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09화 (558/1,000)

00609  63.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  =========================================================================

루손 섬 북쪽 필리핀인들이 사는 지역과 아이누 섬, 큐슈와 시고쿠, 동해국처럼 완전히 고산국 영토가 되지 않은 곳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페로 제도는 전략적 가치가 높아 정식으로 고산국 영토에 편입할 필요가 있었다.

이민호가 토지 수용을 선언하자 페로 제도 주민들이 일제히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잠시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직접 말은 안 했지만 국왕이 내놓으라고 하면 힘없는 백성들은 싫더라도 내놔야 했다. 호위들과 해병들이 페로 사람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폐하께 목초지와 집을 모두 바치겠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먹고 살게만 해주십시오.”

“좋다. 땅을 모두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공짜로 받을 수는 없지.”

보유 부동산 면적이나 소유 여부에 상관없이, 심지어 어린이를 포함한 페로 제도 주민 5천 명 모두에게 발트 해 여러 도시의 금화를 섞어서 순금 100그램씩 나눠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페로 사람들이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 몇 백 년 전에 매장된 바이킹의 묘지 하나만 파도 부장품으로 황금이 몇 킬로그램씩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금 석 냥 이하면 적은 것 같지만, 도정한 쌀 70석 또는 밀가루 200석 정도였고 밀가루 20킬로그램 기준으로 1,400포대였다. 그렇게 설명했더니 섬 주민들이 깜짝 놀랐다.

“고산국에서는 금의 가치가 그렇게 높습니까?”

“아니. 고산국 국내 밀 값이 싸다. 그대들은 오늘부터 고산국 백성이지 않은가? 유럽 수출가격이 아니라 고산국 국내 기준가로 그대들에게 곡물과 고기를 넘기겠다.”

“우와!”

페로 사람들이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땅의 소유권을 이민호에게 이전해주고 페로 제도 주민들이 받은 진짜 대가는 고산국의 국민이 된 것 그 자체였다.

“외국인 어부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판다면 페로 섬 주민들 전체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런데 페로 제도의 모든 집과 목초지가 폐하의 소유가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시겠습니까? 저희들이 집세를 내고 목초지에서 양을 키워 일정 비율을 매년 세금으로 바치면 어떻겠습니까?”

고산국에서는 모든 땅이 왕토였지, 집은 상관없었다. 나라나 시청에서 지은 집에 입주하면 임대료를 내고, 백성이 직접 지은 집은 거주하거나 매매도 가능했다.

다만 백성들이 지은 집은 50년 기한을 둬서 지상권을 회수하도록 했다. 그러니까 백성이 직접 지어서 쓰다가 잔존 기한이 남은 집을 건축비와 연수에 따라, 그리고 주변 시세를 고려해 다른 백성에게 팔 수 있었다.

왕도 고북 시의 경우 시가지 가까운 지역에 살고 싶어 하는 백성들은 편리한 공영 연립주택에서 임대료를 내고 살았고, 약간 떨어진 지역에서는 돈을 모아 마당 딸린 단독주택을 지었다. 신생국이 다 그렇듯이 건설 경기는 매년 초호황이었다.

“한 달 안에 올 고산국 관리가 자세히 설명해줄 거야. 집은 지금 사는 그대로 살고, 너희들이 지은 집이니 집세는 안 내도 된다. 밭은 없지?”

“감사합니다, 폐하. 농사를 짓기에 이곳 날씨가 너무 나빠서 밭은 전혀 없습니다.”

밭 대신에 목초지가 조금 있었다. 정부에서 직접 개간한 논밭, 목초지가 아니면 기존 경작권이나 사용권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세금도 안 받거나 대폭 감면해주는 것이 고산국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페로 제도에서는 금 100그램을 주고 산, 이민호의 개인 재산이었다. 그래도 세금을 받아봤자 너무 적을 것 같아, 인심 쓰는 척했다.

“목초지도 지금처럼 계속 사용해. 목초지에 대한 세금은, 음. 세금을 계산하고 옮기는 비용이 더 많이 들겠군. 그럼 앞으로 목초지는 20년 동안 세금 면제다. 20년 후에 다시 책정하더라도 세금을 낼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 대신 더 이상 목초지를 늘리지 말도록 해.”

“와아!”

갑자기 음악이 울리고 축제가 시작됐다. 이민호 주변에 포진한 해병들이 무서워 집에 숨어있던 여자들까지 몰려나와 춤을 췄다.

“후퇴! 물러나! 순양함으로 퇴각!”

젊은 아가씨들이 퍼붓는 뽀뽀 공세에 밀려 이민호와 해병들이 국왕좌승함으로 쫓겨 들어갔다. 아가씨들의 입술에 병사들은 전혀 저항할 수 없었고 기껏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주민들에게 축제에 쓰라고 술과 고기, 식량을 적당히 넘겨주느라 마지막으로 배에 탑승한 통역장교가 두 손으로 얼굴과 입술을 비볐다. 이민호가 본 것만 해도 통역장교는 30명에게 뽀뽀를 당했다. 통역장교에게 뽀뽀한 사람들 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끼어 있었다.

