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13화 (562/1,000)

00613  63.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  =========================================================================

대서양 탐사전단 소속 탐사선 두 척에 명령서를 주면서 아이슬란드로 보냈다. 뉴펀들랜드와 그린란드,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지키는 핵심 전력이 이런 중형 탐사선들이었다.

탐사선들이 외국 어선들 눈에 자주 띄어 무력시위를 한 다음부터 북대서양에서 해적질이 대폭 줄어들었다. 얻을 것도 없는 뉴펀들랜드 등 북대서양 연안에서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인 해적질을 할 어부들은 극히 드물었다.

조만간 대서양 함대를 창설할 때 그 근간이 되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시기에 실제로 대서양을 지키는 중요한 해군 전력이 탐사전단이었다. 앞으로 대서양 함대로 창설될 전력의 핵심은 현재 새부산에 있었고, 대서양에 비해 넓지 않은 바하마 군도와 카리브 해에서 해적을 잡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장! 이곳을 지킬 병력이 적은 것은 알지만 자네 뒤에 있는 힘을 믿게. 고산국 함대가 뜨면 유럽에서 나라 하나쯤 멸망시키기는 일도 아니야. 알겠지?”

“예, 전하. 이곳에 들르는 외국 어부들도 그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덕택에 저희들도 목숨 줄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뉴펀들랜드 플라센티아 항구에 해병 1개 대대를 주둔시키고 순양함 열 척쯤 배치하면 완벽한 방어가 가능해서 든든해지겠지만, 병력 낭비였다. 이렇게 가끔 함대가 들르고 탐사선이 자주 입항하는 것만으로도 외국 어부들은 감히 플라센티아를 노략질할 꿈도 못 꿨다.

“전기는 무엇으로 얻지?”

“지금은 석유를 태워서 얻습니다. 아발론 반도에 호수가 많아서 수력 발전을 하려고 수량을 조사 중입니다. 다만 겨울에는 호수가 얼어서 전기를 얻기 어려울 것 같아 수력과 화력 발전을 병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항구가 이 정도 규모에 머무른다면 지금처럼 석유를 수송해서 화력 발전하는 편이 싸게 먹혀. 하지만 앞으로 성장할 것을 감안하고 수력 발전소를 세워야겠어.”

“예. 국내 어부들이 계속 늘어나서 플라센티아도 커질 것입니다.”

“그렇지. 풍력에서 전기를 얻는 것도 가능하니까 지금부터 풍향과 풍속 측량을 시작하게. 측후소도 세워야 하니까 인원 여섯 명을 교대로 파견해달라고 새원산에 요청해.”

“감사합니다, 전하.”

어느 조직이든 규모를 키우려고 힘쓴다지만 외국인에 비해 병력이 적은 이곳에서 관리들 숫자는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관리는 전시에 당연히 병력으로 계산됐고, 충분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전하! 외국 어부들이 전하께 알현을 신청했습니다. 선장들을 만나보시겠습니까?”

“들라 하라.”

노성필 해병 중위를 따라 국적별로 한두 명씩 선장 여러 명이 동사무소에 들어왔다. 그리고 회의 탁자 앞에서 이민호에게 어색한 동작으로 절을 했다. 유럽에서도 안 하고 고산국에서도 요즘에는 안 하는 절인데 아시아 국가에 대한 유럽인들의 고정관념 탓이었다.

“청할 게 있으면 말하라.”

“폐하! 고기잡이를 하도록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됐다. 인사는 충분하니 핵심만 말하도록.”

선장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고산국과 우호적인 에스파냐 선장이 대표로 나섰다. 술만 마시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주제에 이럴 때는 합심하는 선장들이 조금 웃겼다.

“폐하! 저희 선장들은 더 많은 교역을 원합니다. 그러나 고산국 관리들이 제한을 가하고 있어서 본국에서 가져온 금과 은을 절반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상인이 아니라 어민이지 않은가? 유럽의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싼 값에 고기를 먹을 기회를 빼앗지 않으려고 조업을 허가한 것을 잊지 말도록 하라.”

“하오나 대구와 청어 가격이 계속 제자리라서 지금은 출어 비용을 간신히 맞추는 실정입니다.”

신대륙의 은이 대량으로 유입된 때문이든 아니든 유럽에서 계속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은 흑사병 때문에 줄어든 인구가 정상으로 회복되면서 곡물가 상승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었다.

