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31화 (580/1,000)

00631  65. 뻐꾸기시계  =========================================================================

“그리고 시키신 대로 예조 참판을 조선에 보내서 조선과 국경 조약을 체결했어요.”

“지금 있는 그대로겠지?”

혜영이 내민 조약문 내용과 부속 지도를 확인했다. 이민호가 아는 것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조선에서는 제주도가 고산국에 넘어갈까봐 두려웠는지 제주도와 마라도까지 꼼꼼하게 언급했다.

“물론이에요. 혹시라도 조선에서 줘도 주인님이 안 받을 거잖아요?”

“괜히 두고두고 욕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울릉도에 측후소 세웠어? 조선이 허락을 해?”

“예. 조선 조정 대신들은 울릉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서 어리둥절했는데, 좌승지 이수광이라는 사람이 강력하게 반발했다더군요.”

이수광은 조선 영토인 울릉도에 임진왜란 이후 왜인이 들어와 기거했다고 한탄했다가, 일본인들에 의해 울릉도가 일본 영토라는 증거로 제출된 <지봉유설>의 저자였다. 물론 이 책으로 인해 울릉도가 오히려 조선 영토라는 확인만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책을 쓰려면 아직 멀었다.

고산국 예조 참판과 마주한 조선의 조정 대신들이 울릉도 위치를 모른다기보다는 고산국의 의도를 몰라 당황한 것으로 봐야 했다. 고산국처럼 조선에서도 두 나라가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이민호부터 예민하게 반응했다.

“영토 문제로 다른 나라들과 부딪히지 말라고 했잖아? 특히 조선은 우리가 집어삼킬 줄 알고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거야. 괜히 떠보다가 오해를 만들 일은 아예 하지 마.”

“물론이에요. 울릉도에 측후소를 세울 땅을 빌려달라고 했을 뿐이에요. 몇몇 대신들은 그런 외딴 섬은 고산국에서 가져도 되지 않느냐고 했대요.”

“고마운 사람들이로군. 조선 입장에서는 완전 국가반역자에 매국노겠지만 고관대작이라면 대충 넘어가겠지.”

협상 자리에 나온 이수광과 이항복이 <동국여지승람> 등 문서를 내밀면서 울릉도가 조선 영토인 이유를 구구절절이 늘어놓았다고 한다. 고산국 예조 참판이 단번에 인정해서 다행히 분규를 일으키지 않았다. 고산국이 조선의 섬에 영토 야욕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면 조선과 관계가 험악해질 수 있다고 사전에 훈령을 내렸기에 참판이 바로 물러선 것이다.

그 대신 울릉도에 측후소와 등대를 세우고 동쪽 해안 도동에 항구를 건설하는 것에 합의했다. 측후소는 주변 배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해상 레이더 기지이기도 했다.

일 년에 은 천 냥을 조선에 내는 조건으로 울릉도 항구와 측후소, 등대 및 숙박시설 건설과 이용에 대한 사용권을 얻었다. 동해국까지 왕복하는 배가 조선 동해안에 정박하는 것보다 울릉도에 정박하는 것이 하루 정도 항행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조선 은광에서 지급하기로 했어? 잘 됐군. 은이 너무 많이 나와서 배가 좀 아프겠다.”

“울릉도 삼림 채벌권은 못 얻었어요. 삼남 지방에 배를 만들 목재가 부족하다나요? 계획대로 됐어요.”

“잘 됐어. 조선에서도 배를 많이 만들어서 쌀 같은 것은 제발 직접 싣고 가라 그래.”

이 시기가 좀 지나면 조선 어부들이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고 울창한 삼림을 베어 선재로 이용한다. 그리고 젊은 후처나 첩에게 시달리는 조정의 늙은 고관대작들이 어부들에게 부탁해 해구신을 얻는 유일한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릉도, 즉 독도도 조선 영토임을 확인했다. 몇몇 지도와 문서 증거, 울릉도에서 관측이 된다는 점 등을 조선에서 제시해 고산국 예조 참판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조약에서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까지 해주었다.

