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78 72. 아이슬란드의 여왕 =========================================================================
결혼식을 앞두고 왕실 가족들에게 예단을 보냈다. 덴마크 왕비와 헤드비히 공주, 그리고 모후에게는 굵은 흑진주로 만든 기다란 목걸이를 바쳤다. 그 외에도 순금으로 만들고 중앙에 커다란 루비가 박힌 티아라, 향신료 5종 100파운드씩, 향목 1주, 호피, 해달피 코트, 비단 100필, 면포 천 필, 옥 도자기와 각종 유리제품 등이 세 사람에게 보내는 예단 중 일부였다.
“선물이 어마어마해요. 가난한 남자는 왕가에 장가가기 힘들겠어요.”
“그러게 말이오.”
이민호는 비올레타가 준비한 예단 목록을 살폈다. 국왕인 크리스티안 4세와 헤드비히 공주는 7남매였다. 모후와 왕비 외에도 헤드비히 공주의 오빠와 언니, 남동생까지 두루두루 선물을 챙겨야 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미 보냈고, 일부는 최종 확인 후 보내기 직전이었다.
공주의 맏언니이며 브륜스빅-뤼넨부르크 공작 하인리히 율리우스의 부인 엘리자베트, 언니이며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의 왕비 덴마크의 앤, 둘째 오빠이며 홀스타인-슐레스비히, 쉬토르마른과 저지 작센어 발음으로 디트마쉰의 명목상 공작 울리히, 한 살 터울의 언니이며 홀스타인-고토르프 공작 요한 아돌프의 부인 아우구스타까지는 이미 결혼했다. 이들의 배우자에게도 선물을 돌렸다.
막내 동생이며 명목상 슐레스비히-홀스타인 군주인 요한은 루스 차르국의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가 딸의 약혼자를 제의해 현재 혼담이 진행 중이었다. 보리스 고두노프에게 크세니아라는 이름의 아름답고 교육을 많이 받은 딸이 있었다.
원래는 스웨덴 왕자이며 에릭 14세의 아들인 구스타브와 올해 결혼하기로 하고 모스크바로 불렀으나 왕자가 지나치게 방탕하다는 이유로 파혼을 선언했다. 그 직후 보리스 고두노프는 딸을 덴마크 왕실에 시집보내길 원했다.
“신랑이 오죽했으면 파혼 당했겠소만,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소. 비올레타! 루스 차르국 입장에서는 웬만하면 국경을 접한 스웨덴 왕실과 혈연으로 이어지는 게 낫지 않겠소?”
“맞아요. 결혼시키려고 모스크바로 불렀다가 파혼하는 경우는 저도 듣도 보도 못했어요. 스웨덴의 구스타브 왕자가 방탕하다기보다는, 아마도 루스 차르국이 핀란드 쪽으로 영토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나 봐요.”
구스타브 왕자가 크세니아의 약혼자로서 1599년 모스크바에 도착한 다음 한 일은 제멋대로 방탕하게 노는 일이었다. 그리고 옛 애인과 자식들을 불러들인 것으로 모자라 그들을 묶어 쇠창살 안에 가두고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등 정상에서 벗어난 성적 취향을 드러냈다.
차르는 딸의 약혼을 파혼하는 대신 보상으로 구스타브에게 울리치를 영지로 주어 내보냈다. 그러나 울리치는 이반 뇌제의 아들 드미트리가 암살당한 곳이라서, 1605년 가짜 드미트리가 구스타브를 생포해 감옥에 가두는 사건이 벌어진다.
“루스 차르국이 동쪽에서 스웨덴을 공격하는 동안 덴마크가 남쪽에서 스웨덴을 협공해주길 요청할 수도 있겠소. 대충 이익이 합치하는구려.”
“덴마크와 루스 차르국이 혼인동맹을 맺는 것을 두고 볼 건가요?”
“어쩌겠소? 알아서 선택하도록 내버려두시오.”
원래 역사에서는 크세니아가 스웨덴 왕자와 파혼한 다음 약혼한 덴마크 왕자 요한은 1602년 결혼식 직전에 모스크바에서 병으로 죽는다. 크세니아의 불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605년 보리스 고두노프가 죽고 나서 차르가 된 어린 남동생 피요르드 2세가 반란군에게 살해되고, 크세니아는 가짜 드리트리에게 강간당하고 나서 수녀원으로 보내진다.
“전하께서는 루스 차르국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잖아요.”
