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33화 (582/1,000)

00633  65. 뻐꾸기시계  =========================================================================

아리수 요새에서 8인치 2연장 함포의 육상발사 시험이 실시됐다. 현대 한국군에 실전 배치됐던 짧고 뭉툭한 8인치 자주포를 기억하는 이민호는 예상보다 훨씬 기다란 포신에 놀라고, 육중한 포탑에 한 번 더 놀랐다. 8인치 함포는 현대 육군이 쓰는 8인치 포와 전혀 다른 포였다.

목표는 망원경으로 봐도 가물가물한 30km 거리의 바다에 떠 있는 낡은 서양식 범선이었다. 전선 두 척이 시험 사격 해상을 통제하는 가운데 거대한 포신이 위로 천천히 들렸다. 그 사이 포 발사요원들이 풍향과 풍속을 재고 사격 제원을 산출하느라 정신없었다.

“국왕전하와 내빈 여러분께서는 귀마개를 착용하십시오! 30초 후에 발사하겠습니다.”

지상에 올린 포탑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관람석이 있었다. 민영이 얼른 이민호에게 귀마개를 씌웠다. 잠시 후 포탑 앞에 위치한 사격통제관이 빨간 깃발을 번쩍 들었다.

- 콰앙~

요란한 포성과 함께 연기를 뚫고 날아가는 포탄의 뒷면을 언뜻 본 것 같았다. 포탄 무게만 110kg이 넘었다. 함포가 발사되는 순간 포탑 주변 땅에서 일제히 먼지가 피어났다.

함포가 발사되고 한참 지나서야 포탄이 수면에 낙하했다. 로켓 보조 추진탄 같은 사거리 연장탄이 아닌데도 포탄이 범선 가까운 해상에 낙하해 거대한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오호! 꽤나 정확한데? 사거리도 좋고.”

“명중시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전하. 목표 좌표를 수정해서 다시 쏘겠습니다.”

국방연구소 장인이 포수들을 다그쳐 좌표를 수정했다. 지상 발사해서 이 정도라면 허름한 조준기가 달린 함포를 해상에서 쏜다면 훨씬 더 빗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레이더와 연동된 사격통제 장치가 개발되는 것은 아직 꿈속의 일이었다.

- 콰앙!

8인치 2연장 포탑에 달린 포신 2개에서 번갈아가며 포탄을 날렸다. 그러나 스무 발 가까이 쏘고 나서도 끝내 범선을 명중시키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 접근한 포탄이 물기둥을 일으키며 범선을 크게 뒤흔들었을 뿐이었다. 국방연구소 장인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보게, 책임자!”

“예! 전하. 제가 책임을 지고 배를 가르겠습니다. 부디 제 수하 장인들을 용서해주십시오.”

“뭐? 자네 일본 출신인가?”

화약무기가 국가기밀이라 해도 건국 초기에 고산국에 이민 온 일본인이라면 거의 완전히 동화돼 국방연구소 취업에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일본 출신자들은 스스로 국가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피했다. 농사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데 구태여 관리가 되거나 국가기관에서 일하면서 의심을 살 필요가 없었다.

“아닙니다, 전하. 10년 전까지 조선 군기시에서 일했었습니다.”

“함포를 아주 잘 만들었네. 위험 반경, 그러니까 파편이 비산하는 거리가 얼마지?”

“100미터가 조금 넘습니다.”

“스무 발 중에서 100미터 이내에 열 발 이상 들어갔네. 그 정도면 충분히 정밀해. 아주 잘 만들었어.”

사거리 20km가 넘어가면 유도무기가 아닌 한 정밀도는 대폭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국방연구소 장인들이 실망할까봐 일부러 크게 칭찬하고 참가자 전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민호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장인들은 동의하지 않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개발의욕을 불태웠다.

그리고 시험발사를 참관한 내빈들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히 범선에 명중해 산산 조각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가만 놔두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기가 포 사격 훈련장이지?”

“북동쪽 20km면 붕산(崩山)이라 해서 예전에 시험 사격장으로 활용했었습니다. 그러나 땅거죽이 드러나고 나서는 온통 바위산이라서 사격장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활용한 적이 없습니다.”

“어쨌든 주변에 민간인이 없단 말이지? 동그라미 표시 안에 집어넣게.”

“그 정도면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전하.”

다시 함포가 움직여 잠시 발사준비를 했다가 2문 연속 발사했다. 포탄이 날아가 산사면에 희게 표시한 곳에 정확히 적중해 폭발했다. 2탄이 포연 속으로 들어가 재차 폭발했다.

- 우르릉~

바위산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한참 지나서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울리고 임시로 만든 단상인 내빈석이 크게 진동했다.

