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90화 (539/1,000)

00590  62. 덴마크와 발트 해  =========================================================================

다음 날 선물을 잔뜩 챙겨서 덴마크 왕궁에 보냈다. 보석과 향신료, 각종 사치품을 실은 수레 여섯 대가 화려한 갑옷을 착용한 고산국 기병 소대의 호위를 받아 먼저 왕궁으로 향했다.

수레 행렬을 덴마크 시민들이 몰려나와 구경했다. 크리스티안 4세가 보물에 눈이 어두워 부자로 소문난 고산국 국왕에게 막내 공주를 팔아넘겼다는 소문이 시민들 사이에서 나돌았다.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거나 귀찮은 혹을 떼었다는 식으로 인식했다.

헤드비히 공주를 아이슬란드의 여왕에 걸맞게 온몸을 보석과 진주로 치장했다. 큼지막한 루비가 박힌 왕관과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 홀도 맞춰주었다.

“폐하!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내 사랑 비키! 물론 나도 그렇소만, 왕가의 결혼에는 절차가 있는 법이오.”

내년 하반기에 결혼할 텐데 일 년 남짓한 짧은 이별을 슬퍼하며 공주가 펑펑 울었다. 역시나 화려하게 장식한 꽃마차에 태우고 앞뒤로 장갑차가 호위하게 해서 보냈다. 공주의 마차를 구경하러 나왔던 사람들이 장갑차의 위압적인 모습에 놀라 달아났다.

그 동안 고생한 시녀들에게도 금화를 나눠주고 보석과 모피 코트로 장식시켰다. 시녀의 부모들에게 보내는 선물로 보석과 판매용 상품을 적당히 나눠주었다. 목욕탕에서나 일광욕할 때마다 알몸을 구경한 값도 포함돼 있었다. 시녀들도 공주처럼 슬피 울었다.

통역관 김 대위는 자작 영애와 결혼식을 올리라고 며칠 휴가를 주었다. 구르카 용병 1개 분대가 김 대위의 호위를 위해 파견됐다. 구르카병들은 신형 보병총 대신 머스킷을 들고 갔다.

선왕 프레데리크 2세의 배우자이며 헤드비히의 어머니인 메클렌부르크의 소피에게도 보석과 최고급 모피를 보냈다. 후궁이 많은 이민호 입장에서는 예비 장모님이 호통을 치는 게 가장 무서웠다. 그러나 국혼이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치르는 혼사이니만큼 이해해줄 것으로 믿었다.

크리스티안 4세의 왕비 브란덴부르크의 안나 카타리나는 임신 8개월의 몸으로 해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나 보석과 함께 산모와 아기의 몸을 따뜻하게 해줄 모피를 듬뿍 선사했다. 주상아 공주와 결혼한 직후에도 그랬지만, 왕족과 결혼하면 돈이 많이 들었다.

이틀 후에 함대는 자유 한자 도시 뤼벡으로 향했다. 국왕좌승함과 호위전대 4척, 교역에 참가할 수송선 여섯 척만 데리고 트라베 강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함선들은 외해에 정박시켰다.

뤼벡에 가기 위해 폭이 100미터 조금 넘는 트라베 강을 타고 한참 동안 들어갔다. 탐사선들이 수심을 재면서 조심스럽게 앞서나갔다. 좁은 뱃길에 양 방향으로 배들이 많이 다녀서 속도를 올리기 어려웠다.

함대와 마주친 상선들 중에 일부는 방향을 돌려 뤼벡 쪽으로 달려갔다. 배 몇 척은 함대에 따라붙으며 상품을 거래하자고 졸랐다. 현대에 미국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때 이집트인 행상들이 작은 배를 타고 와서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팔아달라고 졸랐다.

“이렇게 강 깊숙이 항구를 열다니, 바이킹이 그렇게 무서웠나?”

덴마크에서 얻은 지도에서 뤼벡 위치를 살피면서 이민호가 투덜거렸다. 뤼벡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 유럽의 항구 도시들은 대체로 내륙 깊숙한 강변에 위치했다. 바닷가에 도시를 세웠다간 바이킹이나 해적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한 탓이었다.