“루스 차르국이 동쪽으로 진출하는 것만 막으면 그것으로 족하오. 차르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데 굳이 방해할 이유는 없소. 잘하면 요한 왕자가 루스 차르국과 고산국의 협상을 중재할지도 모르지 않소?”
실제 역사에서는 결혼 전에 요한 왕자가 병사하지만, 이민호는 러시아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거의 몰랐다. 그래서 요한 왕자의 혼사가 잘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었다.
“잘 되길 바라야겠지요. 전하께서 일방적으로 덴마크 왕실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받은 것도 많아요.”
“어디, 목록을 한 번 봅시다.”
“실물도 보세요, 전하.”
전대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2세의 왕비이며 현 국왕 크리스티안 4세와 헤드비히 공주의 어머니인 메클렌부르크의 조피는 큼직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홀을 답례품으로 보내왔다. 원석이 워낙 커서 새로 커팅하면 현대 가치로 몇 백 억은 될 것 같았다.
“엄청난 크기요. 과연 유럽 제2의 부자답소.”
“모후께서 가진 재산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가난한 지역이라도 왕조의 존속기간이 길어질수록 재산이 불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농업생산성이 높거나 교역으로 인한 이익이 큰 지역에서는 재산이 말도 못할 정도로 계속 누적됐다. 이슬람 전파 초기에 페르시아 약탈에 성공한 아랍인들은 몇 백 년 동안 부를 누리기도 했다.
모후 외에 국왕 크리스티안 4세나 다른 왕족들이 보낸 선물도 만만치 않았다. 공식적인 재산 외에 왕실 사람들답게 숨겨진 재산이 많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로마교황, 여러 왕국의 군주들과 영주들, 주교들도 선물을 보냈어요. 일단 선물을 받았다고 확인하는 의미에서 감사의 편지를 보냈어요.”
“잘했소. 일일이 답례품을 보내야겠구려.”
“결혼식 끝나기 전에 답례하는 편이 좋겠어요.”
선물의 가치에 비례한 답례품을 준비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런데 친지는 물론 하객들의 답례품 목록도 비올레타가 이미 작성했다. 수송선 한 척에는 고산국 본토와 북미에서 준비한 예물이 잔뜩 쌓여 있었고, 그 중에서 골라 보내도록 했다. 이민호의 결혼식에 비올레타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미안하오, 비올레타.”
“아니에요, 전하. 헤드비히 공주에게 잘해주세요. 필요에 의해 억지로 결혼한다는 인상을 안 갖게 하세요.”
“물론이오. 정략결혼이라 해도 모두에게 잘해주겠소.”
6월 초순에 쾨벤하운의 덴마크 왕궁에서 성대한 결혼식 겸 아이슬란드 여왕 대관식을 올렸다. 덴마크에서 가까운 지역의 군주들인 폴란드 국왕 겸 리투아니아 대공, 스코틀랜드 국왕, 스웨덴 섭정이 직접 참가했고 공작을 비롯한 영주들, 대주교와 주교들은 숫자를 셀 수도 없었다. 먼 지역에서는 축하사절을 보냈고, 한자 동맹 도시의 상인과 귀족들은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이 시기에는 신교인 루터교에도 주교에 해당하는 직위가 있었다. 정확히는 ‘슈베린 주교령의 관리자’로서, 신성로마제국에서 특권을 누리는 제국 자유시처럼 슈베린 주교나 관리자는 영토적 주권을 가진 종교적 영주였다. 원래 가톨릭 주교령이었는데 신교 지역이 되면서 로마가톨릭 주교의 후계자라고 할 수 없어 주교가 아닌 주교령의 관리자를 칭했다.
슈베린 주교령 관리자 울리히 1세 겸 메클렌부르크-귀스트로프 공작 울리히 3세가 아이슬란드 초대 여왕의 대관식을 주관했다. 여러 가지 절차가 이어진 다음 덴마크 모후의 아버지이며 헤드비히의 외할아버지인 70대 노인이 다른 교직자들의 부축을 받아 커다란 왕관을 헤드비히 공주의 머리에 씌웠다. 드디어 덴마크의 헤드비히 공주가 아이슬란드 여왕으로 등극했다.
“여왕폐하 만세!”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몇 안 되는 아이슬란드 귀족들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대관식에 참석한 지열발전소 직원들과 알루미늄 제련소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기술자들도 어울리지 않는 예복을 빼 입고 만세를 불렀다. 고산국 기병들은 화려한 예복을 입은 위에 높다란 곰가죽 모자를 쓰고 아이슬란드 근위대 역할을 맡았다.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와 고산국의 협력에 의해 건국한 공동왕국으로서 헤드비히 여왕폐하께서 재위하시는 동안 아이슬란드는 독립적인 주권을 가진 주권국임을 공표합니다.”
