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80화 (62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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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몽골 초원

헤드비히는 레이캬비크를 떠나가는 배를 보고 눈물을 뿌렸으나 여왕으로서의 책무를 버리지 않았다. 이민호도 헤드비히가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된 것 같아 씁쓸했다.

그러나 공주로서 다른 왕실의 왕비가 되는 것보다는 여왕으로서 직접 백성들을 다스릴 기회를 갖길 원한 사람은 헤드비히 본인이었다. 헤드비히는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다짐했었다.

다시 보름 넘게 항해해서 왕도로 돌아왔다. 그 사이 고산국 본토에서는 많은 일이 진행되고 있거나, 완료됐다.

왕도 중심가에는 공용마차가 많이 줄어들고 그 대신 성지순례 때 동원됐던 승합차가 돌아다녔다. 멋진 제복을 차려 입은 여성 안내원이 노인이나 아이를 자리에 앉힐 때까지 승합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교황의 성지 순례에 투입된 승합차 중에서 3대는 방탄차였다. 머스킷이나 핸드캐논 종류의 개인용 화약무기로 공격하면 거뜬히 막아낼 정도였다. 이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왕도의 시내 교통에 투입했다. 철도와 마차 외에 승합차 노선이 생겨서 왕도의 백성들이 싼 값에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계복이 절강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면서 고산국의 위엄을 드높였다고 한다. 회수(淮水) 강가에서 10만이라 칭하는 대규모 농민 반란군과 황군이 맞붙었다. 어느 쪽이 이기든 전투가 끝날 때까지 수만 명이 죽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의 전투는 시작되자마자 고산국 파견대의 일제 포격 한 번으로 끝났다. 조고원 등 반란군 지휘부가 자리 잡은 언덕에 폭발이 연속 일어나고 거대한 깃발이 쓰러진 순간, 반란에 가담한 유민과 농민들이 기겁해서 산이 무너지듯 다 달아나 버렸다.

황군의 진압군 대장은 기병을 내보내 반란군을 흩어버리면서 조정에 바칠 수급 몇 십 개만 베었다. 그리고 황도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행진할 포로 500명만 잡고 나머지는 순순히 보내주었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계복은 병력을 이끌고 고산국으로 돌아와 버렸다. 황군 지휘부에서 급히 전령을 보내 승전 연회에 초대했지만 계복이 사양했다고 한다. 황제와 명나라 농민 양쪽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고산국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잘했어. 그런데 여진 땅에는 누가 가 있지?”

“감동이에요, 주인님. 철도 공사 현장에 직접 가보시려고요?”

혜영이 얼굴을 환히 밝히면서 되물었다. 요즘은 본토가 안정돼서 급한 일도 별로 없었다. 명나라 황제처럼 무위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라 딱히 국왕인 이민호가 왕성을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감동이라면 믿을 만하지. 무슨 일이 있어?”

“바이칼 호수 주변에 전운이 감돌고 있으니까 그렇죠. 철도 노선이 부리야트 족의 영토를 지나고 있는데 차하르 부가 개입하는 바람에 그들과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못했어요.”

“차하르 부는 바이칼 호수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데 왜?”

차하르 부는 동몽골 지역에서도 현대의 내몽골을 중심으로, 북경 바로 북쪽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부족들이었다. 칭기즈칸의 직계 보르지긴 씨족의 대칸이 직접 다스리는 중요한 영지였고, 바로 얼마 전까지 오이라트를 정벌하면서 다시 몽골족 전체를 지배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옛 영광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쇠락한 후손들에 불과했다.

“명목상 북원의 지배자가 차하르 부의 대칸이니까요.”

“귀찮게. 알았어. 계복이 본토를 지키고 감동이 동해국을 지키라고 해. 그 동안 나는 감불하고 같이 철도나 돌아봐야겠다.”

그런데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순시하려면 내륙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함대와 함께 이동할 때와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일단 내륙 지역에는 보병을 데려가기 어려웠다. 도로가 완벽하게 나 있으면 보병을 승합차에 태우고 갈 수도 있었으나, 철도와 평행하게 달리는 건설용 비포장도로는 승합차가 갈 만한 도로가 못 됐다.

“승합차는 너무 길어서 어렵고.”

“뭘 그렇게 고민하세요?”

“보병을 이동시킬 수송 수단. 구르카 여단을 데려가고 싶은데 마차에 태우고 가기도 어렵고 승합차에 태울 수도 없고, 문제야.”

“장갑차를 더 만들고 있잖아요. 장갑차에 태울 수는 없나요?”

장갑차에 탑승하는 보병은 보병이라 해도 하차 전투와 함께 승차 전투 훈련도 충분히 받았다. 장갑차 대대는 장갑차와 완전히 결합된 보병이라 하는 일도 거의 기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일반 보병을 전투 지역으로 운송하는 단순한 차량이었다.