“예상대로 대마도 문제를 조선에서 먼저 제기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수광이 여러 가지 증거를 내세워 대마도가 조선 영토임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대마도가 일본 땅이라는 문서적 증거가 더 많았다. 조선 초기 세종 대까지라면 몰라도 그 이후에는 조선이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결국 대마도를 고산국의 속국인 구주, 즉 큐슈에 포함시키는 조약문구를 삽입했다.

동해국과 함경도의 경계는 두만강과 백두산 천지로 확정했다. 두만강 하구의 흐름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협정이 체결된 날짜를 기준으로 국경을 정했다. 그리고 이민호의 대리인 혜영과 조선 국왕이 조약을 인준함으로써 조선과 영토 경계선 문제를 완전히 마무리했다.

“대마도를 가져가도 공도정책 운운하면서 관리도 안할 거면서.”

“일본이 없어졌으니까 조선 조정이 공도정책을 폐기하지 않을까요?”

“왜구 문제도 있지만 주민 통제라는 이유도 있었어. 백성들이 군역과 부역을 피해 섬으로 도망가는 것을 조정에서 싫어하니 아마도 공도정책을 계속 유지할 거야.”

고산국에 조선 출신이 워낙 많아서 이민호는 조선과 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조선에서도 고산국의 군사력을 잘 알기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 이대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족했다.

“민영이. 시베리아 횡단철도 계획은 어떻게 돼 가?”

“바이칼 호 남쪽까지는 어느 정도 세부 노선이 확정됐어요.”

“어디 좀 보자.”

민영이 준비한 큰 지도를 탁자에 펼쳤다. 동해국 땅을 지나 여진 평원과 몽골 초원을 가로질러 바이칼 호 남단에 이르는 철도 노선이 확정됐다.

현대 지명으로 하면 무단지앙, 하얼빈, 치치하얼로 이어지는 북서쪽 노선이었다. 지도에는 송화강 유역을 건너는 철교를 가급적 덜 세우기 위해 후보 노선이 여럿 포함돼 함께 그려졌다.

“해서 여진 북쪽인 것까지는 괜찮은데, 전에 건주 여진과 싸우는 중에 해서 여진 편을 들던 몽골 부족들의 영토를 지나는 것은 아닐까? 건주 여진이 그 지역까지 영토라고 주장하면 곤란해.”

“마침 그 몽골 부족들이 건주 여진에 복속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동해 여진에 보호를 요청하고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건주 여진과 싸웠던 몽골 부족들은 동해 여진이 아니라 그 배후 고산국을 믿고 보호를 요청한 것이었다. 그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철도 노선이 몽골 부족들 영지를 지나더라도 상관없지만, 건주 여진과 대립하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철도가 북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것보다는 낫겠군. 받아들여 줘.”

“건주 여진에서 항의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영지는 해서 여진이 아닌 몽골 부족들의 것이라서 일단은 건주 여진이 영토 주장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건주 여진도 고산국과의 충돌을 피할 것으로 이민호는 예측했다. 여차하면 몽골족 전체와 고산국이 협력해서 아직 세력이 약한 건주 여진을 압박할 수도 있었다.

“항의하라지. 그런데 건주 여진이 가만히 있는 게 수상해. 도대체 몇 년 동안 뭐하는 거야?”

“해서 여진 여러 부족들을 하나씩 통합하고 있어요. 복속된 부족 전사들을 건주 여진의 군사 편제에 완전히 융합시킨 다음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 같아요.”

“지겨운 놈들. 일을 벌이려면 빨리 시작하지 말이야. 어쨌든 건주 여진과 충분히 거리를 두고 진행해. 괜히 시비 걸거나 충돌하지 말고.”

