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10 63.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 =========================================================================
특히 끊임없이 아이슬란드를 약탈하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해적, 즉 어민들이 문제였다. 사실 아이슬란드에 바이킹들이 정착한 초기에 노예들을 다수 끌고 갔는데 그 노예들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납치한 자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 노예들도 아이슬란드인들의 공통 조상이 됐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 족은 9세기부터 바이킹들이 즐겨 털어먹던 대상이었으며 11세기 초에는 크누트 대왕이 잉글랜드와 덴마크의 국왕을 겸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어부들에게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가 해적질을 당하고 있었다.
“귀족들과 지주들에게 영지 및 토지에 대한 보상을 해주겠소. 얼마 안 되는 농사나 목축은 농민에게 맡기고, 귀족들은 아이슬란드 여왕의 사업체인 서인도회사의 일을 도와야 할 것이오.”
귀족들 사이에 잠시 웅성거림이 일어나더니 조용해졌다. 토지를 수용하면서 얼마나 보상할 건지 아직 정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그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로 결정했다.
척박한 토지에서 돈도 안 되는 지주 역할을 하느니 서인도회사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 싶은 모양이었다. 이민호는 이들 대부분을 서인도회사의 선장이나 상인, 회사 소속 군사 지휘관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귀족들과 협의한 결과 귀족 가문의 후계자 집안과 방계 집안, 토지의 많고 적음에 따라 금 10파운드에서 3파운드 사이로 보상금을 결정했다. 이들이 가진 지위에 비해서는 적었으나 아이슬란드의 토지 생산력에 비해서는 높은, 애매한 금액이었다.
결국 토지 수용에 대해서는 귀족들 모두가 동의했다. 보상금액보다 중요한 것이 서인도회사에서 맡을 아이슬란드 귀족들의 역할이었다.
토지가 없던 농민들에게는 경작권과 목초지 방목권을 기존 그대로 인정해주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수준이라 경작 농민과 목축업에 대한 세금은 당분간 면제해줬다.
인구가 5만 명 가까이 되다 보니 페로 제도보다 훨씬 다양한 요구에 대처해야 했다. 농업보다 더 중요한 어업에 대해서는 의회를 소집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다음 날 레이캬비크에서 모든 것, althing이라는 의회가 개최됐다. 영국 의회보다 300년이나 일찍 생겼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국토면적이 현대 남한과 거의 비슷해 멀리서는 오지 못했다.
레이캬비크에 큰 건물 따로 없어서 바닷가 바위에 사람들이 대충 앉은 다음 이민호가 나서서 연두교서 비슷한 시책을 발표했다. 서늘한 바닷바람이 연설 원고를 날릴 뻔했다.
“기후가 나빠 농업을 하기 어려운 와중에 농부들이 아주 잘해주고 있소. 본국에서 유리를 대량으로 가져와서 레이캬비크 주변에 온실 농업을 추진할까 하오. 곡식은 싼 값에 북미에서 대량으로 가져올 테니 온실에서는 그날 바로 먹을 야채를 재배하시오.”
“허억! 그 비싼 유리 온실을 짓겠다는 말씀입니까? 단지 싸구려 야채를 키우기 위해서 말입니까?”
의원 하나가 깜짝 놀라 소리 질렀다가 다른 의원들에게 눌렸다. 부자 나라 고산국이 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면서 의원들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기회만 생기면 외국으로 떠날 생각만 하던 이들에게 선택권은 별로 없었다.
“아이슬란드는 일 년 내내 추운데 난방 연료를 구하기 어려운 줄 알고 있소. 그래서 온천의 뜨거운 물을 가정마다 연결해서 난방을 해결할까 하오. 온실 난방도 그것으로 해결할 것이오.”