울리히 1세가 아이슬란드의 국가적 지위에 대해 선언했다. 이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어선이 아이슬란드에서 해적질할 경우 덴마크뿐만 아니라 아이슬란드의 동맹군을 자처한 고산국 해군에게 처단될 법적 근거가 확실히 마련됐다.
“이어서 결혼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아이슬란드 여왕폐하의 부군이시며 아이슬란드의 공동 통치자, 고산국 국왕폐하는 단상에 오르십시오.”
이민호가 헤드비히 여왕 옆에 섰다. 그 사이 서기가 이민호의 칭호와 직위를 하객들 앞에서 크게 읊었다. 이민호에게는 고산국 국왕 외에도 동해국의 칸, 아이누 섬의 왕, 일본 구주의 주인이며 사국의 대 다이묘, 아부다비의 셰이크, 새 섬의 보호자, 대명 제국의 대공, 조선국의 공작, 오스만 제국 황제의 동맹으로서 이집트의 대리 통치자, 하와이 섬 추장의 벗 등 별의별 직함이 다 붙었다.
하객들은 유럽인들에게 익숙한 지명인 이집트의 통치자 직책이 여러 칭호의 서열에서 한참 뒤로 밀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교황청에서 논의 중인 기독교의 수호자나 아프리카에 관련된 칭호는 소개되지도 않았다.
소년 성가대가 천상의 목소리로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 퍼진 다음부터 울리히 1세가 혼인성사 예식을 진행했다. 울리히 1세가 독일어로 빠르게 말하는 내용을 통역장교가 땀을 뻘뻘 흘리며 통역했다.
“이 자리에 모인 분들께 묻습니다. 이 두 사람이 법적으로 결혼하지 못할 이유를 아는 분이 있으시면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침묵하시기 바랍니다.”
울리히 1세가 하객들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민호에게 여자들이 숱하게 많았지만 아직 법적으로 총각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서약과 예물교환, 혼인 성사 선언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언어 소통 문제의 대부분이 주례를 맡은 울리히 1세의 빠른 독일어 때문에 발생했지만, 연습을 했기에 대충 넘어갈 수 있었다.
기도와 찬송가, 성경 봉독, 설교, 다시 찬송가, 축복 기도 등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이민호와 헤드비히가 커다란 케이크를 자르고, 울리히 1세가 건배를 제안했다. 신랑 신부 행진은 없었다.
“경하드립니다, 두 분 폐하. 주님께서 두 분의 결합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공작 전하.”
“고마워요, 할아버지.”
주례를 맡은 울리히 1세의 축복에 이민호와 헤드비히가 감사를 표했다. 이어서 피로연이 준비되는 동안 차례로 다른 나라 군주들과 인사를 나눴다. 보헤미아에서 은둔 중이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가 이민호를 만나 호들갑을 떨었다.
“축하드립니다. 유럽에서 사업하시기 좋게 적당한 바닷가 영지를 알아봐드릴까요?”
“감사합니다만, 황제폐하께서는 저를 신하로 삼아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하하! 오해입니다. 다만 제국 내에 영지를 가지고 계시면 다른 영주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충돌 여지가 줄어들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한자 자유시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통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 황제폐하께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고맙지요.”
작년에 고산국이 프로이센과 충돌하고 브란덴부르크를 압박한 사건 때문에 독일 영주들이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프로이센이 법적으로는 폴란드의 봉신이었지만 분명 독일인의 영지였기 때문이다.
고산국이 북미를 매입한 다음 대서양을 비롯해 북해와 지중해, 발트 해의 제해권을 빠르게 장악하자 독일 영주들이 힘을 합해 고산국을 견제할 시기를 놓쳤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권은 우호와 친선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갈릴레오를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갈릴레오가 주장하는 지동설을 티코 브라헤의 관측을 바탕으로 케플러가 증명해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오실 줄 알았으면 갈릴레오를 데려와 알현시킬 것을 그랬습니다.”
아직도 변형된 천동설을 주장하는 티코 브라헤 대신 요하네스 케플러가 대관식에 따라왔다. 갈릴레오가 이민호의 후원을 받아 지동설을 더 빨리 발표하자 케플러도 몇 년 일찍 지동설 관련 책을 발행했다. 이민호는 케플러에게 만약 황제나 귀족들의 후원이 끊길 경우 고산국으로 오라고 권했다.