조만간 건어물 가격도 곡물가를 따라서 올라가게 돼 있었다. 그러나 고산국 입장에서는 북미 대륙을 고산국이 영유함으로써 유럽인들이 품을 여러 가지 불만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고산국이 출어 제한을 한 정책 때문에 유럽에서 어류 가격이 상승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옛날처럼 유럽 어선들이 계속 이곳에 오는 편이 좋다. 어선들의 교역을 지원해주도록 하지. 그러나 새원산에서 교역하는 유럽 상인들보다는 비싼 값에 사야 할 것이다.”

“상인들과 경쟁할 뜻은 없습니다. 다만 출어할 때 이익이 조금이라도 남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허가받은 무역이지만 선장들의 본국에서는 밀무역이 될 수도 있었다. 허가 받고 교역에 참가하는 유럽 상인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럽 상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주력 상품은 유럽 어선들에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기준에 가장 적합한 상품은 밀과 호밀, 옥수수였다. 유럽에서 인기 좋은 고산국 담배는 어부 1인당 100갑까지만 판매했다.

“선장들, 설마 대구와 청어를 이곳에서 팔고 빈 공간에 곡물을 실어가려는 것은 아니겠지?”

“오!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군요. 커억!”

처음 알았다고 감탄하는 네덜란드 선장을 다른 선장들이 두들겨 팼다. 그 동안 다른 선장들이 그런 꼼수를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다른 제한 조건을 하나 더 달았다.

“풍어든 흉어든 따지지 않고 적재 공간의 절반 이하만 수입할 수 있다.”

유럽 어선들이 새원산이나 새강릉에 갈 수만 있다면 이렇게 우회 수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예 상선으로 등록해 대량 수입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이 시대에 어선으로 활용하는 소형 범선의 항해 능력으로는 뉴펀들랜드에서 새원산에 가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대서양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서 항해하는 큰 범선이 아닌, 항해거리가 짧은 유럽 어선들의 한계였다.

다음 날 함대는 현대의 핼리팩스, 카나타에 입항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북미 대륙이었다. 외국 어선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은 대신, 시가지에 북미 원주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돌아다녔다. 청바지를 입고 웃통을 벗은 청년이 새 깃털 장식을 머리에 꽂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카나타에도 플라센티아처럼 항구 시설과 모피 교역소가 들어섰다. 너무 멀어서 새원산까지 가지 못하는 북미 원주민들이 여기서 모피를 농기구나 무기, 곡물과 바꿔 갔다.

“원주민들이 너무 가까이 옵니다. 조금 밀어내겠습니다.”

민영이 호위와 해병들을 지휘해 국왕 행렬에 다가오는 북미 원주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웃는 원주민들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해병들이 진땀을 흘렸다.

예상 외로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이었으나 호위병들은 아주 기겁했다. 여차 하면 총소리가 울릴 판에 카나타 동장인 관리가 나섰다. 그가 뭐라고 외치고 나서야 북미 원주민들이 조용해졌다.

“뭐라 한 건가?”

“원주민들이 계속 시끄럽게 떠들면 전하께서 실망해서 배로 돌아가실 거라고 위협했습니다.”

북미 원주민들은 조금 전과 달리 가만히 있으면서도 싱글벙글했다. 원주민 수백 명의 시선을 받은 이민호는 몸이 따가울 정도였다.

“원주민들 표정이 예전보다 한결 낫군.”

“삶에 여유가 넘쳐서 그렇습니다, 전하. 옛날에 유럽인들과 교역할 때는 모피 값을 별로 안 쳐줬었지요.”

고산국이 북미에 들어온 다음부터 모피를 판매하는 원주민들이 손에 쥐는 물건의 양이 열 배 이상 불어났다. 이렇게 비싸게 사고도 고산국 상인들이 유럽에서 판매하는 가격은 몇 년 전보다 훨씬 쌌다.

이는 모피를 대량으로 수송함으로써 유통 비용을 절감해서 가능한 가격이었다. 몇 달에 걸쳐 험한 대서양을 작은 범선을 타고 건너는 유럽인들은 고산국과 경쟁이 되지 못했다.

“모피 판매만으로는 수입이 부족할 텐데, 역시 농기구와 종자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사냥꾼이었던 자들 일부가 밭을 넓혀 밀과 보리, 감자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야생동물의 씨를 말릴 우려는 사라졌습니다만, 왕토를 원주민들이 허락 없이 경작하는 문제가 생겨서 문제이옵니다.”