현대 아이슬란드에서는 지열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쇠파이프를 연결해 땅속 깊이 파고들어야 하므로 유전 탐사와 마찬가지 비용과 노력이 들 것 같았다. 차라리 석유를 때라고 하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지열 다음의 에너지원인 수력은 풍부한 편이었다. 수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한다면 아이슬란드 전 인구가 풍족하게 쓰고도 남아돌았다. 해군 기지와 어업 기지 외에 아이슬란드의 장점이 전기가 남아돈다는 사실이었다.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업은 알루미늄 제련이었다. 이민호는 깡통과 항공기 재료를 만들기 위해 알루미늄 제련시설을 이곳 아이슬란드에 설립할 것을 검토 중이었다. 발전소를 세울 만한 폭포나 호수는 아이슬란드 전체에 걸쳐 충분히 많았다.
알루미늄은 로켓 연료나 테르밋 등 산업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으나 이민호의 지식은 무기 쪽으로 제한된 편이었다. 일단 가벼운 통조림용 깡통부터 만들고 차차 활용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온천수를 끌어들이려면 그 비용이 많이 들 것입니다.”
“북미에서 제철소를 여럿 세웠으니 앞으로 철 부족 문제는 없을 것이오.”
오대호 주변에 세운 미국 제철소 하나가 이차대전 당시 독일의 제철능력 전체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철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현재 북미에서 중점적으로 자원과 인력을 집중하고 있는 사업이 제철소였다.
철만 충분하다면 대륙횡단 철도 여러 개를 건설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스코틀랜드처럼 산에 터널을 뚫고 계곡에 다리를 건설할 일이 적은 북미에서는 훨씬 빠르게 철도를 건설할 수 있었다.
현재 북미 제철소에서는 철도 건설용 선로와 기타 여러 가지 철제품 외에 특히 강관을 대량으로 뽑아내고 있었다. 기존 상하수도에 사용된 석관은 앞으로 모두 강관으로 대체될 예정이었다.
“헉! 그 비싼 철관으로 온천수를 마을에 끌어들으려 하십니까? 낭비입니다!”
“모든 자재는 북미에서 가져올 것이며 아이슬란드인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않을 것이오. 다만 공사 중에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나서서 일을 좀 해줘야겠소. 물론 일당은 지급하겠소.”
“너무 꿈같은 말씀이라 참으로 믿기가 어렵습니다.”
귀족이나 농부나 워낙 가난한 자들이라 대화하다 보니 조금 답답했다. 이민호가 뭔가 사업을 발표하면 귀족과 의원들은 대뜸 비용 걱정부터 했다. 일이야 시켜주기만 하면 고맙다고 해서 노동력이 부족할 걱정을 덜었다.
의회를 통해 대충 몇 가지 시급한 사안을 해결했다. 예를 들어 식량 부족 문제 해결, 해적 퇴치, 상징적이지만 작은 궁전 건설, 행정관 파견 등 아이슬란드를 위한 여러 가지 시책을 밝히고 의원들로부터 협조해줄 것을 약속 받았다.
“무엇보다 그대들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오. 만약 화산이 폭발할 경우, 모든 재산을 내버려두고 가족들과 함께 섬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시오. 섬에서 탈출해 북미로 오면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겠소. 살아만 있다면 재산은 금방 되찾을 수 있소.”
귀족들과 의원들이 만족했다. 아이슬란드가 고산국 영토가 되고 나서 일단 굶을 일이나,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울 일은 대폭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아직 어민들이 남았다. 현재 아이슬란드의 주요 산업은 어업이었고, 외국에서 몰려오는 어선들 때문에 문제가 많은 산업이었다.
“외국 어선들이 섬 가까이에서 조업하다가 해적으로 돌변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희 주민들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폐하.”
“지금은 대구가 충분히 나지만 남획으로 인해 줄어들지 모르오. 이것을 명분으로 삼아 섬 가까이 조업하는 외국 어선의 위협을 물리치겠소. 그러니 섬에서 일단 20마일 반경을 대구 보호 구역으로 획정하고 외국 어선들이 그 안에서 조업을 못하게 하겠소.”