“전투용이 아닌 병력 수송용 장갑차를 만들어 볼까? 무게가 절반에 불과하더라도 제작비용은 차이가 별로 안 나겠어.”

“전투용 장갑차에 비해 조금 싸게 먹힐 뿐이라면 그게 그거 아닌가요? 차라리 아예 전투용 장갑차를 만들어서 태워요.”

“전투용과 수송용은 역할이 많이 다르지. 수송용 장갑차는 연료를 적게 소모하는 장점이 있어. 연료가 아무리 값이 싸더라도 필요한 양을 필요한 곳에 수송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니까.”

기계화 보병과 보병은 하는 일이 아예 달라서 탑승 전투 훈련 없이 전투용 장갑차에 일반 보병을 태우고 다닐 수는 없었다. 또한 장갑재로 둘러싼 전투용 장갑차의 연료 소모율이 높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료를 필요한 곳까지 운반하는데 그 연료의 몇 십 배가 소모될 수도 있기에 전투용 장갑차를 대량 투입하는 것은 명백한 낭비였다.

시베리아가 워낙 넓어서 구소련의 기갑부대는 전차와 비슷한 수의 유조차를 운용했다. 보급 거점과 전투 지역의 거리에 따라 대형 유조차를 추가로 투입할 때도 있었다.

신유의 <북정일기>에 기록된 나선 정벌 당시 도보로 8~9일 거리인 회령에서 영고탑까지 50일치 군량 3백 섬을 운반하기 위한 비용이 5천 섬에 달했다. 철도 노선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연료를 대량 소비하는 전투 차량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것은 아무리 고산국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철도가 완공된 곳까지는 어떻게든 되겠지. 철도가 바이칼 호수 서쪽을 조금 지났다고 했지?”

“바이칼 호수 남동쪽 역의 연료 저장고를 가득 채워두라고 할게요.”

“철도 유조차에 자동차 유조차까지 대량으로 필요하겠군. 철도가 없으면 시비르한국까지 절대 못 가겠다.”

“이번에 한해서 기병을 쓰면 어때요? 몽골은 기병만으로 세계를 제패했잖아요?”

“우리도 기병 몇 만을 몇 년 기간으로 원정하는 것은 가능해. 하지만 여진족들에게도 가족이 있으니 점령지에 영구 주둔시키지는 못하지.”

동해국 여진족 2천과 기병연대, 그리고 이번에 고용한 요동 여진 기병 2만이 철도 주변에 분산 배치돼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번 순행은 보병을 빼고 기병연대에서 1개 대대, 장갑차 대대, 그리고 호위대만 대동하기로 했다.

“장갑차 대대에 객차 6량과 유개화차 6량, 무개차 30량, 기병대대에 객차 8량과 유개화차 20량이 필요하겠어요. 호위대는 객차와 화차 5대가 필요해요. 기관차 한 대가 10여 량씩 끌면 되니까 예비 기관차 한 대 포함해서 여덟 대를 동원할게요.”

“괜히 순행 한 번 하려다가 철도 건설이 늦춰지겠다.”

“운행할 차량 여유가 줄어든 정도지 건설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은 주변 세력들과의 분쟁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해요.”

민영이 그렇게 보고했다. 지금도 완공 구간에서는 기차가 다니면서 건설 현장에 보낼 자재를 열심히 수송하고 있었다.

“부리야트 족 말고 야쿠트 족의 동향은 어때?”

“동해국 탐사단이 정기적인 교역로를 확보한 탓에 북쪽에 위치한 야쿠트 족이 우리에게 더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어요. 부리야트 족은 아무래도 몽골 쪽에 의존하려 해요.”

몽골의 케레이트, 나이만 부처럼 야쿠트 족도 몽골계가 아닌 투르크 계열이었다. 몽골족이 몽골 초원에서 발흥할 때 야쿠트 족은 기존의 영역인 바이칼 호수 주변 지역에서 더 북쪽으로 밀려났다.

시베리아 동부의 인구가 적고 넓은 지역을 지배하려면 아무래도 야쿠트 족과 협력하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에벤키, 즉 어웡키 족도 적은 인구에 비해 시베리아 거의 전체 지역에 분산돼 있어서 조만간 접촉을 가질 계획이었다.

“바이칼 호수 주변에는 부리야트가 더 많잖아? 곤란한데.”

“몽골족과 언어가 많이 달라도 부리야트 족은 몽골족의 일파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어요. 유명무실해졌지만 아직 명분을 갖고 있는 차하르 부의 몽골 대칸과 협력할 필요가 있어요.”

몽골족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할하족 외에 여러 부족들이 있었으나 부리야트는 언어 면에서 상당히 다른 편이었다. 그러나 유목과 주거 방식, 의복 등의 문화에서는 일반 몽골족과 공통점이 더 많았다.

