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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598화 (547/1,000)

00598  62. 덴마크와 발트 해  =========================================================================

- 쿠쾅!

- 우르릉~

3인치 함포가 적이 있거나 있을만한 창문과 지붕을 향해 불을 뿜었다. 그때마다 벽돌로 쌓은 빨간색 건물들이 뻥뻥 뚫리거나 한 층 정도는 그냥 무너졌다.

이 시대에 총기는 대부분 화승을 사용했기에 희미한 연기나 작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에는 어김없이 머스킷 병이 숨어 있었다. 해병과 수병들은 그런 창문이나 지붕을 노리고 있다가 총구와 함께 사람 모습이 보이는 순간 먼저 발사했다.

- 타타탕!

- 뚜두둣! 뚜둣!

폴란드군은 건물에 숨어서 쏠 뿐만 아니라, 가끔 30명쯤 되는 총병들이 강변도로로 몰려나와 일제 사격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함재 기관총의 훌륭한 표적이 될 뿐이었다.

똑바로 서서 총구에 화약을 넣거나 꽂을대를 쑤시던 총병들이 도망도 못 가고 차례로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그런 자들은 차라리 운이 좋은 편에 속했고, 보통은 줄 맞춰서 사격 자세를 잡기도 전에 기관총이 먼저 발사돼 줄줄이 쓰러졌다.

“함교 장갑판을 닫습니다.”

“차앙!”

창문을 닫듯이 함교 앞을 두꺼운 장갑판이 가로막았다. 장갑판은 원래 티크목으로 만들었는데 최근에 철판으로 교체됐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던 것도 좌우에서 닫는 식으로 바뀌었다.

잠시 함교 안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작은 관측창이 충분히 많아서 함교 안에서 얼마든지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관측창 세 개를 화가들이 차지해서 미친 듯한 속도로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함장이 화가들을 위층 관측실로 쫓아 보냈다. 위로 올라간 화가들이 함교보다 전망이 더 좋다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 텅!

- 쾅! 쾅!

어디선가 대포를 발사해 국왕좌승함 좌현에 포탄이 명중했고, 3인치와 5인치 함포가 즉각 응사했다. 골목 사이에 배치된 대포에 포탄을 장전하려던 폴란드 포병들이 대포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

“국왕좌승함이 적의 포탄에 피격된 것이 이로써 건국 이후 열두 번째입니다, 전하.”

“깜짝이야! 사관은 그 동안 어디에 있었어?”

“항상 전하의 곁에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국왕좌승함에 탑승한 사관이 3명인데 다들 뱃멀미로 2주쯤 드러눕는 바람에 그 동안 잊어먹고 있었다. 가끔 집무실 구석에 꿇어앉은 사관이 사초를 기록하는 모습을 봤었다.

덕택에 집무실에서 야한 짓을 못하게 됐다. 조선 국왕들이 사관을 싫어했던 이유를 이민호도 절실히 알게 됐다.

“순양함은 유럽 대포로부터 안전하다니까? 포르투갈 상인들에게서 여러 가지 대포를 사서 직접 사격 시험을 해봤어.”

“위험한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기록할 뿐입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국왕전하께서는 ‘그래. 알았다, 알았어.’라고 말씀하셨다. 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전하.”

사관이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괜히 사관 제도를 만들었다. 최소한 원정에 참가시키는 것이 아닌데 이제야 후회가 됐다.

- 타타탕! 탕!

가는 곳마다 폴란드군이 총을 쏘았다. 그러나 함대에서 매 순간마다 더 많은 총병들이 반격을 가했다. 단치히 전체적으로 폴란드군이 더 많더라도 순양함과 수송선들이 실제 교전하는 지역에서는 수적 우위가 계속 유지됐다.

해병들은 물론 비번인 수병들까지 두툼한 장갑판 뒤에 숨어 작은 총안구를 통해 총격을 가하고 있었다. 순양함을 건조한 이후 여러 번 함상 전투를 수행했어도 몸을 드러내고 싸울 일이 없기에 해병과 수병의 인명피해는 그 동안 거의 없었다.