고산국 어업연구소 지소를 아이슬란드에 설립해 대구와 청어 등의 인공 수정과 치어 생산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물 반 고기 반인 아이슬란드 주변 해역에서 새끼 대구를 키우겠다고 하자 어민들이 이해를 못했다. 공짜로 해준다는데도 말이 많았다.
“할아버지 때는 해안에서 그물만 던져도 수만 마리씩 잡혔는데 지금은 아니지 않소?”
“노인들이 과장을 한 감이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대구가 더 쉽게 잡혔던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듯 낚시꾼과 노인들은 옛날 일을 과장하기 마련이었다. 물고기들이 해안까지 몰려오는 것은 어쩌다 한 번이지 아이슬란드 정착 이후 대구가 그렇게 쉽게 많이 잡힌 일은 절대로 없었다.
“바로 그것이오. 옛날처럼 대구가 아이슬란드에 바글바글해야 이곳 사람들 배가 부르고, 남는 것을 많이 수출하면 북미 사람들도 싸게 대구를 맛볼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아이슬란드의 대구 어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소.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 어부들의 어획을 통제하겠소.”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폐하. 배를 타고 나가지 않고 육지에서도 쉽게 대구를 잡는다면 정말 꿈같은 일이겠습니다.”
잉글랜드 어선들이 지나친 남획을 해서 대구의 씨가 마르기 전에 제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원들에게 잘 먹혀들었다. 제법 괜찮은 흰 살 생선인 대구로 영국인들이 그 따위 맛없는 칩스 앤 피쉬를 만드는 것은 자원 낭비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도 외국 어부들이 대구를 마구 잡는 것에 반감이 컸다.
“대신 이곳 어민들이 교대로 무장한 어업지도선에 타고 외국 배를 통제해야 하오. 저항하는 외국 어민들은 해적으로 간주해 침몰시키거나 나포할 권한을 주겠소.”
아이슬란드 주민들을 자체 무장시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고산국 병력을 파병해서 지켜주기로 했다.
특히 해적이 들끓는 동안에는 강력한 무력이 상시 주둔해야 했다. 탐사선과 비슷한 중형 함선 두 척을 교대로 아이슬란드에 파견하겠다고 해서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제가 한 말씀해도 되나요, 폐하?”
“물론이오, 공주.”
둘이 공동 군주라 해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공주가 아이슬란드에서 우선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덴마크의 공주이며 현 덴마크 국왕의 여동생이라는 신분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아이슬란드의 모든 귀족들은 들으세요. 여러 귀족 가문에서 열여섯 살 이상, 스무 살 이하의 미혼 영애들 중에서 하나씩 국왕폐하의 시녀로 바치세요.”
“헉! 공주!”
“여왕폐하 만세!”
이민호가 펄쩍 뛰었으나 귀족들이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아이슬란드 귀족들이 너무나 좋아해서 이민호가 선뜻 취소하지도 못했다.
“저희 아이슬란드 귀족 가문들과 고산국 왕실의 피가 이어진다니 영광입니다, 여왕폐하! 국왕폐하의 미스트리스가 될 신분이므로 아무래도 공부를 많이 한 영애가 좋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오? 국왕폐하의 취향을 모르고 하신 말씀이오.”
“그렇다면 어떤 영애를 바치오리까? 하명하여 주십시오.”
“가슴이 큰 여자요. 무조건! 가슴만 크면 된다오. 가슴이 큰 순서대로 일단 여섯 명을 뽑겠소.”
헤드비히 공주가 이민호에게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괜히 젖소의 젖통을 한 번 만졌다고 여섯 명에 이르는 아이슬란드 처녀들을 책임지게 생겼다. 아이슬란드 귀족의 숫자가 많으므로 나중에 더 늘어날 수 있었다.
“에휴~”
“폐하! 아이슬란드 여자는 신이 내린 선물이래요. 북미와 덴마크 사이에서 활동하는데 도움을 줄 거여요.”
“더 이상 늘어나면 내 수명이 줄어들 것 같소.”
