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49화 (598/1,000)

00649  68. 아라비아  =========================================================================

모카에 모카커피를 마시러 온 것은 아니었다. 하산 파샤의 승진을 축하해주러 온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여진족 호위들만큼 탄탄한, 그러나 체구는 훨씬 큰 흑인 여자 장교들을 만났다. 모카에서 만나기로 했던 아프리카 왕국의 연락장교들은 므부투의 아내들이었다.

“므부투의 6번째, 311번째, 542번째 아내라고? 눈이 커서 아름다운 6번째 왕비는 고산국에서 본 것 같군.”

“그렇습니다, 전하. 흑인 연대에서 여군으로 복무하다가 므부투 국왕을 만났습니다.”

“이름을 못 외워서 미안해.”

“므부투 국왕은 저희들의 이름은 다 외우십니다. 역시 저희의 배우자이십니다.”

“그렇겠지. 어디 보자. 영토가 엄청나군.”

므부투의 아내가 바친 아프리카 지도에서 중동부, 현대의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가 아프리카 왕국의 영토였다. 그리고 중부 콩고에 살짝 진입하는 중이었다.

“이 넓은 면적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확장하는 게 낫지 않나?”

“저희에게는 고산국 국왕폐하께서 하사해주신 총과 말이 있습니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짐으로써 오히려 전쟁을 억제하면서도 내륙으로의 진출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전염병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말라리아에 대한 대비는 아프리카 왕국 건국 전부터 하고 있었으나 꾸준히 희생자가 발생했다. 확실한 예방 백신이 아직 없고, 있더라도 효과가 나타나는 확률이 절반 이하이기 때문에 백신에만 의존할 수도 없었다.

말라리아에 대비해 꾸준히 예방약을 먹어야 하는데 두통, 어지럼증, 무기력증과 탈모 등 각종 부작용이 많았다. 그리고 말라리아가 한 약품에 내성이 생기면 다른 약품을 처방해야 했다. 건강했던 사람이라도 예방약을 먹고 나서는 활동을 못하고 거의 드러누워 있게 되는 수도 있었다.

“말라리아는 인류의 적이야. 흑인들이 고생한다. 고산국 의료국에서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말라리아도 문제지만 왕국에서는 체체파리가 훨씬 더 위협적입니다. 사람과 가축의 피를 빨며 수면병을 유발하는 전염병입니다.”

현대에서 사람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람 숫자가 매년 475,000명인데 반대 모기에 의해 죽는 사람은 725,000명이었다. 체체파리에 의해서는 말라리아에 비해 훨씬 적은 1만 명이 죽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아프리카 대륙, 특히 중부에서 집중 발생하는 것이 문제였다.

“서식지에 대한 방역을 하고 있나? 위생은? 파나마 운하를 팔 때 말라리아와 황열병을 그런 식으로 잡았어.”

“거주지 위생과 식수 소독은 왕국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체체파리는 주로 호숫가나 강둑, 숲에서 삽니다. 방역해야 하는 지역이 지나치게 넓어서 제대로 방역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희생자가 너무 많이 발생해서 일부 지역에는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습니다.”

문제는 강둑이나 숲 근처 지역이 농경에 적합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체체파리는 척추동물의 피를 빨아먹기 때문에 가축의 방목은 체체파리의 번성을 도와주는 격이 되었다.

“소를 키우지 말라고 하면 반발이 심하겠지?”

“몇몇 부족들은 소를 키워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생존기반을 허물어트리는 격이 됩니다.”

므부투도 체체파리와 모기를 잡기 위해 해볼 만한 것은 다 해봤다. 파리와 모기를 잡아먹는 새와 곤충을 보호하고 주거지와 경작지 인근의 잡초를 뽑아서 말려 죽였다. 야생동물들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모기장을 치고 자고 감염자를 격리시키는 것은 기본이었다.

가장 완벽한 대책은 숲을 없애버리는 것이었지만 그럴 경우 흑인들의 생존이 위험해진다. 살충제를 마을 인근의 온 숲에 뿌렸는데도 희생자는 꾸준히 발생했다.

“가축과 야생동물을 다 죽이고 숲을 밀어버리거나, 아니면 매년 수천 명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수밖에 없겠군. 나의 무기력함에 화가 난다.”