그러나 화력과 방어력이 빈약한 수송선은 좀 달랐다. 그래서 순양함 두 척을 앞에 세우고 국왕좌승함이 세 번째로 달렸고, 중간에 수송선 여섯 척을 2열로 배치했다. 그리고 가장 뒤에 순양함 두 척이 따르는 방식으로 함대가 진행했다.

“선도함 전방에 작은 배가 항로를 가로막았습니다. 선도함에서 경보를 울리면서 비키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화약을 잔뜩 실은 화선일 가능성이 있다! 당장 날려버리라고 해!”

민간인들이 탄 배가 우왕좌왕하느라 미처 못 비켜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선도함 역할을 맡은 순양함의 안전, 더해서 나머지 배에 탄 수병과 해병, 선원들의 목숨이 달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적대적 수역에서 민간인 배는 중립이라고 할 수 없었다.

- 콰콰쾅!

“엄청난 폭발입니다. 선도함과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폭발이 강해서 함수에 약간 손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선도함을 바꿔!”

함장이 통신으로 지시하자 두 번째 배가 속도를 올려 검은 연기를 뚫고 선도함을 추월했다. 그 사이 아주 잠깐 적의 공격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전하! 선도함이 운하로 접어듭니다.”

“선도함만 잠깐 속도를 올려서 충분히 앞서라고 해.”

강 하구로 빠지는 운하에 진입하기 위해 국왕좌승함이 왼쪽으로 급하게 선회했다. 그런데 강보다 운하 양안에 더 많은 대포와 총병이 배치됐는지 양쪽 육지에서 하얀 연기가 연속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에서 대포를 쏴도 쇠로 만든 구형 포탄이 순양함의 두꺼운 장갑판을 뚫지 못했다.

발사를 마쳤거나 발사 직전인 폴란드 대포와 총병들을 선도함에서 훑고 지나가면 두 번째 순양함이 나머지를 쓸어버렸다. 그래도 살아남은 적은 국왕좌승함에서 확인 사살했다. 수송선에서도 2층 방호 갑판에 선원들이 숨어서 적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적이 범노선을 운하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배를 자침시켜 운하를 막으려는 모양입니다.”

“그 전에 아주 잘게 부숴줘.”

국왕좌승함 함장이 지시를 하기도 전에 선두에 선 순양함 두 척에서 연속 불을 뿜었다. 노를 저어 움직이던 범노선은 운하 중심으로 다가가기도 전에 실컷 두들겨 맞은 다음 가라앉았다.

돛이 달리지 않은 범노선이 가라앉았어도 물 위로 돛대 세 개가 남아 있었다. 수송선들이 두 줄로 연속 지나가면서 돛대를 모두 부러뜨렸다. 돛대가 암초보다 단단하지는 않았다.

“총함장님입니다, 전하.”

“형님!”

함장이 건네는 수화기를 이민호가 얼른 받아들었다. 꿋꿋하게 전투를 지휘하던 이민호는 갑자기 안심이 되고, 이순신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싶어졌다.

- 전하! 무사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아직 아무런 피해가 없습니다. 지금 적의 공격을 뚫고 나가는 중인데, 강 하구 쪽은 어떻습니까?”

- 해안 요새가 전투에 가담해서 그들이 대포를 돌리기 전에 날려버렸습니다. 강 하구를 장악하고 마중 나가는 중입니다, 전하.

그때 강 하구 쪽에서 포성이 연속 울리고 몇몇 방어시설이 포격에 박살나는 모습이 여기서도 보였다. 폴란드 총병 수십 명이 일제히 달아났으나 몇 걸음 못 뛰고 한 발씩 맞아 나자빠졌다.

“총함장님의 기함이 선두에 섰습니다!”

“중간에 적의 요새가 있다는 사실은 알렸지?”

“물론입니다. 아! 바로 포격을 퍼붓고 있습니다.”

강 하구에서 꺾여 들어오는 위치를 지나던 함대 기함과 순양함에서 5인치 주포와 3인치 함포 2문을 연속 발사했다. 강 동안에 둥그런 원통형의 높은 감시탑 겸 포탑을 원형의 3층 높이 성벽이 둘러싸고 다시 이중 해자로 보호받는 식으로 건설된 요새에서 연속 폭발이 일어났다.

