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46화 (595/1,000)

00646  68. 아라비아  =========================================================================

오전에 아부다비 수비대장을 만나서 보고를 받았다. 아부다비 항구는 입항료 약간을 받는 외에 수출입 관세가 없어서 페르시아 상선들이 자국 항구보다 더 선호하는 무역항이 되었다.

“아부다비 항구에서 고산국 상품 판매액은 매년 금 20만 냥이 넘습니다. 그러나 아랍인 낙타 대상들이 아라비아 반도 내부로 판매하려고 매입하는 양보다는 페르시아 상인들이 수입해 가는 양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 금액은 아부다비 항구의 전체 교역량에 비해 1할이 약간 넘는 수준입니다.”

“어쩐지 항구에 페르시아 상선이 너무 많다 했지. 아부다비가 거의 페르시아 국내 항구가 됐군. 나쁘지는 않아.”

아라비아 반도 내륙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아니었다. 해안 지방이라도 제국의 지배력이 충분히 미치지 못했다. 오만을 제외하고 예멘과 서부 해안, 그리고 북동부 해안은 오스만 영토로 표시됐으나 예멘은 이맘이, 서부 해안과 북동부 해안은 토호들이 다스리는 지역이었다.

토후(土侯)라고 하면 보통은 대영제국 지배 아래 아랍이나 인도에서 지방의 작은 지역을 다스리는 세습적인 전제 군주를 칭했다. 그들은 자칭 또는 명목상 아미르나 셰이크 정도의 군사적인 칭호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토후도 아닌 지방에서 어느 정도 지배력을 갖춘 토호(土豪) 수준의 세력도 찾기 힘들었다.

“페르시아에서 이곳에 계속 사신을 보내 국가 수준의 관계 증진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상급부대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중대장으로서 대처하기 곤란하겠군.”

아부다비에서 군사와 행정의 최고 지휘관은 육군 또는 해병 중대장이었다. 대위 계급에 불과한 청년 장교가 주둔지뿐만 아니라 식수가 나오는 우물과 유전을 경비하고, 페르시아 배들이 들락거리는 항구와 주변에 거주하는 아랍 주민들로 득시글거리는 시장 운영까지 떠맡았다.

중대장은 무역은 물론 주변 토호들과 선물을 주고받는 외교관 역할도 담당해야 했다. 여기에 페르시아 사신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외교 권한도 없는 중대장을 못 살게 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저처럼 젊은 장교가 맡을 만한 임무가 아닌 것 같습니다. 거의 총독급 임무입니다.”

“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휘관인 장교는 그런 임무를 맡아도 감당해야 해. 그렇다고 이 작은 곳에 총독과 관리들을 파견하기도 어렵잖아?”

군인 중에서도 장교, 특히 대위 이상 지휘관은 일정 수준의 외교업무를 처리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해군 함장이나 탐사대 지휘관은 북미 내륙이나 남태평양 섬의 원주민 부족을 만났을 때 외교교섭을 하면서 영토 문제에서 일정 수준의 대리권을 부여받았다.

현대 국가 기준으로는 거의 조약 수준이었다. 중요한 협정을 맺을 때마다 중앙에서 바로 대응할 수 없어 표준적인 협정문을 제시하는 외에는 지휘관에게 충분한 권한을 위임해야 했다.

“외교 업무 한 가지만이라도 정식 관리들이 맡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상보다 아부다비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된 탓이야. 이곳에 외교업무를 수행할 관리를 파견하는 문제를 조정에 지시하겠네. 페르시아에서 대사급 외교관계를 원하면 대사를 교환할 의향도 있어. 대사관을 양국의 수도에 개설한다면 이곳에서 외교 부담이 줄어들겠지.”

“아부다비는 황량한 사막에 위치하지만 고산국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곳입니다. 전하께서는 혹시 총독을 파견할 의향은 없으십니까?”

“전혀. 고산국은 아직도 건국 초기라네. 병력도 부족하지만 관리 역시 부족해. 이 작은 지역에 더 많은 인적 자원을 투입할 수는 없네. 사실 1개 중대 병력을 교대로 파견하는 것조차 버거워.”

병력과 관료가 충분하다면 주변 두바이는 물론, 아직도 사람이 살지 않는 카타르와 바레인까지 날름 집어삼켰을 것이다. 미래에 석유가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민호는 이들 지역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도 않은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함부로 영토를 늘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아부다비 섬 하나만을 확보하는 것도 벅찼다.

