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68화 (617/1,000)

00668  71. 북대서양  =========================================================================

“고산국의 영토는 북미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 산재해 있고, 면적 또한 무척 넓소.”

결국 이민호가 나섰다. 영토가 확장되면서 새로운 왕도를 정할 필요가 있으며 북미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고산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했다. 그러나 왕도가 반드시 북미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고산국의 영역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고,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현재 위치가 나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천도 문제와 상관없이 북미의 발전을 주도할 주도(州都)가 먼저 정해져야 했다. 고산국의 영토를 정식으로 주로 분류하지 않았어도 현재 관행상 북미 대륙은 북미주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호주로 지칭되고 있었다.

“왕도는 여러 가지 요건을 감안해서 적절한 지역을 골라 왕실에서 선정할 것이오. 그러니 우선 북미의 주도를 선정해야 할 것이오.”

북미에서 행정의 중심이 될 주도는 산업과 관련 없이 교통의 중심 지역에 설치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고 북미 대륙 중앙 허허벌판에 세울 수는 없었다. 해양국가인 고산국의 특성상 바닷가 지역이 낫고, 북미 동해안과 서해안의 중간인 북미 남부가 상대적으로 주도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새진주가 북미 남해안 딱 중간에 있어서 주도로서 적당한 위치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하지만 오 대감께서 그리 진언하신다면 다시 생각해보겠소.”

잠시 지도를 확인한 이민호가 혀를 찼다.

“그 다음 후보가 새순천인데, 국경인 리오그란데 강과 너무 가까워서 문제요. 에스파냐가 우방이며 북미 여공작의 고국이라 하나 미래의 일은 모르는 법이오.”

“전하. 새순천은 국경에서 400여 km나 떨어져 있어요.”

“뭐라고요?”

비올레타가 지적하자 이민호가 얼른 지도를 다시 봤다. 전체 북미 지도에서 새순천은 멕시코 국경에 매우 가까웠으나, 북미가 너무 큰 탓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대륙을 영토로 갖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는구려.”

지도에 표시된 거리 척도를 보면서 이민호가 감동에 젖었다. 지도에서 손톱만한 길이가 자그마치 100km였다.

새순천이 멕시코 국경에서 가깝다는 말은 에스파냐의 중앙에 위치한 수도 마드리드가 프랑스 국경에 붙어있다거나 파리가 벨기에 국경에서 너무 가까워 침략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소리나 같았다. 조선의 수도 한성이 대일 국경 지역인 동래와 바로 옆 동네라서 위험하다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텍사스가 워낙 넓어서 외국군이 지상으로 접근할 경우 알아차리기 힘들겠소. 이 정도에 요새나 군사도시 하나쯤 건설할 필요는 있겠소.”

이민호가 새순천 서쪽, 현대 지명 샌안토니오 인근을 가리켰다. 국경인 리오그란데 강을 순찰하는 기병들이 근거지로 삼기에 적당한 위치였다. 딱히 에스파냐 총독부나 알라모 요새 전투가 있지 않았더라도 현대 미군의 주요 주둔지 중 하나가 된 것은 지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전하! 멕시코 지역에 더해 파나마까지 고산국 영토로 편입한다면 북미 동서 해안의 교통이 더욱 편해질 것 같습니다. 어디를 주도로 정하더라도 외국군의 침략을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오응태가 발언했다가 비올레타의 눈치를 살피면서 즉시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매입이나 할양 같은 평화적인, 아주 평화적인 방법으로 말입니다. 하하!”

“에스파냐에서는 절대로 멕시코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오. 멕시코에서 반란이 일어나 독립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오. 은광과 인구 때문이오.”

그리고 멕시코 인구는 신생 고산국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원주민과 에스파냐인, 중남미 태생의 에스파냐 순혈 또는 혼혈 크레올, 흑인 노예 등 다양한 인구 집단이 멕시코와 중미에 거주했다.

“저는 에스파냐 출신이지만 이미 고산국 사람이에요.”

“물론이오, 비올레타.”

비올레타의 어깨를 안으며 이민호가 고개를 홱 돌려서 쏘아보았다. 그러나 오응태는 이미 고개를 돌린 채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지금은 확장을 생각하지 말고 내부를 정돈할 때여요. 북미대륙 중앙은 아직 개척을 못했어요. 북서부도요.”

“맞는 말씀이오. 탐사대가 오하이오 강 탐사를 마치고 이제야 미시시피 강에 진입했소. 미시시피 강 지류에 사는 원주민들을 잘 다독여야 대륙 횡단 철도를 완공할 수 있을 것이오.”

