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70화 (619/1,000)

00670  71. 북대서양  =========================================================================

“시장! 요즘 본토에서 새원산으로 이주한 백성들이 많아졌다면서요?”

“예, 전하. 대부분 새로 창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격이 높은 북미에서 사업하면 이익이 더 많이 남으니까요.”

“후후! 잘 됐소. 상공인들에게 지원을 잘해주시오. 배당금과 세금을 이중으로 내주는 착한 노예, 아니 백성들이오.”

사업체에 토지와 건물, 심지어 기계까지 대여해주는 대가로 국가가 사업체의 지분을 절반 이상 소유하므로 사업가들이 성공할수록 정부 재정도 탄탄해졌다. 사업가들도 적은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창업이 유리했다.

국가가 사업체의 지분을 소유하는 제도는 달리 보면 개간된 경작지를 할당받은 농민이 수확량 절반을 세금으로 바치는 것과 비슷했다. 여기에 더해 상인들은 매년 늘어난 재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납부하므로 상인들의 세 부담이 농민보다 일반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번 지적된 문제였지만 인력 투입에 한계가 있는 농업보다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훨씬 나았다. 농민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고 배분받은 토지 면적에는 한계가 있기에 수백 명의 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대농장을 경영할 수는 없었다. 반면에 상공인들은 사업이 잘 풀릴 경우 이론상 거의 무한대로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을 증대하고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었다.

“노예라뇨. 어느 누구도 전하께서 백성들을 착취한다고 욕하지는 않습니다. 백성들이 얻는 혜택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꼬박꼬박 배당금과 세금만 내주면 얼마든지 나를 욕해도 괜찮소.”

배당과 세금을 합하면 상인들에게서 너무 많이 거둬들이는 것 같아 이민호는 살짝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세금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면 효율이 떨어질 테니 상인들이 매년 납부하는 재산세율을 아주 조금 낮춰줄까 잠시 고민했다.

시장을 대동하고 얼마 전에 건립된 새원산 자연사 박물관과 민속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둘 다 넓은 5층 건물이었고, 일반 관람보다는 교육과 연구 목적으로 세웠다.

민속사 박물관은 소장 유물 중에서 극히 일부만 대중에게 공개했다. 북미 원주민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옷이나 천막, 생활도구를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은 곤란했기 때문이다. 다만 원주민 부족들을 구별할 수 있게 옷과 문신만 전시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돼 전시관이 아직 10분의 1도 채워지지 않았으나, 학예사들이 열심히 유물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내실을 다져나갔다. 이민호는 앞으로 100년 동안 전시관의 절반만 채우라고 지시했다. 전시관의 나머지 공간을 채울 책임은 후손들에게 넘겼다.

“요즘은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가 기본이군요. 바퀴의자에 탄 장애인들이 이동에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소.”

“장애인용이기도 하지만 두 다리를 못 쓰거나 하반신이 마비가 된 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보통은 유모차가 훨씬 많이 이용합니다. 총리께서 모든 기존 건물의 계단 절반 이상을 경사로로 고치도록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을 찾는 학생들 중에서 한 명이 바퀴의자를 이용해 스스로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경사가 완만해서 혼자서도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친구들이 뒤에서 밀어주었다. 그러나 같은 박물관에서 유모차는 열 번 넘게 봤다.

“총리가요? 아하! 가련한 아이 어머니들의 노동력마저 가차 없이 착취하고야 말겠다는 총리의 의지가 엿보이는군요.”

“총리께 이르지는 않겠습니다, 전하.”

“농담이니 잊어버리시오. 인구가 적어서 항상 문제요.”

아이 엄마나 장애인은 일반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라고 야유를 퍼붓는 자들이 고산국에도 가끔 있었다. 감히 왕실과 정부의 고용 진흥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무지하고 무도한 자들이었다.

이런 자들이 신고당하면 형법상 모욕죄와 고용진흥특별법에 따라 벌금을 물었다. 감히 임산부나 아이를 대동한 어머니를 모욕하면 육아보호법에 따라 벌금이 더 붙었고, 사안에 따라 형사처벌도 가능했다.

