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96 62. 덴마크와 발트 해 =========================================================================
칼마르 해협에서 빠져 나와 점심 때 고틀란드 섬의 비스뷔에 입항했다. 태극기를 확인한 비스뷔 항구에서 허연 연기를 길게 뿜어내는 예포를 연속 발사해 함대를 환영했다.
“고틀란드 섬은 스웨덴 영토 가까이 있는데 국적이 애매하군요. 명목상으로는 덴마크 영토가 맞는 것 같소.”
“고틀란드 섬처럼 주인이 자주 바뀐 섬도 드물 거여요. 서쪽의 비스뷔는 1361년 발데마르 4세께서 정복했어요. 해적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결국 고틀란드를 돈 주고 다시 사야 했지만요.”
비스뷔 성 바깥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한 덴마크군이 성벽 일부를 무너뜨리고 성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발데마르 4세는 커다란 맥주 통 세 개를 금과 은으로 가득 채우지 않으면 병사들을 풀어 비스뷔를 약탈시키겠다고 시민들을 위협했다.
그러나 신부들이 교회 재산을 탈탈 털어서 맥주 통 안에 쏟아 부었다. 조건이 충족되자 비스뷔에 대한 약탈은 없었다.
1390년대 초부터 비스뷔를 포함한 고틀란드 섬 전체가 비틀 협회라는 해적 집단에게 약탈당하다가 결국 완전히 점령됐다. 비틀 협회(Victual Brothers)는 1392년 덴마크가 스톡홀름을 포위했을 때 발트 해에서 해전을 수행하고 스톡홀름에 대한 식량공급을 위해 메클렌부르크 공작에게 고용된 사략선단이었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은 사략선단은 자연스럽게 해적단이 되어 발트 해와 해안 마을들을 노략질하고 다녔다. 처음에 비틀 협회를 지원해주던 한자 동맹 자유시들과 상선들도 약탈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덴마크가 비틀 협회를 토벌할 때 한자 동맹 도시들을 동원시켰고, 이는 한자 동맹이 쇠퇴하는 전조가 되었다. 결국 1398년 튜턴 기사단이 비틀 협회를 쫓아내고 비스뷔와 고틀란드를 정복했다. 그러나 남은 해적들에 의해 발트 해는 끊임없는 혼돈 속에 빠져 들었다.
고틀란드를 영지로 갖고 있던 튜턴 기사단은 1409년에 이 땅을 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의 여왕인 마르가레트에게 팔았다. 그러나 1411년 포메라니아 왕 에릭이 비스뷔 성을 쌓아 거주함으로써 비스뷔는 해적 소굴로 변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상업활동이 정지된 비스뷔는 1470년에 한자 동맹 자유시에서 쫓겨났다. 급기야 1525년에는 그 동안 반목하던 뤼벡 상인들이 비스뷔에 쳐들어가 시가지를 불태워버렸다. 실제 역사에서 스웨덴이 고틀란드를 정복한 것은 1645년이었다.
“공주, 아니 여왕의 설명을 잘 들었소.”
“아직은 여왕이 아니랍니다, 폐하.”
그러나 헤드비히 공주는 지금도 여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아이슬란드를 장악하기 위해 단 며칠 사이에 개인 기사와 관리들을 모아서 보내고 뤼벡과 칼마르에서 여러 가지 거래를 성사시켰다. 정치적, 외교적 능력에 더해 상거래에 밝아 마치 류큐 왕국의 아라 공주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헤드비히 공주는 이 시대에 드물게 여기사였다. 창날을 자를 때 공주가 기병도를 휘두른 속도를 떠올리면 지금도 섬뜩했다.
“폐하! 혹시 해달 모피를 더 많이 구할 수는 없나요? 유럽 왕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들었어요. 최고급 모피라는 검은담비보다 2~30배나 비싼 가격을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모피를 손에 쥐고 나서야 이해하게 됐어요.”
“해달은 아시아와 북미 서부 해안에서도 무척 희귀한 동물이오. 더 많이 잡았다간 멸종하고 말 것이오. 학자들이 서식지를 주도면밀하게 연구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은 매년 2천 마리 수준만 잡기로 했소. 물론 원주민들이 잡은 것을 교역을 통해 입수하고 있소.”
태평양 탐사전단의 노력으로 해달의 서식지 분포를 확인했다.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 연안에 서식하는 해달 2종류와 북서 태평양 해달은 생김새와 생태가 약간 달라 각각 아종으로 구별됐다.
해달의 생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오호츠크 해가 겨울에 얼어붙는 이유를 알아냈다. 혹독한 추위 탓도 있었지만 흑룡강, 즉 아무르 강 수계에서 대량으로 쏟아지는 민물 때문에 바다의 염도가 낮아진 탓이었다.
