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04화 (553/1,000)

00604  62. 덴마크와 발트 해  =========================================================================

만찬 전에 조리사들이 비스툴라 석호 내의 다른 해안 마을 시장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구입했다. 이번 프로이센의 패배와 배상금 지급으로 인해 조만간 세금이 크게 오르겠지만 프로이센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은 물건을 팔 때는 일단 친절한 상인으로 변했다.

“배상금으로 1,500만 라이히스탈러를 받기로 했소. 3분의 1은 단치히 재건 자금으로, 3분의 1은 폴란드군이 갖는 게 어떻겠소?”

고산국 함대는 이틀 사이에 단치히를 불태우고 폴란드 후사르 중에서 천여 명을 사상시키고 쾨니히스베르크의 절반을 함포사격으로 날려버렸다. 이틀 사이에 벌인 일이 너무 많아 수습하는데 애를 먹을 것 같았다.

고산국이 두려워진 발트 해 상인들이 앞으로 거래를 회피할 가능성이 무엇보다 가장 뼈아팠다. 덴마크 서인도회사를 통하거나 뤼벡과 거래하더라도 그 관계를 아는 발트 해 상인들은 도시 두 개를 잿더미로 만든 고산국을 반드시 염두에 둘 것이다.

함포 사격 중에 프로이센의 배상금 지불 제안을 받아들인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배상금을 바치겠다는데도 거절하고 도시를 소멸시킬 경우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소리를 듣기 딱 좋았다. 앞으로 일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옛날에 네덜란드에게 한 것처럼 한자 동맹 도시들이 무역봉쇄를 결의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단치히와 후사르의 피해를 보상할 법적 책임은 없었지만 도의적 책임을 느낀 것도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폐하께서 베푸신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그 돈은 프로이센이 온전히 고산국 국왕폐하께 바치는 배상금일 것입니다. 저희들, 그리고 단치히는 프로이센에 따로 배상을 청구하겠습니다.”

야전 헤트만이 씩 웃으며 그 의도를 드러냈다.

“헤트만은 프로이센을 무척 경계하고 있군요.”

“프로이센은 폴란드의 가장 큰 약점이라 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손해 배상 청구는 단치히와 제가 지휘하는 병사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야전 헤트만은 군사지도자이면서도 원래 정치가답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프로이센을 극도로 경계했다. 국가를 위해 이런 지도자만 있다면 좋겠지만, 폴란드의 현실은 전혀 녹록치 않았다.

이민호는 슬그머니 만찬에 참석한 총함장 이순신의 얼굴을 살펴봤다. 실제 역사에서 이순신을 핍박한 선조 임금에 못지않은 국왕이 폴란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폴란드에서는 귀족의 권리를 최대한 확장하려는 세임도 문제였지만 특히 국왕 시기스문드 3세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욕심이 많다는 것이다.

비록 개신교와 동방정교회를 비롯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더라도 여전히 가톨릭이 우세한 폴란드와, 신교도 혁명을 성공시킨 스웨덴 양쪽의 왕좌를 모두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부왕인 스웨덴 국왕 요한 3세나 참모들은 시기스문드에게 두 나라 중 하나를 포기할 것을 권했었다.

보통은 앙리 3세처럼 권한도 적고 세습권도 없는 폴란드 국왕을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시기스문드도 폴란드 국왕을 포기하려다가 결국 양쪽 모두를 가지려 했고, 스웨덴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스웨덴 왕위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계속해서 폴란드와 스웨덴이 싸운 것은 스웨덴 왕좌에 대한 시기스문드의 집착 탓이 컸다.

실제 역사에서 1610년 러시아의 귀족 평의회 ‘일곱 보야르’가 차르 바실리 슈이스키를 폐위시키고 시기스문드의 15살 난 아들 브와디스와프를 차르로 선출했다. 그러나 시기스문드는 아들이 동방정교회로 개종하거나 모스크바로 가서 차르로 즉위하는 것을 막았다.

시기스문드는 러시아인 전체를 가톨릭으로 개종시켜 자기가 직접 통치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기가 루스 차르국의 섭정을 하겠다고 제의했다가 나중에는 직접 차르를 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통에 결국 아들이 루스 차르국의 차르로 즉위하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 러시아 지역을 합병해 신성로마제국에 버금가는 대제국을 만들고 싶어 하던 폴란드 귀족들의 열망이 이로 인해 물거품이 됐다.

“폐하! 이 기회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군주를 만나보고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글쎄요. 시간이 없어서 배상금만 받으면 돌아가려고 하오.”

이민호는 욕심쟁이 꼬마 같은 시기스문드 3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폴란드 국왕의 국제적인 평판을 익히 아는 헤트만이 싱긋 웃어 공감을 표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신다면 폴란드 국왕으로 입후보하십시오. 제가 밀어드리겠습니다.”

