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17화 (566/1,000)

00617  64. 오대호  =========================================================================

“전하. 수족은 오지브와 족의 침략을 많이 두려워합니다. 오지브와 족은 인구가 아주 많은 부족이니까 이대로 내버려두면 수족이 결국 서쪽이나 남쪽 평원으로 밀려날 것입니다.”

오지브와 족은 바로 북쪽에서 거주하며 10만 명이 넘어가는 알곤킨계 크리 족보다 인구가 많았다. 수족도 인구는 많은 편이었지만 분포 지역이 넓어 쉽게 동부 수족을 지원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미시간 호숫가에서 일어난 작은 영토 변화가 전체 수족을 중앙평원으로 이주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화승총을 들고 싸우는 오지브와 족을 감당하지 못한 수족은 서쪽으로 밀려났다.

“혹시 노인의 부족과 다툼이 있지 않소?”

“물론 저희 포타와토미 부족과 수족이 종종 싸우기도 합니다만, 다른 공동의 적에 대해서는 협력하기도 합니다. 전하께서 신경 쓰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노인 통역사는 포타와토미 부족 원주민으로서, 수족의 원수인 오지브와 족과 가까웠다. 오지브와 족, 오타와 족, 포타와토미 족은 ‘세 불의 협의회’라 해서 미시간 호 주변에서 800년 넘게 한 연맹체를 구성했다. 오지브와 족이 신념의 수호자, 오타와 족이 교역의 수호자, 포타와토미 족이 불의 수호자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다.

포타와토미 족은 미시간 호 남부에 몰려 살았기에 오지브와 족처럼 수족과 경계를 접했고, 그래서 종종 싸움을 벌였다. 노인의 주장으로는 수족이 최근에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영토를 빼앗았다고 한다지만, 이민호는 어느 쪽의 말도 믿지 않았다.

북미 원주민에 대한 고산국의 정책은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을 가급적 농민이나 목축민으로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족 간에 전쟁이 있다면 가능하면 말리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내버려두기도 했다.

북동부의 여진 기병 지휘관은 원주민들의 분쟁을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쪽이었다. 여진 기병 연대장 역시 여진족이었다.

“기병 연대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예, 전하. 원래 호숫가라는 지역은 채집이나 농업, 어로에서 무척 풍요로운 곳입니다. 모든 부족들이 이런 지역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대로 생각해서 오지브와 족이 수족에게 밀렸다가 옛 영토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꾸준히 정찰만 하고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잘 했네. 오지브와 족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군.”

인구가 많은 수족과 오지브와 족의 분쟁을 종식시킨다면 미시간 호 인근을 떠나 북부에서 큰 권위를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이민호의 제안이 양쪽으로부터 무시당한다면 권위의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섣불리 중재에 나서면 안 되지만 일단 양쪽을 모두 만나보고 싶었다.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오지브와 족 추장들을 만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너무 멀지 않겠소? 나는 바로 돌아가야 해서 기다릴 여유가 없소.”

“오지브와 족은 이곳 이리 시에 교역 외에도 술 마시러 자주 옵니다.”

새원산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원주민들이 모피를 열 장 이상 등에 지고 오면 교역하러 온 것이고, 한두 장 가볍게 들고 오면 술값이었다. 값비싼 비버 모피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모피라면 좋은 술 한두 병에 괜찮은 안주 한 접시를 먹을 수 있어서, 이리 시의 술집들이 원주민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마침 술을 마시고 있던 오지브와 추장들을 불러서 수족 추장들과 대면시켰다. 수족과 오지브와 족 추장들은 만나자마자 도끼부터 치켜들었다.

“제자리에 앉아! 감히 전하 앞에서 망동을 부리면 탄광에 쳐 넣을 거야!”

민영이 크게 소리를 질러서 단번에 진정시켰다. 살벌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을 정도로 민영의 기세가 대단했다. 추장들은 민영이 외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아주 끔찍한 처벌을 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들렸다.

그리고 통역하는 노인이 나서서 추장들을 꾸짖었다. 추장들이 진정되고 나서 노인이 이민호에게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시끄럽게 굴면 전하의 위엄으로 죽여 버리겠다고 겁을 좀 줬습니다.”

“노인이 더 잘 알겠지만, 부족 간의 영토 문제를 해결하고 싶소.”

노인 통역사가 양쪽 부족의 추장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마치 이민호의 권위를 빌려 노인이 중재하는 모양새였다. 노인도 이 지역에서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축에 들었다.

“역시나 영토 문제는 식량 부족 문제 때문에 생깁니다. 고산국의 농장을 각 부족마다 열 개씩 만들어준다면 부족들이 싸움을 멈추고 휴전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을 단위나 연맹체가 아니라 동부 수족 세 부족과 오지브와 족에게 농장 열 개씩만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북미 원주민들에게 땅의 소유권은 없다지만 부족들 사이에 영토 경계선은 엄연히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채집 생활을 하려면 생각보다 넓은 영토가 필요했다.