내빈들이 겁에 질려 땅에 엎드리거나 벌떡 일어섰다. 몇몇 내빈들은 국왕은 물론 동료와 가족들까지 버리고 달아났다.

“잡아!”

이민호가 소리치자 호위들이 이들을 붙잡아 시험 사격이 끝날 때까지 단상 밑에 무릎을 꿇렸다. 이들 중에 군인과 관료들은 무조건 일계급 강등이었고, 지휘관이나 행정관서 부서장이라면 직위 해제를 시켰다.

하지만 이 날은 일단 조용히 넘어갔고, 굳이 나무라지도 않았다. 부끄러움을 느낀 자들은 조만간 다 관두고 물러났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자리를 지키려던 자들은 다른 범죄가 발각돼 파면됐다. 아무도 이 날 관료와 장교 일부가 도망간 것을 두고 뭐라 하지 않았다.

시험 사격장에도 범선처럼 20발을 발사했다. 돌산에 포탄이 박힌 다음 연속 터지면서 돌조각을 사방으로 날렸다. 돌산이 서너 번쯤 무너진 다음에야 시험 사격이 끝났다.

“이 정도 위력이로군. 대단해. 채석장에 쓰면 좋겠다. 크론보르 성 따위도 단번에 날려버리겠어.”

물론 두꺼운 석축으로 건설한 덴마크 크론보르 성이 8인치 함포탄 몇 발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5인치 함포로는 파괴시키기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성도 공략할 자신이 생겼다. 이는 유럽에 갔을 때 큰 힘이 될 것이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박수!”

이민호가 박수를 치자 계복이 벌떡 일어나 내빈들에게 박수를 유도했다. 육군사령관으로서 계복은 8인치 함포가 해전용이 아니라 지상 지원용임을 알아본 까닭에 더 기뻐했다.

기차를 타고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민호는 명나라에서 갓 돌아온 계복과 대화했다. 고산국 육군사령관이 직접 명나라에 와서 알현하자 황제가 아이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고산국 대학에서 공부하던 황태자 주상락도 씩씩한 모습을 보여 황제가 다시 보게 됐다고 한다.

“명나라는 어땠어?”

“사방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문제는 황제는 태정을 하고 환관들과 관료들의 대립이 날로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습니다.”

환관들은 권한만 강하고 관료들은 책임만 지게 되는 구조라서 행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 관료제도는 얼마 가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관료를 하겠다는 자들이 많아서 비정상적인 조직이나마 억지로 유지되고 있었다.

“베이징에 1개 대대 병력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예. 베이징 시내는 아니고 외곽에 주둔하는 조건입니다. 그만큼 황제가 불안을 느낀 모양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병력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외국군을 제국의 수도 근처에 주둔시켜달라고 요청한 것만으로도 명나라의 상황을 대충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황제는 체면이 문제가 아닐 정도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민호는 이 시기부터 명나라가 망할 때까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반란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나라에서 사는 백성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나라가 망하길 원하게 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칙사가 어제 왕도에 도착했어. 황제의 옥체를 지키는 것이 제후의 도리라더군.”

“그래서 명나라의 요청을 받아주실 생각이십니까?”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고산국이 명나라의 속국이나 제후국이라고 하지 않았다. 명분은 핑계였고, 실리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었다.

“반란을 직접 진압하러 명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때?”

“조직력이 부족한 농민 반란군하고 싸워봐야 제대로 된 전투 경험을 쌓지도 못합니다. 차라리 황궁 근처에 죽치고 앉아 편하게 지내면 더 높은 평가를 받겠지요. 주둔비용을 청구하는 조건으로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결정은 도련님이 하세요.”

“나도 그렇게 대답했어. 육군 사령관에게 물어보겠다고 했지.”

서로 책임 회피를 하던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됐으니 어떻게든 결정해야 했다. 황제가 보낸 칙사는 고산국에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핑계로 시장과 백화점에 눌러앉다시피 했다.

“명나라와 지금처럼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유리하니 보내야겠죠?”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어. 이 기회에 병력 충원이나 하지 뭐.”

어쩔 수 없이 구르카 용병 1개 중대와 기병 1개 중대, 기병 포병 1개 포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순환 근무시키기 위해 주둔 병력의 4배를 새로 뽑아 훈련시켜야 했다. 그리고 주둔지를 목책으로 두르고 명나라 백성들과는 접촉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도련님. 제가 삼국지를 읽어봐서 아는데, 중국에서 전쟁이 나면 단위가 다릅니다. 수만 명이 아니라 수십 만 명을 한꺼번에 맞닥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베이징 성으로 퇴각해서 같이 지키도록 해야지. 그 사이에 구원군을 구성해서 보내면 되겠지.”