런던이나 파리는 수로 운송과 해적 방어를 겸해 적절한 위치였다. 뤼벡은 특히 강이 둘로 갈라졌다 합해진 섬에 위치해 육상 쪽의 공격에도 대비했다.

“가만! 여긴 또 뭐야? 엘베-뤼벡 운하? 트라베 강하고 엘베 강이 연결돼 있잖아? 뤼벡에서 함부르크로 갔다가 엘베 강을 통해 북해로 나가도 되겠다.”

발트 해 연안 도시 뤼벡과 북해로 흐르는 엘베 강변의 함부르크가 수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이민호가 깜짝 놀랐다. 1390년에서 1398년까지 14세기 말에 67km에 달하는 운하를 파다니, 더 놀라웠다.

“전하! 강과 강을 연결한 운하가 있다면 비싼 통행세를 물면서 외레순 해협으로 지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이쪽 통행세가 더 비싸겠지. 함부르크에 도착하기 전에 묄른, 라우엔부르크 등등 도시가 한둘이 아니야.”

이민호는 함장과 함께 지도를 보면서 복잡한 영지 경계선을 확인했다. 두 강과 운하가 여러 영지에 걸쳐 흐르고 있었다.

“영주들마다 요새에 대포를 장전해놓고 상선들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겠군요.”

“영주가 한둘도 아니고, 발트 해 상인들이 미쳤다고 이 운하로 가겠어?”

나중에 18세기 중반 홀스타인과 남부 슐레스비히 영토가 독일로 귀속된 다음 킬 운하가 건설된다. 덴마크에서 통행세를 징수하지 않더라도 유틀란트 반도를 돌 필요 없이 발트 해에서 북해로 바로 빠져 나감으로써 500여 km의 운항 거리를 절약할 수 있었다.

운항을 함장에게 맡겨놓고 이민호는 아래 선실로 내려갔다. 헤드비히 공주가 지난 두 달 동안 기거했던 방은 의외로 좁고 소박했다. 결혼하게 될 줄 알았다면 더 잘해줬을 텐데, 안타까웠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이상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무거운 모피 코트를 두르고 커다란 왕관을 쓴 헤드비히 공주가 화가들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었다. 분명히 마차를 타고 떠났던 시녀들이 황급히 이민호에게 허리를 숙였다.

“뭐하는 거요? 공주는 왜 여기에 있소?”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해서요. 제가 있을 곳에 있는 것이 잘못 됐나요, 폐하?”

이마에 손을 짚고 있는 이민호를 향해 헤드비히가 싱긋 웃어 보였다. 그 사이 조선말에 익숙해진 네덜란드 여류 화가가 통역을 해줬다. 그리고 이민호에게 제안했다.

“곧 부부가 되실 텐데 함께 서 계시면 안 될까요?”

“아직 부부가 아니니까 처녀 시절의 마지막 추억으로 남기도록 해. 나는 결혼 후에 모델이 되어주지.”

헤드비히 공주가 평범하게 생긴 줄 알았는데 여왕 복장으로 차려입고 나니 꽤나 그럴 듯해 보였다. 역시 옷이 날개였다.

공주를 덴마크 왕궁으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남편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따라온 것이라 말리기도 어려웠다. 발트 해에서는 일단 동행하기로 했다.

어느새 뤼벡 항에 도착했다. 언덕에 세워진 높은 첨탑들과 함께 한 파란색 큰 건물은 교회들이었고 빽빽이 들어찬 빨간 건물은 죄다 집이었다. 뤼벡이 들어선 부쿠 섬 전체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고산국 함대가 온다는 소식이 이미 알려졌는지 관리들이 상선 몇 척을 쫓아내 항구를 비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순양함 다섯 척에 수송선 여섯 척, 11척이 한꺼번에 부두에 접안했다.

“자유 한자 도시 뤼벡을 방문하신 고산국 국왕폐하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환영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소, 시장. 좋은 거래가 되길 바라겠소.”