오지브와 족의 경우 보통 가까운 혈연으로 맺어진 두 가족 구성원 10여 명이 돌아다니며 여자들은 야생 쌀, 야생 콩, 산딸기 등을 채집하고 남자들은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했다. 수족은 여기에 더해 야생 쌀 재배를 약간 하고 있었다.

“농장 말이오? 농가와 경작지는 고산국 농민에게만 나눠주는 것이오. 오지브와 족과 수족이 독립을 유지한다면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두겠지만, 경작지를 개간해서 농장을 만들어줄 이유가 없소.”

지금까지 자유롭게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배부른 돼지가 되라는 소리였다. 노인이 통역을 해주자 두 부족 추장들이 고민했다.

고산국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는 대신 포타와토미 부족처럼 부유하게 살 수 있다면 실로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추장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뭔가 빠르게 말을 주고받았다.

“자! 주권을 넘겨, 이 매국노들아! 나라를 팔아먹으란 말이야! 아! 농담이야.”

민영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에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던 이민호가 입을 닫았다. 그러나 여기서 고산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겠다고 해도 이 추장들이 일신의 안위를 위해 나라와 백성을 외국 침략자에게 넘긴 매국노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들 추장에게 부족의 미래와 운명을 선택할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저희 포타와토미 부족은 이미 전하의 백성들입니다.”

노인이 이민호에게 납작 엎드렸다. 포타와토미 족은 ‘세 불의 협의회’ 소속 세 부족 중에서 가장 약체였지만 고산국에 이리 시와 철도가 지나는 지역을 제공함으로써 급성장하고 있었다.

포타와토미 족의 인구가 가장 적더라도 모든 전사들이 철제 무기로 무장해서 다른 부족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몇 마리에 불과하지만 말도 보유했다. 아이들이 잘 먹고 예방접종을 받아 조만간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포타와토미 족은 탐사대나 여진 기병과 처음 접촉했을 때부터 고산국에 호의적이라는 보고를 이민호도 받았었다. 그래서 농부가 되길 원하는 원주민 몇 십 명에 한해 고산국 농민이 경영하는 농장의 절반 면적을 개간해주고 밭갈이와 파종할 때 경운기를 보내 도와주었다.

경험 부족인지 작년에 농사가 잘 안 돼서 작물 반이 말라 죽고 나머지도 알곡이 제대로 열리지 않은 쭉정이가 태반이었으나, 다른 원주민 부족들에 비하면 수확량이 아주 어마어마했다. 한 가족이 경작한 작물만으로도 최소 30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라서 다들 크게 놀랐다.

그런데 여기서 이리 시의 임시 시장을 겸한 새원산 시장이 아주 약간 장난을 쳤다. 수확한 쭉정이 절반을 세금으로 태연히 받아들인 다음, 작황이 안 좋아서 세금을 면제한다는 이유로 고스란히 같은 양을 돌려줬다. 그러나 돌려준 것은 알곡이 제대로 열린 밀과 보리였다.

그래서 이번 해부터는 포타와토미 부족민 대부분이 고산국의 농민이 되길 원했고, 이리 시에서 농기계를 보내 농장을 개간해주었다. 바로 이것이 오대호 주변 원주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포타와토미 부족의 충성심은 익히 들었소.”

“전하께서 따로 선물까지 내려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새원산 시장이 이민호 이름으로 뭔가 하사한 모양이었다. 좋은 평판을 받을 기회를 위로 돌리니 새원산 시장은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농장 40개 정도는 금방 만들어줄 수 있었다. 원주민들의 경험 부족은 이리 시의 농업 담당 관리가 가르쳐주고 시간이 가면서 해결될 것이다.

어차피 오대호 주변에 농사를 지을 땅은 무한정으로 많았다. 모리스코인들이나 앞으로 이주할 농민들에게 땅이 부족할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채집생활에 필요한 넓은 땅을 줄여 남는 땅을 이주민에게 나눠줄 수 있게 된다.

“참! 소와 양을 키워볼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시오.”

신대륙에는 가축이 거의 없었고, 특히 북미에서는 가축이라곤 개밖에 없었다. 포타와토미 부족에서도 소와 염소, 닭을 약간 길러서 이 가축에 대해서는 다른 부족에서도 알았다.

그러나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평원에 들소가 수만 단위로 떼를 지어 다니고 있어서 원주민들은 소를 키운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염소보다 훨씬 큰 엘크나 대형 사슴들이 숲에 돌아다니고 있어서 염소를 키우느니 사냥하는 쪽을 선호했다. 어차피 지금 고산국 목장에 도입할 소도 부족한 판이라 가축은 조금 나중에 도입하기로 했다.

“결정했느냐?”

“아직 못했습니다.”

“두 부족 추장들은 들어라.”

“예.”

예라는 말과 일어선 채로 고개를 깊이 숙이는 고산국식 예절 정도는 다른 부족 추장들도 배웠다.

“수족과 오지브와 족은 고산국의 백성이 아니다.”

“지금 당장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부족회의를 열어야 합니다.”

“급할 것 없다. 각 부족에서 부지런한 사람 몇 명을 골라 먼저 농사를 2년 정도 직접 지어보고 나서 결정해라.”