동해 여진을 대포와 화승총으로 무장시켜 방어력은 높았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대규모 기병전으로 싸운다면 건주 여진에 비해 수적으로 불리한 동해 여진이 상대가 안 될 것이 뻔했다.

“건설 현장에 병력과 일꾼은 얼마나 동원할 수 있지?”

“동해국이 건주 여진으로부터 침략당할 경우 방어전에 기병 7천과 보병 3천을 동원할 수 있어요. 하지만 멀리 철도 건설 경비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기병 2천밖에 안 돼요. 그리고 철도 건설에 참가할 노무자들은 최대 5천 명이에요. 유사시에 무장할 수는 있지만 전력에 큰 도움은 안 될 거여요.”

“5천 명이면 침목 벌채와 가공까지 충분하지 않나?”

여진족 땅의 지형도 북미와 비슷했다. 지평선이 사방으로 펼쳐진 평원과 가끔 마주치는 강이 전부라서 철교를 지어야 할 강을 마주치지 않는 구간에서는 철도 건설이 쉬운 편이었다.

기반 공사가 완료되고 침목이 놓여 있다면 선로를 새로 까는 일은 열 명 안팎으로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루에 7~8마일씩 철도를 건설한다는 것은 그런 선로부설조 수십 단위가 한 구역에 동시에 투입되어 나눠서 일을 하기에 가능했다.

“중간에 철교 몇 개를 놔야 하니까 더 필요할 거여요.”

“철교가 가장 큰 문제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함경도에 인력을 요청해야지. 철도 건설 노무자들을 파견할 정도로 본토에 인원이 남는 것이 아니니까, 최대한 그 근처 현지인을 동원해서 일을 진행해야 해.”

함경도와 해서 여진, 건주 여진에서 노무자를 모집하기로 하고, 명나라에도 그 사실을 통보했다. 노무자에게 매달 은 2냥을 주겠다고 하니까 단기간에 2만 명이 지원했다. 이민호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몰릴 줄 예상 못했고, 한 달 후에 알고 급히 추가 모집을 중단했다.

“고산국을 돌아본 소감이 어때, 마하레트.”

네덜란드 화가 세 명 중에서 조선어에 가장 능통한 여류 화가에게 물었다. 나머지 화가 두 명은 이 와중에도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건국한 지 겨우 10여 년 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에요. 도시의 커다란 건물들과 번화가도 놀라웠지만 기차와 농기계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소리를 내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뭐죠?”

“응. 장난감.”

지금도 왕도 남쪽 평원에 복엽기 한 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비행시간은 겨우 30분 정도로, 이민호의 눈에 찰 리가 없었지만 조종사와 공학자들이 자신감이 붙은 것이 유일한 소득이었다. 이 복엽기로 계속 비행 실험을 하면서 더 발전된 비행기가 개발될 것으로 기대했다.

라이트 형제는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 글라이더 비행 중 추락사한 1896년 이후 동력비행기 제작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때 본격적인 연구와 제작을 시작해 1903년에 첫 비행에 성공했다. 항공기는 일차대전 이전부터 급속한 발전을 거쳐 1913년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폭격기 목적으로 제작된 비행기가 처음 등장했고, 1935년에 B-17 대형폭격기가 시험 비행했다.

고산국에서는 훨씬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했는데도 이제야 간신히 복엽기를 띄울 수 있었고, 아직 안정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민호가 제트기나 로켓에 대해 갖고 있던 지식보다 프로펠러 항공기에 대한 지식이 적었기 때문에 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지지부진한 개발과정에 답답함을 느꼈던 이민호는 한때 프로펠러 항공기 개발을 때려치우고 제트기부터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프로펠러 항공기 개발 과정을 통해 항공역학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보다 효율적인 항공기를 만들려면 어서 알루미늄 합금을 만들고 제트기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부인들이 아름다우면서 능력이 출중하세요.”

“내 아내들이 젊을 동안 많이 그려줘.”