“헤트만은 농담도 잘하시오. 폴란드를 위해 일할 사람이 폴란드 국왕이 되는 게 좋을 것이오.”

욕심쟁이 국왕과 탐욕스런 세임 밑에서 일하는 헤트만이 가엾어 보였다. 국왕은 공격 명령을 내리고 세임에서는 예산 배정을 안 해주는 상황이 일상적인 폴란드에서 중간에 낀 대 헤트만과 야전 헤트만만 괴로워질 것 같았다.

대 헤트만이 국왕이 참석한 세임의 공개석상에서 국왕을 성토하거나, 세임에 병력을 이끌고 가서 의원들을 협박하는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그러나 야전 헤트만은 그런 일 없이 항상 충직한 군인이었다. 대신 남부에서 영지를 미친 듯이 개척해 자기 돈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제가 프로이센을 경계하듯 폐하께서는 루스 차르국을 경계하시는 것 같습니다. 폴란드도 루스 야만인들의 잠재력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동서 양쪽에서 루스 차르국을 압박하거나 영토를 분할할 가능성을 두고 협력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좋은 제안이지만 고산국은 영토를 확장할 생각이 별로 없소. 다만 루스 차르국이 동쪽으로 진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소.”

“앞으로 루스 차르국 내부에서 계속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당분간 동쪽으로 확장할 여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 좋겠소만.”

만찬이 끝나고 나서 이민호는 야전 헤트만을 위해 폴란드 국왕에게 친서를 썼다. 지금까지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 고산국과 친선을 유지하자는 제안이었다.

폴란드 국왕에게도 프로이센이라는 영토는 특별한 지위에 있으므로 고산국 함대가 쾨니히스베르크를 포격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거라고 야전 헤트만이 보장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영토 침공을 이유로 고산국과 폴란드가 적대 관계로 돌변할 수도 있었다. 나라에 충직하면서도 유연한 사고를 하는 야전 헤트만과 싸우게 될지도 몰랐다.

이틀 후 정오가 다가왔다. 그러나 손해 배상금을 싣고 와야 할 프로이센의 배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민영이 고개를 길게 빼고 강 하구를 살폈다.

“공작령에서 배상금을 못 구했을까요? 프로이센이 망할 것 같으니까 유대인들이 돈을 안 빌려줄 수도 있잖아요.”

유대인들은 종교 때문에 유럽이나 이슬람 지역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았고, 당연히 영주들이 그 재산을 노렸다. 그러나 영지민들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는 권력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천 년 동안 재산을 지켜온 자들이 유대인이었다. 아무리 유대인 부자를 잡아와서 고문하고 협박해봤자 대부분의 재산은 꼭꼭 숨겨져 있었다.

이제는 권력자들도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을 가능성이 적고, 그들에게 사업과 재산권을 보장하면서 급전을 빌리는 편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판단이 통용되고 있었다. 군사력 같은 강제력 없이 채권을 보호하고 회수하는 방법은 샤일록 같은 유대인들이 가장 잘 알았다.

무사계급에 대한 상인들의 채권을 소멸시키는 덕정령(德政令)을 반포해 오히려 일본 무사계급의 경제상황을 악화시킨 것이 일본의 막부였다.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채권은 아예 발생하지 않거나 이자에 더해 위험부담금이 잔뜩 덧붙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채권을 보장해줄 방법을 협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배상금으로 낼 돈이 아깝나봐.”

헤드비히 공주와 이민호의 생각은 완전히 극과 극으로 떨어져 있었다. 왕족 출신인 헤드비히와 달리 이민호는 정치가나 권력자들을 믿지 않았다.

“공주! 공작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해도 유대인이 그런 큰돈을 쾨니히스베르크에 보관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다른 도시에서 돈을 운반할 시간으로 이틀은 너무 부족하오.”

“있어요. 금괴 형태로 바꿔서 지하실이나 벽에 감춰놨을 거여요. 거긴 다른 곳이 아닌 쾨니히스베르크니까요.”

무슨 자신감인지 헤드비히 공주가 씩 웃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판단하기에 라이히스탈러 은화의 전체 유통량도 1,500만이 안 될 것 같았다. 대화하는 중에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는 여전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정오가 되면서 함대가 함포 사격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포격 개시 직전에 프레겔 강 하구에 중간 크기의 상선 하나가 나타났다.

배가 급히 국왕좌승함에 접현하려 하기에 멀찍이 떨어뜨려놓았다. 그리고 해병들이 단정에 타고 가서 배 밑창까지 샅샅이 수색했다. 배에 화약을 잔뜩 싣고 와서 국왕좌승함에 붙어서 터뜨릴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가져왔나? 안 가져왔으면 할 수 없지.”

“가져왔습니다!”

