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47 68. 아라비아 =========================================================================
“저희들은 오래 전부터 조상대대로 이 섬에 살았습니다. 이곳 항구는 페르시아 뱃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하지만 주민들 대부분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인입니다. 우선 저희 아랍인들은 저들과 생김새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페르시아 사람들의 조상이 유럽인들과 같은 아리아인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혼혈이 진행돼서 아리아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북쪽 페르시아 고원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금발에 푸른 눈이 많았지만 나머지 지역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부 무사 섬의 아랍인 주민 대표는 페르시아 사람들과 아랍인은 용모에서 명확히 구분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같은 아랍문자를 사용하더라도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이민호가 보고 듣기에는 그게 그거였지만 명확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좋다. 이곳 아부 무사 섬은 아랍인의 땅으로서 오늘부터 고산국 아부다비의 영토다. 선장들은 이의가 있나?”
“없습니다, 폐하. 앞으로 해적이 쳐들어올 일이 없어질 테니 고산국 영토라면 아주 잘 됐습니다. 피항할 수 있게 방파제를 건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이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 시대에 생산력이 낮은 섬은 그다지 중요한 땅이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불안해서 이 섬이 고산국 영토라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기로 했다.
이 섬에 관리를 고정적으로 파견해 통치할 수 없으면 행정력이라도 발휘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오래 남고 눈에 띄는 것은 이름을 남기길 좋아하는 지배자들이 흔히 선택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였다.
“선원들을 위해 방파제를 건설하고 항구 마을에 우물을 파주지. 고산국 아부다비 속령의 백성이 된 이 섬 주민들에게는 아부다비 항구에서 식량에 한해 싸게 살 권리를 주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이렇게 아부 무사 섬을 고산국 영토로 선포했다. 페르시아 선원들이나 아랍 주민들 모두에게 좋은 결말이 났다.
“폐하! 하온데 북쪽에 큰 톤브 섬과 작은 톤브 섬이 있습니다. 그 섬들에도 아랍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부디 톤브 섬에 사는 주민들도 폐하의 백성으로 삼아주십시오.”
“톤브? 잠시만.”
해도를 확인했더니 아부 무사 섬 북쪽 40km 정도에 크고 작은 섬이 마주보고 있었다. 탐사대가 섬에 내려서 주민들에게 물어봤는지 섬 이름까지 현지명으로 적혀 있었다. 작은 섬에는 겨우 네 가구가 살았다.
“그 섬들은 페르시아에 더 가까운 섬이 아닌가?”
“거리보다는 주민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폐하?”
“그건 그렇다.”
무인도라면 몰라도 사람이 사는 유인도라면 본토와의 거리는 상관이 없었다. 귀찮았지만 톤브 섬도 고산국 아부다비에 속하도록 했다.
페르시아 샤한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 섬에 아랍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영토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오만이나 아부다비 인근 지역이 예전에 페르시아 영토였다 해도 지금은 아랍 영토인 것처럼, 이곳 섬도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선장이 우물쭈물하더니 이민호에게 권했다. 혹시라도 이 섬이 분쟁의 대상이 되면 장사하기 어려울까봐 걱정하는 것이 딱 상인의 마인드였다.
“사실 지배자들은 섬 하나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높은 사람들은 이런 섬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겁니다. 그러나 괜히 분쟁의 소지가 될 우려가 있으니 문서를 받아 확실히 해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맞는 말이야.”
“그리고 샤한샤는 이 섬을 고산국 국왕폐하께 드리려고 해도 정치적 반대자들이 비판할 수 있습니다. 영토는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페르시아 상선의 선장이라는 사람이 꽤나 유식했다. 고산국과 관계가 불편한 나라였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이 백성들의 수준을 높여준 것 같았다.
“그렇군. 좋은 방법이 있겠나?”
“사람은 누구나, 특히 지배자들은 금을 좋아합니다. 샤한샤와 반대파가 이익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시면 확실할 것 같습니다.”
“좋아. 황금 10달란트 정도면 적당할까?”
“어이쿠! 충분하고도 넘치겠습니다, 폐하.”
1달란트가 33kg 정도니까 금 10달란트는 330kg이었다. 1만 냥이 약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전달하지?”