“페르시아와 이곳 중간의 바다에 섬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부다비 북동쪽 아부 무사 섬은 중간 기착지로 쓰려는 페르시아 상선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섬에 사는 아랍인들이 가끔 이곳에 와서 보호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부 무사라면 중간선에서 약간 남쪽이군. 돌아갈 때 영토표지석을 세우겠네. 페르시아 정부에도 항의를 하지.”

호르무즈 해협 남서쪽의 아부 무사 섬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실제 역사에서는 1968년에 영국이 군사력을 철수시키는 시기에 이란과 아랍에미리트의 샤르자가 공동영유권을 갖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1971년에 이란이 무력 점령한 다음 영토 분쟁이 수십 년을 끌었다.

병력이 부족한 고산국에서 아부 무사 섬을 지키기 위해 파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페르시아 만에서 아부다비와 가까운 바다에 더 중요한 섬들이 많았다.

아부다비 서쪽 100km 거리에 위치한 다스 섬은 주변 해저 유전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송한 석유를 이용하는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아부다비는 세계 원유 매장량의 10분의 1을 차지하여 매장량만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먹었다.

“감사합니다, 전하. 카타르나 바레인 같은 주인이 없는 땅을 선점하고 싶지만 병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곳도 가끔 정찰했으면 좋겠지만 지금 병력으로는 무리지. 혹시 이 지역 사람들을 기병으로 동원할 수 있겠나?”

“낙타와 아라비아 말을 타는 자들이 흔해서 그들을 사막 기병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을 가진 자라면 매달 은 두 냥 정도면 병사로 고용할 수 있습니다.”

“오호! 그래? 토호들을 만나봐야겠군.”

“그렇지 않아도 전하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토호들이 토산물을 바치러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부다비 섬 주변의 토호들은 고산국에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매년 토산물을 바쳤다. 그러나 그 가치 이상으로 선물을 하사하기에 토호들은 기쁜 마음으로 토산물을 바쳤다. 이 지역 주민들은 양고기 외의 식량을 고산국에서 보낸 쌀과 밀에 의존하게 됐다.

아부다비 섬 주변에 거주하는 토호들을 불러 만찬을 열었다. 토호들로부터 토산품을 받고 하사품으로 선물도 듬뿍 안겼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이런 식으로 대우했더니 토호들은 자기들이 고산국 백성이 된 것처럼 여겼다.

남동쪽 오만이나 포르투갈 해적, 이 땅의 옛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페르시아 세력으로부터 이 지역 아랍인들을 보호해준 나라는 고산국이 유일했다. 토호들은 세력이 작아 더더욱 고산국에 의지하려 했다.

“폐하께서는 어째서 저희들에게 세금을 안 받으시는지요? 금액이 적더라도 세금은 폐하께서 이 지역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세금을 받으시고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해 저희들을 지켜주십시오.”

“다들 가난하게 사는 것을 뻔히 아는 내가 어찌 그대들에게 세금을 받을 수 있겠소? 양을 치든 상업을 하든 어서 부유해지시오. 만약 주변 다른 세력이 침공한다면 병력을 보내 지켜줄 테니 걱정 마시오.”

그러나 정기적으로 고산국 군함들이 입항하는 이 지역에 감히 욕심을 낼만한 나라가 없었다. 당장 어제와 오늘만 해도 거대한 함선 수십 척이 한꺼번에 입항하고 하늘에는 비행기라는 것이 날아다녔다.

그리고 현재 아부다비 주변 사막에서는 각각 수천 명의 기병과 보병, 그리고 장갑차라는 무쇠수레가 굉음을 내면서 돌아다녔다. 명목은 군사훈련이라고 하지만 무력시위나 다름없었다.

“저희들이 이 지방의 유력자라고 자부하지만 이런 사막과 황무지에서 대상 무역과 양치기만으로는 간신히 굶지 않고 사는 것이 한계입니다. 저희들이 살아갈 길을 인도해주십시오.”

“그대들을 위해 항구 시장에 가게를 더 내주겠소. 상업에 힘쓰도록 하시오. 공병대를 보내 우물을 파줄 테니 목축에 도움이 될 것이오. 그리고 혹시 남자가 남으면 기병부대를 창설해 아부다비를 비롯해 고산국 영역을 지키시오.”

“아!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병부대를 창설한다면 주변 땅을 얻어 고산국에 복속시키면 좋겠습니다.”

대상 무역을 하느라 평소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그렇지 유사시에 기병 3천 명 정도를 동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 병력이라면 바다나 오만 국경으로 막힌 북쪽과 동쪽을 제외하고 다른 방향으로 영토를 넓힐 능력이 있었다.

