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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579화 (528/1,000)

00579  61. 대서양  =========================================================================

“한 달에 머스킷 2천 정을 공급하는 것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큰 착각이었습니다. 에스파냐 정부 차원에서도 아일랜드에 머스킷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온과 바야돌리드, 심지어 마드리드까지 찾아가서 장인들에게 머스킷 제작을 의뢰해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구려. 아일랜드에서 반란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면서요?”

“맞습니다. 그 약해빠진 아일랜드 독립군이 잉글랜드 상대로 승리하는 꼴도 직접 지켜봤습니다. 이것이 어찌 아일랜드 사람들만의 힘이겠습니까? 폐하께서 도와주신 덕택이지요.”

선장이 신이 나서 목발을 바닥에 쿵쿵 내리찍었다. 선장은 요즘 자신감이 넘쳐흘러서 혼잣말로 드레이크가 살아있었다면, 운운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북부에서는 휴 오닐이 이끄는 반군이 얼스터를 장악했습니다. 에섹스 백작은 엉뚱하게 남부에 와서 연전연패하더니 결국 더블린 인근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지금은 아일랜드 독립군과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면서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보내라고 하신 머스킷이 없었다면 아일랜드인들이 꿈도 못 꿀 대승리였습니다.”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는 16,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아일랜드에 상륙했다. 그런데 반란이 극심한 아일랜드 북쪽 얼스터로 향한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 남쪽부터 공격했다. 그러나 병력을 나눠 다수의 요새에 주둔시켰다가 아일랜드 군에게 계속해서 승리만 안겨주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얼마 후 데버루 백작은 조약 비준과 보급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런던에 와서 여왕에게 항명하다가 사령관 직에서 해임당한다. 올해 하반기에 아일랜드 반란 진압군 사령관이 몬트조이 남작 찰스 블론트로 교체되면서 아주 지독하게 청야작전을 실시한다. 그러나 지금은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에 있었다.

“폐하께서 이번에 아일랜드로 가십니까? 저도 선적을 이미 마치고 이틀 후에 출항할 예정이었습니다. 제가 폐하를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선장은 못 믿겠지만 고산국은 아일랜드 독립전쟁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키고 있소. 선장이 운반하는 머스킷은 불쌍한 아일랜드인들의 독립을 위해 에스파냐 상인들이 지원하는 것이오.”

“뭐, 형식적으로는 당연히 그렇습니다만.”

매달 비베이로를 들르는 고산국 상선이 이 사업에 대한 자금을 실질적으로 공급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비베이로 상인협동조합을 통해 복잡한 자금 세탁 과정을 거쳐 선장이 개인적으로 아일랜드를 지원하는 형식을 갖췄다.

“내가 이곳 비베이로에서 모직물을 대량 판매한다 해도 잉글랜드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오.”

“물론 그렇습니다. 잉글랜드의 국고 수입이 확 줄어들고 런던과 맨체스터에 실업자가 넘쳐나겠지만 고산국과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선장과 비베이로 상인들에게 이번에 수송선 전대에서 싣고 온 모직물을 절반쯤 넘겼다. 잉글랜드와 관계가 나빠 그 동안 모직물 시장에 접근하지 못했던 에스파냐 상인들이 프랑스와 이탈리아까지 모직물 판매망을 넓혔다. 가격과 품질에서 잉글랜드 생산품과 비교 자체를 불허했다.

나머지 모직물 절반은 모피와 함께 북유럽 발트 해 연안국가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이익보다는 잉글랜드가 주도했던 모직물 시장에 충격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모피는 러시아를 위축시키기 위한 상품이었다.

동유럽에서 생산된 값싼 곡물이 잉글랜드에 유입되면서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났다. 경작지에서 빈농들을 쫓아내고 양을 키워 모직산업을 성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호주의 목양 산업과 연결된 고산국과 북미의 모직물 생산력이 조만간 잉글랜드를 따라잡을 예정이었다.

고산국 면직물과 힘겹게 경쟁하던 잉글랜드 모직산업은 모직물까지 유럽 시장에 넘쳐나면서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 왕실이 주변 국가들과 전쟁을 해가면서 수백 년 동안 키워온 모직산업이 일대 위기를 맞이했지만 아직 아무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제발 사고 좀 치지 말아다오.”

“돈 쓰느라 바쁠 거여요.”

비베이로 항에 정박한 순양함과 수송선 수십 척에서 병사들 5천여 명이 쏟아져 나갔다. 함대에 탑승한 병력의 절반이었다. 다음 날 나머지 절반이 나갈 예정이었다.