아이리시울프하운드가 처음으로 탐사대와 동행해서 여러 번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보고를 얼마 전에 받았다. 불곰과 퓨마의 습격을 미리 경고한 다음 대치함으로써 탐사대원들에게 이상적인 사격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밤에 탐사대 막사로 접근하는 늑대 떼를 쫓아내면서 한 마리를 물어 죽였다. 호기심에 막사로 접근하던 평원 코요테 떼는 아이리시울프하운드의 체구만 보고도 겁에 질린 채 바로 도망쳤다.

“전하. 북미의 주도는 새순천이 적당하겠어요.”

“저도 새순천이 가장 낫다고 봅니다, 전하. 이곳은 비와 습기, 태풍 때문에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비올레타와 오응태가 인정하자 이민호도 새순천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새순천은 겨울에도 눈이 내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서 추위를 싫어하는 이민호는 아주 솔깃했다.

그러나 여름에 너무 덥다는 보고도 있어서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기후가 적당하다면 주도와 왕도를 새순천에 동시에 둘 수도 있었다.

“흐음. 새순천을 주도의 외항으로 두는 방법도 생각할 수도 있겠소.”

새순천, 즉 휴스턴은 이상적인 항구를 두고 텍사스의 교통 중심점이 될 만한 좋은 입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인천과 서울의 관계처럼 새순천이 인천 역할을 하고 좀 더 내륙에 더 안전하고 쾌적한 수도를 건설하는 방법도 있었다.

현재 동부 새강릉과 서부 새목포에 별궁을 두었으나 수도의 입지로서는 너무 좁았다. 수도라면 적어도 현대 미국의 리치몬드나 워싱턴 정도의 넓이는 확보해야 했다. 새원산은 그 자체로서 수도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었으나 북동쪽에 너무 치우친 점이 걸렸다.

“북미의 주도는 새순천과 새원산, 그리고 포토맥 강 중류 평원까지 세 곳으로 압축하겠소.”

북미대륙은 동부가 사람이 살기에 더 적당했으나 새원산과 워싱턴은 대서양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이 단점이었다. 유럽 이주민들이 건설한 현대 미국 같으면 상관없겠지만 아시아에서 비롯된 고산국에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대륙 횡단 철도가 완공되면 파나마 운하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에스파냐는 좋은 우방국이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언제 에스파냐 국왕의 혈통이 끊길지 모르고, 앞으로 고산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다.

“전하! 제가 이곳에서 할 일은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씀이시오, 오 대감. 그 동안 아주 잘해주셨소. 후임 시장이 부임할 때까지만 새진주를 맡으시오.”

오응태가 새진주의 시장으로 있는 동안 북미 동남부 지역과 미시시피 강 유역에 거주하는 호전적인 원주민 부족들이 아주 호되게 당했다. 무슨 일을 저지르고 도망가려 해도 늪지나 산지를 가리지 않고 1,000km는 기본적으로 쫓아가는 여진 기병에 아예 질리고 말았다. 원주민 부족들은 더 이상 고산국에 도전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제 다음 임지는 어디입니까, 전하?”

“오 대감은 한두 달 휴가를 보낸 다음 본토에 주둔하는 기병 연대와 함께 동해국으로 가시오.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 현장을 지키는 임무를 맡으시오. 동해국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소.”

“아! 드디어 건주여진을 격파하고 몽골 초원을 정복하겠군요. 서쪽으로 루스 차르국까지 진출할 예정이십니까?”

이민호가 화들짝 놀랐다. 오응태가 말한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만 모아놓은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오 대감!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오. 너무 앞서 가지 마시오.”

“저 같은 군인이 할 일이 그런 것입니다. 전하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쳐부수겠습니다.”

반드시 이민호나 국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전쟁에 참가해 승리를 거두는 것이 오응태의 인생이 추구하는 바였다. 이민호는 오응태를 역사상 흔한, 전형적인 무장으로 평가했다.

“고맙지만 그런 상황이 안 오길 바라고 있소. 그러나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오 대감께서 충분히 활약할 기회를 드리겠소.”

“감사합니다, 전하. 전하 덕택에 소원을 풀었고 앞으로도 기대가 큽니다. 그리고 휴가고 뭐고 빠른 시일 내에 제가 여진 땅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족들을 잠시라도 보살핀 다음에 가는 게 낫지 않겠소?”

“요동 여정 김덕시가 이끄는 달자가 무려 2만이라고 들었습니다. 김덕시라는 인물이 거친 여진족 기병 2만을 감당할 사람은 결코 되지 못할 것입니다.”

명나라에서 여정(餘丁)은 군인이 아니고 조선의 봉족, 보인에 해당했다. 보인은 평시에 군인의 군역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면서, 군인이 나이가 들어 전역하거나 전사, 부상해서 인원이 빌 경우 군인으로 보충되는 장정이기도 했다. 요동 여정 김덕시라고 표현됐다면 여정 외에는 딱히 내세울 신분이 없다는 뜻이다.

“부호로서 여진족들을 끌어 모았을지도 모르오.”