“즉위를 축하드려요, 여왕폐하. 고산국 국왕폐하도 결혼을 축하드려요.”
“이사벨 클라라 공주! 반갑습니다. 바닷길은 평안하시던가요?”
“물론이에요, 폐하. 에스파냐령 네덜란드 깃발을 높이 달고 반란군 해안 지역을 지나가는데도 반란군 배들이 움직일 생각을 못하더군요. 물론 태극기도 함께 게양했기 때문이겠죠.”
에스파냐령 네덜란드 총독 알브레히트 대공과도 인사를 나눴다. 알브레히트 대공은 고산국과의 교역 확대를 원했고, 이민호는 서인도회사 상인들과 실무협상을 하도록 주선했다.
헤드비히 여왕이 부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민호는 부부를 따라온 20대 초중반 궁정화가의 인사를 받았다. 성 루크 화가 길드의 길드장 겸 교사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길드장이라니 대단하군. 자네 그림을 사고 싶은데 일 년에 작품 2장, 매 작품 당 100플로린이면 어떻겠나?”
“작품을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방법으로 후원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다만 제가 올해 하반기부터 이탈리아에 유학 갈 예정입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거장의 작품은 자네가 참고할 만할 거야. 유학을 지원해주고 싶은데, 아! 괜찮은 작품을 발견하면 자네가 사서 고산국 왕실이나 베네치아 대사관으로 보내주게. 자넨 작품 매입 과정에서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거야. 어떤가?”
“직접적인 후원을 피하고 동업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자넨 학생이 아니고 화가로 머물기에는 야망이 너무 높으니까. 그렇지 않나, 루벤스?”
날카롭게 생긴 화가와 악수를 나눠서 계약을 체결했다. 루벤스는 화가이면서도 인문학자이며 미술품 수집가였고, 에스파냐와 잉글랜드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외교관이기도 했다.
“어이쿠! 천재 화가 마하레트 누님이 고산국 국왕폐하 밑에서 일하시우? 누님의 화폭에 내가 등장하다니 참으로 영광이우.”
“페테르! 일이 아니었다면 잘난 척하는 네놈을 결코 그리지 않았을 거야. 음흉하게 머리를 너무 많이 쓰니까 빼빼 말랐지.”
마하레트와 루벤스가 투닥거리는 꼴을 보다가 다시 다른 영주들과 인사했다. 하객들이 끝도 없이 몰려들었고, 이번에는 스코틀랜드 국왕 차례였다.
“에든버러에서 있었던 사건은 유감이었습니다. 바다에서 갑자기 나타난 함대는 적으로 오인하기 쉬웠거든요. 어쨌든 저희가 고산국 함대에 선제공격한 것을 이 자리에서 사과드립니다.”
“오해 여지가 분명히 있었습니다만, 응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뉴펀들랜드와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스코틀랜드 어부들의 조업을 계속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조업 허가를 계속 해드리겠습니다.”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는 국왕치고는 여기저기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었다. 스코틀랜드 국내에서는 귀족들의 눈치를 보고, 국외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죽음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제임스 6세가 불쌍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하면 무슨 짓을 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폴란드 국왕과 스웨덴 섭정은 가만 놔뒀으면 주먹질하고 싸울 뻔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군주나 영주들을 만나서 인사했다. 다들 웃는 낯이었지만 제각각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우세한 군사력으로 유럽을 정복해버리지 그러십니까? 고산국 편을 들 군주나 영주들이 많을 것입니다. 오랜 전란과 귀족들의 착취에 지친 농민들도 고산국을 지지할 것입니다.”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하란 말이오? 귀찮소. 당신도 내가 유럽을 침략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 아니오?”
“유럽을 정복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말씀이군요. 고산국의 힘이 두렵습니다.”
“네덜란드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테니 나를 두려워할 필요 없소. 해치지 않겠소. 나는 내 땅만 지키면 만족한다오.”
네덜란드의 총독 마우리츠와 악수를 나눴다. 그는 니우포르트의 포위를 앞두고 바쁜 와중에도 대관식을 찾았다. 그리고 충분히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었다. 네덜란드 독립군에게는 에스파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상대였다.
============================ 작품 후기 ============================
대관식 겸 결혼식에 따른 후폭풍이 있겠지요.
여러 가지 영향이 유럽에 미쳤을 테니 나중에 해당하는 곳에서 언급하고 여기서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없이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