시장의 안내를 받으며 새원산 곳곳을 방문했다. 맨해튼 섬 남동쪽에서 샛강 철교 공사가 반쯤 진척됐다. 기초 교각 공사가 완료되면 철골조를 올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게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맨해튼 동쪽 긴 섬에 철도 종착역이 새로 건설 중이었고, 철교가 완성되면 그곳이 대륙 횡단 철도의 기점이 될 예정이었다.

긴 섬 공항은 활주로는 물론 관제탑까지 완공됐으나 아직은 원주민 아이들이 연날리기하며 노는 장소였다. 이민호가 방문했을 때는 토요일 오후였는데 활주로에서 자전거 경주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하. 정말로 왕도에서 여기까지 하루 만에 비행기가 날아올 수 있나요? 그럼 앞으로는 배를 타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겠군요. 좀 무서워요.”

“아직은 아니요. 항속거리를 늘리려면 비행기를 좀 더 대형화시켜야 하오. 그런데 나무는 약하고 철은 무겁소. 그래서 알루미늄을 비행기 소재로 사용하려는데 생산에 전기가 많이 들어 아이슬란드가 꼭 필요하다오.”

비올레타에게 가볍고 단단한 알루미늄 합금에 대해 설명했다. 비슷한 강도의 연강에 비해 무게가 3분의 1밖에 나가지 않는 두랄루민은 항공기 제작에서 필수적인 소재였다. 알루미늄 제련에 비용이 많이 들어서 문제지, 그 합금인 두랄루민은 일차대전 때 비행선 제작에 사용될 정도로 그리 특별한 소재가 아니었다.

이민호는 알루미늄과 구리, 마그네슘의 함량을 조절하는 외에도 아연과 규소, 크롬 등을 다양한 비율로 가미해 초초두랄루민을 만들 계획이었다. 초사이어인을 떠올리게 하는 웃기는 이름이었지만 초초두랄루민이란 게 진짜로 있었다.

자전거 경주대회에 참가하거나 구경하러 온 젊은이들이 활짝 웃으면서 이민호에게 몰려왔다. 원주민 아이들도 좋은 구경났다고 몰려들었다.

“국왕전하 천세!”

국왕과 정부 시책을 비평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유독 커서 그렇지, 고산국에는 노인들보다는 젊은이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이민호는 그 젊은이들에게 매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대들이 머나먼 북미에 와서도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잘들 살고 있나?”

“북미에서 구한 일이나 생활은 아주 마음에 듭니다. 다만 왕도보다 놀 곳이 적어 아쉽습니다.”

“그게 문제군.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나?”

축구연맹 경기를 위한 긴 섬 축구장은 이미 완공됐고 농구장과 배구장은 학교마다 있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거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직접 몸을 움직여 놀 만한 시설이 적어서 문제였다. 주말만 되면 맨해튼 섬의 상가와 중앙공원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동안 자전거는 많은 발전을 이뤘다. 바퀴 폭은 점점 가늘어졌고 소재의 변화도 급격하게 이뤄졌다. 자전거를 생산하는 업체가 수십 곳이라서 다양한 디자인이 나왔다. 요즘에는 산악용이나 경주용 자전거도 흔해졌다.

“전하! 맨해튼이나 긴 섬에 자전거 경주장을 만들어주십시오. 활주로라는 이곳도 넓어서 좋긴 한데 경기장으로 사용하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입장료를 받아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자전거 경주 전용 실내경기장을 지어주겠네. 하지만 도박하면 안 돼.”

“와! 감사합니다. 새 자전거를 우승자 상품으로 걸면 안 되겠습니까?”

“그 정도는 인정하마. 유료 입장객들에게 경품을 내거는 것도 허용하겠다. 다만 승부조작을 하면 끝장날 줄 알아!”

“저희 선수들은 평일에 다들 직장에 다닙니다. 돈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닙니다.”

젊은이들 대부분은 순진했지만 어디에서건 남들을 속여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었다. 하는 일 없이 선수들에게 빨대를 꽂는 한국의 여러 스포츠 협회 꼴이 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대책을 미리 마련해두어야 했다.

“선수들이 모여서 자전거 경주 협회를 만드는 게 좋겠어. 선수들 대부분이 20대니까 회장과 임원진은 40살 넘는 사람은 못 뽑는 규정부터 일단 만들어. 여기 시장님이 도와주실 거야.”

