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24 64. 오대호 =========================================================================
잉글랜드 해적 포로들은 몹시 겁을 내고 있었다. 고산국 국왕이 자기들을 안심시킨 다음, 배에 구멍을 내서 수장시키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 탓이었다. 이민호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면 탄광에서 일하는 것을 얼마나 힘겨워 하는지 잉글랜드 해적들에게 설득해야 했다.
“너희들은 그런 힘든 일에 투입된다는 뜻이다. 거짓말 안 보태고 진짜 충분한 처벌이야.”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돌로 된 돌산을 파고 들어가 석탄을 채굴하는 것은 힘든 일 맞습니다. 어이쿠!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하게 힘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잉글랜드 해적들이 속으로 웃고 있는 것 같아 이민호는 분통이 터졌다. 드워프 같은 인간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일을 맡기는 것 같다는 의심까지 들었다.
“과연 잉글랜드인들은 무척 훌륭한 광부들이구나. 탄광에서 열심히 일해라. 그럼 그 전에 풀어줄 수도 있다.”
“해적이나 해군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든 일이 탄광에서 하는 광부 일입니다. 사형시키지 않고 편한 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민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는 땔감이 부족해 석탄을 쓴 지 오래였고, 석탄 캐내는 일에도 익숙했다.
이런 자들이 제대로 처벌받는다고 느끼게 하려면 베링 해에서 겨울에 조업하는 게 잡이 어선에 태워야 할 것 같았다. <극한 직업>이라는 TV 프로그램을 거의 안 본 것이 처음으로 후회됐다.
“이 자식들이 탄광 일을 만만하게 봐. 그럼 영하 30도의 혹한에서 거대한 얼음 파도에 휩쓸리고 시속 160km의 강풍을 맞으면서 일 해볼래?”
“뭐라고 웅얼거리세요, 주인님? 이들이 비록 자신만만하다지만 약한 사람들은 탄광 일을 오래 버티지 못할 거여요. 면화 농장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데 일부는 이곳에서 일을 시키는 게 어때요?”
민영이 다른 일을 제시하자 이민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맞다! 땡볕에서 면화 수확하기!”
얼마나 힘들었으면 영화에서 흑인노예들이 채찍질 당하면서 하던 대표적인 고된 일로 묘사된다. 면화 수확은 광부처럼 반드시 힘이 셀 필요는 없으나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달픈 일이 틀림없었다.
현대 미국에서는 면화 밭 전체에 제초제를 뿌려 잎을 떨어뜨린 다음 기계로 수확한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면화수확기는커녕 제초제도 아직 만들지 못했다.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면화 솜을 따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면화 따기는 한여름 수확기에만 하는 일이잖아? 나머지 기간에는 뭘 시키지? 배에 타면 뭘 하든 무조건 힘든 일이긴 한데, 본업이 해적이라서 선상반란을 일으킨 다음 도망칠 위험이 있어. 힘들고 위험해서 일반인들이 피하는 일은 없을까?”
“힘든 일이라도 범죄자들에게 소방관이나 외과의사를 시킬 수는 없잖아요. 흩어져서 일하는 것보다는 집단 노동을 시키는 게 관리하기도 좋겠죠? 사탕수수 농장에 몰아넣고 일을 시키면 어때요?”
“오! 그것도 노예가 할 만한 일이겠다.”
플로리다 토양에는 모래와 석회석 침전물이 많이 섞여서 농작물이 자라기 어렵거나 수확량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매년 9월에 허리케인이 발생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었다.
플로리다는 강수량이 많고 일조량이 풍부해 오렌지 농사에 가장 적합했고 사탕수수 농사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사탕수수 농장은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노예들을 면화 수확 외에 사탕수수 농장에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머지 기간에는 도로 건설에 동원하기로 했다. 플로리다는 지대가 낮아 안타깝게도 돌산에 터널을 뚫을 일이 없었다. 이민호는 병조 참판에게 어떻게든 부려먹을 방법을 찾아 해적 포로들에게 일을 시키라고 지시했다.