“목표가 너무 크다. 우리도 가세해!”

“예! 함수 한 시 방향 요새, 집중 포격!”

대략 8층 건물 높이의 원통형 포탑 정상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정상 부위에서 대포를 쏘려던 폴란드 포병들이 우수수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5인치 함포 여러 발을 집중적으로 얻어맞은 포탑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뒤로 기울어져 쓰러졌다. 뿌연 흙먼지가 하늘 높이 치솟는 가운데 3층 높이의 원형 성벽도 집중 포격을 당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졌다.

“총함장님이 호위하는 동안 강 하구로 빠져 나가겠습니다.”

“알았다. 우리 배들이 빠져 나간 즉시 기함도 퇴각하라고 전해.”

“물론입니다.”

총함장 이순신이 지휘하는 순양함들이 양쪽 강변에 가까이 붙어서 지상을 향해 함포를 쏘았다. 아군 함선들이 공간을 내준 사이로 선도함부터 수송선들과 후미함까지 안전하게 강 하구에서 빠져 나갔다.

그리고 드넓은 발트 해로 접어들었다. 기함과 다른 순양함들도 후진해서 빠져 나왔다.

“휴우! 인명피해 있나 확인해.”

“화선의 폭발에 휘말린 선도함 11함 갑판사관이 약간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외에는 없습니다.”

“다행이군. 그런데 이놈의 단치히!”

이민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단치히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나 함교에서 고개를 뒤로 돌려봤자 함교 벽면만 보인다.

함교 벽에는 시계가 걸려 있었다. 이민호가 함대 전체로 통하는 통신기에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오후 세 시에서 10분 전이라. 국왕좌승함이다. 전 함대, 지금부터 10분 동안 단치히 시가지에 포격을 실시한다. 지도에 나온 그대로다.”

전단장이 전대별로 표적을 배분해서 단치히에 대한 포격을 가했다. 민간인도 많이 다치겠지만 폴란드군의 매복 공격에 한자 동맹 소속 단치히도 가담한 이상 그 책임을 물어야 했다.

- 콰쾅! 쾅!

수송선들은 함포 1문 당 세 발씩만 발사했고, 순양함 24척에서 10분 동안 단치히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단치히 시내에서 검은 연기 수십 줄기가 치솟았다.

“비스와 강을 따라 남하하면 300km 정도에 바르샤바가 있군.”

“함대를 강으로 들이시려고요? 중간에 좁은 곳도 많아요, 폐하.”

이민호가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헤드비히 공주가 아주 질렸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으나 공주는 별로 겁을 먹은 것 같지도 않았다.

“시기스문드라는 놈, 대단하지 않소? 우리가 단치히에 올 것을 알고 미리 매복을 준비하다니 말이오.”

“폴란드 국왕이 공격을 준비했을 리가 있나요? 우리가 칼마르와 비스뷔를 거쳐 단치히에 온 시간은 겨우 며칠밖에 안 걸렸어요. 단치히 상인이 우릴 칼마르에서 봤다고 해도 아직 바르샤바에 보고하러 가지도 못했을 거여요.”

생각해 보니 통신기가 없는 폴란드에서 스웨덴과 동맹한 것을 알고 벌써 대응할 시간이 없었다. 마침 바람이나 해류가 맞아서 뱃길로 하루에 칼마르에서 단치히까지 갈 수 있다 해도, 육로 300km는 하루 이틀만으로 갈 거리가 아니었다.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국왕이 보고를 받고 급히 병력을 단치히에 보낸다 해도 최소 열흘은 걸렸다. 단치히 근처에 폴란드군의 숙영지가 있어서 전령만 급히 보내더라도 겨우 하루 이틀을 단축할 수 있을 뿐이었다.

“엥? 그럼 적 지휘관의 정체가 뭐요? 대 헤트만이오?”

“대 헤트만은 몰다비아에 있으니 아마 귀족이나 야전 헤트만이 상황 판단을 했을 거여요.”