결빙기를 제외하고도 그리 넓지 않은 오호츠크 해의 어획량이 전 세계의 10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물고기가 풍부했다. 꽃게와 킹크랩 등 저서무척추 동물들이 바다 바닥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밀생했다. 참고로 2010년대에 알을 밴 명태만 100만 톤의 어획고를 올렸다.
“상황에 따라 줄어들 수도 있겠군요. 비버는요? 털모자 재료로 아주 인기가 좋아요.”
“아직은 물량에 여유가 있소만, 비버를 남획하면 곤란한 문제가 따른다오.”
18세기 북미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비버 모피가 연간 26만 장 수준이었다. 그런데 비버는 나무를 갉아 쓰러뜨려 물에 빠뜨리고 그것으로 집을 짓고 댐을 쌓는다. 댐은 하천의 수위를 유지함으로써 수생생물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물에 잠겨 썩는 나무에서 유기물질이 분해된다. 이것을 수서곤충이 먹고, 곤충을 개구리와 물고기가, 물고기를 물새가 먹어 하천 생태계가 균형을 이룬다.
비버를 적당히 잡는 것은 상관없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북미 원주민들이 비버를 잡아 옷이나 천막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어도 균형은 유지됐다. 그러나 비버 모피가 인기를 끌면서 북미 원주민들이 비버를 집중적으로 잡아들이면서 문제가 커졌다.
“그래서 원주민 일인당 일 년에 두 마리, 새원산에서 교역하는 비버 모피를 총 5만 장으로 제한하셨다고요?”
“두 마리만 잡아도 한 가족의 겨울 양식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소.”
새원산에서 구입량이 5만 장을 넘어가는 순간 비버 모피 교역이 중지됐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원주민들끼리 다음 해의 모피 교역에 대비해 서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민호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원주민들에 의한 비버 남획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됐다.
“폐하께서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동물과 자연까지 지배하고 계시는군요.”
“자연을 지배한다기보다는 그 반대요.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 아니겠소? 자연의 균형이 유지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오.”
“맞아요. 북해와 발트 해에서도 대구와 청어 어획량이 급감할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발트 해에서 청어를 거의 무한대로 잡았는데 지금은 북해에서만 청어가 나요.”
청어가 발트 해에서 북해로 옮겨간 것을 기후변화로 보기도 하지만, 남획으로 인한 멸종으로 볼 수도 있었다. 이는 연안 국가의 흥망성쇠를 불러오기도 했고 현대 들어 전쟁을 일으킬 뻔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는 20세기 중후반에 국가경제를 전적으로 대구 어획에 의존했으므로 근해에서 대구를 잡는 영국 어선들에게 민감하게 대응했다. 그래서 배타적 경제수역을 획정하고 영국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전쟁을 해도 피해도 망할 위기에 처한 아이슬란드는 연안경비대의 소형 경비정들을 동원해 영국 함대에 맞섰다. 전쟁 직전으로 가던 분쟁은 끝내 영국 해군과 어선들이 물러남으로써 끝났다.
“카를 공작은 언제쯤 폐하의 명을 받들어 루스 차르국을 칠까요?”
“헉! 내가 언제 그런 명을 내렸단 말이오? 그리고 카를 공작이 내 명령을 들을 사람이오?”
“폐하께서 분명히 스웨덴 국내의 가톨릭과 화해하고, 핀란드에서 세금과 부역 부담을 줄여 핀란드 지역을 안정시키고, 덴마크와 친선을 도모해 배후의 안정을 꾀한 다음 병력을 모아 루스 차르국을 치라고 카를 공작에게 하명하셨잖아요?”
“생사람 잡지 마시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소. 내가 카를 공작에게 루스 차르국을 침공하라고 사주했다는 말이오?”
이민호가 딱 잡아뗐다. 카를 공작을 만났을 때 루스 차르국을 공격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주변국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사미 족이나 핀란드인들에게 좀 더 관대하게 대해주라는 요청을 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은 10만 파운드, 금 1만 파운드를 스웨덴의 광산 개발 명목으로 빌려줬다.
“교역의 왕이라는 분이 변제 기한과 사용 목적도 정하지 않고 금과 은을 그렇게 많이 빌려주셨어요?”
“그저 석탄이 필요해서 그랬소.”
