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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593화 (542/1,000)

00593  62. 덴마크와 발트 해  =========================================================================

“아마도 코사크들의 후원인, 실질적인 고용주가 있을 것이오. 시의원들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소?”

“암염 사업을 하는 스트로가노프 가문입니다, 폐하. 원래 타타르 족 출신이며 백해 인근 포모르 지방의 소작농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노요?”

“확인해봤더니 소작농이라고 합니다.”

뤼벡의 경쟁자이며 무역 파트너라서 그런지 그 가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뤼벡에 잘 왔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

아니케이 스트로가노프는 1515년에 소금채굴을 시작해서 차르와 결탁해 단기간에 큰 상인 가문을 이뤘으며 변경에서 땅을 넓혔다. 아니케이의 아들 세미욘과 그의 조카들 막심과 니키타가 예르마크의 시비르한국 원정을 재정 지원했다고 한다.

이민호는 뤼벡 시의원들이 할 일을 지정해주었다. 특히 코사크들의 실질적인 고용인, 스트로가노프 가문의 사업에 대한 면밀한 조사에 들어갔다.

아직도 암염 채굴이 가문의 핵심 사업이라 소금 가격을 폭락시켜 스트로가노프 가문을 파산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북미에서 소금을 잔뜩 가져와 발트 해 연안국들에 거의 공짜로 뿌릴 계획을 시의원들과 논의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민호는 어떻게든 루스 차르국의 시베리아 정복을 늦출 계획이었다.

“주인님. 우리한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은 외국의 상인 가문을 파산시켜도 돼요?”

“상인 가문이나 왕가나 국가나 똑같지. 약하면 도태되는 거야. 그리고 그 가문은 코사크를 지원함으로써 우리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어. 나를 뤼벡에 오게 만들고 예정에도 없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하게 됐잖아.”

상인 가문이 국가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민영이 꽤나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지금까지 민영이 본 상인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고산국의 수족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서로에게 이익이 될 때에 한정된 협력일 뿐이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다국적기업의 폐해를 익히 봐왔던 이민호와 달리 민영은 상인이 국가와 반대쪽에 섰을 때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상인 가문과 나라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쉽게, 그러니까 심적 부담 없이 멸망시킬 수 있을까?”

“상인 가문이요. 몇 명 안 되고, 부자들이니까 망하더라도 먹고 살 재산은 남겨뒀겠죠. 나라가 망하면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백성들이 오랫동안 몹시 고달파져요.”

“좋아. 바로 그거야. 루스 차르국을 멸망시키는 것보다는 상인 가문 하나를 파산시키는 편이 훨씬 인간적이야.”

민영이 납득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통역을 통해 듣고 있던 헤드비히 공주도 방긋 웃었다.

그러나 헤드비히는 이민호가 일본을 멸망시킨 사실을 아직 몰랐다. 알고 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

다시 시의원들에게 로마노프 가문, 특히 아직 만 세 살이 안 된 미하일과의 연결 고리를 찾도록 지시했다. 할아버지인 니키타는 대귀족인 보야르로서 이반 4세 차르의 측근 참모였으며, 왕후 아나스타샤의 오빠였다.

대가 끊긴 류리크 왕조 대신 외척으로서 차르가 되기에 충분한 가문이었다. 그러나 같은 신분으로서 현재 차르가 된 보리스 고두노프로부터 강력한 견제를 받고 있었다.

1600년에는 미하일 로마노프의 아버지 표도르가 대역죄 누명을 쓰고 전 가족이 수도원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표도르는 나중에 동방정교회의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된다.

“시의원들에게 선언하겠소. 고산국 발트 해 교역의 모든 것을 아이슬란드 여왕이 주관할 것이오. 뤼벡 상인들이 덴마크 서인도회사와 잘 협력해서 사업을 진행할 것이며, 중요한 사항은 아이슬란드 여왕에게 보고해서 그 결정에 따라 처리하시오.”

“예, 폐하!”

망해가던 뤼벡 시의원들이 든든한 동아줄을 힘차게 잡았다. 그런데 시의원들이 시간만 나면 선물로 받은 해달과 검은담비의 모피를 입으로 힘차게 분 다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털이 갈라졌다가 원상태로 빨리 돌아오는 복원력이 높은 모피를 최고로 친다고 했다. 털 길이와 부드러움, 광택도 모피의 품질 결정에서 중요했다.

