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74화 (623/1,000)

00674   72. 아이슬란드의 여왕  =========================================================================

알루미늄 제련소에서 나와 건설 중인 아이슬란드 왕궁으로 향했다. 장갑차가 공사 중인 성벽을 지날 때 이민호가 혀를 찼다.

화약 시대 이후로 고딕 양식의 높은 첨탑 같은 것이 없어지면서 동화처럼 생긴 유럽 성의 모습과 거리가 점점 멀어진 탓이었다. 그렇다고 옛날 방식으로 성벽을 쌓을 수는 없었다.

“어때요. 세상이 변하는 것 같습니까?”

“지난 일 년 동안 너무 정신없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폐하.”

아이슬란드 귀족들에게 만찬을 베풀었다. 이민호가 발전소와 제련소에 들르는 동안 왕궁에 모인 귀족들은 오랜만에 만난 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슬란드 시녀들이 설명한 북미와 고산국 본국의 발전상은 유럽에서도 대표적 촌구석인 아이슬란드 귀족들이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레이캬비크에서 볼 수 있는 증거가 이미 여럿이었다. 뜨거운 온천수가 집집마다 들어가 24시간 실내 난방을 하고 매일 같이 목욕을 할 수 있었다.

촛불 몇 개보다 훨씬 밝은 전등이 실내를 밝히고 빵은 바로 구워먹을 수 있었다. 식사는 불과 일 년 전까지는 상상도 없을 만큼 호화로웠다. 비단 귀족들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잘 먹게 되면서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을 만끽했다.

무엇보다 일 년 전보다 수입이 확 늘었다. 고산국 북미 새원산의 어용상단에 고용된 귀족이나 지열발전소, 혹은 알루미늄 제련소에 고용된 귀족들은 왜 진작 고산국과 관계를 맺지 않았는지 한탄했다. 덴마크 서인도회사에서 일하는 귀족들은 너무 바빠서 아이슬란드에 가끔씩 들르기만 할 정도였다.

“항구에서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과연 과학이 발달한 고산국입니다.”

“그건 수상비행기인데 지상에서 이착륙하는 일반 비행기보다 효율이 떨어지오. 그래서 레이캬비크 교외에 공항을 만들까 하오. 여왕의 재가는 이미 받아놓았소.”

아이슬란드와 덴마크, 그리고 새강릉과 새원산을 바쁘게 오가야 하는 헤드비히 공주에게 비행기는 필수적인 교통수단이 될 것 같았다. 두랄루민이 생산돼 여객기가 제작되면 북미 동해안과 덴마크 사이에 정기적인 항로를 만들 예정이었다. 물론 아이슬란드가 항로의 중심이었다.

“폐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배로 북미까지 왕복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앞으로 비행기가 대량으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레이캬비크에 제련소를 세운 것이오. 알루미늄 제련소는 아이슬란드뿐만 아니라 고산국의 국가 핵심 산업이오. 귀족 여러분들은 제련소와 발전소를 잘 지켜주고, 확장하는 일에도 앞서주기 바라오.”

“저희들이 할 일이니 믿어주시옵소서, 폐하.”

아이슬란드는 지정학적 위치나 어업에서의 중요성 못지않게 무궁무진한 지열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대서양 중앙해령이 지나는 곳이 아이슬란드라서 화산과 지진이 두렵긴 하지만 적극 이용하기로 했다.

지열발전소는 한 번 건설해놓기만 하면 연료가 들지 않으므로 거의 무한동력처럼 꾸준히 전력을 생산해냈다. 막대한 전기를 소모하는 알루미늄 제련소의 입지로서 이상적인 곳이었다.

“만약 화산이 대규모로 폭발하고 유독한 기체가 아이슬란드를 뒤덮을 경우 즉각 뉴펀들랜드나 페로 제도로 피난을 가시오. 새원산에서 구조대를 급파하겠지만 도착하기까지 며칠 걸릴 테니 재난 초기에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희생자를 최소화하도록 하시오.”

“저희들은 조상 대대로 아이슬란드에서 수백 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가끔 화산이 폭발했지만 그런 큰 재난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모르는 일 아니오? 대비해서 나쁠 건 없소. 재산은 금방 회복할 수 있으니 목숨을 가장 먼저 구하란 뜻이오.”

“저희들의 목숨을 그리 아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만찬이 끝났다. 아이슬란드 시녀들은 부모와 함께 지내라고 귀족들과 함께 배웅해서 보냈다.

귀족들은 물론 농민, 노동자들에게도 레이캬비크에 살 집을 마련해주었다. 고산국 기술자들을 빼고도 인구가 일 년 전보다 100배로 늘어난 700가구가 레이캬비크에서 살게 되었다.

“아직도 해가 안 졌어?”

밤 9시가 넘었는데도 해가 수평선에 떠 있다는 사실에 이민호는 조금 놀랐다. 레이캬비크는 백야가 시작되는 위도 66.56도보다 살짝 낮은 위치에 있었으나 백야 현상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밤늦게 잠깐 동안 해가 살짝 지고 석양 혹은 새벽녘처럼 하늘이 붉게 달아오르다가 다시 태양이 떠올랐다.