“그게 좋겠다. 오렌지 농장보다는 사탕수수 농장 일이 힘들지. 늪과 강에 악어가 들끓어서 도망가기도 힘들겠다.”
결국 비리비리한 해적들은 따로 새동래에 남아 면화 농장과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시키기로 했다. 어리거나 늙거나,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팔다리 하나가 없는 등 탄광 일에 적합하지 않은 해적 포로들을 골라내 500여 명을 병조 참판에게 맡겼다. 나머지 4천 명은 애팔래치아 산맥 북쪽의 탄광에 보내기로 했다.
오랜만에 인력을 받은 참판이 눈물 나게 고마워했다. 프랑스인들이 생각만큼 이민 오지 않고, 너무 더워서 새동래에 이주하겠다는 고산국 인구가 적은 탓이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원주민들을 정착시켜 농사를 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짜로 인력을 조달받을 수 있으니 주변에 해적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소.”
“그러하옵니다, 전하. 바하마에 해적들이 몰려오도록 유럽에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멕시코에서 은광이 새로 발견돼 보물선을 더 자주 띄운다든지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바하마 제도의 해적이 모조리 잡혔다는 소문이 더 널리 퍼질 것이오.”
고산국 함대가 잉글랜드 사략선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잉글랜드가 항의해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하마 제도는 고산국 영토였으니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고, 그런 항의를 할 가능성은 적었다.
만약 잉글랜드가 그런 식으로 먼저 나서서 분쟁을 일으키면 오히려 고산국에서 반길 일이었다. 잉글랜드가 함대를 보내는 족족 침몰시키거나 노예로 잡아 일을 시키면 된다.
물론 정식 명칭은 노예가 아니라 포로들이었고, 포로에게 노역을 시키는 것은 현대 유엔에서도 포로의 건강을 지키는데 이롭다 해서 오히려 권장했다. 문제는 빈약한 급식을 하는 중에 위험하고 과도한 노역을 시키는 것이었지만, 고산국에서는 누구에게든 밥을 배불리 먹였다.
“참판! 계복이는 어디 갔지요?”
“제가 부탁해서 세 방향으로 원정군을 보냈습니다. 호전적인 원주민 부족들에게 무력시위를 하고 지금쯤 돌아오는 길일 것입니다. 구르카 용병은 두 부대로 나눠 서쪽 강을 건넜고, 계 사령관께서는 북쪽 산 마테오 요새 쪽으로 기병연대를 이끌고 가셨습니다.”
병조 참판은 플로리다에 애팔라치 부족 5만 명을 포함해 원주민이 35만 명이나 산다고 보고했다. 새강릉과 새원산에 이주한 고산국과 유럽 이주민, 그리고 고산국에 복속한 원주민 숫자를 합한 것보다 많았다.
“35만이나! 이들만 잘 받아들인다면 북미의 인력 부족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겠소.”
“다만 새동래 건설 초기부터 주변 원주민들과 사이가 별로 안 좋다는 것입니다. 에스파냐 탐험대가 전투에서 패한 적이 많아 원주민들이 화약무기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513년 후안 폰체 데 레온이 ‘청춘의 샘’을 찾기 위해 배 3척에 태우고 플로리다에 상륙한 탐험대는 원주민들을 상대로 온갖 추태를 부렸다. 그 이후 이 지역 원주민들은 화약무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인의 진정한 무서움은 그들이 몸에 지니고 온 전염병이었다. 면역이 없는 원주민들은 대책 없이 죽어 나갔다. 몇 차례 전염병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다음이라 지금은 35만에서 많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이곳 원주민들은 에스파냐 군대 수백 명을 포위 섬멸할 수 있는 조직력과 전술을 갖춘 자들이군요.”