병사들은 비베이로에서 돈을 쓰는 임무를 수행하는 군사작전에 투입됐다. 휴가비로 받은 금화 10두캇은 금 한 냥보다 약간 적은 가치였고 은으로 거의 열 냥에 해당했다. 그러나 에스파냐의 물가가 워낙 높아 큰돈은 되지 못했다.

고산국에 우호적인 에스파냐에서도 특히 우호적인 갈리시아 지방 중에서도 비베이로는 북미 여공작 비올레타의 고향이었다. 병사들에게 휴가를 주더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함대에 탑승한 기병연대, 구르카 여단, 장갑차 대대, 수병과 해병 등에게 하루씩 휴가를 주어 비베이로에서 실컷 놀게 했다.

병사들은 배에서 내리면서 받은 휴가비를 다 쓰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가난한 구르카 용병들이 금화를 쓸 리가 없었다. 이민호도 전체 병사들이 휴가비의 절반만 써줘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물론 술과 여자 좋아하는 인간들은 월봉을 털어가며 술집에서 밤새도록 놀았다.

트리폴리나 알제르처럼 위험한 곳이 아니었지만 이미 충분한 교훈을 얻은 병사들은 비교적 차분히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선술집에서는 아주 난리법석을 피우며 마음껏 놀았다.

헌병 역할을 하는 해병들이 비베이로의 유흥가를 순찰하며 난장판을 피우는 병사들을 잡아들였다. 그러나 흥겹게 노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병사들은 실컷 놀아도 되지만 현재 중요한 민사작전이 진행 중이었다.

“유럽에 있는 금과 은이 다 합쳐서 얼마나 될까요?”

“모르지. 민영이 사람들마다 붙잡고 물어봐.”

“그런 식으로 조사하려면 몇 백 년 걸리겠어요. 그 사이에도 멕시코나 페루에서 은이 꾸준히 들어오겠죠?”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금과 은의 가격비율을 역산해서 1500년과 1660년 유럽의 금과 은 보유량을 추산한 자료가 있었다.

이 계산에 따르면 1500년에 금 3,565톤, 은 37,427톤이 있었고 160년 동안 새로 유입된 금이 181톤, 은이 16,887톤이었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유출된 금과 은의 양은 계산되지 않았다. 명나라에서 은의 가치가 높았으므로 보통 금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은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흘러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에 유럽의 물가가 3.5배나 올랐으므로 신대륙 귀금속의 유입이 유럽의 물가를 폭등시킨 유일한 원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 기간 동안 두 배로 늘어난 인구와 화폐 유통 속도의 증가도 감안해야 했다. 특히 다른 상품에 비해 식량 가격이 폭등한 점을 주목해야 했다.

또한 금과 은 기준으로 가격이 올랐어도 실물이나 다른 금속 기준 금액으로는 물가가 상승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이렇게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었다.

비베이로에서 이틀 동안 교역을 하고, 병사들은 하루씩 교대로 실컷 놀았다. 병사들끼리 패싸움을 하면서 눈탱이가 부어 오른 경우는 많았어도 비베이로 시민들을 건드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민호는 큰 사고 없이 어려운 임무를 마친 원정군 병사들이 자랑스러웠다. 병사들이 열심히 금화를 뿌린 덕택에 비베이로의 경기가 좋아지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앞으로 더 큰 도시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민호가 노리는 것은 고산국 군대에 대한 유럽 주민들의 호감도 상승이었다. 비용으로 지출한 휴가비 10만 두캇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유럽의 금과 은은 북미의 식량이나 다른 상품을 판매해 얼마든지 빼앗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작전성공 수당을 또 나눠줘요?”

“병사들이 본토에서는 월봉을 많이 받는 편이지만 북미 농민들에 비하면 적다는 불만이 터져 나와서 말이야.”

“이런 식으로라도 군기가 확립돼서 다행이에요.”

이 시대 유럽에서는 군대가 가는 곳마다 황폐해졌다. 보급이 어려워서 현지 조달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병들은 현지 조달을 용감하게 하면서 한 몫 잡는 대신 정작 전쟁터에 도착하기 직전에 대부분 탈영해버렸다.

“문제는 사고를 친 놈들이 있다는 거야. 스물두 명이나 돼.”

“축하해줄 일이죠.”

발렌시아에서 부왕이 만찬을 열어줬을 때는 장교들이 넘어가더니, 비베이로에서는 외박이나 다름없는 짧은 휴가를 나간 병사들이 갈리시아 처녀 스물세 명을 낚아왔다. 장교들에 비해 병사들은 여자의 머리색을 덜 가리는 편이라서 금발도 많이 섞여 있었다.