“그 돈이면 석탄을 훨씬 더 쉽게 캘 수 있는 잉글랜드에서 석탄을 수백 년 동안 무제한으로 사들일 만한 금액일 텐데요? 잉글랜드 국채를 사두고 매년 이자만으로 석탄 값을 지불할 수 있겠어요. 뭐,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헤드비히 공주가 싱긋 웃자 이민호는 속으로 뜨끔했다. 스웨덴의 카를 공작에게 루스 차르국을 공격해달라고 명시적으로 요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은연중에 카를 공작을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간 것만은 사실이었다.
나라에 돈이 없어서 루스 차르국의 바닷가 지역을 점령해 모피 교역을 대리하려던 나라가 스웨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더 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됐다. 덴마크는 고산국과 혼인동맹을 맺었으므로 스웨덴이 먼저 덴마크를 공격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미안하오.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든 공주와 논의한 다음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소. 사실 루스 차르국이 시비르한국 동쪽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는 계획의 일부였소. 루스 차르국의 관심을 당분간 서쪽에만 묶어두려는 것이오.”
“말씀을 해주셔서 고마워요, 폐하. 오직 폐하만을 위해 일할게요.”
말 한 마디, 행동 한 가지에서 정치적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헤드비히 공주는 이민호의 대리인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북유럽은 헤드비히, 에스파냐를 비롯한 남유럽은 비올레타, 오스만 제국을 포함한 지중해는 7명의 베네치아 시녀들이 맡아서 일을 처리한다면 이민호의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나나와 소피예는 어땠어요?”
“험! 험! 부드럽고 따뜻했소. 선실에서 쉬고 있소?”
공주는 민망한 이야기를 잘도 했다. 이민호가 곤란해 하는 것 같아 대화 주제를 바꾼다는 것이 오히려 더 곤란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지난밤은 이민호에게 아주 좋았었다. 풍염한 나나와 모델 같은 소피예를 번갈아 안다가 쉬게 하고 다른 후궁들도 불렀다. 첫날밤인 나나와 소피예를 다시 안을 수 없어서 자린고비처럼 둘의 알몸을 힐끔거리면서 후궁들을 안았다. 변태 소리를 들을 만했다.
“네. 괜찮다는 걸 오늘 하루만이라도 푹 쉬도록 했어요. 자상하게 대해주셔서 고마워요. 돌아와선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헤드비히 공주가 입을 가리고 웃는데 예쁘다기보다는, 눈치가 보였다. 거의 자매나 친구처럼 지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여자들이라 서로를 위해주는 감정을 옆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시녀들도 잘 대해주세요.”
“무, 물론이오.”
헤드비히 공주가 싱긋 웃으며 이민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래도 질투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비스뷔 항에 정박했으나 이민호는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발트 해 무역의 중심이었다는 비스뷔는 한 세기 가깝게 해적들에게 시달리고 뤼벡 상인들에 의해 불타고 나서 지금은 한적한 어촌 마을처럼 쇠락했다. 한때 루스 차르국 상인들이 세운 회사를 중심으로 발트 해 모피 교역의 중심이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발트 해 연안도시들에서 몰려온 상인들은 여전했고, 상거래 실력은 더욱 발전했다. 어용상인들이 덴마크와 다른 한자 동맹 상인들과 명목상의 거래를 하러 내려갔다가, 배정된 물량의 두 배인 상품의 5분의 1이나 판매했다. 닳고 달은 고산국 어용상인들이 판매자 우위의 거래를 했는데도 이 지역 상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다.
“앞으로 어딜 가더라도 신라방이나 해동상단 출신이라고 하지 마! 창피하다.”
“죄송합니다, 폐하. 꾸중을 달게 받겠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어용상인들은 상품을 다 뺏기고 돌아온 패잔병 꼴이 되었다. 어용상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이민호에게서 핀잔을 받았다.
“상인의 유일한 약점을 잘 공략한 모양이군. 충분한 이익을 제시한 모양이지?”
“분명히 손해가 날 금액에 구입해놓고도 바로 그 자리에서 다른 상인들에게 이문을 붙여서 넘겼습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손해를 안 볼 다른 판로가 있었겠지.”
발트 해에서 거래되는 여러 가지 상품 가격을 직접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고틀란드의 비스뷔가 발트 해의 중심에 위치한 교역항으로서 입지 자체는 참으로 좋다는 것도 확인했다.
재고의 10분의 1만 팔라고 지시한 이민호가 무리한 명령을 내린 셈이 됐다. 그러나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여러 지역에서 교역을 하는 것이라 배정량은 상인들이 반드시 지켜줘야 했다. 덕택에 단치히와 잉그리아에 가서 판매할 상품이 별로 남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비스뷔는 내리지도 않고 넘어갑니다.
사실 고틀란드를 지참금으로 받으려다 말았습니다.
나중에 사용할 일이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