“플로리다를 두고 에스파냐와 프랑스가 싸우고, 거기에 잉글랜드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선단을 이끌고 와서 요새를 불태웠습니다. 서로 싸우기 바빴으니 원주민들에게 외부 침략자들이 만만하게 보일 것입니다.”
에스파냐는 플로리다를 고산국에 넘기면서 풍부한 원주민 관련 정보를 남겨두었다. 원주민 부족과 그 영역, 풍습, 언어에 관한 다양하지만 부정확한 정보라서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새동래 남쪽부터 플로리다 동해안 대부분 지역에는 아이스 부족이 거주했다. 이들은 유일하게 고산국에 우호적이라서 활발하게 교역을 벌였다. 실제 역사에서도 유럽인 선원들이 플로리다에 난파하면 잘 보살펴준 온화한 원주민들이었다.
북서쪽 애팔래치 부족은 플로리다에서 가장 큰 부족이었지만 다른 여러 부족들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포호이 부족은 이곳에서 남서쪽 탐파 만이 주요 근거지였다.
“북쪽 산 마테오 요새 방향에 모카마 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특히 호전적이라 조심해야 합니다.”
“계복이 갔으니 싹 쓸어버렸을 것이오.”
산 마테오 요새는 에스파냐 군대가 프랑스 위그노 이주민들이 점령하고 있던 잭슨빌 주변 성 캐롤라인 요새를 점령한 다음 새로 붙인 이름이었다. 현재 위그노는 다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요새 주변에 거주하는 티무쿠아 계열 모카마 족은 두 지역으로 분리됐다. 하나는 사투리와 부족연맹이 지배하는 강변 마을 30개, 해변 쪽에는 타카타쿠루 부족연맹에 속한 마을들이 있었다.
“전하! 북쪽에서 기병연대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계 사령관이십니다.”
“끙! 원주민들이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소.”
이민호가 원주민들을 다독여서 최대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반면, 계복은 원주민 부족들과 문제가 생기면 일단 공격부터 하려 했다. 두 사람이 맡은 역할이 다르긴 했으나, 이민호는 북미에서 원주민 부족을 상대로 함부로 군사력을 행사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새동래로 접근하는 기병연대의 움직임이 매우 굼떴다. 자세히 살펴보니 뒤에 원주민들을 데려오고 있다. 기병연대는 한참 지나서 새동래 요새에 도착했다.
“산 마테오 요새에 갔다며? 어떻게 된 거야?”
“도련님! 병조 참판의 요청을 받고 모카마 원주민 부족들을 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에스파냐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아보고 원주민들이 친선을 요청했습니다.”
“뭐?”
기병연대가 작전에 며칠이나 걸렸던 것은 그 북쪽과 서쪽을 수색하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60km에 이르는 거리를 도보로 걷는 원주민들과 속도를 맞춰 함께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 모카마의 두 부족연맹 원주민들이 프랑스 위그노들하고 친하게 지냈던 모양입니다. 고향을 떠난 위그노들이 불쌍해서 땅도 내주고 농사도 가르쳤답니다. 그런데 에스파냐가 위그노를 몰아내면서, 원주민들이 전쟁에 끌려 들어갔다고 합니다.”
“위그노가 요새를 짓고 정착하도록 허락했다고? 외부 세력을 자기 영토에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모카마의 두 부족연맹에 대한 에스파냐의 정보와 판단은 과장과 혐오로 점철돼 있었다. 에스파냐가 위그노와 싸울 때 위그노를 지원한 원주민 부족들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카마에 대한 평가를 당장 바꿔야 했다.
“그 후 계속해서 에스파냐하고 싸웠는데, 우리가 새동래에 들어온 다음에도 주인이 바뀐 줄 모르고 계속 싸웠답니다. 에스파냐가 물러났다고 하니까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웬 일이야? 계복이 네가 이것저것 따져 가면서 공격을 안 하다니.”
“제가 뭐 무작정 돌격만 하는 맹장입니까?”
“아니었어?”