늦었지만 함대를 이끌고 칼마르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칼마르 해협에 들어가기 전에 닻을 내린 한자 동맹 소속 상선을 만났다.

상인들에게 들어보니 5월 12일에 칼마르가 이미 카를 공작의 군대에 의해 점령됐다고 한다. 상인들이 지나가는 국왕좌승함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고산국 국왕폐하! 불쌍한 가톨릭교도들을 구원하소서!”

“스웨덴을 떠날 수 있는지 그들의 의지를 물어보겠소.”

상인들의 요청과 상관없이 이민호가 함대를 칼마르 방향으로 전진시켰다. 헤드비히 공주가 물었다.

“마치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을 이민으로 받듯이 스웨덴 가톨릭 신자도 이민으로 받으시려고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이오. 물론 스웨덴이라는 국가에 충성한 사람들이기도 하오. 스웨덴의 다수파는 아니지만 그들의 충정을 의심할 필요는 없소.”

“전에 프랑스 위그노와 에스파냐의 모리스코를 구해주셨다고 들었어요. 폐하께서는 어느 종교든 상관없군요.”

“어느 지역에서 추방당하거나 박해받는 자들은 다른 지역에서는 훌륭한 신도들이 아니겠소?”

“그건 그래요. 저도 성묘 기사로 서임 받을 때 많이 느꼈어요.”

헤드비히가 이민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신뢰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칼마르를 포위하기 위해 카를 공작이 동원한 군함 몇 척이 항구 바깥에 떠 있었다. 그러나 고산국 함대는 스웨덴 군함들을 무시하고 칼마르에 강행 입항했다. 스웨덴 군함들이 대포를 쏘려고 준비했으나 열 배나 큰 배 50여 척이 들이닥치자 감히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쏘지 마! 고산국 함대의 입항을 환영합니다!”

스웨덴군 지휘부가 서둘러 항구로 달려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 카를 공작이 칼마르에 남아 있었다.

“쇠더만란드 공작 카를입니다, 폐하.”

“반갑소이다, 공작.”

국왕좌승함 잔교부터 부두에 붉은 카펫이 깔리고 이민호가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카를 공작이 이민호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런 의전 절차가 싫다면 카를이 스스로 국왕이 됐어야 했다. 물론 이민호도 카를 공작을 실질적인 스웨덴의 국왕으로 정중하게 대했다.

“제 아들 구스타브 아돌프입니다, 폐하.”

카를 공작은 첫 번째 부인에게서 자식 여섯을 봤으나 죄다 어릴 때 죽고 딸 하나만 남았다. 두 번째 부인 크리스티나에게서 현재 셋을 낳았고 첫째 딸은 한 살도 못 넘기고 죽었다.

“오! 똘똘하게 생겼소.”

꼬마 녀석이 당당하게 인사를 했으나, 1594년 12월생이면 만 다섯 살도 아직 안 됐다. 이민호는 이 꼬마가 제대로 성인이 될까 염려했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17세에 즉위해서 북방의 사자가 되어 스웨덴에 영광의 시대를 가져온 인물이었다.

“우리 왕자님에게 맛있는 과자를 줄까, 무기를 줄까?”

“무기요!”

“으하하! 모름지기 사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이건 동양의 단검이란다.”

이민호가 허리에 찬 단검을 내밀었고, 꼬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아 손잡이에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쿠크리 단검이었다. 쿠크리 단검이 반드시 잡일에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고, 이렇게 호화롭게 장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군인에게 제1, 제2 무기가 아니야. 그래서 가죽벨트에서 가장 뒷부분에 착용한단다. 엉덩이 위에. 뒤에 착용하면 유리한 점이 뭐지?”

“앉을 때 불편하겠지만 적에게 이 단검을 안 보여줄 수 있어요. 그리고 내 엉덩이를 노리는 늙은 놈들의 욕망이 사그라지겠죠.”

“이 동네에서는 별 걸 다 걱정해야 하는구나.”

“그런데 이 자그마한 칼들은 뭔가요?”

쿠크리를의 손잡이 뒤에는 작은 칼 두 개가 들어있었다. 구스타브가 손가락만 한 작은 칼을 잡고 살짝 휘둘렀다. 실전용은커녕 암살자용으로도 적합하지 않았다.

“쿠크리 단검은 숫돌로 갈아주는 평범한 칼이 아니야. 칼로 칼을 간다.”

