 배보다 큰 배를 건조했기에 강에서 벌어진 여러 번의 전투에서 매번 청군을 압도할 수 있었다. 말 수백 마리를 보유했던 다우르 족의 도시이며 야크사 소왕국의 수도가 일방적인 패배 끝에 점령당한 것도 기병이 활약하기 어려운 아무르 강변 숲에 도시가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화약무기를 적극 활용하니까 기마전투보다는 보병 전투가 확실히 더 유리하겠군요.”

“그런 셈이지. 루스 차르국에 화승총이 많지는 않겠지만 시베리아에서는 몇 정만 있더라도 원주민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거야.”

루스 차르국에서 내란이 일어나거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과 싸울 때 화약 무기를 많이 사용했다는 증거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시베리아를 정복할 때는 대표적인 무기로 머스킷이 떠올랐다.

예르마크의 시비르한국 원정 때 활이나 쏘는 야만적인 원주민 대군을 상대로 과학적인 머스킷을 대량 운용해 전투에서 압도했다는 식으로 표현한 19세기 기록화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몇 십 년 후에 벌어진 전투에서도 코사크 전원이 총기로 무장하지 못했다.

몽골제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기간에 유럽에 화약 무기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나라가 무너지고 초원으로 쫓겨난 다음부터는 몽골족이 화약 무기를 사용한 경우가 대폭 줄어들었다. 몽골 고원 북쪽 시베리아 부족들이 화약 무기의 존재를 알더라도 사용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더더욱 사용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루스 차르국은 이반 4세가 죽은 다음부터 내란과 외환으로 정신없는 것 같은데 과연 동쪽으로 확장할 여력이 있겠습니까?”

“탐험대는 많아야 겨우 천 명 선이야. 그것도 루스인이 아닌 부용족 코사크 족이 탐험과 정복에 동원되고 있어. 지금도 동쪽으로 계속 확장하고 있을 거야.”

코사크 탐험대가 예니세이 강과 오비 강 사이에 거주하는 케트 족을 정복한 것이 1605년이었다. 이들이 바이칼 호에서 빠져 나가는 앙가라 강의 본류 예니세이 강에 처음 도달한 것은 1610년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이며 태평양의 일부인 오호츠크 해에서 동진을 멈춘 것은 1639년이었는데 바이칼 호는 오히려 더 늦은 1643년에 발견했다. 러시아 탐험대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타이가 지대를 통해 꾸준히 동진했다는 뜻이 된다.

“그들이 오기 전에 막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루스 차르국은 탐험대를 겨우 천 명 단위로 보내는데 우리는 수만 명이 동원돼 철도를 건설하고 탐사와 방어를 해야 하는군요.”

“비효율적이지? 원래 방어는 그래. 가장 쉽고 싸게 먹히는 방법은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이 내버려두지 않겠지. 그런데 만약 루스 차르국의 동진을 막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부친인 이순신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평가받는 막내아들 이면은 이순신처럼 과감하면서도 세심했다. 전투 전에 세심하게 전투를 준비해야 할 때는 세심하면서도, 전투 중에는 반대로 과감하게 적을 향해 돌격할 수 있는 이상적인 지휘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이 운이 좋으면 시베리아 전체를 점령하겠군요. 바이칼 호수 북쪽에서 태평양까지 국경선이 2천km나 이어지겠습니다. 바이칼 호 남쪽도 막아야 하고, 국경선에 고정 배치해야 할 병력이 끝도 없이 들겠습니다. 전하께서 토르구트 부족과 동몽골 여러 부족들에게 벌을 주지 않고 받아들인 깊은 뜻이 있으셨군요.”

“감자 반도는 왜 빼? 그리고 코사크 탐험대가 태평양을 건너 북미로 진출한다는 생각은 못하나?”

“설마 그러겠습니까? 흐음.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직 북미를 완전하게 개척하지 못한 우리가 크게 손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루스 차르국의 탐험대를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 작품 후기 ============================

이어질 내용이 좀 더 있습니다.

타이가 편은 다음 회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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