“므부투 국왕은 감염을 예방하는 것은 포기하고 치료제 개발을 요청했습니다. 몇 가지 물질이 체체파리를 쫓는데 도움이 된다 해서 가져왔습니다.”

“알았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 당연히 협조하도록 하겠다.”

고산국 의사들 중에서 일부가 전염병만 전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티푸스, 콜레라, 흑사병 등 전염 가능성과 사망률이 높은 전염병을 우선 연구하느라 풍토병에 대한 연구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다시 말라리아와 수면병에 대한 연구를 강화시키라고 이민호가 직접 지시했다. 원통 안에 넣어 밀봉한 어지는 고산국 상선에 실려 왕도에 도착할 것이다.

“가끔 보고서를 봤는데 고산국에서 아프리카 왕국으로 가는 화물에 식량은 별로 없더군. 식량은 부족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전하. 식량 자립은 므부투 국왕이 설정한 가장 중요한 국가시책입니다. 지금도 농지개량과 관개사업에 노동력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있습니다.”

“잘했어. 그리고 제철소를 만들었다지? 대단해.”

“왕국의 발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철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주체는 고산국에서 파견된 기술자들이었다. 그러나 광산용 기계를 운영할 수 없어서 광석을 캐는 일은 주로 인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직업적인 광부는 극소수였고, 주로 인근 마을에서 인력을 징발해 부역을 시킨다고 했다.

“고생하겠군.”

“한 달 단위로 부역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사고는 가끔씩만 나고 있으니 안심하소서.”

말은 그렇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광산 사고로 죽거나 다칠 것으로 생각했다. 고산국에서 광산용 기계를 보내려 해도 아프리카에 가서 기계를 조작할 지원자를 구할 수 없었다. 꼭 필요한 건설장비 운전자와 정비공은 흑인들을 고산국 본토에 데려와서 교육시킨 다음 보냈다.

“하온데 므부투 국왕께서는 광산 몇 개를 고산국 국왕폐하께 바쳐야 한다면서 초조한 것 같습니다. 혹시 아까 내륙보다 해안선을 통해 진출하는 편이 낫다고 하신 말씀과 관계가 있는지요?”

“급한 건 아니니까 알아서 하라고 해. 다만 약속만 지키면 돼.”

원래는 남아프리카 남단을 개척해서 유럽인들이 인도양에 들어오는 것을 통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를 개통하면서 훨씬 쉽고 효율적인 통제가 가능했다. 아프리카 남단에 배치하기로 계획했던 함대와 주둔군도 필요가 없어졌다.

남아프리카의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을 개발하는 문제도 급한 것은 아니었다. 있으면 좋지만, 유럽인들이 남아프리카로 진출만 못하게 하면 당장은 상관없었다.

그러나 만약 흑인 왕국이 남쪽으로 진출하기 어렵다면 조만간 고산국에서 직접 권리를 행사할 예정이었다. 네덜란드나 잉글랜드의 확장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토는 남아프리카 여러 원주민 부족들의 소유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협력을 받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아프리카 왕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에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므부투 국왕은 결코 은혜를 저버릴 사람이 아닙니다. 국왕전하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므부투 국왕이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망궐례입니다.”

“저번에 언급하지 않았나? 피차 독립국이니 망궐례는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했어. 하더라도 보름에 한 번만 하라고 해.”

“고산국 국왕전하에 대한 므부투 국왕의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허해주소서.”

조선에서 지방관들이 왕으로 상징되는 궐패를 모시고 보름과 월말에 절하는 것이 망궐례였다. 이민호는 므부투가 매일 같이 절한다는 소리를 듣고 소름이 끼쳤다.

“알아서 해. 하지만 전혀 상관없어.”

“매정하십니다, 전하.”

“므부투의 충성심은 알고 있지만 그런 행위는 별 의미가 없어서 그래. 하라고 해.”

어떻게 보면 므부투의 권력 기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고산국과의 관계, 특히 국왕인 이민호와의 개인적인 관계였다. 이해는 해주겠지만 므부투는 국왕 자리를 버거워하는 것 같았다.