북미 대륙의 모든 땅이 고산국 국왕의 것이라고 원주민들을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 땅에 대대로 살아온 북미 원주민들은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 소유권의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민호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북미 원주민들을 고산국의 법체계 안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 우선이었으나 시일이 거릴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좋은 것은 새강릉 주변의 일부 원주민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청에서 경작지를 개간한 다음 원주민들에게 분배해주고 수확량 절반을 세금으로 받는 것이었다. 땅 때문이 아니라 개간해준 것 때문에, 그리고 농가주택 때문에 세금을 받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농가는 경작지가 너무 넓고 아직 농사일에 서투른 원주민들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새강릉과 새원산 주변의 원주민들은 고산국 방식의 농사일을 배우는 동안 다른 농가에서 농업 노동자로 일해주고 있었다.

이때 받는 임금만으로도 북미 원주민들은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언젠가 원주민들도 아일랜드 이민자들처럼 가족 단위 농장으로 자립해야 했고, 지금도 시청 관리들이 원주민들에게 강요하다시피 농장을 떠맡겨 개간지의 경작을 시켰다. 그래야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개간해봐야 얼마나 넓겠나? 여력이 생기면 농경지를 분배해주겠지만 지금은 내버려두게.”

“원주민들이 전하를 이 지역 대추장보다 높은 지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떤 정책이든 쉽게 시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손해 보지 않는 동안에는 그렇겠지.”

“전하께서 백성들에게 손해가 될 일을 시키신 적은 없지 않습니까? 원주민들도 전하를 그렇게 믿는 것 같습니다.”

알곤킨 공통어로 마사소이트라고 하는 대추장은 부족연맹체의 수장이었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든 일부에 이익이 되면 다른 일부에게 손해를 끼칠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시행한 정책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이익의 충돌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카나타 동이라고 했지만 이 지역을 포함한 반도의 길이는 400km가 넘었고 면적은 55,000평방킬로미터나 됐다. 뉴펀들랜드 섬의 면적은 대략 111,000평방킬로미터였다. 행정구역으로 동은 너무했고 조만간 인구가 늘어나면 구 정도로 승격시킬 예정이었다.

행정 관리들과 부대 주둔 비용을 감안하면 카나타나 뉴펀들랜드 플라센티아 항구를 운영하면서 계속 적자를 봤다. 그러나 작은 항구도시들이 있음으로써 영토를 보다 쉽게 지킬 수 있었다.

실제 역사대로라면 지금쯤 잉글랜드와 프랑스 등이 북미 곳곳에 개척지를 세우거나 탐사를 하는 중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북미 대륙이 고산국 영토로 인정받은 지금은 그런 움직임 자체가 없었다. 시와 동 등 북미 곳곳에 세운 고산국 행정단위들 덕택이었다.

“전하! 원주민들이 전하께 바치겠다고 사슴 수십 마리를 잡아왔습니다.”

“고마운 일이로고. 원주민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겠네. 원정 함대에 사슴 고기를 나눠주도록 하게.”

지난번에 현대의 보스턴이 위치한 곳에서 원주민들과 사슴을 나눠먹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원주민들 사이에 고산국 국왕이 사슴 고기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오해였지만 원주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민호가 동사무소에서 나오면서 웬 산더미처럼 쌓인 사슴을 보고 놀랐다. 사슴이라 해서 이민호는 당연히 자그마한 꽃사슴을 연상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수놈 몸무게가 450kg 가까이 가는 와피티 사슴, 엘크가 흔했다. 사슴을 사냥하는 것보다 여기까지 끌고 오는 것이 더 힘들 것 같았다.

“곡식을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은화로 지급해줘.”

“일인당 한 냥씩 나눠줄게요.”

민영이 동장에게 이 지역 사슴 가격을 물어본 다음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보통 큰 수사슴 한 마리에 은화 반 냥에 거래된다고 했다. 이번에는 국왕의 회사품이므로 그 두 배를 주기로 했다.

야생동물이 흔하고 물가 수준이 들쭉날쭉한 것이 이래서 문제였다. 원주민들은 한나절 잠깐 뛰어다니고 사슴을 끌고 온 것뿐인데 새원산에서 일하는 원주민들의 거의 한 달 수입을 받게 됐다. 그렇다고 적게 줄 수도 없었다.

“사슴 숫자가 줄어들면 가격이 오를 거여요. 잡기 어려워지겠죠.”

“가격이 오르면 눈에 불을 키고 더 잡으려 할 거야. 씨를 말리겠지.”

