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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685화 (634/1,000)

00685  73. 몽골 초원  =========================================================================

장갑차 전면 장갑에 불타는 솜뭉치가 얹혀서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은 보병이 칼을 뽑아 그 솜뭉치를 치웠다.

바로 그 보병의 몸에 화살이 날아와 꽂혔으나 방탄조끼 덕택에 관통되지 않았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이민호는 더욱 초조해졌다.

“적에게 대포는 없지?”

“발견 못했어요.”

이민호가 묻자 망원경으로 적진을 살피던 민정이 대답했다. 원나라가 북쪽으로 밀려나면서 몽골군이 화약무기를 사용하는 빈도가 뚝 떨어졌다. 심지어 토목보의 변 때는 전장에 수많은 화약무기가 널려 있었으나 몽골군은 그게 뭔지도 모르고 사용방법도 몰라 노획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시대에 아시아에서 대포는 공성전에나 동원하지 야전에는 잘해야 조총뿐이었고, 조총은 보병의 무기였다. 동아시아에서 기병이 마상총을 쓰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현재 몽골군의 전술은 일반적인 양상에서 꽤 벗어났다. 몽골군은 전투 전에 척후를 대량으로 운용하다가 적의 주력을 유인해서 포위한 다음 전열이 무너질 때까지 교대로 접근해 화살을 퍼붓는 식으로 싸웠었다.

그러나 고산국 주력 무기인 소총의 사거리가 몽골 활에 비해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몽골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병력 우위를 바탕으로 사방에서 고산국 방어선에 돌입하는 식으로 전투가 전개됐다.

- 따다다다닷!

1호차에서는 민지가 기관총을 잡고 연사를 날리고 있었다. 적이 너무 가까이 접근해서 활 공격의 정확도가 슬슬 올라가는 것 같았다. 방금 1호차 옆에서 소총을 쏘던 장갑차 보병이 팔에 화살을 맞고 장갑차 안으로 후송됐다.

“기병과 보병을 탑승시켜.”

“1호차다. 전체 탑승!”

명령이 떨어지자 기병은 말에 타고 보병은 장갑차에 탔다. 참호에 빠져 버둥거리는 말과 몽골인들이 많아서 이제 방어선이 무의미해질 찰나였다. 그 사이 장갑차들 사이를 지나치려는 몽골 기병을 아군 기병들이 해치웠다.

페르가나 말은 덩치만 큰 말이 아니라 영리하기까지 했다. 기수와 함께 일체가 돼서 움직이며 말 주제에 기수가 사격하기 가장 좋은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다. 적 기병이 칼이나 창을 들고 공격해 오면 앞발로 밀어서 막거나 뒷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적 기병이 탄 말은 페르가나 말이 윗입술을 까서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몽골 기병은 지구력이 강하며 유순한 말을 전마로 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이런 현상이 생겼다.

어쩌다 용감하게 돌진한 몽골 말은 페르가나 말에게 진짜로 물려버렸다. 이 정도면 오추마나 적토마가 따로 없었는데, 기병대대 전원이 페르가나 말을 탔다는 것이 몽골 기병들에게 꽤나 충격을 주었다.

“숙영지를 내버려두실 건가요?”

“그건 아니지. 감불에게 기병대대를 데리고 가라고 해.”

뒤쪽 숙영지에서 아직도 총성이 끊임없이 울렸다. 탄약과 연료를 관리하는 보급대는 통신이 끊겼지만 비전투원에 속하는 군인과 민간인들이 저항을 계속하는 듯했다.

그 북쪽에서는 고산국 본대의 배후를 치기 위해 우회한 몽골 기병 2만과, 토르구트 및 여진 기병 합계 1만 5천이 싸우고 있었다. 비행기들은 폭탄을 다 썼는지 돌아가고 없었다.

감불이 기병대대를 이끌고 숙영지를 구하러 떠났다. 몰려오는 적의 대군을 앞두고 병력을 자꾸 뒤로 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몽골군의 포위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제1 포대는 원형진을 형성하고 대기하라. 나머지 장갑차는 소대별 단종진을 구성해서 전진!”

참호선 중간 중간에 장갑차 한 대가 빠져 나갈 공간이 있었다. 이민호가 탄 1호차를 선두로 장갑차 네 대가 한 줄로 방어선을 빠져 나와 오히려 몽골 기병들을 향해 돌격했다. 나머지 장갑차들도 소대별로 적 기병 대열을 향해 전진했다.

그 사이 3인치 야포를 장착한 장갑차 여덟 대로 이뤄진 포대는 팔각형으로 배치됐다. 탄약 수송차들은 원 안으로 들어갔다. 포병들이 장갑차 한 면에 배치돼서 그 방향으로 접근하는 몽골 기병들에게 소총을 난사했다.

“컥! 운전 좀 잘하지.”

이민호가 머리를 기관총 사수석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적의 전마와 기병들의 시체가 계속해서 장갑차 바퀴에 깔린 탓이었다.