이틀을 쉰 다음 페로 제도를 향해 출항했다. 레이캬비크에 도착하기 직전에 비올레타에게 엉덩이를 맞았던 아이슬란드 시녀들은 오랜만에 부모를 봐서 그런지 다시 활달해졌다. 온천물에 자연 치유력을 올려주는 성분이 있다나 어쨌다나 말이 많았다.

“카트린! 흠. 엉덩이는 괜찮나?”

“예. 괜찮아요, 전하.”

어린애 엉덩이를 만져볼 수도 없어서 내버려뒀다.

“보호해주지 않아서 섭섭해?”

“아니에요. 내명부의 일이니 전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여자들끼리의 일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내명부는 왕실 속의 또 다른 왕실이었다. 그러나 내명부도 왕실에 속한다. 여자들끼리는 다른 질서가 통용될 테니 과하지 않는 선에서 용납해주기로 했다.

다음 날 도착한 페로 제도도 그 사이 많이 달라졌다. 밤에 도착했을 때 항구 전체를 밝힌 전등 불빛으로 환한 가운데 상선과 어선 일곱 척이 정박해 있었고, 선술집 주변은 스코틀랜드 선원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로 가득했다.

아이슬란드와 달리 이곳은 수력 발전 위주였다. 땔감을 구하기 힘든 페로 제도에 집집마다 지원해준 전열기로 난방을 하고 전기 조리 기구를 이용해 생활하고 있었다.

“등대가 아직 완성이 안 됐군. 꽤 크네?”

“단순한 등대가 아니라 사실상 요새입니다. 방어시설과 전파탐지기, 통신설비까지 다 갖췄습니다.”

국왕좌승함 함장 겸 전대장이 이민호에게 대답했다. 콘크리트로 높게 만든 등대 건물에는 해병대 1개 소대가 상시 주둔할 예정이었다.

“상륙하시겠습니까? 건설 노무자들 숙소가 완성돼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불편하지 않게 우린 배에 남는 게 좋겠어.”

페로 제도가 고산국 영토가 됐다고 하나 아직 통치권을 제대로 행사한 적이 없었다. 영토 수비와 치안은 물론 재판권까지 페로 사람들의 자치에 맡겨 놓았다. 고산국이 직접 지배하는 영역은 항구와 수력발전소 등 극히 일부에 머물렀다.

“혹시 웬만하면 페로 제도를 독립시켜주려고 그러세요?”

“조금 고민이오, 비올레타. 유럽에서 침략하러 오지도 않을 텐데 이 자그마한 섬에 주둔군을 유지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돼서 말이오.”

“늦었어요, 전하. 페로 제도 사람들이 결코 안 놔줄 거여요. 끝까지 책임지셔야 할 거여요.”

비올레타가 가리킨 곳에서 항구 노무자들이 함선에 청수를 공급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페로 제도 현지인들인 항구 노무자들의 표정이 참으로 밝았다.

지금까지 노르웨이나 덴마크에게 일방적으로 뜯기고 혹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해적들에게 시달리던 페로 제도 사람들은 처음으로 강한 나라에게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게 됐다. 고산국에서 베풀어준 것은 주민들이 기대하던 그 이상이었다.

고산국에서 금지한 것은 딱 하나, 고래를 잡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고래 고기 대신 양고기와 쇠고기, 곡물을 거의 공짜로 받았다. 사실은 유럽 어민들에게 판매고 남은 식량만으로도 페로 제도 전체 주민들이 먹고 살게 됐다.

오징어를 잡아 말린 것을 북미에 팔아서 다른 물건을 수입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오두막 외에 재산 같은 것을 모을 수 있었다.

마을마다 세워진 건물은 지배를 위한 관공서나 교회가 아니라 뜻밖에 학교였다. 건물은 고산국에서 세워주더라도 주민들이 학교를 운영해야 하기에 서둘러 교사를 뽑고 글자를 모르는 교사는 아이슬란드어와 비슷한 알파벳을 익혔다. 페로어 표기법을 통일하는 회의가 몇 번 열렸다.

“다만 문제는 학생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쳐줄 고산국 본토 출신 교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거여요. 본토에서 북미로 이주한 교사들도 어떻게 보면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셈인데 또 다시 아이슬란드나 페로 제도에서 근무하라고 요청하기 힘들어요.”

“비올레타. 페로 제도의 모든 사람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소. 상인들처럼 필요하다면 자기들이 알아서 배울 것이오.”

“그래도 같은 나라 백성임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언어의 통일이에요.”

“사실 북미에 이주한 유럽인들에게도 조선말을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았소. 북미 원주민 학교에서도 부족 언어를 가르치는 교육 시간이 훨씬 많아요. 조선말은 인사말 정도만 배우면 된다오. 필요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배우겠지요.”

현대 미국 헌법에도 공용어가 규정되지 않았다. 플로리다 외에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평생 영어를 안 배우고 스페인어만을 사용하며 생활하는 히스패닉들이 다수였다. 스페인어 TV 방송국도 여럿이고 축구는 미국보다는 멕시코 리그에 열광했다. 그러나 이들도 틀림없는 미국인들이었다.