병사들 숫자에 비해 여자가 하나 많은 것 같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교들과 달리 병사들은 새로 얻은 신부와 함께 무슬림 건축 장인들이 탄 수송선에 탑승시켜 북미로 보내버렸다. 고산국 본토나 북미 중에 어느 곳에 정착할지는 병사들이 각자 알아서 할 일이었으나, 대부분 북미를 택했고 또한 군에 계속 남기로 했다.

뜻밖에 비베이로에 아일랜드인들이 수백 명 단위로 피난을 와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전쟁 중이고 에스파냐 상인들이 아일랜드를 왕복하는 배에 태우고 온 사람들이었다.

고산국 여객선은 아일랜드 중동부에 위치한 더블린에서만 이주민을 태우기에 멀리 떨어진 남서부 사람들은 이민 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잉글랜드 군의 학살로 위기에 처한 이들은 에스파냐 상선을 타고 일단 아일랜드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들은 고산국 상선이 비베이로에 올 때마다 몇 십 명씩 태우고 북미로 실어갔다.

“문제는 아일랜드인들이 비베이로에 있는 동안 의료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건데.”

“여기도 의료진을 파견하고 수용소를 지어요.”

“아일랜드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그래야겠어. 일단 시장을 만나보자.”

비베이로 시장은 에스파냐의 하급 귀족으로서 이민호가 지중해에서 수행한 업적에 대해 한참 동안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고산국 병사들이 비베이로에서 돈을 물 쓰듯 쓰면서 시민들의 수입이 많이 늘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아일랜드 피난민들 때문에 생긴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일랜드인들은 거지나 다름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불쌍해서 수녀들이 돕고는 있지만 혹시나 흑사병이라도 옮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아일랜드 꼬마들 수십 명이 소매치기에 나서는 바람에 거리에 빨간 머리 애들이 눈에 띄기만 하면 상인들이 장사를 치우고 내쫓기 바쁩니다.”

“시장! 내 백성이 될 자들이오. 소매치기 꼬마들이 몇 년 후에 고산국 병사가 되어 비베이로에 돌아올지 어떻게 알겠소?”

“죄, 죄송합니다, 폐하!”

정신이 번쩍 든 시장이 아일랜드인 구호에 적극 나섰다. 이민호가 시장에게 자금을 지원해 항구 서쪽 언덕에 농가 서너 채를 사서 임시 수용소를 마련했다.

며칠 동안 공병단이 땅을 다지고 천막을 쳤다. 충분한 식량과 함께 마차로 매일 물을 공급하는 일은 시장이 맡기로 했다. 북미에서 민간인 의사들이 오기 전에 일단 군의관들이 아일랜드 피난민들의 건강을 살폈다.

피난민들의 체력이 너무 약해 대서양을 건너다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바다를 건너는 중에 배에서 사람이 죽으면 전체 승객들이 큰 충격을 받고, 향후 아일랜드인들의 북미 이민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폐하! 아일랜드 피난민들이 키우던 개를 북미로 데려가겠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개를 다 도살해버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애완동물 중에서 개와 고양이는 북미에 마음대로 데려갈 수 있소.”

“애완동물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좀 있습니다. 직접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수용소를 방문했다가 아이리시울프하운드라는 견종을 이때 처음 구경했다. 일어서면 사람 키보다 훨씬 클 정도로 대형 견종이었다.

회색 털이 지저분하게 난 개 한 마리가 이민호에게 다가오더니 벌떡 일어서서 앞발을 어깨에 턱 하니 올렸다. 바로 옆에서 민영이 막지도 않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 개가 주인님이 마음에 드나 봐요. 먹을 것 좀 있으면 내놔보라는데요?”

“뭐 이런 괴물 같은 개를 만들었지?”

늘씨하면서도 거대한 개의 머리를 쓰다듬자 개가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다른 호위에게서 커다란 육포를 받아서 입에 넣어주자 질겅질겅 씹더니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혓바닥으로 이민호의 얼굴을 핥았다.

“폐하! 고대 켈트 족의 전투견이며 아일랜드에서 늑대를 멸종시킨 사냥개라고 합니다.”

시장이 간단히 설명했다. 전투견이란 고대에 군대와 함께 전투에 투입됐던 맹견이었다. 그대로 놔뒀으면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 때 멸종 위기에 몰렸다가 품종 개량이 되어 유순해지겠지만, 지금은 성질도 아주 사나웠다.

============================ 작품 후기 ============================

전자책 원고 교정을 해야 해서 오늘은 한 편만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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