- 따다닷! 탕! 탕!

기관총 2정이 정면을 향해 불을 뿜는 동안 차내 보병 탑승 공간에 몸을 숨긴 보병들이 측면을 향해 사격했다. 적이 하도 많아서 쏘면 쏘는 대로 다 맞았다.

몽골 기병들은 화살 공격보다는 불붙은 솜뭉치를 던지는 데 주력했다. 장갑차가 멈춰 있을 때는 위험할지 몰라도 이동하는 중에는 솜뭉치를 차체 위에 올려놓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하는 중에 몽골 기병들이 무수히 죽어 나갔다.

- 촤라라락~

화살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주변이 잠시 어두워질 정도였다. 몽골 기병들이 장갑차를 향해 일제 사격을 할 때는 병사들이 놀라 움찔하느라 사격마저 멈췄다.

- 팅!

“조심하세요, 주인님. 왼쪽 창문이요!”

“그래. 창문을 닫자.”

적과 뒤섞여 싸우느라 바빠 방풍창 닫는 것을 잊어 먹었고, 그 사이로 화살 한 발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철판에 맞고 튀어서 위험은 없었다.

고산국 장갑차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활약하던 장갑차보다는 21세기 다기능 수송차량과 비슷하게 생겼다. 또한 차체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한궤도가 아닌 바퀴 6개의 장륜차량으로 설계했다. 적의 대포 공격에 파괴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이런 형태가 가능했다.

- 팡!

장갑차 보병이 발사한 유탄이 기마대열 한가운데에서 터지면서 몽골 기병들 서넛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그러나 적의 기마대군을 상대로 할 때는 파편 비산 범위가 좁은 유탄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장갑차에서 볼 때는 적이 밀집한 것처럼 보이지만 말의 체구가 커서 그렇게 볼일 뿐 사실은 꽤 떨어져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끼요오!”

- 캉!

기병창을 앞세우고 장갑차에 돌진하는 몽골 기병이 아주 가끔 있었다. 철갑을 두른 장갑차를 상대로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도 급해지면 가끔 그런 행동이 나왔다.

적의 대열을 뚫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심리적인 공격이었다. 일반적인 전투에서 뒤에 머물면 죽을 가능성이 줄어들겠지만, 이제 앞뒤가 따로 없게 됐다. 몽골 기병들의 당혹스런 몸짓을 통해 적이 몹시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적의 대열을 지나쳤어요.”

“반전! 횡대로 전개!”

1호 장갑차가 왼쪽으로 급선회했다. 뒤를 따르던 장갑차들도 기관총을 계속 발사하면서 급히 선회했다.

그런데 모든 장갑차가 적의 대열을 뚫고 반전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전장에 말과 적 기병의 시체가 너무 많이 널려 있어서 장갑차 몇 대가 움직이지 못했다. 그 장갑차들을 향해 몽골 기병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횃불을 던지며 화공을 실시하고 있었다.

“어서 쏴!”

이민호가 기관총을 잡은 민지를 재촉했다. 장갑차도 기관을 작동시켜 움직이는 차량이라서 앞이나 뒤로 공기가 통해야 했다. 그래서 불덩이를 던지는 수준의 야만적인 무기에도 완벽한 방호 능력을 자랑하지 못했다.

이차대전 때는 화염병에 맞아 불타는 탱크도 있었고, 수류탄과 기름병을 묶은 몰로토프 칵테일은 급조 대전차 무기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 이후에도 기갑차량의 후방 엔진룸은 여전히 화염 공격에 취약했다.

“쏴야 하는데 아군 장갑차에 맞을까봐 겁나요.”

“그냥 쏴. 바퀴 말고는 그 기관총에 안 뚫려.”

장갑차의 철판 두께는 현대 기갑차량처럼 전면이 가장 두껍고 후면과 상면이 가장 얇았다. 장갑차 측면도 소구경 기관총에 관통되지 않을 정도로 두꺼웠다.

- 뚜두두둣!

멈춰 선 아군 장갑차 주변에 몰려든 몽골군에게 민지와 앞좌석에 위치한 단차장이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화공을 하던 몽골 기병들은 동료들이 줄줄이 쓰러지자 일제히 흩어졌다.

전투기나 함정도 마찬가지지만 기갑 차량도 한 대보다는 여러 대가 함께 움직이는 편이 훨씬 강력했다. 서로 사각지대를 엄호해주면서 보다 효율적인 전투를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투가 지속되는 동안 적 병력이 꽤나 줄어들었다. 장갑차 50여 대가 반전해서 전진하자 몽골 기병들이 아군 방어선 방향으로 계속해서 밀려났다. 병력이 줄어들면서 아까는 안 보이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죠? 작은 깃발이 많아요.”

“칸이다! 칸이 살아있다!”