다만 얻을 수 있는 땅이 황무지나 사막이라 구태여 영토를 넓힐 필요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토호들은 이민호가 원하기라도 한다면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정복할 기세였다. 물론 아라비아 반도 중앙 고지대나 해안 지방의 세력은 아부다비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럴 필요는 없소. 괜히 다른 지역 토호들이 경계할 우려가 있으니 지키기만 하면 될 것이오. 군인으로 근무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있소?”

“200명 정도는 상시적으로 근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토호들이 망설이며 자신 없는 투로 대답했다. 뜻밖에 중대장이 보고한 것보다 훨씬 적었다.

“생각보다 적지만 상관없소. 일인당 매달 은 두 냥을 지급할 테니 기병들을 모아보시오.”

“예? 그렇다면 저희 마을에서 기병 100명을 내겠습니다!”

“저희 마을에서는 기병 200명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저희 마을도 200명이 가능합니다!”

토호들이 처음에 언급한 기병 200명이란 고산국이 보호해주는 대가로 바치는 부역의 하나로서 무료로 군역에 봉사할 수 있는 인원을 뜻했다. 그러나 녹봉을 주겠다고 하자 토호들이 서로 나섰다.

병력이 부족하면 현지인을 병사로 고용하는 편이 나았다. 만약 다른 지역에서 고용한 용병을 투입할 경우 현지인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흔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편이었다.

물론 세포이의 반란처럼 현지인 용병부대의 반란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두어야 했다. 고용 비용에 대한 고려보다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숫자를 현지인 병사로 채용해야 했다. 이 지역을 완전히 고산국 영토로 편입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어허! 지원자가 너무 많구려. 500명을 고용할 테니 토호들이 알아서 교대로 근무시키도록 하시오. 지휘권은 이곳 중대장에게 줄 테니 그에게 명령을 받으시오.”

“예, 폐하!”

아부다비 섬 인근 지역은 7만 평방킬로미터 정도의 면적이었지만 대부분 사막과 황무지라서 기병 500명 정도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었다. 아부다비 섬에 유전과 항구가 개발된 이후 이 지역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고산국 영토로 변모했다. 힘의 공백지대였던 이 지역에서 고산국 항구 하나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었다.

아부다비 남쪽 150km 정도에 오아시스 지대가 있었고, 이곳에서 일부 농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민호는 다른 지역에 공병대를 보내 양떼가 마시기에 충분한 우물을 몇 개 파게 했다.

공병대는 우물이 나올만한 곳을 찾아 깊이 굴착해서 한나절 만에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지게 해줬다. 이것만으로도 토호들이 고마워서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아부다비 섬도 원래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가 18세기에 우물이 발견된 다음부터 사람이 살게 됐다. 우물은 마을이나 도시를 생기게 하고, 우물이 마르면 마을이 사라지기도 했다.

다음 날 오전에 아부다비를 출항한 함대가 낮에 아부 무사 섬에 도착했다. 1만 5천 톤에 달하는 거대한 여객선을 비롯해 5천톤 급 순양함 12척과 수송선들이 방파제도 없는 자그마한 항구에 들이닥쳤다.

항구에는 페르시아 범선 두 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허름한 오두막 몇 채와 천막 여러 곳에서 나온 사람들이 항구로 몰려왔다. 함대에서는 페르시아 범선에서 혹시라도 대포를 쏠 경우에 대비해 응전태세를 갖췄다.

“고산국 국왕폐하 만세!”

“뭐, 뭐냐?”

아부 무사 항구에 몰려온 주민들과 페르시아 상인들이 열렬하게 고산국 함대를 환영했다. 배에서도 선원들이 나와서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이들에게서 어떠한 적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페르시아 범선의 선장 두 명과 주민 대표를 국왕좌승함으로 불렀다. 사막에 사는 아랍인들과 달리 페르시아 선장들은 더욱 아라비아 사람 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다. 아랍인 복장이라고 이야기책 삽화에 나온 것은 원래 페르시아 사람이 입는 복장일 가능성이 더 컸다.

“선장들에게 묻겠다. 이곳 아부 무사 섬은 어느 나라의 것인가?”

“이 섬이 어느 나라 섬인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따로 주인이 없더라도 옛날부터 여러 나라 뱃사람들이 이용해왔습니다.”

“맞습니다, 폐하. 만약 어느 나라가 이 섬의 주인이니 관리하라고 요청하면 다들 거부할 것입니다.”

선장들의 말로는 주변국들이 서로 관리 책임을 떠넘길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주민 대표의 말은 좀 달랐다. 주민 대표에게도 페르시아 말이 통했으나, 자기들은 페르시아 사람이 아닌 아랍인이라고 주장했다.

============================ 작품 후기 ============================

이어질 내용입니다.

오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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