모리스코인들이나 유대인처럼 특정 종교나 민족 공동체에서 모국어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이런 집단에게 조선말만 쓰라고 강요하면 엄청난 반발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러나 북미 시청에서 억지로 가르치지 않으니 조바심이 난 집단에서 조선말 강사를 초빙해 자기들이 먼저 배우려 했다. 북미에서 더 편하게 살려면 조선말을 배우는 편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주민이나 이주민들에게 조선말을 배우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힘으로 지배하기보다는 여러 인종 집단들이 스스로 고산국의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려는 방식이군요.”

“사실은, 별 생각이 없는 것이오. 당장 인력이 부족한 판에 언어 교육을 하느라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소.”

“하지만 길게 내다보셔야 해요. 언어가 국가 통일의 초석이 돼요.”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듣고 있소.”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갈리시아 출신인 비올레타도 부모와 함께 있을 때는 스페인어가 아닌 갈리시아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에스파냐의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언어의 다양성이 에스파냐의 정치적 통일성을 해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스크 문제는 언어가 아니라 인종과 정치사의 문제였다.

그리고 여러 이주민 집단 중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장 많지만 이들은 빠르게 아일랜드 문화에서 벗어나 고산국 문화에 동화되려고 발버둥 쳤다. 불행한 역사 때문에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셈이었지만 이런 움직임도 내버려두었다.

다만 북미의 새강릉 시청에서는 조선말 교육이 아닌 아일랜드어를 잊지 않도록 하는 식의 언어교육에 힘썼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일랜드어를 무시하고, 시청에서는 싫다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아일랜드어를 가르치는 식이었다.

“참! 에스파냐에서 아일랜드에 파병한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소?”

“원래 작년이나 올해에 파병이 됐어야 하는데 인원을 못 구해서 점점 늦춰지고 있어요. 잘해야 내년 여름에나 파병이 가능할 거여요. 그것도 필요한 병력의 절반이나 갈까 모르겠어요.”

현재 아일랜드에서는 실제 역사에서 9년 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결과는 참혹하지만 지금은 아일랜드 독립군이 비교적 잘 나가는 시기였다. 에스파냐에서도 아일랜드의 독립을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실제 역사에서 1601년 아일랜드 남서부 코크 남쪽 킨세일에 에스파냐 병력 3,500명이 상륙한다. 부족장 오닐과 오도넬 등이 지휘하는 아일랜드 독립군이 북쪽에서 내려와 합류하려다가 먼저 잉글랜드군에 격파당하면서 결국 에스파냐군도 항복한다.

“에스파냐군이 비밀리에 파병하려는 계획이 지연되면서 온 유럽에 소문이 널리 퍼졌소. 어설픈 군사지원 계획은 실패하고 말 것이오.”

“아마도 그럴 거여요. 전하께서는 불쌍한 아일랜드인들을 안 도와주실 건가요? 물론 지금도 도와주고 계시지만요.”

고산국의 식량은 직접, 무기는 에스파냐로 우회해서 끝없이 아일랜드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전력이 워낙 강해서 이것만으로 부족했다. 비올레타의 말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뜻했다.

“만약 고산국이 개입한다면 전쟁은 아일랜드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오. 아마도 잉글랜드를 멸망시켜야 할 것이오.”

“그런 무도한 침략자들은 멸망해도 할 말이 없을 거여요.”

이민호 입장에서는 잉글랜드가 아직은 에스파냐보다는 살짝 나은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올레타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비올레타는 에스파냐가 중남미 원주민들을 평화적으로 잘 다스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은광에서 일하는 원주민들도 자발적인 공납의 일종으로서 임금을 받고 일했기에 그런 착각을 할 여지가 컸다.

그리고 이 시대에 잉글랜드는 대영제국은커녕 브리튼 섬 통일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법적으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다른 나라였고 조만간 동군연합이 된다 해도 같은 나라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웨일즈는 16세기 전반에 간신히 잉글랜드에 통합됐으나 1588년에 웨일즈어로 된 성경을 발행하는 등 점차 문화적 정체성을 획득해갔다.

이민호는 함대로 군항 플리머스 앞을 지나거나 템스 강 하구를 막는 등 잉글랜드를 상대로 적당히 도발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고산국을 직접 상대하는 일만큼은 극구 피하려 했다. 에스파냐를 통해서 아일랜드에 머스킷을 대량 지원하는 것을 잉글랜드가 알면서도 아일랜드인들을 북미로 이주시키는 것을 계속 허용하기도 했다.

“어려운 문제요. 나중에 왕궁에 돌아가서 협의해봅시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이 나더라도 실망하지 마시오.”

“전하께서 결정하세요. 어떻게 결정하시든 믿고 따를게요.”

어느덧 해가 뜨면서 시녀들이 창문에 쳐진 이중 커튼 중에서 두꺼운 커튼을 닫았다. 북극과 가까운 아이슬란드나 페로 제도에서는 시간 감각이 뚝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이제 참치 통조림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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