몽골 동부의 좌현 부족들은 할하, 차하르 등이 속했다. 그러나 해서 여진 예허부는 몽골 우현 튀메드 족에서 창건했다. 그 외에 몽골 동부에는 반독립적인 세력들이 할거하고 있었다. 차하르 부의 몽골 대칸은 동몽골 여러 부족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보얀 체첸칸은 몽골 대칸이라도 지금은 명목뿐이잖아? 그런 자에게 권위를 실어줘도 되나?”

“바로 그 명목이 명분이 되니까요. 동몽골을 통합하려고 애쓰는 보얀 체첸칸을 돕는다면 부리야트 족과 협력하는 데에 유리할 거여요.”

그러나 보얀 체첸칸은 힘이 부족해서 몽골이 분할되는 것을 막지 못했고, 다음 대 칸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손자는 아직 어렸다. 세습 군주제에서 후계자가 젊어서 사라질 경우 그 세력은 확장은커녕 단순히 유지하는 문제에서도 큰 곤란을 겪었다.

“보얀 체첸칸을 만나겠다. 부리야트 족과 야쿠트 족의 대표들도 만나야겠어. 딱히 돈 되는 지역이 아니니까 적당히 주권을 인정해주는 식으로 협상하지 뭐. 선물을 줄 테니 만나자고 해.”

“보얀 체첸칸에게 전령을 바로 보낼게요. 다우르 족과 어웡키 족도 만나보세요. 언제 만나자고 할까요? 참고로 부리야트에는 여름에 정기적으로 여는 나담이 있어요. 올해는 7월 15일에 시작해요.”

“며칠 후에 출발하면 딱 맞겠네. 그럼 그때 보자고 해.”

장갑차와 기병 다수를 동원해 초원에 할거하는 여러 몽골계 부족들을 시원하게 밀어버리면 간단하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텅 빈 땅을 관리하려면 무수히 많은 인원이 필요했고, 그 전에 적대적인 다른 세력이 빈 땅을 장악할 수도 있었다.

고산국의 지배력 아래에서 초원 거주에 적합한 세력은 아직 동해국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해국은 건주 여진이 본격적으로 공략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므로 함부로 본거지에서 이동시키기도 어려웠다.

“분산하여 지배하는 방식으로 몽골족을 통제할 건가요?”

“아니. 이이제이나 약한 쪽 밀어주기는 실패하기 쉬워. 요나라나 금나라도 몽골 여러 부족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지배하려다가 실패하고 망했잖아. 몽골족을 통합시켜주고 동맹을 맺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

현재 명나라도 이이제이 방식을 적극 동원해 여진족 여러 부족의 분열을 조장했으나,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야금야금 일통시켜가면서 이 정책은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여진족 전체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누르하치의 건주 여진을 명나라에서 밀어줬던 정책이 결정적인 패착이 되고 말았다.

“몽골이 통합된다면 명나라를 비롯해 몇몇 나라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이겠어요. 그리고 몽골이 일통된 후에는 시베리아를 지키는데 부담이 더 클 거여요.”

“우리가 몽골이나 부리야트를 지배할 필요는 없어. 몽골이 우리에게 의존하게 만들어야지.”

“너무 자만하시는 거 아니에요? 금나라가 망한 사례를 봐도, 유목민족에게 구심점이 생기면 역사를 뒤흔드는 큰 힘을 발휘해요. 우리가 보얀 체첸칸을 도와주면 명나라에서도 두고 보지 않을 거여요.”

명나라는 고산국에게 아직도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망해가는 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명나라 황제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고산국의 운송 체계에 동원된 유구국이나 오만처럼 몽골이 지상에서 그런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이번에 절강에서 일어난 반란을 봤잖아? 그 전에 명나라가 망할 거야. 반란이 일어나든, 외적이 침입하든 말이야. 설마 건주 여진에게 망하지는 않겠지만.”

“건주 여진에게 명나라가 망해요? 농담이 심하세요. 어쨌든 몽골족은 유목민들이에요. 그들을 통제하려면 뭔가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편이 좋아요. 명나라에서 수입하는 차 말고 필요한 게 또 있을까요?”

“유목민이라도 곡식을 안 먹는 게 아니야. 그 외에도 필요한 것이 있게 만들어야지. 다른 나라나 부족으로부터 영토를 보존해준다고 제안해야겠어.”

“몽골족은 침략자라는 인상이 강해서 그런 조건에 만족하지 못할 거여요.”

“과연 그럴까?”

동해국을 세운 이래 몽골족과 여진족, 시베리아 지역에 분포된 여러 종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도 어느 정도 진행됐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단 그 지배자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원정 준비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장갑차 대대는 창설 당시부터 외국 원정을 기본 임무로 삼았고, 기병 연대 대부분은 현재 여진 땅에 배치돼 있었다. 동해국에 도착한 다음 예하 병력을 대동하고 기차에 타면 그만이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산너머 산이고, 퀘스트 하나 풀려면 서브 퀘스트 열 개를 풀어야 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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