“백성들에게 무척 잘해주시네요. 역시 소문으로 듣던 폐하세요.”

“공짜는 아니요. 페로 제도는 나중에 고산국 대서양함대의 중요한 해군기지 중 하나가 될 것이오. 앞으로 몇 년 동안 군대를 파견하지 않더라도 저들끼리 잘 지킬 것으로 믿소.”

“그렇게 생각하면 군대 파견 비용보다 훨씬 싸겠군요. 좋은 것을 배웠어요.”

앞으로 페로 제도 주민들은 외국군의 침공이나 해적의 약탈에 대항해 필사적으로, 아마 미친 듯이 싸울 것이다. 큰 재산이나 다름없는 고산국 국적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고산국에서도 그만큼 지원해주는 것이 당연했다.

“모든 백성들에게 저렇게 잘해주지는 못하고 있소.”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훨씬 잘해주실 것 같아요.”

북미 원주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북미의 도시에서 한 달에 은 한 냥을 받고 마부나 청소부로 일하는 북미 원주민들은 차별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요즘 시청 소속 마부는 편지와 소포 배달까지 맡고 청소부가 자경단이나 소방관 보조 역할을 맡아 격무에 시달렸다. 덕택에 월급이 아주 조금 올랐다.

아직 은이 부족하고 물가와 소득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북미 원주민들에게 기본 소득을 줄 시도조차 못했다. 그러나 본토 출신 또는 이민자들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만도 했으나, 충분히 만족하면서 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더 이상 늦출 수는 없었다. 무역만으로는 부족하고 어서 은광을 최대한 많이 개발해야 했다.

페로 제도에서 하루 정박하기로 하고, 저녁에 수송선에 가서 홀스타인종이라는 얼룩 젖소를 구경했다. 건초에 밀기울을 섞은 사료를 얌전히 씹는 젖소들은 참 순해 보였다.

기원전부터 젖소로 키워졌다는데, 현대에서 이민호가 듣기로는 개량을 거쳐 우유를 연간 1톤, 심지어 2톤까지 생산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훨씬 적게 생산한다고 들었다. 그게 500킬로그램이었다.

외양간에 직접 들어간 이민호가 소의 젖을 만져봤다. 현대에 있을 때 우유 겉면에 그려진 것이나 만화로 익히 보던 것보다 유방이 약간 작은 것 같았다.

나중에 젖소 숫자가 충분히 많아지면 치즈도 만들겠지만 당분간은 젖이 모자라는 아이들을 위한 생명줄이 될 수도 있었다. 아직 분유 생산은 꿈도 못 꿨다. 부족한 우유는 지금처럼 염소와 산양에서 충당해야 했다.

“폐하! 뭐하세요?”

“오! 공주, 어서 오시오. 유방 검사를 하고 있소.”

헤드비히 공주의 눈길이 이민호의 손에 가 있었다. 정확히는 젖소의 유방을 만지는 이민호의 손이었다. 헤드비히가 기겁해서 두세 걸음 물러섰다.

“설마 폐하도 몇몇 덴마크 남자들처럼......”

“아니요!”

다른 나라 같으면 전혀 의심받지 않을 행동인데 덴마크에서는 조금 달랐다.

“폐하께서는 젖소처럼 큰 유방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래서 제가 19살이 안 됐다는 핑계로 동침을 거부하셨어요.”

“오해요! 시녀들이 감시하고 있지 않소?”

공주의 오해를 푸느라 혼쭐났다. 헤드비히의 가슴은 베네치아 시녀들보다 컸지만 덴마크 시녀들보다는 약간 작았다. 그래서 마사지를 하면 사이즈를 키울 수 있다고 설득해서 한참 만져줬다.

다음 날 고산국 함대가 아이슬란드 섬 서쪽 레이캬비크 항에 처음으로 입항했다. 의외로 춥지는 않았지만 계절을 감안하면 다른 지역에 비해 말도 못하게 서늘했다.

“인괼푸르 아르나르손, 아이슬란드 발음으로 잉코울푸르 아르트나르손이 874년에 처음 정착했어요. 뒤에 나오는 이름은 성이 아니라 부칭인 것은 아시죠? 그는 바이킹 방식대로 배에서 바다로 가장의 기둥을 떨어뜨린 다음 해안에 닿을 때까지 따라갔어요. 기둥이 해변에 오른 곳이 바로 이곳이에요.”