이민호는 시장을 비롯한 상인 출신 시의원 20명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뤼벡에서는 12세기 말 8년 동안 제국 도시였을 때부터 시의회가 성립돼 시 행정을 도맡아왔다. 제국 도시 혹은 1226년 이후 뤼벡의 지위가 된 제국 자유 도시란 주변 영지로부터 독립해 황제에게만 책임을 지는 자치행정 도시를 뜻했다.

큰 이익을 앞두고 상인들 특유의 반짝거리는 눈길을 보면서 이민호가 속으로 웃었다. 역시나 시장이 헛물켜는 소리를 했다.

“고산국이 앞으로 발트 해 교역에 참가할 예정입니까? 고산국 상선들이 뤼벡에 입항할 경우 최고로 대우하겠습니다.”

“아니요. 고산국 상품의 발트 해 교역은 덴마크에 맡기기로 했소. 이번에는 발트 해 연안을 둘러볼 겸, 군사작전을 위해 직접 왔을 뿐이오.”

“아아!”

뤼벡 시장과 시의원들이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한자 동맹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뤼벡도 이제는 저물어가는 영광에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시대였다. 고산국 국왕에게 최고 예우를 해서 고산국과 직접 교역을 할 꿈에 부풀었던 시의원들은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세기까지는 한자 동맹이 더 강했겠지만, 이제는 국가 단위가 아니면 지역 내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는 아예 항구도시를 여러 곳에 세워버리는 식으로 한자 동맹에 대항했다.

“뤼벡의 상인들은 참으로 신사답구려.”

“비럭질하는 덴마크나 네덜란드 놈들과는 다르지요.”

상인들이 곧 정치인인 것은 마찬가지라도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상인들과 달리 뤼벡에서는 좀 더 차분하게 거래가 진행됐다. 뤼벡 상인들끼리 암묵적인 가격 담합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서 고산국 어용상인들을 믿고 내버려뒀다. 정보를 얻기 위해 한자 동맹의 지도적 역할을 하는 뤼벡에 온 것이지, 단지 교역 때문이라면 다른 도시를 들르는 편이 나았다.

“이곳 상인들의 인종이 참으로 다양하구려.”

“바로 그것이 한자 자유 동맹의 강점이 아니겠습니까? 상인들이 거래를 하는 동안 시청으로 듭시지요. 폐하께서 타기에 부족하지 않은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고맙지만 내 철마차를 타고 가겠소.”

뤼벡에 상륙한 장갑차 여섯 대 중에서 이민호와 헤드비히 공주, 그리고 호위들이 두 번째 차량을 타고 움직였다. 장갑차가 엔진소리를 높이자 부두에 몰린 상인들이 기겁해서 물러났다. 암살 위험에 노출되는 마차보다 장갑차에 타는 것이 확실히 나았다.

장갑차 행렬은 시장이 탄 마차를 따라 벽돌 고딕 양식의 거리를 지나 3층짜리 시청 건물로 향했다. 벽돌 고딕 양식이란 돌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 고딕 양식의 높은 건물을 짓는 북유럽에 흔한 건축 양식이었다.

장갑차 행렬은 1260년에 건축됐다는 성령 병원 앞을 지나 시청에 도착했다. 이민호가 장갑차 문을 열고 내리자 시청 현관 앞까지 빨간 카펫이 길게 깔려 있었다.

“내리시오, 공주.”

“고마워요, 폐하.”

헤드비히 공주를 에스코트하며 빨간 카펫을 밟고 시청으로 향했다. 그 사이 호위와 기병들이 주변을 경계했다.

뤼벡은 국제도시답게 온갖 인종이 활동하는 곳이라 그만큼 암살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민호는 다시는 뤼벡에 오지 않겠다고 작심했다.

홀스타인의 동쪽 경계선 바로 안쪽에 자리 잡은 뤼벡은 북부 독일에 위치하면서도 주변에 거주하는 인종은 슬라브 족이 대다수였다. 색슨 족 위주의 슐레스비히-홀스타인 공작령은 자유 한자 도시인 뤼벡과 함부르크를 제외한 영토 개념이었다.