이민호가 말은 그렇게 해놓고도 아이슬란드 여자들의 미모에 혹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에는 절대 여자를 들이지 않겠다고 헤드비히에게서 약속을 받았다. 뭔가 거꾸로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로 일할 귀족 영애 처녀 여섯 명이 모였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가슴 크기로 일등부터 6등까지 일괄적으로 뽑았다.
가슴이 크면 보통 허리도 두껍고 육감적인 몸매일 줄 알았는데, 허리는 아주 가늘고 가슴과 엉덩이는 큰 비현실적인 몸매들이었다. 백발에 가까운 옅은 금발이 넷, 갈색이나 검은 머리 시녀가 하나씩이었다. 시녀들을 한꺼번에 떠맡게 된 일이 지금까지 여러 번이라 이민호는 더 이상 놀라지도 않았다.
헤드비히가 아이슬란드 귀족들에게 요청해서 총함장 이순신과 육군사령관 계복의 시녀도 하나씩 구해서 배로 보냈다. 아이슬란드 귀족들은 고산국 2대 대공들인 육해군 수장들의 미스트리스도 신중하게 골라서 선발했다.
기함에는 일부러 검은머리 여자를 보냈다. 나중에 보니까 총함장은 시녀가 아닌 하녀로 부리는 것 같았다. 계복은 그날 바로 잡아먹었다.
아이슬란드에 행궁으로 사용할 만한 큰 건물이 없어서 저녁에 국왕좌승함으로 돌아왔다. 집무실에서 새로운 시녀들의 인사를 받았다. 널따란 집무실에서 가볍게 옷을 입은 시녀들은 훈훈한 실내 공기를 신기하게 여겼다.
“넌 몇 살이니?”
“열여섯입니다, 폐하. 카트린 브륀디스아르도티르에요.”
도티르는 딸이라는 뜻이며 뒤쪽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른 부칭이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손이나 센이 붙은 부칭이 성으로 고착되어 가는 과정임에 반해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전히 부칭을 썼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덴마크어도 능숙하게 구사했다. 귀족들은 여기에 더해 한두 가지 언어를 더 배웠다.
그러나 이제부터 귀족들은 유럽인들이 배우기 극히 어려운 조선말을 배워야 한다. 아이슬란드어가 배우기 워낙 어려워 은근히 자부심을 갖고 있던 아이슬란드 귀족들은 호되게 고생할 것이 분명했다. 조선어를 가르칠 교사들을 한 달 내에 파견하기로 했다.
“예쁘구나. 하지만 어른들이 하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리니 왕립여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더 하도록 해라.”
“폐하! 저는 시집가도 충분하겠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하지만 배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이란다.”
유럽인들의 성숙은 빠른 편이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어린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하면 위험한 것은 황인종과 마찬가지였다.
유럽 여자들은 기숙학교를 수녀원과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국왕의 명령을 감히 거부하지는 못했다. 여섯 명 모두 열아홉 살이 안 돼서 전부 다 왕립여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일은 일단 마무리됐다. 그러나 오히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파이프만 연결하면 되는 난방 공급은 사실 큰 일이 아니었고, 항구와 수력발전소 건설이 가장 큰 일이었다.
“먹고 사는 게 가장 시급하겠지만 결국 살아남는 게 중요해. 보건소는 잊어먹지 마.”
“물론이에요, 전하. 아이들에게 놔주는 주사가 고산국 인구 증가의 가장 큰 비밀이지요.”
에밀리아가 싱긋 웃으며 아이슬란드 발전계획서를 써나갔다. 북미에서 대 도시를 건설하기 전에 작성하고 때때로 보충했던 매뉴얼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매뉴얼을 참조하고 아이슬란드의 특성을 감안해 회의를 거쳐 개발계획이 작성됐다.
덴마크 시녀들이 아직 일을 잘 몰라서 베네치아 시녀들이 주도적으로 서류 작성을 해나갔다. 건설은 베네치아 시녀들이 하더라도 운영은 결국 덴마크 시녀들이 해나가야 했으므로 다 함께 아이디어를 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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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나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