어쨌든 모카마 부족과 잘 지내기로 해서 다행이었다. 기병연대와 동행한 원주민들은 그 북쪽 부족들과의 전쟁에서 패해 땅을 잃고 피난 온 모카마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빈 땅에 정착시키고, 보호해달라고 청해서 계복이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노동력이 부족했는데 잘 됐다. 참판! 원주민들에게 마을을 세울 빈 땅을 내주고 개간한 땅도 내주시오. 사탕수수 밭 임금 노동자로 활용하면서 식량을 내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오.”
“몇 년 동안 싸워왔는데 어떻게 된 게 단 한 순간에 해결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제가 무능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서로 오해해서 계속 싸우게 되는 일은 흔하오. 참판은 잘하고 있소.”
지도를 보면서 원주민 부족들끼리 싸우는 영역을 대충 그려봤다. 미시시피 강 동쪽부터 현대 지명 조지아 주까지 원주민 부족들끼리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일반적인 영토분쟁치고는 대단히 광범위하게 싸움이 일어나고 있어. 작년에 새진주에서 체로키 부족을 공격한 것 때문에 원주민 부족들끼리 한바탕 크게 싸웠는데, 그 여파가 지금도 계속 미치고 있나봐.”
“오응태 대감 그 양반 참.”
“너하고 똑같은 인간인데 뭐.”
“저는 그래도 앞뒤 재가면서 싸웁니다.”
어쨌든 새동래 북쪽은 모카마, 남쪽은 아이스 부족이 우호적인 동맹 부족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이제 새동래의 안전은 물론 자체 생산력까지 보장된 셈이었다.
강 건너 서쪽은 당분간 여력이 없어 내버려 두기로 했다. 강 동쪽 평원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농경지가 확보됐기 때문이다.
가로로 20km, 세로로 200km의 땅은 원주민들이 채집, 사냥을 하기에는 그리 여유 있는 면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농경지로 개간하면 심각한 인력난에 빠질 만한 지나치게 넓은 면적이었다.
얼마 안 되는 프랑스 양조 농가에 충분한 면적의 포도밭을 내주고 사탕수수 밭과 면화 농장을 대대적으로 넓히기로 했다. 500명밖에 안 되는 해적 포로 노예들이 할 일이 많았다. 원주민들도 적극 돕기로 했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전하.”
“잘했다.”
둘로 나눠 서쪽과 북서쪽으로 진군했던 구르카 여단도 시간이 되어 돌아왔다. 새동래에 우호를 맹세한 부족에게는 선물을 나눠주고, 구르카 여단에 싸움을 건 부족에게는 멸망을 안겨줬다고 한다. 어떤 짓을 했는지 몰라 지휘관이 내민 보고서를 읽을 엄두가 안 났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원주민 마을 16개를 불태우고 고산국과 새동래에 충성을 맹세한 마을 31개를 얻었습니다. 전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살은......”
“그만!”
오응태나 계복보다 더한 인간들이 구르카 용병들이었다. 이들은 전투는 잘하는데 작전 수행을 하면서 정말 인정사정이 없었다. 전쟁에서는 누구보다 용감한 전사들이었으나 이들을 민사작전에 투입하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지휘관들은 분명히 고산국 사관학교 출신인데도 구르카 용병들의 흑백논리, 즉 아군 아니면 적, 적에게는 몰살이라는 사상에 금방 물드는 것 같았다.
이틀 후에 새동래를 떠나 파나마로 향했다. 중간에 쿠바 아바나에는 시간이 없어서 이번에도 들르지 못했다. 언제 한 번 시간 내서 가보긴 해야 할 것 같았다.
새진주와 새순천은 방문하지 못했다. 보고서는 꾸준히 받고 있었고, 그 동안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갈 필요가 없었다. 시장 강항과 오응태가 잘하고 있을 것으로 믿었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이렇게 끝내겠습니다.
명나라와 건주여진, 시베리아 때문에 당분간 북미로 수도 이전을 할 생각을 못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