“신용이 좋군.”

약속을 지켜서가 아니라, 이틀 만에 그 큰 금액을 빌려온 것에 대한 치하였다. 그런데 프로이센 관료들이 국왕좌승함으로 운반하는 나무상자 안에는 벽돌이 잔뜩 들어 있었다. 중고물품 거래를 하면서 택배를 받아보니 상자 안에 벽돌이 들어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간이 촉박해 미처 칠을 벗기지 못했습니다.”

“어용상인들이 벽돌 표면을 긁어서 확인해!”

1,500만 라이히스탈러는 은 3억 그램, 3백 톤이었다. 이 시기 이 지역의 금과 은 교환비율은 14를 중심으로 변동했기에 황금 21톤보다 조금 많아야 계산이 맞았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유대인들은 금괴를 벽 안에 숨기지 않고 아예 벽돌로 만들었다. 그런데 새빨간 벽돌 모양과 색깔이라서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용상인이 표본 조사를 한 다음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금괴 20개를 조사해봤습니다, 전하. 금 함유량 96퍼센트로 균일한 벽돌 22톤입니다. 벽돌을 녹여서 새로 금괴를 제조하는 비용을 감안해도 1,500만 라이히스탈러를 확실히 넘습니다.”

“순금 함유량이 낮군.”

“대신에 무척 견고합니다. 국왕전하의 침전을 5인치 함포탄에 버틸 수 있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때 교섭사절이 이민호에게 다가와 정중히 절을 올렸다. 노인이 이틀 만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뼈만 남았다.

“폐하! 이제 고산국과 프로이센의 은원관계는 없는 것으로 해도 될는지요?”

“없다. 그럼 이제는 야전 헤트만과 대화를 해보도록.”

헤트만이 교섭사절에게 제시한 청구서의 목록은 다섯 장에 달했다. 노인이 읽으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고산국 함대의 포격으로 인해 발생한 전사자들 위로금이나 부상자 치료비, 전마 구입비는 인정하겠습니다. 후사르가 작전 기간 동안 소모한 보급품 비용도 지급하겠습니다. 그러나 툴롱의 포도주 대금은 도대체 뭡니까?”

“어. 후사르 전체가 고산국 배에 탔는데 식사 때 헝가리산이 아니라 프랑스 툴롱에서 양조한 포도주가 나오더라고. 후사르들의 입맛이 고급이 돼 버렸어. 앞으로 툴롱 포도주만 마시겠다고 해서 문제란 말이야. 그래도 10년치만 계산했으니까 너무 낙심하지 마.”

“말도 안 됩니다!”

“요하네스 자작! 청구액을 거부해도 좋아.”

후사르들의 입맛이 고급으로 변한 것은 일종의 직무로 인한 부상이나 산업재해였다. 인상을 쓰는 야전 헤트만과 피식거리며 웃는 이민호를 번갈아보던 자작이 결국 받아들였다.

“야전 헤트만께서 청구한 351만 라이히스탈러를 1년 내에 지급하겠습니다. 그러나 단치히 재건 자금은 재건 상황에 맞춰 10년 동안 분할해서 지급하겠습니다.”

자작이 돈이 없고 더 이상 빌릴 수도 없다면서 배 째라 하고 나왔다. 야전 헤트만도 어쩔 수 없이 이자 1할을 가산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쾨니히스베르크 시가지 절반이 무너지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인해 앞으로 프로이센이 최소 30년 동안 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헤트만은 판단했다. 그러나 헤트만에게는 당장 후사르들에게 지급할 현금을 얻지 못했다.

“동맹군으로 함께 싸웠으니 나도 위로금을 지급하겠소.”

“쿨럭!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폴란드 귀족들 중에서 가장 부자라는 제가 폐하께 돈을 받으면 욕먹습니다.”

야전 헤트만의 자존심을 고려해서 억지로 받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폴란드군 헤트만들이 군대를 사병조직으로 바꾸려면 언제든 가능할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국왕의 군대를 대리해서 지휘하기도 하는 헤트만에게는 자체 징병권과 보급품 징발권이 있었으니 더 쉬웠다.

그러나 귀족들이 보유한 사병과 지방군이 또 따로 있었다. 전투가 진행 중인 전선에 투입할 병력은 많지 않더라도 폴란드 전체가 보유한 병력은 훨씬 많은 셈이었다. 그러나 내전에 도움이 될 귀족의 병력은 정작 외국군의 침공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폐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은 어떻게 하실 거여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지요.”

그래서 함대는 다음 날 쉬테틴, 폴란드어로 쉬체친에 도착했다. 베를린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항구 도시였다. 또한 발트 해를 통해 들어온 러시아의 모피가 제국의 길, 비아 임페릴을 통해 남쪽으로 향하는 길이 시작되는 항구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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