“부인들의 몸에서 광채가 나요. 제가 화폭에 담기에 황송할 정도로 훌륭한 모델들이에요.”

“아부도 잘하네.”

네덜란드 화가들은 고산국 궁중화가로 고용돼 주로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리고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고산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스케치를 했다. 고산족 원주민들의 생활과 축제를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에스파냐를 필리핀과 남미 대륙에서 몰아낼 생각은 안 하시나요?”

“왜?”

“고산국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힘이 있는 것 같아서요.”

이민호는 고산국에 그럴 만한 힘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양국의 군세가 한 곳에 모여 야전이나 해전으로 결판을 낸다면 당연히 이기겠지만 전쟁은 그렇게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군사력의 차이를 아는 에스파냐는 당연히 회전 형식의 야전을 피하고 함선들도 고산국 주력 함대를 피해 뿔뿔이 분산시킬 게 뻔했다.

중남미 어느 수도원 2층 창문에서 신부와 수녀들이 머스킷을 쏘고 기독교로 개종한 원주민들이 나무 위에 숨어 독침을 쏘는 장면을 상상했다. 에스파냐를 비롯한 온갖 나라의 배들이 북미 동해안에 상륙해 해적질을 하는 장면을 상상한 이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중남미라는 넓은 영토보다는 같은 편이 절실히 필요했다. 야만시대의 강대국이라도 무작정 영토를 확장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넓은 영토를 방어하느라 쇠락한 강대국들도 있었다.

“마하레트는 힘이 있다고 동생들을 때리고 다니나?”

고산국의 현재 능력으로는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못한다. 호주는 인력이 부족해 개발을 거의 못하고 있으며 시베리아도 큰 부담이 됐다. 그러나 외국인 앞에서 두려움을 토로하기보다는 허세를 부리는 것이 국왕이 할 일이었다.

“그건 아니지만, 일반인과 달리 국가를 운영하는 군주라면 미래를 위해 후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땅을 더 넓힐 필요도 없고, 원수를 만들어서 후세에 물려주고 싶지도 않아. 어느 나라와 한 번 전쟁을 하고 나면 그 후에도 대를 이어 계속 전쟁을 해야 할 거야. 나는 더 이상 남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싶지 않아.”

이민호는 에스파냐가 그 동안 남미 원주민들에게 한 짓을 알고 몹시 분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학살과 전염병 등으로 죽을 사람들은 이미 다 죽어서 이제는 에스파냐 지배자들도 더 이상 원주민들에게 가혹한 짓을 못하는 시기였다.

식민지에서 태어난 크레올들이 에스파냐 본국 사람들에게 차별을 받으면서 나중에 독립운동을 일으키겠지만, 일단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지 여부는 이민호가 아니라 고산국의 후예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었다.

“그래요. 고산국이 다른 나라들을 힘으로 억누르지 않으니까 이렇게 교역이 활발하겠지요.”

“고산국을 이용해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에 보탬이 될 거란 기대는 하지 말아줘.”

“알아요. 고산국에는 네덜란드보다 에스파냐가 훨씬 더 중요한 교역 상대니까요.”

그런 상황을 다들 아니까 고산국이 에스파냐는 물론 네덜란드와도 자유롭게 교역을 할 수 있었다. 고산국의 힘이 강한 것을 아는 에스파냐는 교전국 혹은 반란세력인 네덜란드와 교역을 하지 말라고 고산국에 요구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잉글랜드는 고산국에서 아일랜드에 식량과 무기를 지원하는 것을 뻔히 알고도 항의 한 번 하지 못했다. 아일랜드인들의 북미 이주와 맞물려 잉글랜드에서는 아예 모르는 척했다. 고산국이 군사력으로 유럽 지역에 전쟁 억지력을 발휘할 단계는 아직 아니었지만, 대서양 연안 국가들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게 올려서 죄송합습니다.

감사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