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81화 (630/1,000)

00681  73. 몽골 초원  =========================================================================

기차가 대흥안령산맥을 넘었다. 동쪽에서 볼 때는 높은 산악지대를 넘어 다시 그만큼 내려와야 하는 줄 알았는데, 고개 정상을 넘으니 바로 평평한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몽골 고원이었다.

7월 10일에 바이칼 호수에 유입하는 주요 강줄기인 셀렝게 강변에 도착했다. 임시 우회로를 통해 기차가 셀렝게 강 건너편까지 운행되고 있었지만 아직 교량이 건설 중이라 이곳은 미완공 구간이었다. 평지에서 철도 건설은 아주 빠르게 진행됐으나 강을 만날 때마다 철교 건설에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런 경우가 흔했다.

밤늦게 철도역에 차례로 도착한 원정군 기차들이 역사 주변 선로에 멈춰 섰다. 이민호는 장병들을 기차에서 내리게 해서 맑은 밤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떠 있는 강변에 숙영지를 세웠다. 그리고 모닥불을 피우고 물고기를 나뭇가지에 꿰어 구워 먹었다.

“도련님! 하나 더 드세요.”

“감불이 너, 나에게 오물을 줬어.”

“먹기 싫으면 저 주세요. 제가 먹을게요.”

“누가 먹기 싫대?”

양력으로 7월은 바이칼 호수에 대량으로 서식하는 물고기 오물이 셀렝게 강에서 산란을 하는 시기라서 강 전체가 물고기로 넘쳐 났다. 그리 넓지 않은 강에 물고기가 하도 많아서 질식하거나 강물에서 밀려난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다.

허옇게 변한 강변에 곰과 늑대, 여우 등 육식동물들과 여러 가지 새들이 몰려와 잔치를 벌였다. 이 잔치에 사람들이 참가했다. 물론 살아있는 물고기만 잡아왔다.

“민물고기인데도 오물 맛이 의외로 짭짤하네. 산란기에는 어업을 금해야 하지만, 강이 물고기로 미어터지는 장면을 직접 보고 나니 당분간은 금할 이유가 없겠다. 오물오물.”

“자꾸 오물오물하지 마세요, 도련님.”

“먹는 소리야.”

감불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이민호는 꿋꿋하게 구운 물고기의 살을 뜯었다. 감불이 잠시 통신병에게 보고를 받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도련님. 손님이 오고 있습니다. 경계태세를 한 등급 올렸습니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이라. 별로 반갑지 않군.”

“다른 세력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잠시 후 20여 명이 말을 타고 서쪽에서 나타났다. 남쪽 차하르 부나 북쪽 부리야트는 분명 아니었다.

“고산국의 왕께서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왕을 만나 뵐 수 있는지요?”

통역을 맡은 동해국 여진족이 오이라트 부에서 온 사신이라고 일러주었다. 초원에서는 소문이 워낙 빨리 퍼져서 멀리 서쪽에서도 직접 찾으러 온 것 같았다.

그런데 통역은 왕이라고 강조했다. 부족장 호칭으로 칸을 붙이곤 하는 여진족과 달리 몽골족은 칭기즈칸의 후손, 황금씨족만 칸이 될 수 있었다.

“대표 몇 분만 이쪽 모닥불로 오시오. 밤이 늦어서 드릴 건 별로 없고 오물이라도 대접하겠소.”

“감사합니다, 왕이시여.”

초원의 예법에 따라 손님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물고기만 주겠다는 말과 달리 조리장이 쇠고기와 따뜻한 밥, 술까지 내왔다. 마지막으로 차를 대접받은 오이라트 사신 대표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발효가 적당히 된 아주 좋은 홍차로군요.”

“입맛에 맞는다니 다행이오.”

고산국 또는 이민호 개인 이름으로 소유한 복건성 고원지대의 광대한 차밭에서 재배한 차였다. 처음에는 녹차로 시작했다가 차차 발효 기술을 쌓아 홍차로 범위를 넓혀갔다. 좋은 품종을 좋은 재배지에서 키우고 발효도 잘 돼서 고산국 차는 품질이 좋다고 알려져 있었다.

“왕께서는 초원에 철도를 건설하시면서 차하르 부의 칸과 마찰을 빚고 계십니다. 맞습니까?”

“그렇소. 부리야트에서 철도 건설을 허용했었는데 갑자기 차하르 부를 핑계대면서 난색을 표하고 있소. 이미 철도는 건설됐는데 무슨 욕심인지 모르겠소. 쯧쯧!”

“차하르 부의 칸이 명목상 몽골의 대칸이니까 괜히 심통이 난 것이겠지요.”

이민호는 건주 여진의 누르하치가 차하르 부의 보얀 체첸칸에게 선물을 보내 철도 건설에 트집을 잡게 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신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차하르 부의 칸이 순전히 개인적으로 심통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이라트라면 오래 전부터 강성한 세력이라 들었소. 설마 내 기분을 확인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무슨 의도로 오셨소?”

