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41 67. 1600년 =========================================================================
67. 1600년
1600년의 새 아침이 밝았다. 고산국 왕도는 부활절에 있을 교황의 성지 순례를 준비하는 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작년부터 아예 교황청 대사가 왕도에 상주하고 추기경들이 수시로 고산국과 로마를 오갔다. 왕도 백성들이 추기경들을 하도 자주 봐서 로마가 해협 건너편 복건성에 있는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로마 교황청에서 성지 순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에도 대사를 자주 파견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 기독교 국가들과 유럽에서 중근동이라 부르는 서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적대감이 조금 해소됐다.
몇 년째 헝가리에서 싸우던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이 잠시 전쟁을 멈추고 교황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외부적으로는 교황이 두 나라에 휴전을 요청해서 정전이 된 줄로 알려졌다. 그러나 폴란드는 오스만 제국과 계속 교전 중이었다.
“오, 주여! 이런 거대한 배가 만들어질 수 있다니! 노아의 방주는 역시 사실이었습니다. 철로 만든 배를 물에 띄우는 고산국의 과학력은 세계 제일입니다, 폐하!”
1만 5천 톤 급 여객선을 처음 본 교황청 대사가 놀라서 내뱉은 말이었다. 이민호는 교황청 대사의 말을 듣고 독일의 과학력을 언뜻 떠올렸으나, 이 시대 독일의 과학력은 별 것 없었다.
이 배는 작년 말에 진수돼 북미 동해안과 유럽을 오가는 대서양 항로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원래 이민선으로 설계했으나 성지 순례에 동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부 객실을 터서 교황의 거주 공간과 추기경들의 사무공간으로 변경했다.
여객선은 기존 이민선과 달리 널찍한 가족 단위 객실이 복도 양쪽으로 늘어서 있고 내부에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차 있었다. 충분히 크루즈 선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으나, 이 시대에 유람용 여객선에 대한 요구는 크지 않았다.
“교황 성하와 추기경 여러분들이 탈 배요. 성직자와 호위 병력 합해서 천 명 남짓이라고 했지요? 사람 외에 화물은 천 톤, 그러니까 백만 파운드 정도 짐을 더 실어도 됩니다.”
“혹시 화물 외에 전마를 더 실어도 되겠습니까?”
추기경의 질문에 이민호가 선박 설계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계자는 화물 적재 공간에 충분히 여유가 있다는 대답이었다. 화물적재 공간을 마구간으로 변경하는 것은 간단했다.
“전마가 무거운 줄로 압니다만, 설계 수용인원보다 훨씬 적게 탈 예정이니 더 실어도 되겠습니다. 마차용 말 500마리와 전마 500마리 정도까지는 가능합니다.”
“고맙습니다, 폐하! 솔직히 말씀드려 그 동안 교황 성하의 성지 순례가 초라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국왕폐하를 이 땅에 보내신 것 같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오.”
이 배가 진수된 덕택에 교황청에서는 교황의 순례 행렬을 생각보다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공짜는 아니라서 여객선 건조비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을 3개월 운임으로 받기로 했다. 여객선 건조 비용을 실제보다 훨씬 많게 추산한 교황청 덕택에 예상보다 많이 받게 됐다.
로마 입장에서도 교황청 예산 3년분을 투입하는 성지 순례가 초라하지 않게 돼서 더욱 좋았다. 만약 천 명을 수송하기 위해 갤리선 30척을 동원했다면 비용이 훨씬 더 들었을지도 몰랐다. 일반 말보다 무거운 기사용 전마도 수를 줄였어야 했을 것이다.
“이번 순례에서 교황 성하의 호위를 고산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왕폐하께서도 당연히 성지 순례에 참가하시겠지요?”
“함대를 움직여야 하니 그래야 할 것 같소이다. 함대와 여객선을 이끌고 4월 초까지 로마로 가겠소. 승선 전에 짐을 반드시 규격대로 포장하시오.”
“감사합니다! 포장 문제는 전달하겠습니다.”
추기경이 몹시 기뻐하면서 계약서 두 종류에 서명하고 선금을 지급했다. 로마와 왕도를 고산국 배를 타고 왕복하는 추기경은 막대한 양의 금을 안심하고 싣고 다닐 수 있었다.
예루살렘 주변의 육상 호위는 교황청에서, 해상 호위는 고산국 함대가 맡기로 했다. 여객선 용선계약과 교황 호위 계약, 그리고 여객선 정밀화를 그리는 작업이 끝나자 추기경이 다시 로마로 향했다.
“문제는 교황의 육상 호위가 느슨하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전하. 화약무기 시대인데 기사 위주로 호위한다면 걱정입니다. 대포 사거리 주변까지 통제해야 합니다.”