대 헤트만은 폴란드 국왕 다음으로 군권을 쥔 자였으나, 한동안 국왕으로부터 거의 독립적으로 지휘권을 휘둘렀다. 반역죄를 지은 경우를 제외하면 파면시킬 수 없기 때문에 종신직이 되었다.

연방원수로 번역되기도 하는 대 헤트만 외에 야전 헤트만이 한 명 더 있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각각 한 명씩 있었으므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에서 다 합해서 4명의 헤트만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스타니스와프 주키에프스키(Stanisław Żółkiewski)가 폴란드의 야전 헤트만을 맡고 있었다. 얼마 전에 우크라이나 코사크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서 세베린 날리바이코를 항복시켰으나, 바르샤바에 사형을 당하는 바람에 크게 낙담했다. 지금은 몰도비아 전선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적이 있었다.

“폴란드 국왕이 스웨덴에 겨우 몇 천 명, 그것도 용병 위주로 끌고 갔다가 패했으면서 여기서는 잔뜩 동원했소. 총병과 포병을 합하면 못해도 3천은 넘을 것이오. 눈에 안 띄는 기병과 창병을 합하면 최소한 일만이 넘는 군세를 동원했소.”

“저도 폴란드군이 어떤 병력인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국왕군은 아닐 거여요.”

“혹시 폴란드 귀족들은 스웨덴과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오? 스웨덴 왕위를 되찾는 것을 국왕의 개인적인 일로 보느냐는 뜻이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다만 폴란드 귀족들은 스웨덴과의 전쟁이 에스토니아에만 국한되길 원해요. 특히 곡물 수출량을 늘려줄 수 있는 발트 해에 접한 항구를요.”

“폴란드가 발트 해에서 거의 유일한 곡물 수출국이라고 들었소.”

“스웨덴이 에스토니아를 다시 점령하기 위해 먼저 공격할 테고, 에스토니아에서도 리투아니아 대 헤트만이 스웨덴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거여요.”

그러나 단치히는 곡물 수출항으로서 폴란드에 매우 중요한 항구였다. 30년 전쟁 때 뒤늦게 참전한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도 포메라니아에 상륙해 단치히를 점령하려 했다. 단치히의 전략적 가치가 높으므로 스웨덴군이 이곳에 상륙할 것에 대비해 폴란드군을 미리 배치해놓을 수도 있었다.

“스웨덴이 선제공격할 수도 있다고요? 설마 스웨덴이 폴란드에게 이기겠소? 인구가 백만밖에 안 되는 스웨덴은 날개 달린 치킨, 아니 후사르로 유명한 인구 천만의 폴란드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오,”

“동원 가능한 병력은 비슷할 거여요. 게다가 폴란드의 주력은 현재 몰다비아 전선에 묶여 있어요.”

70년 전인 1529년에 오스만 제국이 속국 몰다비아를 사주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 남쪽 영토인 포쿠티아를 두 번 연달아 침공했다가 떼몰살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폴란드의 대귀족 가문 셋과 몰다비아의 군주가 혈연으로 연결돼 군주 계승권 문제가 불거졌다.

그리고 명목상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의 지배하에 있는 코사크들이 틈만 나면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노략질했다. 역시 명목상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는 크림반도와 흑해 연안의 타타르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영토를 공격했다.

광범위한 초원에 흩어져 거주하는 유목민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오스만 제국이나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서로 원수 사이인 타타르와 코사크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공멸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런데 두 나라 모두 상대 유목민에게 국경지대가 약탈당할 때마다 지배하에 있던 유목민들에게 보복을 시키다 보니 상황이 더 나쁘게 돌아가, 결국 종주국끼리 대결하게 됐다.

1593년부터 시작된 몰다비아 전쟁이 지금도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폴란드군의 주력이 몰다비아 국경에 고정적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 이 전쟁은 1617년에 끝나지만, 그 이후에도 1699년까지 두 제국 사이에 세 번의 전쟁이 더 이어진다.

============================ 작품 후기 ============================

길어서 일단 끊었습니다만, 단치히에 대한 함포 사격이 아직 안 끝났습니다.

폴란드와 스웨덴이 동원 가능한 병력이 비슷한 이유도 곧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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