“사실 저는 오이라트에서도 서쪽에 치우친 토르구트 부족의 타이지인 코우틀룩입니다. 현재 초로스 부족이 전체 오이라트를 지배하면서 목초지를 잃은 부족민들이 살 길을 찾아 서쪽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오이라트 부는 원래 바이칼 호 인근에서 발원해 서쪽 삼림지대에서 살아왔다. 수렵인이었던 오이라트 부는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할 무렵에 유목생활을 시작해 나중에는 몽골 전체를 장악하기도 했다. 1449년 ‘토목보의 변’에서 겨우 2만 기병으로 명나라의 50만 대군을 격파하고 명나라 황제 정통제를 생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이라트의 태사 에센은 칸에 올랐다가 암살당하고 이후 몽골의 다얀칸 시절에는 크게 패해 오이라트 전체가 서쪽으로 밀려났다. 현재 몽골 초원을 두고 몽골족이 동서로 분리된 이후 그 어느 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현재의 오이라트는 메르키트, 케레히트, 나이만 등 옛날에 칭기즈칸의 몽골 부족에게 대항했던 여러 부족을 휘하에 두고 있어서 순수 오이라트 부족은 오히려 소수로 전락했다. 그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부족이 케레이트의 후예, 토르구트였다.

코사크처럼 러시아에 속해 카스피 해 연안과 볼가 강 유역에 거주하며 기마병으로 활약했다가 1771년 조상의 땅인 중가르 분지로 귀환한 사건으로 유럽에도 잘 알려진 칼미크가 바로 토르구트였다. 현재 초로스 부족이며 오이라트의 좌익이라는 뜻의 중가르는 나이만 계열로서 한때는 중가르 제국을 세우며 잘 나갔으나, 건륭제의 공격으로 거의 몰살당한 직후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

“아! 아랄 해를 지나 카스피 해 북쪽 연안을 약탈하고 다니는 기마민족이 있다고 들었소.”

“송구합니다. 제가 제지하려 했지만 일부 부족민들은 이미 저의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더욱이 서쪽 약소부족들에 대한 약탈이 연속 성공하면서 고무된 나머지 부족민들도 강한 적이 없는 서쪽으로 이주하자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시비르한국이 멸망하면서 주인 없는 땅이 넘쳐나고 있어서 이 기회를 놓치기 아까운 면도 있습니다.”

“잠깐! 오스만 제국 밑의 크림한국이나 루스 차르국 휘하의 노가이 칸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속한 코사크들이 만만하단 말이오?”

“그들은 약소 부족들 아닙니까? 물론 화승총을 조심해야 합니다만, 초원에서 기병들끼리 전투를 할 때는 화승총이 위력을 발휘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민호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동맹으로 묶어두고 있다지만 코사크와 크림한국이라는 강력한 기병 세력을 감당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루스 차르국과 오스만 제국이 불쌍해졌다. 토르구트의 침략에 시달린 노가이는 오죽했으면 서쪽으로 이동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를 빼앗으려 시도했다.

칼미크의 귀환 사건도 칼미크의 힘을 두려워 한 러시아가 섣불리 통제하려다가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 사건 다음 해에 우랄 코사크인들의 반란, 그 다음 해에 푸가초프의 반란이 일어나 러시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됐다.

이때 등록 코사크와 자포로제 코사크는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속했고, 가끔 반란을 일으켰다가 나중에는 러시아의 종주권 아래로 이동한다. 돈 코사크는 처음부터 루스 차르국에 협조했고 특히 시베리아 정복에 앞장섰다.

“토르쿠트라면 그럴 자격이 있겠구려.”

“차하르 부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견이 충돌해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결국 힘으로 결판을 내는 것이 초원의 법입니다. 차하르 부의 칸과 전쟁이 벌어지면 저희 토르구트 부를 동맹으로 받아들여 참전하도록 허용해주십시오.”

“참전 대가는 동몽골의 너른 초원이오? 아니면 오이라트의 종주권이오?”

“권력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저희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초지가 풍부한 땅을 조금 떼어 주고 강한 적을 상대할 때는 보호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오이라트에서 탈퇴해 고산국의 종주권 아래에서 평화롭게 살겠습니다.”

유목민이 평화롭게 살아갈 땅이라면 주변에 약탈할 만한 약한 부족들이 많은 지역을 뜻하는지 이민호는 잠시 의심했다. 그러나 현재 토르구트 부는 초지가 부족해 이주하려는 요구가 강해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토르구트의 인구는 30만 정도로서 연맹도 아닌 일개 유목민 단일 부족치고는 대단히 많은 편이었다.

“흐음. 나는 남의 땅을 빼앗을 생각은 별로 없는데 말이오.”

“고산국에서 철도를 놓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대한 쇠마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저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철도가 파괴되지 않도록 반드시 고산국 영토로 편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건 그렇소만, 남의 영토를 임대하는 방식도 있소.”

