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43화 (592/1,000)

00643  67. 1600년  =========================================================================

“예? 도련님! 당연히 제가 따라가야죠.”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요즘 명나라에 문제가 많다. 절강에서 반란이 크게 일어날 분위기야.”

“명나라 황제에게서 요청이 오면 파병을 안 할 수도 없지요.”

명목상 속국이라는 굴레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벗어날 수도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괜히 명나라라는 큰 시장을 잃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명나라 황제는 파병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게 배려해줬다.

“본토 병력을 투입해서 단기간에 결정적인 전투만 하고 빠져 나와. 명나라 백성들에게 괜히 원한 살 짓은 하지 말고.”

“예. 반란군 주력만 치고 나머지 소탕 작전은 명군에 맡기고 빠지겠습니다. 황제의 칙명으로 어쩔 수 없이 참전하는 것으로 소문을 내겠습니다.”

로마에 데려가지 않겠다는 말에 계복이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계복은 교황의 성지 순례를 따분하게 호위하는 것보다는 명나라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투에 참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금방 접었다.

이번 원정에서 지상군 사령관은 매사에 신중한 감동이 맡았다. 감동은 교황을 외곽에서 호위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응하는 훈련을 원정군 지상군에게 시키고 있었다.

감불은 시베리아 철도 공사장을 지키는 동해국 병력을 지휘했다. 전투에서 저돌적이면서 의외로 친화력이 장점인 감불은 여진족과 몽골의 군소 부족들을 구슬려 동해국으로 유인하는 일을 잘했다.

감불은 몽골족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모아 짧은 기차 여행을 시켜주면서 달짝지근한 과자와 다양한 맛의 차로 유혹했다. 이들이 소문을 내서 철도 노선이 자기들 땅을 지나가더라도 거부감이 적게 들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줄리아는 준비됐니?”

“예, 전하.”

10대 초중반의 견습 수녀 셋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냈다. 이들은 선교사들이 담당한 개인 교습 과정을 마치고 작년 마카오 대학에 어린 나이에 입학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견습 수녀들은 이번 기회에 성지 순례를 하기로 결정하고 몇몇 신부와 선교사들과 함께 원정군을 따라 나섰다. 고산국 본토에 사는 기독교도 수천 명도 이번에 성지 순례에 나섰다.

이제 열세 살, 또는 열네 살이 된 고니시 유키나가의 양녀 오타 주리아는 소서(少西)에서 소를 뺀 ‘서 줄리아’라는 이름을 새로 받았다. 이민호는 줄리아는 물론 비슷한 처지의 다른 견습 수녀인 클라라와 루치아의 후견인도 맡았다.

“이 분은 성지 순례 기간 동안 너희들을 경호해줄 육군 최명희 중위다. 인사해라.”

날렵하게 생긴 최 중위가 수녀들에게 경례했다. 그러나 인사를 나눈 수녀들이 이민호에게 청했다.

“전하! 저희들은 수녀들입니다. 스스로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수녀가 다른 분께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는 그래도 되겠지만 이번에는 자칫 외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너희들이 만에 하나 잘못 되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럼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된다. 알겠지?”

“예, 전하. 명심하겠습니다.”

성직자에게는 이런 협박이 가장 잘 먹혀들었다. 이민호가 이면에게 고개를 돌렸다. 젊은 항공대장은 줄리아의 미모에 홀딱 빠진 것 같았다.

“이 중령은 꼬마가 싫다며? 게다가 줄리아는 어리지만 수녀님이야.”

“싫은 건 싫은 거고, 미모는 미모입니다. 분위기가 마치 성녀 같은 분이시군요. 신학 공부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동가 공주 등 어린 절세미녀들을 직접 만나본 이민호는 내성이 생겼으나, 이면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자괴감에 빠질 것 같았다. 이면이 평소 가진 신념을 짓밟는 무자비한 미모였다.

“줄리아는 라틴어 회화가 좀 되나?”

“예. 조금 배웠습니다, 전하.”

줄리아에게 라틴어를 가르친 선교사의 전언에 의하면 줄리아는 라틴어만으로 선교사들과 심층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어학은 그 문화를 알아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 어린애들에게 얼마나 많이 가르쳤기에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몹시 궁금했다.

어쨌든 줄리아를 교황이나 추기경들을 만날 때 통역을 시켜도 될 것 같았다. 클라라는 히브리어, 루치아는 그리스어를 배웠다. 모두 성경연구에 관련된 언어들이었다.

“견습 수녀 단계에서는 언제든 관둘 수 있다. 공부가 힘들거나 평생 가야 할 길이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관둬도 돼.”