“와~ 그럼 진짜 강한 칼이네요.”

“네가 성인이 되면 이 탈와를 주마.”

이민호가 허리에 멘 칼을 풀어 민영에게 건넸다. 탈와는 인도식 곡도 또는 기병도라고 할 수 있는 가느다란 칼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의 칼이었으나 국왕이 휴대하는 만큼 각종 보석으로 장식했다. 이민호가 이런 데 쓸 보석이 없으니 당연히 죄다 인공 보석이었으나, 화려함만은 천연 보석 못지않았다.

민영이 번개 같이 칼을 뽑아 구스타브의 호위병이 쥐고 있는 단창의 창대가 아니라 창날을 반으로 잘라버렸다. 쇠로 만든 창날이 반듯하게 잘린 모습을 보고 구스타브가 탄성을 질렀다.

“이 누나 검술이 최고예요! 나 이 누나한테서 검술 배우고 싶어요!”

고산국에서 생산하고 열처리 강화한 강철이라서 가능했는데 구스타브는 우수한 검술 탓이라고 오해한 듯했다.

“공주가 한 번 쳐보시오. 병사! 창을 똑바로 쥐어!”

- 서걱!

헤드비히 공주도 여기사였다. 반쯤 남은 창날의 아랫부분이 또 잘려 나갔다.

“폐하께서는 여자 검사들만 데리고 다니시나요?”

“구스타브 왕자! 이분은 덴마크 국왕의 여동생이며 아이슬란드의 여왕이며 성묘 기사단의 여기사란다.”

칼마르 동맹이 깨진 이후 덴마크와 스웨덴이 수시로 전쟁을 벌였으나 또한 수시로 협력하기도 했다. 국익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면 왕족들의 만남이 자주 이뤄졌다.

“그럼 여왕님은 가톨릭인가요?”

“아니! 루터교 신자야.”

“와! 뻥이 심해요. 교황 직할인 성묘 기사단에서 신교도를 기사로 서임할 리가 없잖아요?”

카를 공작의 안색이 변하더니 자식을 엄하게 꾸짖었다.

“구스타브! 폐하의 말씀은 사실이란다. 어서 사과를 드리렴.”

“공작! 소식이 제대로 전해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 구스타브 왕자가 사과할 필요 없소.”

그러나 꼬마가 이민호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런데 왕자라는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기스문드가 폴란드로 도망간 그 날부터 공작과 구스타브는 이미 사실상 왕과 왕자였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폐하!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사과를 받겠네, 왕자. 마음에 두지 말게. 아직 어리고 부친이 계신 동안에는 마음껏 실수를 해도 돼. 실수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거니까.”

“성인이 되고도 실수하면 제 영지민이나 부하 병사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겠죠.”

“그렇겠지. 하지만 실제로 책임 질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왕가나 귀족의 자손들이 나이에 비해 똑똑하거나 지나치게 똑똑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정치인으로 교육을 받았다. 최소한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실수할 가능성이 적었다.

만약 실수나 실언을 하고도 못 깨달을 정도로 멍청하다면 일단 유전적인 문제를 의심해봐야 했다. 에스파냐 국왕, 오스만 제국 황제 등등 멍청한 군주들도 흔할 때였다.

“누추하지만 시청 공관으로 모시겠습니다, 폐하.”

“아니요. 카를 공작께 인사하러 왔을 뿐이오. 시간이 남으면 국왕좌승함에서 식사나 하시겠소?”

“마침 저녁 시간이 됐는데 잘 됐습니다.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를 공작은 배짱이 대단히 두둑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들 구스타브는 어느새 빼돌렸다. 카를 공작은 후계자까지 위험에 처하게 할 정도로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진수성찬이로군요.”

알현실에서 카를 공작과 식사를 함께 했다. 끊임없이 나오는 요리에 공작이 질려버렸다. 기죽이려고 일부러 향신료와 설탕도 듬뿍 쳤다.

“고산국 영토에서는 식량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편이오.”

“폐하께서 아일랜드의 기근을 해결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자라는 작물을 나눠주신 덕에 스웨덴에서도 심고 있습니다.”

“좋은 작물이오. 추운데서 씨감자를 심으시오.”

“부자로 소문난 고산국 국왕폐하께서 가난한 스웨덴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 작품 후기 ============================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밤을 새야 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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