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22화 (571/1,000)

00622  64. 오대호  =========================================================================

옥상 아래 시장 집무실로 옮겨서 새강릉 시장으로부터 시정 업무 보고를 받았다. 시장 집무실은 10층에 위치해서 전망이 아주 좋았다.

시청 옥상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원래 시장 집무실이었던 12층에는 식당가와 기념품 상점이 들어섰다. 시민들이 여가를 보낼 만한 시설과 관광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명에 따라 미시시피 강 유역에서 돼지를 사서 키우고 있습니다. 이 지역이 습기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돼지가 잘 자라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염병이 퍼지지 않도록 청결에 특히 유의하도록 하시오.”

“예. 돼지 농장은 인가에서 멀리 분리됐습니다. 특히 정화장에서 나온 물에 물고기들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오폐수를 확실히 정화하고 있습니다.”

고산국 영역 안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천연두와 홍역 등 전염병 예방접종을 이미 받았다. 원주민들 사이에 더 이상 전염병이 돌지 않는 것이 예방접종 덕택이라는 사실을 원주민들도 어렴풋이 이해하는 것 같았다.

돼지고기는 새원산으로 옮겨져 철도공사에 투입된 명나라 사람들이 주로 소비했다. 같은 철도 공사에 투입된 모리스코인들은 당연히 돼지고기라는 말에 기겁해서 가까이 오지 않았다.

“모자라는 고기는 남부에서 공급받고 있소?”

“그렇습니다, 전하. 습도가 높은 새진주에서 주로 돼지를, 건조한 새순천에서는 주로 소를 키우고 있습니다. 무슬림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소 도축장에 무슬림을 일부 고용하고 자비하라는 도축 방식으로 소를 잡고 있습니다. 할랄 제품에는 할랄 표시를 붙였는데 가격 차이는 없습니다.”

새순천에서 키우는 소는 한우, 새진주에서 키우는 소는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축화된 물소였다. 그러나 조만간 유럽에서 개량한 비육우로 품종이 바뀌게 될 것이다.

경지 면적이 늘어나면서 농기계 수요가 폭발적이었지만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한우가 말과 함께 역용으로 사육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농기계가 충분히 보급되면 한우가 할 일이 없었다. 한우는 비육우 중의 한 가지 품종으로 남게 될 것 같았다. 소는 풀밭에서 키우고 동물성 사료는 절대 금지했다.

자비하(Dhabihah)는 고기를 얻기 위해 도축하는 동물에게 최소한의 고통만을 주기 위한 이슬람식 도축 방법이다. 아주 날카로운 칼로 가축의 인후부, 경동맥, 정맥 등을 빠른 시간 내에 자르는 방식으로 도축이 이뤄진다. 닭이나 염소 같은 경우 두 번 반의 칼질만으로 도축을 끝내고, 소는 발목을 묶어 눕힌 다음 고개를 젖히고 목을 빠르게 반쯤 자르는 식이었다.

“어떤 식품이든 재료 표시를 확실히 해야 할 것이오. 종교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각종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오.”

“땅콩이나 우유, 갑각류뿐만 아니라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해당자에게는 치명적이므로 제품 성분표에 크게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자꾸 먹다 보면 적응이 돼서 괜찮다는 말은 헛소리요. 알레르기 보유자에게 그런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자는 살인미수 이상의 강력한 형사상 처벌을 받게 될 것이오.”

“예. 그 문제는 신문을 통해 꾸준히 홍보하고 있습니다.”

알레르기를 가볍게 생각했다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군대나 학교, 공장 등 단체 급식을 하는 곳에서도 지켜야 할 규정이었다. 각종 알레르기를 가진 자, 무슬림, 유대인 등에게는 급식을 아예 따로 했다.

“그런데, 시장! 요즘 농민들이 너무 담배 농사만 짓는 것은 아니요?”

“그게 문제입니다, 전하. 하오나 농업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워 재배 면적만큼 생산량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기존 곡물을 생산하는 농가에서도 부업으로 담배를 키우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야 농가 소득이 안정적일 것이오. 병충해가 번지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우려가 있으니 분산하는 것이 좋겠소.”

작물을 한 가지만 집중 재배하는 것이 경제적이겠지만 기후를 예측하기 어렵고 가끔 작물에도 전염병이 돌기 때문에 가급적 분산 재배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농민들이 얼마나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특히 곡물 재배에 서투르고 유일하게 담배 경작에 강점을 가진 원주민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권고였다.

“그렇게 지도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어떤 어민이 버뮤다 섬 인근에 출어했다가 야생 담배의 씨를 가져왔습니다. 기존의 담뱃잎과 다른 품종인 것 같아 농업연구소 분소에서 시험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것 잘 됐소. 담배 맛이 다양해지면 소비자의 선택권도 넓어질 것이오. 그러나 흡연 인구가 많아질수록 화재에 잘 대비해야 할 것이오.”

