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14화 (563/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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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오대호

함대는 오랜만에 새원산 남쪽 항구에 도착했다. 도착 전에 미리 연락을 해두어 시청 관리들이 나와서 아일랜드와 노르웨이 이민자들을 인수했다.

군악대가 환영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이민자들이 임시 숙소로 배정됐다. 이민자들은 교육을 받은 다음 각자 직업에 종사하게 될 예정이었다.

건국 초기라서 아직 소와 돼지 목축과 유통망이 제대로 갖춰있지 않았다. 그래서 노르웨이 이민자들이 어부로서 단백질 공급에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 웡!

“오! 그래. 미누야! 오랫동안 배 타느라 안 지겨웠니?”

커다란 아이리시울프하운드가 이민호에게 달려와 주머니에 코를 들이밀었다. 이민호는 심심풀이로 먹다 남은 육포를 꺼내 사람 키만 한 개에게 주었다.

커다란 개가 육포를 한 입에 꿀꺽 삼킨 다음 다시 이민호를 아련한 눈망울로 쳐다봤다. 그러나 주머니를 더 뒤져봐도 먹을 만한 게 없었다. 민영이 얼른 햄을 건네줘서 그것도 개에게 먹였다. 큰 체구치고는 앵벌이를 잘하는 개였다.

“미누는 형이 좋은가 봐요.”

“개는 주인 외에도 먹이를 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돼 있어.”

빨간 머리 꼬마가 뒤늦게 나타나 개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보통 동물들은 다 마찬가지지만 유독 고양이만은 먹을 때만 애교를 부리고 평소에는 발톱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개가 너무 커서 사람들이 놀라겠다. 목줄이나 가슴줄을 채워도 주인이 말리지 못하겠지만, 뭔가 필요하겠어.”

이민호가 시청 관리를 불러서 빨간 머리 꼬마의 가족을 특별히 돌봐줄 것과, 내륙 탐사를 맡은 부대에 탐사견 훈련소를 설립할 것을 지시하면서 서류를 줬다. 서류에는 꼬마를 군부대 소속 민간인인 군무원으로 채용했다는 내용과 함께 어떤 대우를 할지에 대한 명령이 적혀 있었다.

그 동안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소유한 아이리시울프하운드 여덟 마리를 모두 구입해서 꼬마에게 맡겼다. 교배를 통해 우수한 형질을 보존할 브리더는 이 개를 잘 아는 아일랜드 노인이 맡기로 했다. 개들 덕분에 두 가정이 편히 먹고 살게 됐다. 이민호는 노인과 꼬마, 그리고 관리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했다.

“미누 잘 가~”

“형도 안녕히 계세요!”

곰이나 늑대, 퓨마의 접근을 미리 경고하고, 탐사대원들에게 총을 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탐사견의 역할이었다. 괜히 싸우다 죽으면 몹시 아까울 것 같아 훈련 방법에 대해 신신당부했다. 다행히 아이리시울프하운드는 사냥꾼과 협력할 때는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한다고 했다.

“저, 폐하! 저희들도 이 도시에서 일합니까?”

“어이쿠! 자네들은 사관학교가 있는 왕도로 가야 하네.”

검술 교사 장과 후안이 짐을 들고 내렸기에 다시 수송선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은 사관생도와 각종 군사학교에서 검술을 가르쳐야 했다.

“폐하! 정말 활기찬 도시에요.”

“생긴 지 몇 년 안 됐소. 당분간은 불편하겠지만 열심히들 사는 것 같아 다행이오.”

현대의 뉴욕 위치인 새원산은 그 사이 큰 변화는 없었다. 인구가 늘고 도시가 확대된 것 외에는 거의 그대로였다. 넓은 도로에 마차가 더 많이 달리고 있다는 차이도 있었다.

오후 늦게 함대가 도착하는 바람에 그 날은 영빈관에서 묵었다. 시장은 새원산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싶어 별궁을 만들기를 원했지만 별궁은 새강릉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기에 이민호가 승인하지 않았다. 차라리 워싱턴이나 리치몬드, 필라델피아나 볼티모어 같은 지역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 편이 나았다.

영빈관은 외국의 사절단이나 귀족이 이끌고 온 상단이 묵는 용도를 예상하고 새로 건축된 상관 비슷한 건물이었다. 별관 하나를 따로 만들어 이렇게 순행 길에 나선 이민호가 쓰도록 시장이 배려했다.

시장이 말로는 국왕 전용의 별궁이 아니라 외국 왕족이 새원산을 방문했을 때 묵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사례는 없었고 당분간 외국 왕족이 새원산에 올 일도 없었다.

“과연 고산국의 과학력과 경제력은 세계 제일이군요.”

“새원산에는 높고 웅장한 건물도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소?”

“저녁이 되면서 이 거대한 도시 전체에 조명을 밝혔잖아요. 이게 전기라고 하셨죠?”