누구나 국왕의 직책을 수행하는 것은 버거웠다. 할 일은 끝이 없었고 책임도 무한했다. 고산국처럼 건국 초기에는 제대로 된 인재도 부족했다.

그래서 더더욱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쉬었다. 자칫하면 국왕과 관료집단 전체가 일에 매몰될 수도 있었다.

다음 날 오후 고산국 함대는 메카 서쪽의 항구 지다에 입항했다. 먼저 내린 이민호가 지다의 아미르와 군중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은 다음 순례자들을 하선시켰다.

1600년 3월은 이슬람력으로 1008년 7월에 해당했다. 이슬람의 메카 순례는 12월 7일에 카바 설교로 시작하는 법이었지만 이미 여러 번 순례를 마친 열광적인 신도들은 다른 달에 찾기도 했다.

“매년 성월에 수만 명을 보내시더니 평월에도 이렇게 성도를 보내주시는군요. 폐하의 신앙심에 감동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폐하께서 로마 교황의 예루살렘 순례를 돕는다고 섭섭해 했지만 저는 폐하를 믿었습니다.”

“아니오, 아미르. 어느 종교든 순례자를 보호해야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폐하.”

수송선에 타고 지다에 내린 사람들 중에 고산국 백성은 몇 십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브루나이나 필리핀, 그리고 현대의 인도네시아에 해당하는 여러 지역의 무슬림들이었다. 고산국의 무슬림은 주로 북미 북동 지역에 거주하는 모리스코인들이었다.

동남아시아의 무슬림들은 고산국 덕택에 안전하고 빠른 메카 순례를 할 수 있게 됐다. 해적과 산적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재산을 빼앗기는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비용과 시간도 훨씬 적게 들었으니 웬만큼 잘 살고 열성적인 신도들은 메카를 자주 찾았다.

“머나먼 동쪽에서 오신 성도들께서 아랍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이 모든 것이 알라의 은총입니다.”

“물론이오. 아미르께서 성도들을 잘 보호해서 순례를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시오.”

“지다의 아미르로서 저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폐하.”

로마가톨릭 교황이 예루살렘을 순례할 수 있게 된 것은, 교황이 용감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그 전에 이민호가 이슬람교도들에게서 열심히 점수를 따둔 덕도 있었다.

인도양에서 포르투갈과 오만의 해적이 사라지고 예멘에서 이삼중으로 세금을 걷던 행태가 고산국에게 철퇴를 맞았다. 그 다음부터 메카 순례자들은 역사상 가장 편안한 순례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지다의 아미르는 마지막 예언자 무하마드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고귀한 혈통의 세습 아미르치고는 꽤나 직업의식이 투철했다. 사람은 이렇게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아미르는 정말 훌륭한 분이오.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드리겠소.”

“죄송하오나 금전적인 선물은 제가 받을 수 없습니다, 폐하. 아앗! 이 말은 페르가나 명마!”

체구가 단단하면서도 키가 훤칠하게 큰 말이 도도하게 머리를 들어올렸다. 아미르가 말에 시선이 못 박힌 채 부들부들 떨었다.

현대인의 로망으로 남성에게 자동차, 여성에게 명품 핸드백이 있다면 이 시대 남자들에게 명마는 최고의 로망이었다. 가격을 떠나서 페르가나 명마라면 남자들이 사양하기 결코 쉽지 않았다.

“금전은 아니오. 내 선물을 받으시겠소?”

“으으! 으! 사탄이 저의 머리에 침습했습니다!”

“인샬라.”

“아아!”

아미르가 하늘을 우러러 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한참 동안 기도하던 아미르가 다시 일어났다.

“하사하신 선물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폐하. 이 말을 제 마구간에 넣어 최상의 대우를 하겠습니다.”

“오호?”

“그리고 앉은뱅이나 장님 등 가장 힘겹게 메카로 가는 순례자에게 이 말을 빌려주겠습니다. 대부분이 사양하겠지만 들것에 실려 메카로 가는 병자나 죽음을 앞둔 노인들도 흔히 봤습니다. 그들에게 꼭 필요할 것입니다.”

“훌륭한 말씀이지만 알다시피 굉장히 비싼 말이오.”

“인샬라.”

“인샬라. 신의 뜻대로.”

아미르의 결심이 굳은 것을 확인한 다음에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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