이 시기까지 슐레스비히는 항상 덴마크에 속했고 홀스타인은 시기에 따라 덴마크 혹은 신성로마제국 영토로 왔다 갔다 했다. 두 지역이 분리됐을 때도, 심지어 홀스타인이 신성로마제국에 속했을 때도 덴마크 국왕이 공작을 겸임하거나 신하에게 봉토로 내줬다. 슐레스비히-홀스타인 공작령이 어느 나라에 속하든 실제적으로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지역일 때도 있었다.

뤼벡 남쪽의 함부르크는 덴마크에 속한 슐레스비히-홀스타인 공작령 안쪽에 있으면서도 한자 자유시인 동시에 신성로마제국 16개 국가 중의 하나라는 정치적 위치를 차지했다. 정치적, 역사적으로 워낙 복잡하게 얽힌 지역이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편했다.

“시장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소.”

“하명하시지요, 폐하.”

시청 응접실에서 이민호와 헤드비히가 시의원들과 상견례를 가졌다. 뤼벡은 이 시대 일반적인 도시들과 달리 시장보다 시의원들이 권한을 더 많이 쥐고 있었다.

고산국 옥 도자기 찻잔을 들고 부들부들 떠는 시장과 시의원들의 모습을 보고 이민호는 한숨이 나왔다. 옥 도자기 찻잔에 설탕이 가득 들어간 홍차라니, 시의원들은 부유한 상인이었으나 태어나서 이런 사치를 부려본 적이 없어서 혼이 쏙 빠졌다. 일부는 헤드비히가 착용한 화려한 옷과 장신구 보석에 넋이 나갔다.

“그 전에 시장에게 묻겠소. 뤼벡은 한자 동맹에 속한 여러 도시들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소.”

“그렇습니다, 폐하. 물론 회원 도시들은 모두 자유시이며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소. 일단 발트 해에서 러시아의 모피 교역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소?”

상인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시의원이 시장 대신 설명해주었다. 그저 많이 알아서 두서없이 설명하는 것보다는, 간략히 요약하는 시의원의 지식이 훨씬 값졌다.

“노브고로드 공화국 시절부터 모피는 루스 사람들의 주요 수출품이었습니다. 동물을 직접 잡거나 코미 족에게서 모피를 공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동서로 난 육로인 군주의 길을 통하거나 발트 해에서 배로 수송해 쉬테틴에서 하역하고 제국의 길을 통해 라이프치히로 보냈습니다.”

중세부터 15세기 중반까지 번창한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가장 동쪽에 위치한 한자 동맹 회원국이었다. 핀란드 만 동쪽 끝, 나중에 생페테르스부르크가 되는 지역에서 모피를 가득 실은 배를 띄워 발트 해, 특히 쉬테틴과 고틀란트에 수출했다. 노브고로드 공국은 15세기 후반에 모스크바 대공국에 흡수됐다.

노브고로드는 정치적 수장이 공작이라 공국이라고도 하지만 흔히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주변 국가에서 유력자를 영입해 공작으로 내세웠다가 마음에 안 들면 몰아냈기 때문이다. 노브고로드 시장과 민회의 역할이 공작보다 더 강했으니 공작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모피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혹시 알 수 있겠소?”

“하늘에서 모피 달린 동물들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식으로 묘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모피 교역이 한창일 때는 모피를 가득 실은 배가 하루에 한 척씩 출항했다고 합니다.”

“대단하구려.”

제국의 길이라는 비아 임페릴은 발트 해 연안 포메라니안 공작령의 쉬테틴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로마까지, 군주의 길이라는 뜻의 비아 레기아는 모스크바와 키예프에서 에스파냐 북서부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며,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로였다.

두 길이 교차하는 곳이 라이프치히였다. 바로 그곳이 발트 해와 루스 차르국에서 구한 모피의 집산지였다.

교역량을 대충 유추해본 이민호는 고개를 저었다. 여진족이나 북미 원주민들이 구한 모피보다 최소한 몇 배나 많은 규모였다. 이번에 수송선들이 새원산에서 잔뜩 실어온 모피의 양은 가격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되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모피 작전은 실패할 것인가? 모르지요.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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