노인이 통역을 마치자 양쪽 추장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들은 고산국식 관개 농업의 엄청난 생산력에 대한 소문만 들었을 뿐이었다. 같은 부족 사람들이 직접 경작해봐야 제대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나마나 두 부족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동부 수족 여러 부족에 농장 30곳, 오지브와 부족은 인구가 많다니까 농장 20곳을 새로 개간해주겠다. 농장 위치는 너희들의 건의를 받아 이리 시의 관리가 정할 것이다.”

“고맙습니다. 농사를 잘 지어보겠습니다.”

“오지브와 족에 요즘 식량이 부족한 모양인데 일인당 쌀 한 가마씩을 주겠다. 부족하면 시청에 더 달라고 요청하도록 해라.”

“헉! 대단히 감사합니다, 전하. 하지만 저 원수 수족들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양쪽이 지금처럼 전쟁을 하는 것은 상관없다. 다만 상대방의 농장을 파괴하거나 약탈하는 것을 금한다. 약속을 어기는 자들은 여진 기병의 우호적인 방문을 받게 될 것이다. 세금은 2년 동안 면제하고, 그 동안에는 추가로 농장을 개간해주지 않겠다.”

여진 기병은 이 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이리 시 주변 평원에 보통은 40명, 많게는 2천 명이 말을 타고 몰려다니면서 싸움이 있을 때는 총을 쏴댔다. 북미 원주민들이 부족연맹체 단위로 모이더라도 상대하지 못할 전력이었다.

“전하! 동부 수족 추장이 ‘저희 부족이 고산국에 속하게 된다면 부족의 영토 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노인이 아는 대로 설명하시오. ‘부족은 언어와 문화 공동체로만 남을 것이다. 모든 가족은 토지 소유권이 없는 대신 농장에서 나는 수확물의 절반을 갖는다.’ 라고 하시오.”

“농장 외에 나머지 땅은 어떻게 됩니까?”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은 국왕인 나의 것이오. 그래서 모두의 것이오. 지금처럼 호수와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숲에서 산딸기를 채집해도 좋소. 땅이 없다고 해서 남의 땅을 빼앗을 필요가 없소. 앞으로 굶주릴 일이 없기 때문이오.”

“국왕전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전하.”

그러나 이 지역 추장들은 부족의 대표권을 위임받지 않았기 때문에 괜히 이들과 조약을 체결해봤자 나중에 분란만 일으킬 뿐이었다. 추장들이 부족민들을 설득하기로 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협상을 마쳤다.

실제 역사에서 조약 파기를 두고 미국 정부와 인디언들이 싸운 것은 추장들이 간단한 선물을 받은 다음 감사의 뜻으로 영토 할양 조약이나 협정에 사인을 했기 때문이었다. 인디언 영토로 획정해놓고도 금이 발견될 경우 백인들이 몰려가는 바람에 조약이 휴지조각이 된 경우도 흔했다.

추장들에게서 인사를 받고 선물을 주어 시청에서 내보냈다. 전쟁 중이라던 수족과 오지브와 추장들이 함께 나가면서 어느새 어깨동무를 했다. 사이좋게 술집으로 향하는 듯했다.

이 지역 추장들도 의무로 인한 특권을 누리지만 세습제는 아니었다. 부족 전체가 고산국에 흡수되더라도 추장이 잃을 것은 없었다. 고산국에서는 신분에 의한 특권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추장들이 얻을 것도 없었다.

“그런데 노인은 아는 것이 많은 것 같소?”

“제 손자들과 함께 작년부터 고산국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덕택에 많이 배웠습니다.”

“풋!”

고집불통 노인이 아닌 지혜로운 노인이라 뭐든지 금방 배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초등학교 교실에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원주민이 교사로 나서는 수업 시간에는 노인이 교사로 활동했다.

“아이들을 꾸준히 공부시키시오. 조만간 이리 시에 세워질 대학에도 보내시오. 더 많은 아이들이 더 많이 공부할수록 포타와토미 부족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기병 중대장이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원주민 추장들의 방문은 계획에 없던 일이고 진짜 스케줄은 따로 있었다.

“전하! 출동 준비를 마쳤습니다.”

“좋아. 가자!”

기병 중대장을 따라갔더니 장갑차 여섯 대에 기병 1개 중대가 시청 광장에 집결해 있었다. 그리고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고산국 본토에서 장갑차를 못 본 사람들도 있었고, 모리스코인들이나 명나라 노무자들도 구경꾼 대열에 동참했다. 커다란 장갑차를 보면서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이민호는 민영과 헤드비히 공주와 함께 전용 장갑차에 올랐다. 그리고 오후의 가벼운 산책을 시작했다. 장갑차 진행 방향에 따라 사람들이 확 갈라져 모세의 기적을 연상케 했다.

“만세! 국왕전하 만세!”

“만세!”

어째서 만세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이민호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헤드비히 공주와 함께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 작품 후기 ============================

수족, 오지브와족을 포함해 20만 이상, 그 북쪽 크리 족을 비롯해 넓은 지역에 사는 대충 50만 이상의 인디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토 조약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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