풍차 설계 이후로 헤드비히 공주와 덴마크 시녀들에게 전기에 대해 한참 설명해야 했다. 그때까지 순양함 천장에 달린 조명등을 고래 기름을 태우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선풍기는 시계처럼 태엽을 감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소. 전에 설명했듯이 기름을 태우거나 폭포나 바람, 기타 힘을 전환해서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 있소.”

“전기 조명이나 선풍기는 배에서도 썼었죠. 그런 걸 어떻게 만들 생각을 하셨어요?”

“기술자들을 쥐어짰지요. 그 대신 대우는 최고로 해주고 있소.”

물론 기관이나 발전기 같은 것은 기술자들을 쥐어짠다고 해서 나올만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민호가 기본적인 개념을 충분히 알고 현업에서 여러 번 다뤄본 경험이 있었기에 실체화가 가능했다.

“공주님. 침전에 드실 시간이 됐습니다.”

“벌써 아홉신가? 오늘 대화 아주 즐거웠소. 잘 자시오.”

시녀들이 헤드비히 공주를 데려가려고 왔다. 공주는 이민호에게 아쉬운 눈길을 보내면서 침실에서 나갔다. 원망의 눈초리 같기도 했으나 이민호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침 일찍 덴마크 공주와 시녀들이 새원산의 공장 몇 곳을 방문했다. 평소에는 외부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비밀 연구소 같은 분위기의 방직공장과 과자 공장에 다녀온 헤드비히 공주가 새파란 얼굴로 변해서 이민호에게 물었다.

“폐하! 기계라는 것이 사람들이 할 일을 대신하고 있어요.”

“맞소.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시오?”

“기계가 없으면 수백, 수천 명을 고용할 수 있잖아요?”

“기계가 있어도 고산국에서는 직공이 부족해서 문제요. 면직물 외에도 다양한 종류를 생산하고 있소. 인구가 적어서 기계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오.”

실제 산업혁명 과정에서는 기계가 등장하면서 숙련 직공들을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해외 시장에서 상품 경쟁력이 강해 실질 임금의 상승을 불러 일으켰다. 대부분의 고산국 공장들은 직공들에게 임금을 충분히 주고도 이익이 남았고, 오히려 인력이 부족해 기계를 가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고산국 본토든 북미든 기본 소득보다 적은 임금을 제시하면 일하려고 오지 않았다. 북미에 갓 도착한 유럽인 이민자들은 기술이나 근무 경력이 하나도 없더라도 공장 경영자들이 모셔가기 바빴다.

반면에 북미 원주민들은 하루 여덟 시간 동안 고정적으로 일해야 하는 공장 일은 아예 하지 않으려 했다. 농업 노동자, 일명 날품팔이를 하는 것이 일은 고될지라도 임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고, 일하고 싶은 날만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미 원주민들은 일주일에 보통 이삼 일 일하고 나머지는 놀았다. 일부 성실한 원주민들만 시청에 고용돼 마부나 청소부 일을 했다. 그렇다고 농업 노동자로 일하는 원주민들이 게으르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 원주민들도 충분히 농사일을 배운 다음에는 시청에서 개간한 경작지를 분배받기 시작했다.

“면직공장에서 짧은 시간에도 엄청나게 생산하는 것을 봤어요. 이익이 많이 남을 텐데, 공장 주인들이 세금을 정직하게 내나요?”

“당연히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있소. 바로 내가 그 공장 주인이기 때문이오.”

“네에에에?”

물론 이민호가 모든 공장의 소유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시기 북미에서 가동되는 큰 공장의 대부분은 이민호가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고 경영자를 고용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청에서 그 공장들의 회계를 관리했다.

민간 소유 공장에서는 상인들처럼 연간 이익의 절반을 세금으로 냈다. 농민들은 비료와 인건비 등을 지불하므로 수확물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 과다한 것 같지만, 농장 개간을 해주고 농가 건물을 지어줬으므로 농민들의 부담은 적은 편이었다.

대장간이나 제화점, 빵집 같은 소규모 사업체는 당연히 개인이 운영했다. 일부 대형 사업체도 민간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토지를 임대해주고 초기 자본 일부를 투자하는 식으로 이민호와 시청에서 사업체의 지분 절반을 확보했다. 웬만한 사업체는 나중에 시나 행정 단위로 지분을 이관할 계획이었다.

신규 사업체 경영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이들이 고산국 왕도에서 거주하다가 절반 정도 인원이 북미로 이주한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은 북미에 와서도 보석 가공이나 장신구 제작을 맡았고, 자본이 모이면서 작은 방직공장을 설립하거나 목축업에 진출했다. 유럽과 정반대로 고산국에서는 유대인이 금융업에 진출할 수는 없었지만 꾸준히 재산을 불릴 줄 알았다.

“모든 것이 국왕폐하의 소유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소. 몇몇 공장이나 작은 조선소 같으면 민간 소유요. 그래도 지분 절반 정도는 국가나 시청이 소유하고 있소.”