해군사령부에서 총함장 이순신을 만난 이민호는 교황의 성지 순례에 동원할 함대 규모를 결정했다. 북아프리카 해적이 소멸된 지금 해상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순양함 숫자는 적은 반면 상륙함과 수송선 숫자를 늘렸다. 순례에 동원될 베네치아 범노선들과 몰타 기사단의 갤리선들이 있으나 속도가 느리고 수송 효율이 떨어져서 고산국 상륙함과 수송선들이 순례자들을 주로 태우기로 했다.
“이번에도 기병 연대와 장갑차 대대, 구르카 여단까지 출동하는군요. 하오나 전하! 저 병력은 고산국의 유일한 전략예비 부대들입니다. 만약 이때 다른 지역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동원할 병력이 부족합니다.”
“카리브 해의 해적들이 소탕됐으니 당장 위험한 곳은 시베리아 철도 건설 현장뿐입니다. 북미 중앙평원은 여진 기병이 알아서 하겠지요.”
“제가 보기에 장갑차는 기병에게 몹시 강합니다. 1개 중대 정도를 동해국으로 보내는 것이 어떨지요? 전투가 없더라도 여진족이나 몽골족에게 감히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총함장 이순신의 제안을 받아들여 철도 건설 현장에 장갑차들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노지에서 장갑차의 최고 속도는 40km 정도로서 말보다 빠르지 않았으나, 장갑차는 몇 시간 동안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있고 말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화력은 기병에 비해 장갑차가 압도적이었고 방어력은 화살과 화승총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직도 동해국을 합병하지 않고 왜 놔두십니까?”
“사실 여진족은 느슨한 속국 형태로 지배가 아닌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영토를 늘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 황공하오나 국가의 힘을 보건대 국왕전하께서 제위에 오르셔도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본토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니 조만간 대명제국보다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목소리를 낮춰주십시오.”
총함장 집무실에 젊은 해군 장교 몇 명이 배석했으나 표정 변화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해군 내부에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전하. 지금은 명나라와의 교역 때문에 곤란할지 모르겠으나, 명나라가 조만간 무너진다면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국을 세우십시오.”
“그렇게 높이 평가해주시니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전하께서는 백성을 위한 진정한 성군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전하께서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시더라도 지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면이를 어서 조종사 직책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논리가 이상하게 연결됐지만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래서 항공대장 이면을 중령으로 승진시키면서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면이 시험 조종사를 그만 두지 않으면 대령으로 승진시켜 비행을 못하게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시험 조종이 끝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은 상관없는 것으로 이순신 및 이면과 합의를 봤다.
“민영이. 철도 건설은 잘 돼가?”
“예, 주인님. 후룬 4부, 그러니까 우라 부가 정복된 다음부터 해서 여진 여러 부족들이 건주 여진의 공략을 근근이 버티고 있어요. 해서 여진에 속했던 군소 부족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반면에 해서 여진은 이들을 영향력 내에 묶어둘 힘이 없어요.”
명나라가 요동에 개설한 마시와 거래를 쉽게 하기 위해 건주 여진이 기존 근거지에서 서쪽으로, 해서 여진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 바람에 나머지 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겼다. 건주 여진과 해서 여진이 싸우면서 힘의 결집이 필요해 공백은 더욱 커졌다.
덕택에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하면서 동해국이 서쪽과 북서쪽으로 확장하는 동안 다른 여진족들의 저항이나 견제가 거의 없었다. 이렇게 해서 건주 여진이나 해서 여진에 비해 인구가 적은 동해국이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하게 됐다.
해서 여진과 건주 여진이 서쪽은 명나라, 남쪽은 조선, 동쪽은 동해국 틈바구니에 끼어 확장에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동해국은 철도 노선을 따라 북쪽과 북서쪽으로 마음껏 확장할 수 있었다.
“해서 여진은 그렇다 치고, 건주 여진에서 항의하지는 않나?”
“예전 해서 여진 소속이었던 군소 부족의 복속 문제는 동해 여진과 해서 여진이 다투고 있는 사안이에요. 건주 여진은 항의할 자격이 없어요.”
어떻게 보면 건주 여진과 싸워야 하는 해서 여진이 몹시 곤란한 틈에 뒤에서 동해국이 그 영토와 군소 부족들을 차근차근 잠식하고 있는 셈이었다. 건주 여진과 맞서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해서 여진은 여력이 없어서, 건주 여진은 아직 자기들 영토가 아니라서 동해국에 항의조차 못했다. 건주 여진과 해서 여진이 싸우는 사이 동해국의 영토만 꾸준히 넓어졌다.
“어부지리네. 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만, 저들이 선제공격하면 강력하게 대응하도록 해.”
