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08 63.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 =========================================================================
63.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
다음 날 오전에 페로 제도로 출발했다. 그 전에 병사들에게 돈을 나눠줘서 쾨벤하운의 시장에서 기념품을 사게 했다.
병사들은 면직물을 비롯해 모든 물건이 비싸고 품질도 낮다고 투덜거리다가 수공예 장식품 위주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했다. 정말 토산품 수준이었으나 가격이 낮아 양은 많았다.
“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게 하세요? 덴마크 입장에서는 좋지만요.”
“덴마크 백성들과 우호를 다지기 위해서요.”
“역시 국왕폐하세요. 덴마크인들도 폐하께 고마워할 거여요. 아! 그래서 시민들이 함대를 환송하러 많이 나왔던 거군요.”
헤드비히 공주가 감사를 표했으나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다른 나라 상품 수준이나 시민들의 생활수준과 비교케 함으로써 고산국에 대한 병사들의 충성심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은 자본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요. 백성들에게 돈이 많이 돌면 백성들이 더 부유해지고, 세금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 늘어난다오.”
“맞아요. 백성들은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니까요.”
갓 10년 넘은 신생국인 고산국에서 산업을 발전시킨 것은 초기에는 수출이었으나, 지금은 국내소비가 급증하면서 그 지위를 차지했다. 농업과 경공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수출과 수입, 연관 산업을 다 합해도 전체 경제 규모의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현대 기준으로 소비의 취업유발 계수는 수출의 두 배였다. 투자도 소비보다 약간 낮은 정도로서 수출보다 훨씬 높았다. 부가가치 창출효과도 소비, 투자, 수출 순이었다.
산업 중에서는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의 고용창출 효과가 제조업보다 5배나 크고 선진국이 될수록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진다. 농업과 공업의 산업 비중이 높은 고산국은 공업화 과정 중에 있고 인구도 적어서 아직 충분한 서비스업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산업구조가 안정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현재 기준에 따라 500만에서 700만 사이인 인구도 앞으로 훨씬 더 불어나야 했다.
“덴마크는 아름다운 나라요. 내 백성들이 외국 여행을 하겠다면 덴마크를 첫 번째로 추천해주고 싶소.”
“고마운 말씀이에요. 저도 북미에 처음 가는데 기대가 커요.”
“북미는 아직 개척 초기라서 모든 게 엉망이오. 기대하지 마시오.”
“고산국은 엄청나게 발전한 부자 나라라고 에스파냐 사람이 쓴 책을 읽었어요. 과학은 물론 의학 수준도 굉장히 높다죠?”
“아직 멀었소. 의학은 유럽인 의사들이 연구를 도와준 덕택이오.”
현재 주변국에 비해 높은 임금과 본토와 북미 일부 백성들에게 매달 나눠주는 기본 소득이 고산국의 소득주도 성장(Income-led Growth)을 이끌고 있었다. 서민들은 돈 쓸 곳이 많았고, 소비 수요가 증가하면 기업은 당연히 신규 설비 투자와 추가 고용에 나서게 돼 있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은의 과잉 공급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인구가 비슷한 나라에 비해 고산국의 명목상 경제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서 금과 은을 한참 더 수탈해도 전체적인 가격 하락으로 인해 오히려 유럽인의 삶에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북미에서 농업 수입은 지나치게 많고 소비재 가격은 유럽은 물론 본토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낮았다. 고산국 본토와 북미, 유럽의 화폐 가치와 물가 수준 차이로 인해 이민호는 골치를 앓고 있었다.
“폐하! 보병들은 용병이라면서요?”
“구르카 여단 말이오? 아주 훌륭한 전사들이오. 알프스 산맥 같은 고지대에서도 평소와 똑같이 작전할 수 있소. 더 고지대에서 살던 사람들이라서 그렇소.”
“유럽에서는 알프스 고지대에 사는 헬베티아 용병들이 충성스럽기로 유명해요. 젊은이들이 할 게 용병밖에 없대요. 그래서 후배나 후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싸운대요.”
“저들도 고용주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오. 불쌍한 사람들이오.”
스위스와 구르카 용병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스위스와 앞으로 네팔이 건국될 히말라야 지역이 가난하다지만, 약소국이면서도 강대국들과 전쟁을 벌여서 나라를 지켜왔다는 점이 가장 훌륭했다.
영국군 소속 구르카 용병, 프랑스의 외인부대를 흔히 외국인 용병이라고 부르지만 법적으로는 일반 용병과 차이가 있었다. 두 조직은 1949년 제네바 협약 추가의정서 47조에 규정된 용병이 아니라 국가에 소속된 정규군이므로 국제적으로 합의된 용병 금지 조항의 예외였다.
“아! 저 마을에 결혼식이 있어요.”