“벽돌로 집을 짓더라도 실내에 목조 가구가 많아 화재에 취약합니다. 다만 교과서에 담뱃불로 인한 화재 이야기가 들어간 다음부터 흡연자들이 많이 조심하는 편입니다.”

“그 이야기 나도 읽었소. 끔찍하더군요.”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공포소설과 다름없었다.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버렸다가 행복했던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내용이었다.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은 딸이나 잿더미에서 뼈만 남은 시체로 발견된 아들 등등 혐오스러운 내용 위주였다. 아이들이 담뱃불을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어른들이 담배 피우는 장면을 혐오하게 됐다.

“청소년 흡연율이 낮아질 것 같아 다행이오.”

“원주민 부족들 사이에서는 우호나 친선의 목적으로 흡연을 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입니다만, 요즘은 차로 대체하는 추세입니다.”

고산국에서는 청소년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한 제재를 하지 않았다. 제사 지낼 때 어른의 지도 아래 청소년이 음복을 하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었고 원주민 아이들이 곰방대를 갖고 다니며 담배를 피우는 것을 제재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규정이 덜 갖춰진 것 같지만 현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청소년 음주나 흡연을 금지하는 법규는 없었다. 다만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 판매만 금지할 뿐이었다.

“애팔래치아 산맥에 대한 탐사는 잘 진행하고 있소?”

“물론입니다, 전하. 북미 탐사대 새강릉 분견대에서 고원지대로 꾸준히 탐사대를 파견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 파견한 탐사대는 오하이오 강의 지류 모논가헬라 강을 발견했습니다. 위도와 경도로 확인해본 결과 탐사대 본대에서 발견한 것과 동일한 위치였습니다.”

북미 동부 해안을 따라 북동과 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애팔래치아 산맥 때문에 동부 해안에서 내륙으로 진출하기 어려웠다. 특히 새원산에서 이리로 가는 철도 노선은 북쪽으로 크게 우회했다.

산맥 중간에 나 있는 협곡을 통해 철도나 도로를 놓는다면 훨씬 빨리 이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빠른 시간 내에 철도 부설을 해야 해서 난공사 구간이 많은 협곡 횡단 철도 건설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동부 해안에서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는 것이 북미 대륙 개발에서 두 번째 도전이 될 것이다.

“포우하탄에 도시를 건설하려면 먼저 도로부터 놔야겠구려.”

“예. 낸스몬드 강과 남대천 중류에 다리를 놓은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포우하탄이 왕도로 선정되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포우하탄을 왕도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니 이 지역에 맞는 역할을 하면 충분하오.”

시장이 크게 낙담했으나 금방 안색을 회복했다. 임기제 시장이 지나치게 지역에 밀착되는 것 같아 이민호는 안타까웠다. 나름대로 현지에 적응하고 그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워싱턴이나 뉴욕 등 쟁쟁한 경쟁 도시들이 많아 포우하탄, 즉 리치몬드를 수도로 선정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북미 동부 도시들 중에서 왕도를 선택해야 한다는 법도 없었다.

차라리 파나마 운하에 가까운 멕시코 만에 접한 남부가 왕도의 입지 조건으로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물론 좌우 바다로부터 공격당할 수도 있는 플로리다에 왕도를 건설할 배짱은 없었다.

시청에서 제공한 마차를 타고 헤드비히 공주를 데리고 별궁에 입궐했다. 아담한 규모이지만 깔끔한 모습이 이민호의 마음에 들었다.

“와! 옛날 동화 속에 나오는 궁전 같아요.”

“그, 그렇소?”

어렸을 때 본 동화의 내용이 달라서 헤드비히 공주의 감탄에 이민호는 공감하지 못했다. 새강릉 별궁은 고대 로마처럼 기둥들이 줄지어 드러나 있어 로마네스크 양식이나 고딕식인 북유럽의 궁전과 많이 달랐다.

“정원이 무척 넓어요. 연못도 있네요?”

“악어가 물어갈지도 모르니 조심하시오.”

연못 취수구에 철망을 쳐놨으나 언제 악어가 넘어올지 몰랐다. 작년에도 연못에 풀어놓은 비단잉어 수십 마리를 2미터짜리 작은 악어가 잡아먹다가 잡혔다.

작은 악어는 위험하지 않지만 큰 악어는 사람도 물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연못 옆에 커다란 악어 박제를 세워놓았다.

“이게 악어인가요? 세상에! 유럽 사람들은 드래곤인 줄 알겠어요.”

이 시기에는 박물학의 전성시대라서 세상의 온갖 것이 그림으로 그려져 책이나 신문에 실렸다. 헤드비히 공주가 악어의 모습을 모를 리는 없겠지만,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 큰 체구에 감동을 받았다.