“전하! 페르시아 사신의 배는 어제 아부다비를 출항했습니다. 아직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대장의 말이 옳았다. 그래서 페르시아 사신에게 이곳 섬으로 오라는 메시지 통을 휴대한 수상비행기를 서쪽 하늘로 띄웠다. 순양함 두 척도 서쪽 바다로 보냈다.
“관리하지도 못할 섬을 구태여 영토로 삼을 이유가 있나요?”
“내가 가질 필요는 없지만 해로 중간에 위치해서 남이 가지면 몹시 피곤한 섬이라서 그래. 페르시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관리 책임을 부담하더라도 우리가 갖는 게 좋아. 우리가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해서야.”
석유자원의 중요성과 아부 무사 섬의 전략적 가치를 모르는 이 시대 사람들은 민영처럼 의구심을 갖는 게 당연했다. 현대라면 서로 자기 영토라고 피 흘리며 싸울 테지만 아직 그럴 시기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르시아 만은 온통 해저유전 천지였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현재 세대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민영도 같은 생각이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면 마땅히 우리가 부담해야죠. 그게 훨씬 싸게 먹히겠죠?”
“그래. 우리는 금 1만 냥으로 이 쓸모없는 섬을 사는 게 아니야. 주변 바다를 사는 거야. 바다 밑에 숨어있는 자원도.”
그 사이 수송선에 연락해 공병대가 섬에 투입됐다. 공병대는 돌산 하나를 폭파시켜 무너뜨린 다음 바위를 바다에 퍼부어 조악하지만 방파제 하나를 금방 만들었다. 고산국 배들이 사용할 섬이 아니라서 시멘트 공사할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그 사이 유전 탐사대가 항구 마을을 비롯해 세 곳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을 깊은 우물을 팠다. 작고 낮은 섬인데도 짠물이 아닌 깨끗한 물이 나와서 섬 주민들이 환호했다.
“전대장! 아부 무사 섬의 동서남북 항구 여러 곳과 크고 작은 톤브 섬에 영토표지판을 설치하라고 하게.”
“전단장에게 어명을 전달하겠습니다.”
이 섬이 고산국 아부다비 영토라는 선언을 하기 위해 고속단정이 항구로 접근했다. 톤브 섬에도 순양함 두 척씩을 보냈다. 단정에 탄 석공들이 아부 무사의 항구 주변에서 적당한 크기의 바위를 찾으려 했으나 온통 모래밭뿐이었다.
글자를 새길 만한 암벽도 없었다. 그래서 채석장에서 큰 바위를 옮겨와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한글로 고산국 영토임을 새겼다.
“바위가 작아서 포르투갈어가 빠졌습니다, 전하.”
“할 수 없지.”
영토표지석에 더해 철판에 페인트칠한 표지판을 항구와 방파제, 그리고 섬 반대쪽에도 세웠다. 아랍어와 한글, 포르투갈어, 페르시아어, 투르크어와 라틴어 등 온갖 언어로 아부 무사 섬이 고산국 영토임을 선언한 문장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주변국에 이 섬의 위치를 기록한 지도를 보내면서 이 섬들이 고산국 영토임을 통보하는 절차도 잊지 않았다. 페르시아와 오만, 오스만 제국, 포르투갈의 인도 부왕청에서 아부 무사 섬과 아부다비의 모든 주변 섬들이 고산국 영토임을 인정하는 외교문서를 나중에 고산국 왕도로 보내왔다.
주변국들은 황량한 모래섬에 불과한 아부 무사 섬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인도 부왕령에서는 포르투갈 해군이 페르시아 만에서 작전하는 동안 아부 무사 섬을 기지로 사용했으나, 영토로 삼을 것을 고려한 적이 없다고 알려왔다.
만약 포르투갈이 영토 주장을 했더라도 해적질하다가 이 섬을 임시 보급기지로 삼은 것뿐이므로 영토적 권리를 보장해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고아 부왕에게 답서로 보낸 외교 문서는 정중하게 작성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수상비행기에서 페르시아 사신이 탄 배를 포착한 다음 순양함들과 연락해서 다음 날 오전 아부 무사 섬으로 예인해왔다. 사신은 고산국 국왕이 다시 불렀다는 사실에 매우 큰 기대를 갖고 대기했다.
“험! 이곳 아부 무사 섬과 북쪽에 크고 작은 톤브 섬에는 아랍인들이 살고 있소.”