“저희가 선택한 길입니다, 전하.”

“그래.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너희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계속 후원해주마.”

“감사합니다.”

줄리아가 활짝 웃는 순간에 이민호가 잽싸게 이면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잠시 얼이 빠진 표정을 짓다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큰일이야. 줄리아 너 조용히 살아가기 정말 어렵겠다. 괴로운 일도 많겠어.”

“수녀원 안에만 있으면 상관없습니다. 가끔 봉사 활동하러 나갈 때는 베일을 착용하면 됩니다.”

“그것만으로 부족할지도 몰라. 밖에서 활동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눈썹을 과감하게 밀어버려.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네 잘못은 아니야. 신께서 내려주신 얼굴을 어쩌겠니?”

포대기 같은 수녀복을 걸쳤어도 줄리아는 예뻐도 너무 예뻤다. 실제 역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줄리아를 첩으로 들이려고 했다는 소문이 있는 만큼, 이민호는 걱정이 많이 됐다. 미인은 박명이라 했고 온갖 잡놈들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듯이 툭툭 건드리기 때문이다.

“너희 셋은 교황 성하나 추기경들이 수상비행기에 타길 원할 경우 통역을 해다오. 수상비행기가 시범 비행을 할 때도 안내를 해라. 비행기에 관련된 설명서를 줄 테니 그대로 통역해줘.”

“예.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부터 만드신 것이 신기했습니다. 저는 전하께서 당연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한 하늘 회전 기계부터 만드실 줄 알았거든요.”

“헬리콥터는 또 어떻게 알고 있어? 그것도 조만간 만들 거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한 헬리콥터는 동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제작하더라도 비행이 불가능했다. 처음 헬리콥터가 이륙한 것은 프랑스의 폴 코르뉴가 20초 동안 정지 비행에 성공한 1907년이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한 1903년보다 겨우 4년 뒤였다.

“험! 험!”

“여기 헛기침하면서 소개시켜달라고 조르는 이 사람이 항공대 대장이야. 수상비행기를 조종할 사람이기도 하지.”

어린 견습 수녀들과 인사를 나눈 다음 이면이 수상비행기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특별히 당부했다.

“수녀님들은 이것만 기억해주십시오. 수상비행기는 10인승입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 항법사와 통역인 수녀님 한 분까지 해서 네 사람이니까 나머지 좌석에 여섯 명이 탈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할게요, 대장님.”

“다만 무거운 짐을 들고 타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 2명을 일반인 3명으로 계산하십시오. 비행기는 특히 무게에 민감합니다.”

“정말 하늘을 나는가요? 아차! 직접 봤는데도 믿기 어려워서요.”

“시간 나시면 오늘 당장 태워드릴 수 있습니다.”

“교황 앞에서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면 수녀님들이 미리 타보는 게 나아.”

이면과 견습 수녀들을 쫓아 보냈다. 그리고 후궁들로 이뤄진 그림자 내각 회의를 개최했다.

얼마 전부터 신문과 방송에 공고해서 철도 공사에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기술자는 물론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받았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됐고, 당장 써먹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제안은 따로 추리고 포상금을 지급했다.

1등상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제안한 ‘선로 규격에 맞춘 삽차 날의 변형과 집게’에 돌아갔다. 선로 간격과 두께에 맞춰 삽차의 삽에 홈을 깊이 파서 삽차가 직접 선로 위에서 작업하도록 만든 아이디어였다. 삽차가 선로를 따라 삽으로 땅을 긁을 때 선로가 삽날의 홈에 끼어 선로 밑까지 깊이 팔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삽날 반대쪽에 집게를 추가해서 낡은 침목의 방향을 90도 틀어서 간단히 들어 올리거나 새 침목을 선로 아래에 놓은 다음 90도 돌려서 설치하도록 만들었다. 무거운 침목 또는 콘크리트 침목을 여러 사람들이 균형을 맞춰 조심스럽게 들어 옮겨야 했던 것을 집게로 간단히 들어서 설치할 수 있었다.

며칠 후에 실제로 삽차의 날을 개량하고 집게를 달아서 시험해봤다. 기존의 선로 깔기는 작업자 열 명에서 스무 명이 순전히 인력만으로 작업하던 일이었는데, 삽날을 개량하자 삽차 운전자를 포함해 세 명으로 줄어들고 작업 속도도 몇 배나 빨라졌다.

“와! 이건 정말 생각도 못한 기발한 발상이야.”

“철도 공사하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요?”

이민호가 몹시 즐거워하자 혜영과 민희, 민영이 갸웃거렸다. 이민호가 현대 한국에서 살 때 못 봤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이 시대에 나왔다. 사실 외국에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민호가 알지 못했던 것일 뿐이었다.