커다란 만 안쪽 작은 만에 레이캬비크가 위치했다. 공주의 설명에 따르면 13세기까지 꽤나 따뜻해서 아이슬란드의 4분의 1이 숲으로 뒤덮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절벽과 폭포, 약간의 풀밭과 온천 외에는 온통 돌투성이 황무지뿐이었다. 가끔 대구포 말리는 덕장과, 초원을 뛰어다니는 아이슬란딕 말도 눈에 띄었다.

레이캬비크는 도시라고 부르기는 어려웠고, 마을도 이런 깡촌이 없었다. 그리고 작위를 가진 아이슬란드 귀족들도 가난에 찌든 듯했다.

“지옥 가까이 오신 두 분을 환영합니다, 아이슬란드의 여왕폐하! 그리고 부군이 되실 고산국 국왕폐하!”

아이슬란드 귀족들이 부두에 나와 있다가 이상한 환영 인사를 올렸다. 헤드비히 공주에 대한 호칭은 여왕이었다. 왕비나 여왕이나 다 같은 퀸이었지만 국왕의 배우자로서 왕비 queen-consort가 아닌 여왕으로 불렀다. 대신 이민호에게 여왕의 배우자 칭호인 부군이 고산국 국왕보다 앞에 왔다. 일단 의전으로는 이게 맞았다.

아이슬란드는 30여 개의 화산과 빙하로 가득 차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지옥과 가장 흡사한 곳이었다. 덕택에 온천이 780개나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숲이 대폭 줄어들었고 1402년과 1494년에 흑사병이 두 번이나 덮쳐서 각각 인구의 절반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아직 아이슬란드인들에게 행복한 시기였다. 원래 역사에서는 17세기부터 사라센 해적들이 쳐들어와 주민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끌고 간다. 화산이 수시로 폭발해 주민과 가축을 죽이고, 18세기에는 천연두가 퍼져 인구의 3분의 1이 죽는다.

1783년에는 지옥이라 불러도 충분할 만한 대재앙이 발생한다. 라키 분화구가 폭발해 용암을 다섯 달 동안 뿜어내고, 유독한 불소와 이산화황 안개가 섬 전체에 자욱하게 내려앉는다. 가축의 80퍼센트가 죽고, 독가스와 이어진 기근으로 인구의 4분의 1이 죽는다.

“이미 영토 매매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구려.”

“그렇습니다, 국왕폐하. 며칠 전에 입항한 고산국 상선이 덴마크 국왕의 친서를 전해줬습니다.”

아이슬란드 귀족들은 계속해서 헤드비히 공주에게 몸을 향했고, 이민호가 물어도 슬쩍 고개만 돌린 채 대답했다. 이민호는 몹시 불쾌했으나 의전상 이게 맞았다. 그 동안 이민호의 후궁들이 느꼈을 감정을 처음으로 느껴봤다.

“귀족 여러분들은 들으세요.”

“예, 폐하.”

“고산국 국왕폐하는 사랑하는 내 남편이기 전에 아이슬란드의 공동 군주예요. 그리고 아이슬란드를 속국으로 거느린 종주국의 국왕폐하세요. 저보다 국왕폐하를 더 존중해주기 바래요.”

“여왕폐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헤드비히가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일을 잘해서 귀여웠다. 이민호가 아이슬란드의 지분 절반을 가진 공동 군주인 것은 맞으나 아직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귀족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폐하.”

“고맙소, 공주.”

이민호도 그 동안 공주가 귀족들을 다스리는 방법을 좀 배웠다.

“그 동안 아이슬란드를 수호한 귀족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요. 독립국인 아이슬란드 영토 안에서 귀족들의 특권은 앞으로도 계속 보장될 것이오.”

“감사합니다, 폐하!”

귀족들이 가장 불안해한 것이 귀족의 특권 보장 문제였다. 특히 영지 세습권에 가장 민감했다. 날씨만큼 우중충하던 아이슬란드 귀족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러나 이민호는 바로 그 영지 세습권을 귀족들로부터 빼앗아야 했다.

“귀족들은 앞으로 영토 방위에 전념하고, 어로와 목축을 하는 농민들을 보호할 것이며, 고산국과 덴마크가 합작한 서인도회사의 무역 중개기지인 이곳 아이슬란드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오.”

“아아! 이제 아이슬란드도 살만한 땅이 되는 것입니까?”

“물론이오. 유럽의 동급 귀족 대비 최고로 부유하게 만들어주겠소.”

페로 제도 주민들처럼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귀족들은 기쁨을 꼭 눌러 감췄다. 이민호가 영지 세습권 문제를 아직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족들도 들어봤겠지만 고산국에서 영토는 예외 없이 국왕의 소유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제안을 하겠소.”

“어떤 조건이라도 폐하의 칙명을 따르겠습니다!”

귀족들이 의외로 순순히 굽히고 들어왔다. 귀족이라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농업과 목축업은 생산성이 형편없었다. 웬만큼 보상해주면 쉽게 영지를 내놓을 사람들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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