함대가 외레순 해협을 빠져 나가면서 한적한 덴마크 농촌 마을을 지났다. 그러나 풍차와 교회, 집들만 있을 뿐 사람이 하나도 안 보였다. 결혼식이 진행되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아는 것이오?”
“낮인데도 풍차 날개가 엑스 자로 고정돼 있잖아요. 결혼을 축하한다는 의미예요.”
덴마크에서는 방앗간이 저녁에 문을 닫을 때, 그리고 폭풍우가 칠 때 번개를 맞지 않는다는 미신을 믿어 풍차 날개를 엑스 자로 고정한다고 한다. 장례식이 있는 날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고정시켰다.
덴마크 풍차는 네덜란드 풍차보다 약간 낮고 작은 것 같았다. 네덜란드에서는 풍차가 돌아가는 힘을 물을 퍼내는데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덴마크에서는 곡식만 빻기 때문이었다.
물론 풍차 달린 방앗간 건물이 충분히 커서 마을 사람들의 집회장소로 이용됐다. 나무나 판자가 아닌 벽돌을 높이 쌓은 풍차 방앗간은 감시탑이나 적이 침공했을 때 작은 보루 역할도 맡았다.
“공주는 앞으로 나보다 바쁘겠소. 북미와 아이슬란드, 덴마크에도 있어야 하지 않소?”
“폐하께서 북미에 계시는 동안에는 저도 북미에 있을게요.”
얼굴이 빨개지는 헤드비히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민호는 앞으로 일 년에 석 달 정도는 북미에 있거나 유럽을 들러볼 계획이었다.
베네치아 시녀들과 덴마크 시녀들, 그리고 갈라티아와 우크라이나 궁녀들 일부는 북미 별궁에서 거주하기로 했다. 비올레타를 설득해 갈리시아 시녀들과 함께 북미에 거주시키고 싶었으나, 필리핀 전 총독 부부가 아직 마닐라에 있어서 좀 더 설득할 예정이었다.
외레순 해협을 지나고 풍랑이 이는 스카게라크 해협을 지난 함대가 오슬로에서 정박했다. 아직 도시에 대화재가 일어나기 전이었고, 그래서 재건되면서 크리스티아나라는 이름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저 낡고 활기 없는 항구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페로 제도에 도착했다. 이 날도 역시 페로 제도에는 비가 왔다. 일 년 중 260일 동안 비가 온다고 했다.
“드디어 오셨군요, 폐하!”
덴마크 식민지 관리들이 눈물을 쏟으며 이민호에게 고마워했다. 그리고 덴마크 관리들이 떠난다는 소식이 퍼지기도 전에 주민들은 고산국 함대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나라가 바뀐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페로 제도 여러 섬의 주민 대표들이 와서 덴마크 관리들에게 선물을 주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저기, 관리들!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딱 한 달만 더 근무하는 게 어때? 북미에서 우리 관리들하고 인수인계해야 하잖아?”
“차라리 저희들을 바다에 집어던지십시오!”
수당을 대폭 올려주겠다 해도 덴마크 관리들이 고개를 저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관리들이 아니었다.
“알았네. 그럼 주민들이 민회를 통해 촌장을 선출해야겠어.”
“폐하. 잠깐만요.”
헤드비히 공주가 나서자 관리들이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대들은 아직 임무를 마치지 않았다!”
“공주님!”
“덴마크 관리로서 명예와 자부심은 어디로 갔느냐? 고산국 국왕폐하 말씀처럼 정상적으로 인수인계를 마치고 떠나도록 해라!”
“크윽! 예, 공주님.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덴마크 관리들이 꼬리를 만 것은 오로지 공주의 위엄 때문이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아랫사람들을 휘어잡는 위엄이 이민호에게는 없었다. 당연히 설득과 이익으로 이끄는 수밖에 없었다.
왕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위엄을 핏줄에 녹아들어간 천부적인 능력이라고 흔히 평가하지만 사실은 당연히 교육과 환경의 힘이었다. 그러나 자칫 지나치면 개념 없는 싸가지 왕족이 되기도 했다.
페로 제도는 좁은 면적인데도 섬이 큰 것만 18개로 나뉘어져 있어서 방어에 불리한 지역이었다. 여러 마을 대표자들을 불러 대포와 총을 나눠주고 덴마크 관리들이 한 달 동안 훈련을 시키도록 했다.
“페로 제도 주민들은 들어라! 이제부터 페로 제도는 나, 고산국 국왕의 영토다.”
“충성을 다할 테니 제발 저희들을 지켜주십시오, 폐하!”
페로 제도가 외국에 팔릴 거라는 이야기를 수십 년 동안 들어온 주민들은 곧 현실에 순응했다. 그리고 세금 받는 관리를 파견한 외에 신경을 거의 못 쓰는 덴마크보다는 고산국이 나을 거라는 기대도 가졌다.