“철도가 지나는 지역 중에서 몽골 초원 북쪽은 마침 대부분 빈 땅입니다. 저희들이 철도 주변에서 살게 해주시고 강한 적으로부터 보호해주신다면 고산국의 왕 밑에서 저희 부족민들이 철도를 지키는 외에 군역도 수행하겠습니다.”

“군역이라. 여진족이 그 역할을 하고 있소만.”

“여진족이 강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초원의 부족이라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초원은 반농반목을 하는 여진족이 살 만한 땅이 되지 못했다. 뜻밖에 문명인인 여진족에게는 농토와 수렵지, 철광, 염호나 암염 광산 등 많은 자원이 필요했다.

이번에 고용한 여진족 기병 2만은 다른 곳에 배치하고, 철도 주변을 이들이 원하는 대로 토르구트에게 맡길까 고민했다. 인구가 30만이라면 유사시 적어도 몇 만은 수시로 동원 가능했다. 몽골 근처를 지나는 철도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루스 차르국과 한 판 벌일 경우 병력 부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소.”

“왕이시여! 대신에 주변 다른 부족에게 세금을 좀 받아도 되겠습니까? 물론 약탈로 위장하되 인명피해는 많이 내지 않겠습니다.”

타지이 코우틀룩이 하는 소리는 뻔한 수작이었다. 초원의 부족에게 약탈하는 것도 능력이겠으나 고산국 영역 안에서 그런 짓을 허용할 리가 없었다.

“집어치우시오! 철도 주변의 초지를 충분히 내주겠소. 그리고 군역을 제공하는 자들에게는 매달 일정한 봉급을 지급하겠소.”

“군역을 수행하고 돈을 받으면 용병이 아닙니까? 전사로서 별로 명예롭지 못합니다. 저희들은 그저 군역의 대가로 약간의 약탈만 하면 됩니다.”

“약탈하는 것보다 봉급을 받는 편이 훨씬 이익일 것이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민호나 코우틀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매달 은 4냥이 쌀 8섬에 해당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 토르구트의 타이지가 얼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 녹봉이면 전업을 해도 한 가족이 충분히 부유하게 살아갈 정도였다.

그리고 토르구트 부족에게 다른 부족들과 무역할 독점적인 권리를 주기로 했다. 기차역 위주로 여러 부족들이 찾아와 교역이 진행되는 동안 상품을 갖고 멀리 떨어진 다른 부족과 교역을 해서 이익을 차지할 권리였다. 이익은 부족 전체가 나누겠지만 타이지의 권력을 높여줄 것이 틀림없었다.

“천막을 준비했으니 주무시고 가시오.”

“감사하지만 가까운 곳에 겔을 쳐 놓았습니다. 내일 오전에 다시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왕이시여.”

토르구트의 타이지가 이민호에게 인사를 마친 다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고산국과 토르구트가 같은 편이 되기로 약속했으므로 굳이 뒤쫓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정찰조가 얼굴이 사색인 채로 급히 돌아와 감불에게 보고했다. 감불이 펄펄 뛰며 정찰조 지휘관을 문책하는 모습을 보고 이민호가 궁금해서 다가갔다.

“뭐? 일만 병력? 그런 대규모 병력이 지척에서 야영을 하는데도 몰랐다는 게 말이 돼? 야습 당했으면 어쩔 뻔했어?”

“죄송합니다, 장군님. 그게, 밤새 몇 번이나 그 지역을 관측했지만 불빛 하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찰조를 꾸짖을 때가 아니었다. 이민호가 서둘러 장갑차에 타고 정찰조장이 가리킨 방향으로 달리게 했다.

언덕을 넘자 평원 가득 천막이 세워져 있고, 토르쿠트 기병이 말을 타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말에 재갈을 물리고 말발굽은 헝겊으로 감싸져 있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들이 야습을 했더라도 우리에게 장갑차가 있으니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여요.”

“그렇겠지?”

“물론이에요! 그리고 기병으로 야영지를 야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민정이 강하게 대답했으나 어쩐지 자신감이 없는 목소리였다.

“훌륭한 동맹을 얻었다고 생각하자.”

“반성하겠습니다, 도련님. 숙영지의 야간 경계 체계를 다시 짜야겠습니다.”

민정에 이어 감불도 크게 반성하는 듯했다. 그러나 현재의 야간 경계 체계를 수립한 사람은 이민호였다.

토르구트 부족의 야간 기동과 기도비닉 능력이 특별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몽골 부족들도 비슷한 능력을 갖췄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고 병력 절반을 잠도 못 자는 야간 정찰에 내몰 수는 없지 않나? 아무리 경계를 철저히 해도 기습을 당할 수도 있는 거야. 적절하게 대처해서 피해를 줄이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겠지.”

기습당하는 것을 지휘관의 경계태세 부족이나 무능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민호는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계곡 지형을 진군할 때는 아무리 주변 경계에 많은 병력을 투입하더라도 반드시 기습당할 여지가 있었다. 이번에도 만약 토르구트가 야습하려 했다면 숙영지에 접근하는 동안 대응할 시간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 작품 후기 ============================

자꾸 늦어지네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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