“부족에 속하지 못한 여진족들은 자기들을 보호해줄 강한 우두머리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요동 땅에서는 이성량과 누르하치 외에는 그런 인물을 찾기 어렵습니다. 건주여진의 누르하치가 손을 뻗기 전에 전하께서 그들을 휘하에 두셔야 합니다.”

영원백 이성량은 1525년 혹은 1526년생으로서 일흔이 넘어 이미 은퇴했다. 물론 이성량은 현역에 남고 싶어 했지만 여러 가지 비리가 적발되면서 탄핵당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1570년에 요동 총병이 되면서 여진 여러 부족들을 배후조종하다가 누르하치를 지나치게 키워준 것이 결정적인 실수가 되고 말았다.

“여진족들이 누르하치 밑으로 가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오.”

“그렇습니다. 누르하치 때문에 부족이 해체된 자들은 원한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누르하치가 패한 부족을 아예 통째로 흡수했다면 그들도 새로운 지배자에게 충성했겠지만, 건주여진이 현재 그럴 상황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패배한 해서 여진 여러 부족을 흡수할 역량이 못 된다고요? 그렇다면 건주 여진은 현재 명나라로부터 심하게 견제를 받는 중이라서 그럴 것이오.”

혜영이나 명나라에서도 이미 알고 있듯이, 명나라가 지배하는 요동으로 피신한 여진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자기들을 지켜줄 강력한 조직이나 지배자였다. 그러나 명나라는 여진 기병 2만을 통제할 능력이 없어서 시간을 끌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해산하길 원했다. 혜영은 돈으로 유인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여진족들이 고산국 영역 아래에서 보호받기 위해 철도 주변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이렇게 판단한 이민호는 여진 기병 2만을 흡수하기 위해 서둘러 오응태를 보내기로 했다. 일본 정벌 때 여진 기병부대를 지휘한 오응태는 독특한 카리스마로 여진족들을 휘어잡아 숱하게 전공을 세웠다. 오응태는 전형적인 무장답게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전하! 대솔군관들도 다 데려가겠습니다.”

“그건 허가하겠소만, 오 대감도 이제 그만 고산국 군제에 적응하도록 하시오.”

“이게 편해서 말입니다.”

오응태는 어디서 근무하든 조선에서처럼 항상 대솔군관 20여 명을 데리고 다녔다. 이들은 국가에서 녹봉을 받으면서도 오응태 휘하의 개인 사병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에서는 장수가 임지로 부임할 때 대솔군관의 명단을 제출하면 비변사에서 조사한 다음 허가를 해주는 식으로 운영됐다. 장수와 병졸 사이의 중간 계급이 사라진 조선 중기의 군제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군관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특히 장수가 직접 지명하는 대솔군관은 장수의 직할부대 지휘관이나 참모, 혹은 고위급 전령의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고산국 군대에는 단위 부대마다 장교와 부사관이 근무하고 있기에 오응태를 따르는 대솔군관들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그리고 이들은 정식 군제에 속한 장교가 아닌 특별 군무원 신분이었다. 그래서 오응태는 일반 정규군 부대가 아닌 여진족 기병들을 주로 지휘하게 됐다.

“오 대감이 장군이 되어 보병과 포병 등 여러 병과를 통합 지휘하려면 그쪽 부대도 지휘해서 경력을 쌓아야 하오.”

“전하! 저는 장군이 못 되더라도 기병 지휘관으로 족합니다. 제 체질도 그렇고, 대포 같은 복잡한 무기를 제대로 지휘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중요한 일은 젊은 장수들에게 맡기소서.”

“휴우! 알았소. 기병 지휘관이라 해서 장군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소. 고산국 군대에서 기병대를 유지하는 한, 앞으로도 오 대감에게 믿고 맡기겠소.”

“감사합니다, 전하.”

여진족 땅이나 몽골, 혹은 시베리아에서 기병이 활동할 공간이 남아있는 한, 고산국에서도 기병은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감동이나 감불이 야전사령관으로서 대군을 지휘할 때 오응태가 그 밑에서 기병사령관을 맡는 방법도 있었다. 근세 유럽에서는 야전사령관 대장 밑에서 포병사령관과 기병사령관이 소장이나 중장 직급을 맡았다.

아니면 미래에 장갑차 부대가 대폭 확대되면 이들이 옛날에 기병이 하던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구소련에서 순수한 보병은 없고 죄다 기계화, 혹은 자동차화 보병부대로 개편된 것은 영토가 너무 넓은 탓이었다. 땅은 넓고 인구가 적은 시베리아를 만약 고산국 영토로 편입하게 된다면 기병 지휘관으로서 오응태, 혹은 조선 출신 고산국 무장들이 할 일은 얼마든지 남아있었다.

============================ 작품 후기 ============================

가다가 중간에 자꾸 붙들리네요. 제목 바꿔야 할 듯..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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