그러나 엘크 사슴은 비교적 흔한 종류였다. 포식자가 없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같은 경우 사슴 숫자가 너무 늘어나서 공원이 초토화됐고, 삼림늑대를 도입하고 나서야 사슴 숫자를 9만 마리 정도로 조절할 수 있었다.

저녁에 국왕좌승함으로 돌아가 사슴고기를 구워서 실컷 먹었다. 새끼 고양이도 배 터지게 먹고 구석에서 몸을 둥글게 만 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식후에 민영이 물었다.

“사슴뿔이 아주 크고 웅장해요. 의사들에게 부탁해 녹용으로 보약을 지어달라고 할까요?”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야. 한의사한테 물어봤는데 엘크나 순록의 뿔은 효능이 적대. 녹용으로 쓰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현대 한국에서는 광우병과 비슷한 프리온 질환인 광록병이 발생한 캐나다와 북미산 사슴뿔 수입이 2001년부터 금지됐다. 중앙아시아 녹용과 달리 북미산 사슴뿔의 약효가 극히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속설 때문에 캐나다를 관광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저마다 사슴뿔을 들고 왔다. 밀수업자들도 가격이 훨씬 싼 캐나다산 사슴뿔을 들여와 중앙아시아 녹용이라고 속이며 팔았다.

한국에서도 사슴 농가에서 광록병 수십 건이 발병했지만 정부에서는 실태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숨기기에만 급급했다. 검역당국에서는 종간 장벽 때문에 사슴의 프리온이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2006년 사이언스지에서 인간에게 광록병 전염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오늘 먹은 것은 자연산 사슴이므로 광록병에 감염됐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어디나 그렇듯 농장주들이 속성으로 키우려고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주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프리온은 뼈와 내장에 축적되므로 사슴뿔만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럼 산삼 위주로 보약을 지어드릴게요.”

“왜? 내가 요즘 약해진 것 같아?”

“아니에요. 걱정돼서요.”

민영이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민호도 늘어난 후궁들이 걱정이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나이 들어서는 이 많은 숫자를 감당 못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후궁들 숫자가 150명쯤 됐나?”

“그 정도요. 아직은요.”

아직 왕립여학교에서 공부 중인 어린 애들도 있었다. 이번에 졸업한 후궁들처럼 언젠가 그 아이들도 자라서 이민호에게 안기게 될 것이다.

“후궁들 이름이라도 외워두세요.”

“이름이야 외우지. 제대로 연결이 안 돼서 그렇지.”

후궁들이 100명 넘어서부터 이민호의 기억에 혼란이 생겼다. 베네치아 시녀들은 각자 맡은 업무 때문에 대충 구별이 됐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얻은 우크라이나 궁녀들은 실수를 할 것이 무서워서 차라리 이름을 안 부르게 됐다.

“내일 새원산에 도착하겠군요. 그 사이에 얼마나 발전했을지 기대가 돼요.”

“나도. 관리들이 괜히 쓸데없는 일을 벌여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주인님이 시킨 일만 하기에도 벅찰 걸요?”

이민호는 뉴욕 항 입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신교와 구교의 대립이 첨예해서 함부로 신상 같은 것을 세울 수가 없었다.

신교 쪽은 아직도 우상 파괴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더욱이 자유의 여신은 어느 종교에 속한 신도 아니었다. 고산국 전체가 괜히 이교도 국가로 낙인찍히기 쉬웠다.

“왕도가 아닌 도시에서는 시의 상징 같은 건축물이 필요하긴 해요.”

“새강릉 시청보다 높은 철탑을 새원산에 하나 세워보자. 무선송신탑 역할도 겸해서, 관광 명소가 될 거야.”

“제철소를 세운 다음부터 철이 남아돈다는 사실을 외국인들에게 과시하고 싶으세요?”

“그렇지. 만국박람회를 열기에는 이르지만, 잘하면 새원산을 넘어 북미의 상징이 될 거야.”

이민호는 파리 에펠탑을 떠올렸다. 화가와 건축가들에게서 디자인을 공모해서 새원산 중앙공원에 세우면 어떨까 싶었다. 현재 개발 중인 철선 한 척의 무게와 비슷한 철이 들겠지만 군함보다 더 간단한 구조인 탑을 세우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힐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쓰다 보니 좀 길어졌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북미 내륙 쪽 이야기입니다.

왕도에 돌아가봤자 당장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차라리 북미 개척 초반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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