“예, 폐하. 예전부터 아랍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기에는 아라비아의 사막보다는 황량한 섬이 그나마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 섬들을 고산국령 아부다비의 영지로 하는 것에 이의가 없는 줄로 알겠소.”
“당연합니다. 그런데 겨우 이 섬 때문에 저를 부르신 것입니까?”
사신이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현대 같으면 매국노에 국가반역자나 할 소리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 페르시아, 혹은 이란은 이 섬들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석유가 발견되고 사거리가 긴 대함미사일이 개발되면서 이 섬의 전략적 가치가 급상승한 다음에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됐다. 1968년 아랍에미리트가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영국이 군대를 빼자마자 이란이 아부 무사와 크고 작은 톤브 섬을 무력 점령했다. 그리고 이란은 섬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에게 시아파로 개종하든지, 아니면 이 섬을 떠나라고 강요했다.
“어허! 쓸모없는 섬 세 개라 하나 영토 문제는 국내외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소.”
“지당하십니다. 페르시아 영토가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 위치한 페르시아의 의견을 물어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폐하!”
“혹시 샤한샤의 신하들이 괜히 시비를 걸기 위해 반대할지도 모르오. 나는 샤한샤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 없으니 이 금과 국서를 가져가시오.”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배려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신이 싱글벙글하며 봉인된 국서를 받았다. 페르시아가 앞으로 영원히 아부 무사 섬과 톤브 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겠다는 문서적 보장을 조건으로 달아서 금을 주었다.
“아! 왕족이 고산국에 유학 올 때 비용이 좀 들 것이오. 배는 아부다비에서 타면 될 것이나, 역시 10달란트를 줄 테니 하인을 고용하거나 다른 곳에 쓰라고 하시오.”
“감사합니다! 폐하께서는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소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신에게도 1달란트를 드리겠소. 따로 1달란트는 수고한 관리들과 선원들에게 나눠주시오.”
사신이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데 사신 따위야 간단히 움직일 수 있었다. 사신이 기쁨을 억제하려 했으나 어깨를 들썩이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아부 무사 섬에서 여러 가지 공사를 마치고 다음 날 오전 출항했다. 그리고 오후에 호르무즈 해협 북쪽 페르시아 해안에 가까운 신 호르무즈 섬 북단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포르투갈 요새가 항구 옆에 세워져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얌전하던 포르투갈 사람들이 여기서는 왜 이러죠? 온갖 데에 요새를 세워 지배자 행세를 하고 걸핏하면 아무 데나 침략했나 봐요.”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러나 포르투갈이 인도와 아라비아 반도 주변에서 잘 나가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 인도 북부의 무굴 제국이 포르투갈을 견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고산국이 나타나 인도양을 아예 제패해버렸다. 포르투갈은 마카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도양에서도 고산국의 고객 내지는 화물 운송업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고산국 덕택에 군사비가 적게 들고 교역 이익이 커지면서 예전보다 수익이 훨씬 늘어났다.
함대를 호르무즈 항에 차례로 입항시켰다. 페르시아 사람들이 놀라서 부두로 나와 구경했다. 요새에서 항구로 허둥지둥 달려온 포르투갈 군인들에게서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항구 시장에 늘어선 페르시아 가게에서 몇 가지 교역을 했다. 고산국 상품의 판매는 수송선에 탄 어용상인들에게 맡기고 이민호는 선물용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민영과 호위들이 탄성을 질렀다.
“와! 소금으로 이런 것을 만들다니, 정말 신비해요.”
“등잔받침대를 굉장히 정교하게 조각했어요.”
이 지역에서는 암염이 산출되고 화려한 기물을 조각해서 판매했다. 이민호는 양탄자나 향료가 아닌 이런 소박하고도 이국적인 선물을 사고 싶어서 이곳에 들렀다.
이스파한의 샤한샤에게도 함대가 호르무즈에 입항한 소식이 알려질 것으로 기대했다. 사신 외에도 바다 건너 지역을 맡은 페르시아 관리가 수도로 전령을 급파할 것이다.
“각자 마음에 드는 것을 세 가지씩 골라서 가지고, 똑같은 것을 여섯 벌씩 더 포장해달라고 해.”
“다른 분들께 선물로 드리려고요?”
“그래. 왕도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받아야지.”
호위들이 까르르 웃어서 이민호가 얼굴을 붉혔다. 후궁들 숫자가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이민호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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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오만과 예멘에 이집트까지... 편 제목 바꿔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