전투 초반에 적 지휘부가 위치한 언덕을 날려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저 커다란 깃발만 휘날리는 위장 지휘부였던 모양이었다. 칸은 고산국의 전력과 전술을 꽤 높은 수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상대로 싸우면서 야포를 야전에 동원하고 적 지휘부를 전투 초반에 야포로 날려버리는 전술을 활용했다. 칸은 그런 것까지 알고 평소에 언덕에서 지휘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병력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나 장갑차들이 기병 대열을 뚫고 반전하자 그 모습이 드러났다.

“민지야, 어서 쏴! 민정아! 다른 차량에도 사격 지시해!”

몽골군이 적 지휘부의 생포에 주력하는 것과 달리 고산국 군대에서는 사살 위주였다. 적 지휘부를 앞두고 여러 장갑차에서 전혀 고민하지 않고 총격을 퍼부었다.

기수들과 화려하게 빛나는 갑옷을 입은 호위병들이 먼저 말과 함께 픽픽 쓰러진 다음 지휘부가 몸을 드러냈다. 곧이어 겁에 질려 말을 뒷걸음질 치게 하는 칸과, 그 칸을 몸으로 막으려던 귀족들이 거의 동시에 핏줄기를 허공에 뿌리며 쓰러졌다.

“칸의 손자는 없나?”

“없어요. 혹시 빼돌렸는지 모르겠어요.”

이민호가 남쪽 멀리 칸의 여름 궁전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에도 꽤 많은 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 여자나 아이들, 노인들이었고, 말을 타고 전투 현장을 왕복하는 자들도 가끔 눈에 띄었다.

“여름 궁전에 포를 쏘라고 할까요? 심리적 충격이 클지도 몰라요.”

“아니. 저기에 몽골 기병들의 가족이나 재산이 없을 테니까 소용이 없어.”

기존 방어선 안쪽에 원형진을 친 포대는 적의 접근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포탄도 몇 발 안 남았다. 숙영지에 쌓아둔 포탄이 다 날아가는 바람에 당장 보급을 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칸이 쓰러진 이후 몽골군의 조직력은 크게 떨어졌다. 차하르 부 위주인 몽골군의 중군이 지금까지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지휘부가 전멸하자 지리멸렬해졌다. 도주하는 자들도 중군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그러나 몽골군 좌익과 우익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명 피해를 입고 지금도 장갑차들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이들은 칸의 직속 차하르 부 소속이 아니라 칸의 동맹 부족들이 지원한 병력이었다.

몽골 기병들은 장갑차 바퀴 사이에 불붙은 천을 집어던지는 것으로 작전을 바꿨다. 물론 장갑차에 접근할 때마다 큰 피해를 입었고 아직 아무런 효과도 못 봤지만, 멈춰 선 장갑차에게는 효과적인 공격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바퀴가 불타오르면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장면을 상상한 이민호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 감불입니다, 도련님.

“어떻게 됐어?”

송수화기를 이민호가 직접 잡고 물었다. 숙영지를 구하러 갔던 감불은 몇 배나 많은 적 기병과 싸우고 있다고 했다. 배후로 돌아 아군 본진을 기습하려던 몽골 기병 2만에 맞선 토르구트와 여진 기병은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보고했다.

“전투 지속 능력이 승부를 판가름 낼 것 같다.”

장갑차 대대의 피해는 부상자 몇 명 외에 아직 거의 없었다. 그러나 장갑차마다 3천 발씩 탑재한 기관총 탄약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관총 2정에서 쉴 새 없이 쏴댔으니 금방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연료도 부족해요. 울란우데 역까지 간신히 돌아갈 정도만 남았어요.”

“숙영지가 날아간 탓에 보급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겠군.”

만약 장갑차가 멈추면 몽골 기병들이 접근하지 않고 보병들이 굶어죽을 때까지 포위할 것이 뻔했다. 이제 패배를 인정하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병을 앞세우고 후퇴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 지는 건가? 그럼 앞으로 그 시건방진 꼬마한테 지시를 받아야 해?”

“저들이 먼저 약속을 어겼으니 지킬 필요 없어요. 그리고 칸이 죽었으니 우리가 이긴 것 아닌가요?”

“적의 좌익과 우익이 계속 공격해오잖아.”

“그럼 울란우데 역에서 탄약과 연료 보급을 받고 다시 싸워요.”

“그게 좋겠다.”

패한 것이 아니라 보급을 받으러 가는 것이라고 우기는 정신 승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적의 추격을 뿌리치고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울란우데로 퇴각할지 잠시 고민했다.

지금까지 버티며 잘 싸우고 있던 토르구트와 여진 기병에서 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이 아예 전장에서 이탈하거나 심지어 칼끝을 이쪽으로 돌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 바아앙~

그런데 깜짝 잊고 있던 것들이 다시 나타났다. 수상비행기들은 방어선과 여름 궁전 사이, 주 전투 현장 상공에 나타나 몽골 기병들 머리 위로 폭탄을 연속 투하했다.

============================ 작품 후기 ============================

밸런스 패치를 해도 장갑차들을 위기에 몰아넣기가 쉽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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