국책 연구소에서 일하던 기술자가 작은 사업체를 차리는 경우 적극 지원해줬다. 이들이 민간 기업의 효시가 될 산업발전의 씨앗이었다. 지금은 작은 대장간 수준이지만 꾸준한 기술개발을 통해 나중에 거대한 조선소나 자동차 공장을 세우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자금이 많이 필요할 텐데 혹시 잉글랜드처럼 국채를 발행하나요? 그럼 저도 투자하고 싶어요.”

“아니요. 자금 여유는 있는 편이오.”

“그래도 국가에서 국채를 발행하면 일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국채를 보유하고 매년 이자를 받아서 편히 살 수 있잖아요?”

“국채를 발행하면 가난한 노인보다는 돈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버는 기회만 될 것이오. 그리고 국채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국민의 빚이요. 불공평하오.”

국가 부채가 늘어날수록 이자와 원금을 갚기 위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거나 국민을 위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납세자의 이름으로 국가 부채를 늘린다면 당장은 모든 이들이 행복하더라도 후세에 빚을 전가하는 짓일 뿐이었다. 그리고 공공 목적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실상은 모든 이들이 아닌 극소수만 혜택을 누리기 쉬웠다.

혜영 덕택에 정부나 왕실이 거의 매년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서 국채를 발행할 일도 없었다. 이민호 개인 계정도 항상 과도한 흑자가 지속됐다.

“그래도 나라를 운영하다 보면 자금이 급히 필요할 경우가 있을 거여요.”

“물론이오. 그럴 때라면 국채를 발행하겠소.”

“아니, 그럴 때는 저나 어머니에게 빌리시라고요. 이자는 아주 낮게 해드릴게요.”

“하하! 그럴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소.”

헤드비히 공주가 보유한 자금이 꽤나 되는 모양이었다. 고산국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투자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이민호는 빚을 내서 정책을 시행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 혹시라도 단기적으로 자금 운용이 막힐 경우에 한해서 국채 발행을 고려하고 있었다.

국가 전체가 왕실 또는 이민호 개인 소유나 마찬가지인 고산국을 운영하다 보니, 선거로 뽑힌 정치인들이 국채를 발행하는 이유를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국채 발행에 찬성하는 일부 국민들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그 세대 안에서 모두 해결하고 다음 세대에 빚을 전가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고산국은 왕실에서 무역을 독점한다는데 정말이에요?”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 비밀도 아니오. 정확히는 북미에서 곡물 수출을 제외한 모든 수출을 시청에서 독점하고 있소. 수입은 마약과 노예 외에는 자유요.”

북미와 유럽의 가격 차이가 워낙 커서 임시 조치 성격이 컸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혹은 아시아 국가들이 고산국 본국에서 수입하는 것은 상관이 없었고, 북미에서 유럽으로 수출할 때만 독점이 적용됐다.

유럽의 상선이나 어선이 새원산이나 새강릉에 입항해 개별적으로 고산국 상인을 접촉해 수입한 것처럼 보였더라도, 그들은 모두 국가에 속한 어용상인들이었다. 포목점 같은 개인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이더라도 수출업무에 한해서는 국가를 대리하고 정해진 수출가격에 판매했다. 당연히 내수 가격보다 수출 가격이 훨씬 높았다.

곡물의 경우 북미 곡물 재고가 지나치게 많아 어떻게든 유럽으로 수출해야 했으므로 완전 자유화시켰다. 그리고 유럽에서 수입하는 것은 시계 같은 정밀 수제품 기계나 일부 예술품 외에는 거의 없었다.

이런 식이다 보니 무역수지가 심각한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원래 무역흑자가 되면 자국의 통화량이 늘어나 물가가 상승하고, 수출경쟁력이 저하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고산국 왕실에서 금과 은을 블랙홀처럼 계속 흡수하는 바람에 가격 차이, 곧 수출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고산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화폐 유통량이 많아져야 해서 더 이상 왕실에서 금과 은을 보유만 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왕실에 보관된 금과 은을 화폐로 주조해서 유통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자칫하면 고산국의 물가도 급속히 오르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기술력이 우월해서 흑자기조가 쉽게 퇴조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럼 물가는 더욱 오르게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자본의 이동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고산국은 예금 금리가 0퍼센트임에 반해 유럽의 금리는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연 이율이 2.5퍼센트 이상이었다. 장기적으로는 고산국의 자본이 당연히 유럽으로 빠져 나가게 돼 있었다. 그럼 물가가 인하되는 효과가 있었다. 금 본위제도 아닌 금화 체제는 국제적인 관점에서 지극히 안정적인 통화체계였다.

그래서 자본을 지키기 위해 증권거래 시장을 개설할 예정이었다. 예금 금리도 어느 정도 올려줘야 했다. 고산국이 본격적인 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하면 신경 쓸 것이 당연히 많아질 것을 이민호도 각오했다. 이제는 고산국에서도 경제공황을 신경 쓰면서 경제정책을 운용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지금까지처럼 통제경제가 차라리 쉬운데 말입니다...

경제규모를 키우고 국제적인 흐름을 따라가려면 자본주의로 가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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