“네. 동해국 기병은 2천에 불과하지만 일부는 화승총, 극소수는 단발총으로 무장했어요. 노무자들도 활과 칼 같은 기본적인 무장을 갖췄어요. 노무자들 숫자가 많아서 건주 여진이든 해서 여진이든 함부로 공격하기 어려울 거여요.”
건주 여진이나 해서 여진에 비해 훨씬 약한 동해국이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면서 불안한 점이 많았다. 민영은 없는 병력을 쥐어짜서 간신히 다른 여진족의 공격을 막아낼 정도로 건설 현장 주변에 병력을 배치했다. 그러나 병력이 분산돼 있어서 상황이 변하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장갑차 1개 중대를 철도 건설 현장에 파견하기로 했어. 많지는 않지만 잘 활용해봐.”
“고마워요, 주인님! 큰 힘이 될 거여요.”
“철도 경비는 초기에만 필요해. 여진족과 몽골족이 철도가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리 많은 경비 병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을 거야.”
“그 동안 동해국 기병들이 고생해야겠지요. 요즘 동해국 젊은이들이 간이 부었어요. 두려운 것을 몰라요.”
동해국 젊은이들이 건주 여진을 치고 싶어 했으나 민영이 강력하게 제지했다. 동해국 승상 아오지도 젊은이들을 다독여 내실을 다지도록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는 것이었다.
시베리아 지역과 북극에 대한 탐험은 모두 동해국 탐사대원들의 공로였으나, 이들 지역을 탐사하면서 만만한 퉁구스 원주민들만 만나는 사이 겁이 없어졌다. 강력한 고산국이 동해국의 뒷배를 봐준다는 사실 때문에 건주 여진이나 해서 여진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건주 여진과 해서 여진이 대립하는 중에 괜히 동해국과 전쟁을 해서 인명 피해가 다수 발생한다면 균형이 확 기울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 쪽도 함부로 동해국을 공격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동해국은 언제 합병할 거여요? 지금도 동해국 여진족들은 자기들이 고산국 사람이라 칭하고 다녀요.”
“인구가 좀 늘긴 했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건주 여진에 잡아먹히기 딱 좋겠다. 얼른 농업생산력이나 늘리라고 해. 지금은 부담이 가서 합병하기 어려워.”
“농기계 부품이 부족해서 제대로 운영하기 힘들대요.”
“농기계들이 과로나 노동력 착취 수준을 넘어 학대를 당하는구나. 부품뿐만 아니라 농기계와 운영할 사람을 좀 더 파견해.”
동해국은 북미나 호주와 달리 고산국 영토가 아닌 속국이었다. 아이누 섬이나 큐슈와 지위가 비슷했다.
이들 세 지역은 이민호라는 같은 왕을 모신다는 점에서 유럽의 동군연합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는 독립적인 자치 정부가 없는 대신 고산국에서 파견한 총독이 상주해서 고산국의 통제력이 훨씬 강하게 미쳤다. 시코쿠는 그나마 자치라도 해서 전혀 다른 지역이었다.
“유사시 증원 계획을 보자. 큐슈에서 여진 기병 2천, 기리시탄 보병 3천, 본토에서 1개 보병연대. 조금 부족하지만 어떻게 되겠군. 교황의 성지 순례 기간만 지나면 병력에 훨씬 여유가 생길 거야.”
“동해국 젊은이들과 노무자들이 괜히 해서 여진의 신경을 긁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여요.”
“그래. 공연히 전쟁할 필요는 없지. 참! 수상비행기 두 대를 보내줄게. 정밀 지도 제작에 쓸 만할 거야.”
아직까지는 복엽기나 단엽기보다는 수상비행기가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순양함에서 사출했다가 기중기로 인양하는 것은 사출기의 출력 부족 때문에 의외로 문제가 많아 아직도 개량 중이었다.
동해국에 활주로가 없어 강이나 호수를 이용해 이착륙하는 수상비행기가 더 효율적이라서 2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플로트에 바퀴를 달아 활주로나 물 양쪽에 이착륙하는 전천후 항공기로 만드는 실험도 진행되고 있었다.
글렌 커티스는 1910년 버밍햄 호 선상에서 복엽기를 이륙시켰고, 1911년에는 실용형 수상비행기의 비행을 성공시켰다. 1914년에는 대서양 횡단비행을 위한 3발 비행정을 개발했다. 동력장치만 있다면 항공기의 발전은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다.
“고마워요. 세부 노선을 결정하기 훨씬 쉬워질 거여요. 제가 아예 동해국으로 갈까요, 주인님?”
“안 돼!”
“저도 주인님과 떨어져 있기 싫어요. 물가에 애를 내놓은 것 같아서요.”
민영이 눈웃음을 쳤다. 결국 교황의 성지 순례 기간 중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은 민영 대신 민희가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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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