고산국에서 보낸 구원군은 반란군을 격파하고 황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둔군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대규모 반란군에 정면으로 상대하고 싶은 마음은 이민호에게 없었다. 만약 억지로 싸우게 된다면 중국 역사상 최대의 일방적인 학살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이 정도면 나라를 뒤집어엎는 편이 백성들에게 확실히 낫습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우리가 개입할 필요는 없어. 그냥 지켜보도록 해.”

왕궁에 돌아와 칙사를 불렀다. 그리고 내년 초부터 고산국 1개 대대 병력을 베이징 근교에 주둔시키되, 만약 작전에 투입할 때는 황제의 직접 명령만 받기로 칙사와 문서로 약속했다.

명나라에서도 고산국의 정예군이 황제를 지키기 위해 황도 부근에 주둔한다는 명목상의 효과만 기대했다. 황도 주둔군이 화려한 군복을 갖추고 가끔 베이징 대로에서 행진 정도만 하면 충분했다.

건국 초기라 아직 나라 곳곳에 허술한 점이 눈에 띄었다. 행정과 형법 체계는 어느 정도 안정됐으나 민간인이 주도하는 산업과 유통구조는 오일장과 가내수공업으로 이루어진 조선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산업별로 법률을 만들어봐.”

“민간에 중요 산업을 개방하려고요?”

혜영이 이민호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그래. 철도나 수도, 전력회사처럼 국가기반 시설은 지금처럼 정부가 운영해.”

“그런 것은 절대 민간에 개방하면 안 돼요.”

미국의 철도는 최악의 서비스로 악명이 높았고 승객들은 차라리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수도 민영화로 인한 요금의 지속적인 인상은 도시 빈민들을 극악한 위생 상태로 몰아갔다. 에너지 회사 엔론은 기술력이 아닌 정치 로비와 에너지 가격 조작, 분식회계로 미국 7대 기업에 들어갔다가 파산했다.

“하지만 제철소나 유전, 조선소 같은 것은 국가적으로 필요하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민간에 맡기는 게 더 효율이 높을 거야. 정부가 직접 운영하거나, 아니면 법률을 통한 공정한 규제를 하면서 기업들 간에 자유경쟁을 시키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물론 고산국은 건국 초라 민간에 자본이 없어서 대규모 산업시설을 민간 주도로 설립할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지금 구멍가게 수준인 민간 회사들이 성장하면 다양한 산업에 진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산업이 너무 다양해서 정부가 다 할 수가 없어서 문제죠.”

“그렇지. 백성들에게도 이것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

북미에 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속속 입국하고 있어서 이민호는 초조했다. 그래서 조선 출신 고산국 백성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 회사를 차린 사람들이 더 많은 사업 기회를 얻기 위해 북미로 떠날 것으로 기대했다.

“백성들이 회사를 운영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한 회사가 어느 품목을 독점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지 않겠어요? 그 문제를 규제해야겠군요.”

“맞아. 독과점 기업들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정부 규제를 무력화시키려고 노력할 거야. 독과점이 돼서 소수 회사들이 시장에 절대적인 힘을 갖기 전에 반독점법으로 세금을 부과해서 시장점유율을 낮추도록 해. 그래도 안 되면 기업을 강제로 쪼개버려.”

“정말 그래도 돼요? 공정한 자유경쟁이 산업을 발달시킨다면, 정부가 할 일은 기업들의 담합을 제지하는 거여요. 공정한 경쟁이 되도록 규제법안을 마련해볼게요.”

반독점법은 미국에서 생겨나서 대규모 통신, 전력 회사 등을 지역별로 강제 분리시킨 적이 있었다.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은 윈도우 프로그램에 메신저나 미디어 플레이어 같은 부속 프로그램을 자사의 것으로 넣었다가 큰 벌금을 내고 경쟁사의 것을 함께 집어넣어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의회에서 분리시키려고 시도하다 결국 못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 같은 브라우저를 번들로 판매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도에 그쳤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의 미국법인 임원들은 담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시장 지배적 위치의 기업이 반독점법을 위반하면 세금과 벌금 등을 부과하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 한국까지 일반적이었다. 선진국 정부들은 일정한 시장점유율을 지정해놓고 이를 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동종 업종 회사들의 합병도 제대로 못하게 했다. 심지어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은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가격을 마음대로 높이지 못하고, 시장점유율을 더 높이기 위해 가격을 낮추지도 못한다.

“모순 같지만 이것이 기업을 키우는 길이야. 창업 지원은 잘 해주도록 해.”

반독점법이란 자본주의 특유의 제도이며 자본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시작해 선진국 대부분이 수용했다. 국가가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경쟁원리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반독점법이었다. 이민호가 왕립 또는 국왕 개인 재산으로 소유한 업체들 대부분이 독점기업이었으나, 이들도 앞으로는 민간 기업과 경쟁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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