“절대 쉬운 발상이 아니야. 인력을 대폭 절감할 수 있어. 얼른 삽날을 개조해서 철도 건설 현장에 보내자. 그런데 선로 공사에서 밀려난 인력에게는 뭘 시키지?”

“남는 노무자들에게는 전봇대 가설이나 기차역 건설을 시켜요. 그리고 돌을 깨는 채석장, 아! 화약을 터뜨려서 돌을 깨고 있군요.”

고산국이 생기고부터 이전 시대와 일하는 체제가 완전히 달라졌다. 힘든 일은 기계에 맡기고 노무자들이 하는 일은 보조적인 역할로 줄어들었다.

“채석장에도 몇 백 명 보내. 그래도 남으면 주변 도로 공사에 투입해.”

삽차 개량이 끝난다면 예상과 전혀 달리 철도 공사에서 인력이 남아돌게 됐다. 그러나 노무자들을 해고할 이유는 없었다. 고산국의 발달된 과학의 힘을 보여줘서 노무자들이 집에 돌아가서 떠벌이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도 공사는 철도 공사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해서 여진의 북쪽 영토를 잠식하고 이를 인정받는 것도 철도 부설의 또 다른 목적이었다.

다음 날 오전, 항공대 활주로에서 왕도와 주변 지역의 어린이들을 모아 행사를 열었다. 하나는 연 날리기 대회, 하나는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였다. 물로켓은 적당한 용기가 없어서 포기하고 대신에 넓은 활주로를 향해 신기전기에서 신기전 40발을 한꺼번에 발사했다.

두 가지 대회에서 각각 1등한 어린이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복엽기의 조종석 뒷자리에 앉아 비행하는 기회를 주었다. 3분간 비행한 다음 착륙하고 나서 어린이 하나는 함빡 웃었고 다른 하나는 엉엉 울면서 내려왔다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웃었다.

두 대회에서 2등부터 10등까지 한 어린이들은 수상비행기에 나눠 태웠다. 어린이들을 따라온 부모들이 몹시 걱정했으나 방파제 안쪽 잔잔한 항구의 물 위에서 뜨고 내리는 수상비행기는 단엽기보다 사고 위험이 훨씬 적었다.

항구 주변을 비행한 수상비행기가 가뿐하게 수면에 착륙한 다음 부두에 도착해 어린이들이 내렸다. 얼굴이 허옇게 되어 토한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자지러질 듯이 좋아했다. 고산국 어린이들은 장난꾸러기가 많고 새로운 도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산기슭 말 목장 네 곳에 페르가나 명마, 일명 한혈마와 천리마 3천 마리가 입식됐다. 절반은 기병 연대 장병들이 훈련을 시켰고, 절반은 널따란 사육장에서 뛰어놀게 하면서 최고의 사료를 먹여 키웠다. 페르시아와 고산국의 마의들이 신이 나서 한혈마들을 보살폈다.

“건초로 사용하는 개자리와 노랑개자리하고 비슷하게 생긴 식물이 아랍 지역에 있다고 해서 이번에 씨앗을 얻어왔습니다. 알팔파라고 합니다.”

“오! 예조 판서가 진짜 큰일을 해내셨소이다. 국영 농장에서 잘 키워봅시다.”

신라에는 말꼴로 사용할 목숙, 즉 개자리를 키우는 기술과 사무를 담당한 목숙전이라는 관청이 있었다. 알팔파를 비롯한 개자리속 식물들은 영양분이 풍부한 건초를 만들 수 있고, 뿌리가 땅속 깊이 뻗어 있어서 가뭄에 강했다.

“전하! 이제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말을 타고 오라고 하셨습니까?”

“항공대장이 탄 말이 혈통이 좋은 종마래. 그래서 당분간 목장에 두고 가라는데?”

연락을 받고 급히 말을 타고 달려온 이면의 턱이 덜컥 내려앉았다. 말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눈은 비슷해서, 이면이 소유한 말은 한 동안 여기저기 목장에서 무료 봉사를 해야 했다.

“이제 정 좀 붙였다 했더니 빼앗아 가시는군요.”

“사흘 후에 지중해로 출발할 건데 잘 됐지 뭐.”

“원정에서 돌아오면 저보다 이놈이 더 살이 빠져 있겠군요.”

“종마의 운명이지.”

그러나 종마와 비슷한 일을 하는 이민호는 전혀 살이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잘 먹고도 비만이 아닌 이유일 수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포클레인 삽날 부분 개량은 설정란을 참조하십시오.

세기의 기간 문제는 영문위키에서 century나 millenium으로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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