인구가 5천 명밖에 안 되는 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해적의 약탈로부터 가족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민호는 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당연히 지켜줘야지. 태극기를 게양했는데도 약탈하는 해적이 있었나?”
“정말로 태극기를 내걸었더니 해적이 확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태극기가 뭔지 모르는 무식한 해적 놈들도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군. 화약 만드는 법은 아나?”
“아이슬란드에서 싸게 살 수 있습니다. 거긴 유황이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대서양 중앙해령이 위치한 곳이라서 매년 땅이 넓어지고 지천에 온천이 널려있는 곳이 아이슬란드였다. 거리가 가까우니 고산국 여객선이 화약을 사서 운반해줘도 좋았다.
“그럼 따로 여기서 화약을 만들 필요는 없겠군. 항구에 요새를 쌓고 대포를 배치한 다음 외국 어선들에게 입항료를 약간씩 받아서 섬을 위해 쓰도록 해라.”
“지금까지 공짜로 물과 얼마 없는 식량까지 빼앗아가던 어선들이 과연 입항료를 내겠습니까, 폐하?”
“입항료를 내지 않으면 고산국 해군이 나포할 거라고 해. 물론 해적은 사형이야! 아무래도 스코틀랜드 어선들 때문에 에든버러에 다시 가야겠군.”
페로 제도 사람들이 이민호와 함대를 번갈아 보면서 환성을 질렀다. 작년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함포 사격을 퍼부었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퍼진 듯했다.
“폐하! 잉글랜드 해적은 어떻게 합니까?”
“입항료를 안 내거나 약탈을 하면 동쪽 뉴캐슬 어폰 타인부터 서쪽 블랙풀까지 항구도시는 예외 없이 모조리 불태워버리겠다고 해!”
“설마 런던도 말씀이십니까?”
“런던이 항구도시니까 당연하지! 거슬리는 잉글랜드를 치고 싶은 내게는 좋은 기회야. 앗! 말이 헛 나왔다. 통역하지 마!”
“이미 통역했습니다, 전하.”
독일어 통역장교가 입맛을 다셨다. 덴마크 시녀와 이어지면서 요즘 통역실력이 부쩍 좋아진 탓에 자국어 수준으로 빠르게 통역을 할 수 있었다.
페로 제도 사람들이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을 보니 확실히 통역이 된 것 같았다. 지난 수백 년 동안 페로 제도를 약탈하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어민들 입장에서는 이제 좋은 날은 다 갔다.
“입항료를 받는 대신 항구에서 제공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구하기 쉬운 식수는 배마다 충분히 무료로 제공하고 식량과 술은 돈을 받고 팔도록 해. 판매용 식량과 술 공급은 북미에서 아주 싸게 해주겠다. 적당히 남겨먹도록.”
“감사합니다, 폐하!”
잘하면 페로 제도에 입항하는 어민들에게 판매하는 식량과 술만으로도 5천 명의 페로 제도 주민들이 먹고 살 수도 있었다. 고래잡이 금지에 대해서도 말을 해두어야 했다.
“폐하! 이곳에도 온천이 흔하니 선원들을 위한 목욕탕을 만들어주는 게 어때요?”
“오! 좋은 생각이오, 공주. 목욕탕도 만들라고 해야겠소. 건축자재가 좀 필요하겠소.”
외국 어선이라도 무조건 쫓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어민들을 통해 페로 제도 사람들이 소득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손님이 될 수 있었다.
해적질을 할 기회를 없애고 강제적으로 손님을 만들기 위한 시설 여러 가지를 페로 제도에 만들기로 했다. 부족한 건설자재와 비용은 첫 해에만 국왕인 이민호가 부담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북미 새원산에서 페로 제도에 대한 행정과 재정 부담을 지는 것으로 일단 결정했다.
“오늘부터 고래를 잡지 못한다. 저번에 내가 방문했을 때 약속했지?”
“그렇습니다, 폐하. 대신 오징어를 잡을 테니 약속하신 대로 식량을 나눠주십시오.”
“북미에 오징어를 팔면 돼.”
유럽에서 오징어를 먹는 나라가 에스파냐 빼곤 거의 없었다. 특히 말린 오징어는 사람 시체 태우는 냄새와 흡사하다고 해서 유럽인들이 기겁했다. 페로 제도에서 어획한 오징어 모두를 북미에서 소비해야 했다.
그러나 페로 제도에서 오징어를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다. 페로 제도는 비가 자주 오고 습도가 높다는 문제가 있었다. 위도가 높은데 비해 추운 곳은 아니었지만 겨울이 긴 편이었다. 얼리거나 반건조 형식으로 보관하는 방법을 주민들이 고민하기로 했다.
“문제는 고산국 영토는 죄다 예외 없이 국왕 소유라는 것이다. 이곳 페로 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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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 제도 조금 남았습니다. 다음은 아이슬란드입니다.
늦게라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