일 년도 안 된 사이에 별궁이 꽤나 넓어졌다. 고용인 주거건물이라 해서 부속 건물 여러 채가 그 사이에 세워졌고 정원도 확장된 탓이었다.

이민호가 북미에 온다 해도 한 지역에 사흘 이상 머무를 일은 없었다. 그러나 북미의 시청들끼리 은연 중에 왕도 유치 경쟁을 벌이는 듯했다.

현재 왕도는 고산국 고북 시였지만 영토가 넓고 생산력이 엄청난 북미 지역으로 조만간 이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민호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고산국 왕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이오. 내가 없더라도 공주가 이 별궁을 쓰도록 하시오. 시장에게도 그렇게 말해두었소.”

“폐하께서 안 계시면 의미가 없어요.”

헤드비히 공주가 침울해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고산국 왕도에 데려가겠다고 해도 혜영이나 다른 후궁들이 무서워 못 가겠다는 공주의 결심이 다시 흔들리는 듯했다.

“앞으로 일을 말하는 것이오. 아이슬란드는 추워서 덴마크나 이곳에 있는 편이 나을 것이오. 특히 2세를 생각한다면 말이오.”

“어머나! 2세요? 폐하와 저의 2세!”

헤드비히 공주가 얼굴이 빨갛게 변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결혼식 때까지 이민호가 공주를 안을 일은 없었다. 이민호에게 그럴 생각도 별로 없었고, 특히 덴마크 시녀들이 도끼눈을 뜨고 감시했기 때문이었다.

저녁식사는 오랜만에 푸짐하게 먹었다. 별궁의 수라간을 차지한 국왕좌승함 조리사들이 오랜만에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해서 실력을 뽐냈다. 오랜만에 먹은 청게도 맛이 좋았다.

이른 밤에는 헤드비히 공주를 위로하면서 보냈다. 내년 6월 결혼식 때까지 헤어져야 하는 일은 공주에게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곧 서인도회사가 설립돼서 일에 치이다 보면 혜진처럼 다른 생각이 전혀 안 날 수도 있었다.

늦은 밤에는 덴마크 시녀 셋을 침전으로 불렀다. 헤드비히 공주의 호위 여기사 하나에 서인도회사를 이끌어갈 귀족 영애 둘이었다.

“너희들이 공주님을 보좌하고 잘 지켜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폐하.”

“덴마크 국왕이 따로 있지만 덴마크의 운명을 실질적으로 쥐고 있는 사람은 헤드비히 공주다. 공주의 신변 보호에 한 치도 방심이 없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말은 엄숙하게 했지만 다들 벗고 있어서 분위기는 야시시했다. 시녀들도 유일한 남편인 이민호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운 듯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아내들을 안아주는 것도 남편의 의무였고, 이민호는 그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소피에! 허리 아프다.”

“죄송합니다, 폐하! 잠시 정신이 없었습니다.”

여기사 소피에의 굵고 근육질인 다리에 감겼다가 하마터면 허리를 분지를 뻔했다. 옆에서 나나와 리네가 이민호의 허리에 감긴 소피에의 다리를 서둘러 풀었다. 금발의 여기사는 마치 비치발리볼 선수처럼 몸이 굵직굵직했다.

“너하고 정상위로 했다간 내 목숨이 위태롭겠다.”

“죄, 죄송합니다, 폐하.”

그래서 엎드리게 해놓고 뒤에서 공략했다. 민영보다 키가 크고 체구는 훨씬 굵은 여기사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뒤흔들었다. 남자의 지배 욕구를 충실히 만족시켜주는 여기사였다.

여기사 소피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몸을 쭉 뻗었고, 허리를 잡고 하체를 결합한 이민호가 딸려가 엎드렸다. 흐트러진 금발 사이로 소피에의 귀를 살짝 깨물자 여기사가 진저리를 쳤다. 이민호의 마음에 쏙 드는 여기사였다.

“다음은 누구야?”

“저, 저는 나중에 안길게요.”

잠시 승리자의 미소를 지은 이민호가 겁에 질린 나나와 리네를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눈처럼 새하얀 몸들을 눕히고 번갈아 키스부터 퍼붓는 것으로 2차전을 시작했다.

이들을 다시 안으려면 자그마치 일 년이 지나야 했다. 덴마크 시녀들도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불타올랐다.

셋을 침전에서 내보내자 대기하고 있던 둘이 새로 들어왔다. 셋은 진이 다 빠졌지만 그래도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나갔다. 문밖에서 소리를 들은 여기사 카트리네와 시녀 요한나는 겁에 질리면서도 묘하게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자! 어서 올라와.”

고산국의 국왕이며 북미 대륙의 주인이며 해군과 육군의 총사령관인 이민호가 가장 자신만만한 순간이었다. 아직 20대 초중반인 이민호는 밤이 두렵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새강릉 일정이 끝나고 다음 회에는 새동래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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