“재미있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활주로에서 자전거 경주가 열린다고 알려준 사람이 새원산 시장이었다. 자전거 동호인들의 바람을 잘 알고 이민호에게 보고해준 사람도 시장이었다.

그러나 대외적인 공은 더 높은 사람이 차지해야 하는 법이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이민호가 백성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국왕이라는 인식이 더 널리 퍼지게 하는 기회로 이용했다.

물론 왕실에서도 그 비용을 지불했다. 결국 얼마 후 자전거 동호인들이 새원산의 경계를 벗어난 왕립자전거경주협회를 만들었고, 경기장도 만들어주었다.

“일 년 후에 자전거 동호인과 승마 등 몇몇 동호인들에게 선물을 주겠다.”

“뭔지는 몰라도 기대하겠습니다, 전하.”

자전거 경기장의 설계도는 이미 준비해놓았다. 겨우 1년 뒤, 250미터 트랙의 경사진 벨로드롬을 본 자전거 동호인들은 경악했다. 밝은 천장 조명으로 인해 밤에도 안전하게 자전거 경주를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필요한 것보다 경사가 훨씬 심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는데, 이는 현재의 자전거 제작 기술로는 아직 충분한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차대를 가벼운 두랄루민으로 교체하고 바퀴와 기어를 개량하면 왜 경사가 그리 심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고가 잠깐 보니까 경기가 별로 재미가 없어.”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것만 해서 그렇습니까, 전하?”

이민호는 잠시 자전거 경주에 참가한 선수들의 복장을 살폈다. 핫바지나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자전거를 타는 자는 없었다.

다들 어떻게든 몸에 찰싹 달라붙는 옷을 입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은 기본이고 길게 기른 자도 경주에 나설 때는 머리를 묶거나 머리 전체를 덮는 모자를 쓰는 식으로 공기 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했다. 공기역학의 원리는 몰라도 경험이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보다는 개인 경기만 하니까 그래. 육상 계주처럼 이어달리기를 하든가, 한 경기에 같은 편이 서너 명씩 참가하면서 서로 협동을 하고 다른 편을 견제하는 식으로 다채롭게 경기 규칙을 짜는 게 좋을 거야.”

“매우 그럴 듯합니다.”

“축구나 농구 같은 공놀이도 그런 식으로 하잖아? 다른 운동종목들을 참조해서 규칙을 정해봐.”

“해보고 재미있으면 선택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하!”

여기에 모인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은 대체로 열 살 정도까지 조선에서 자라다가 고산국에 이민 와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북미로 이주해 직장을 잡고 일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절대 공부를 과도하게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노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북유럽의 김나지움과 유사한 교과 과정은 현대 한국처럼 경쟁 위주의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답답한 소리를 무책임하게 내뱉는 유학자들보다는 젊은이들의 생각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대서양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른 새원산은 도시와 철도 건설은 물론 무역업에 종사하는 고산국 상인들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맨해튼 섬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게 물었다.

“상인들은 어떻소? 경쟁을 많이 하는 것 같소, 아니면 협력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소?”

“상인들끼리라면 예상보다는 서로 협력하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상인들을 지원해주는 시청은 오히려 상인들의 교역을 방해하고 규제하며 세금이나 뇌물을 뜯어가려는 관료집단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생태계에서도 같은 종과 경쟁을 하기보다는 협력을 하는 편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다. 나만 잘 살겠다고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을 물어뜯다 보면 천적인 다른 종에게 금방 잡아먹힌다. 사자든 원숭이든 무리에 포함된 개체가 떠돌이보다 훨씬 오래 생존했다.

이는 동물의 집단이나 인간의 국가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엄청난 국력을 보유했음에도 이 시기의 에스파냐와 프랑스가 군사적으로 곤란한 지경에 처한 것은 제대로 된 동맹을 못 만들어 유럽에서 고립됐기 때문이었다.

사실 유럽 국가들이 서로를 견제하느라 한 국가가 커지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분위기 탓도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가 국력만 믿고 욕심을 과도하게 부린 것이 동맹을 끌어들이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 작품 후기 ============================

내용이 이어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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