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77화 (526/1,000)

00577  60. 레반트  =========================================================================

“기사 서임할 때 기사 후보가 맹세를 하지요?”

“그렇습니다, 폐하.”

그리스도의 성묘 주변에 구경꾼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들었다. 순례자들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주민인 아랍인과 유대인들, 그리고 아랍인 복장을 한 아르메니아인들도 아름다운 공주님이 신앙의 장벽을 넘어 기사로 서임될 수 있을지 차분히 지켜봤다.

“기사의 맹세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서임할 수도 있지 않겠소?”

“신에게 복종하고, 약자에게 관용을 베풀고, 악을 증오하고. 흠. 이단은 악입니다.”

“로마가톨릭 성도들뿐만 아니라 신교도들도 성묘에 순례하러 오는 것을 확인했소. 기사들은 성묘에 순례하는 신교도들을 처단하고 있소?”

대답이 궁해진 성묘 기사단 선임 기사가 구호 기사단 선임 기사에게 시선을 보냈다. 구호 기사단 선임 기사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이민호가 곁눈질로 확인했다.

성묘 기사단은 15세기 말에 한때 교황의 명에 의해 구호 기사단에 흡수 통합됐던 적이 있었다. 둘 다 성묘 성당에서 창설된 기사단이며 순례자 구호와 경호, 성지 수호라는 임무가 중복된 탓이었다.

물론 구호 기사단은 순례자 보호 임무에, 성묘 기사단은 성묘 수호 임무에 집중했다. 다시 분리된 지금도 두 기사단은 여전히 협조체계를 유지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폐하.”

선임 기사가 한숨을 팍 내쉬더니 대답했다. 아무리 유럽에서는 사이가 나빠서 전쟁을 한다 해도, 이슬람 세력이 장악한 예루살렘에 와서까지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싸울 수는 없었다.

“바로 그것이오. 헤드비히 공주가 기사에 서임된다면 성묘 기사단의 덴마크 지부가 다시 설립될 것이오.”

“이단 지부가 말씀입니까?”

“바로 쳐 죽이지도 못하면서 무슨 이단이오? 그리고 덴마크에 아직 로마가톨릭으로 남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오. 신교도로 개종한 덴마크를 성묘 기사단 지부를 기반으로 서서히 무너뜨려 다시 로마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것이오.”

“거의 불가능합니다만, 전혀 얼토당토않은 계획은 아니군요. 교황 성하께 변명하기에는 좋겠습니다.”

유럽 각 나라마다 설립된 기사단의 지부는 기사단장의 지휘를 받아 연락을 유지하며 기사단에 인원과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구호 기사단의 유럽 여러 나라 지부는 종교개혁 와중에 큰 변동을 겪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지부는 해산하고 독일과 네덜란드 등 나머지 지부들은 신교도로 개종하면서 새로운 구호 기사단 조직을 설립했다.

“공주!”

이민호가 부르자 헤드비히 공주가 후다닥 선임 기사 앞으로 달려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롱소드를 떠받쳤다. 롱소드를 받은 선임 기사가 어쩔 수 없이 기사의 맹세를 읊었고, 공주는 그때마다 대답했다.

선임 기사가 공주의 양 어깨와 머리에 롱소드를 얹은 다음 성묘 기사단의 기사가 됐음을 선언했다. 다시 일어선 헤드비히 공주가 감격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헤드비히 공주는 여자라서 성묘 기사단의 나이트가 아니라 여기사, 데임(Dame)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폐하께서 강력히 요구하셨기에 공주님을 기사로 서임해드리긴 했지만 이번 일로 인해 성묘 기사단 전체가 파문당할지도 모릅니다. 폐하께서 이번 일의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성묘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가 교황 성하이신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소? 내 특별히 교황 성하께 이번 일에 선처를 부탁하는 편지를 쓰겠소.”

성묘 기사단 선임 기사가 씩 웃었다.

“내년 부활절 전까지는 교황 성하께서 절대로 폐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실 겁니다.”

“나도 그걸 믿고 밀어붙인 일이라오. 교황 성하께서 순례하기 전이라서 도박을 해봤소. 그리고 성묘 기사단에 신교도 기사가 있으면 또 어떻소? 성묘 기사단의 군주는 어차피 교황 성하이신데 말이오.”

그런데 어느새 화가들이 이 장면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조선시대 사관들보다 집요한 인간들이었다.

“화가들은 뭘 그렇게 열심히 그리나?”

“그리스도의 성묘 앞에서 폐하의 중재 아래 신교와 구교가 화해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화가들의 상상력은 참 풍부한 것 같군.”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진행되는 현재 로마가톨릭과 개신교가 화해하려면 앞으로 수백 년은 더 필요하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이 시대 종교는 개인의 신앙이 아니라 사회적 이념이기 때문이다.

신구교의 종교 갈등이 전쟁으로 표출된 30년 전쟁이 앞으로 20년도 안 남은 시기였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종교만으로 편이 갈리지는 않았다.

“고마워요, 폐하.”

“왕족의 명예 때문이오?”

“아니에요! 신교도의 신앙심을 낮게 평가하지 마세요. 저는 크리스천인 동시에 기사라구요. 저의 오랜 꿈이 성취됐어요.”

덴마크 공주가 갑옷을 입은 채 랄랄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조금 어색했지만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은 성묘 앞 광장이었다. 구경꾼들이 웃고 떠들며 박수를 쳐댔다. 깜짝 놀란 공주가 얼굴이 빨갛게 변한 채 시녀들 틈으로 사라졌다.

그 날 이민호는 예루살렘에 있는 3대 종교의 성지들을 두루 순례했다. 유대인의 성소인 통곡의 벽에 이어 이슬람의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을 참배했다. 울레마들이 몰려나와 이민호를 열렬히 환영했다.

이슬람 모스크를 가장 많이 세운 사람이 다름 아닌 이민호였고, 지금도 기록을 꾸준히 갱신하는 중이었다. 무슬림들에게 고산국 상인들이 이교도라고 핍박을 받지 않는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물론 가톨릭 성당도 이민호가 가장 많이 세웠다. 이민호는 은으로 타일을 두른 알 아크사 모스크의 돔에 군침을 흘리지는 않았다.

알 아크사 바로 앞, 성전산의 중심에 위치한 바위의 돔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바위가 있는 곳이며 예수가 걸었던 두 번째 유대 신전 자리였다. 로마에 의해 주피터 신전으로 바뀌고 다시 동로마제국에 의해 교회로, 다시 이슬람 모스크로 개축됐으며 무하마드가 승천했다가 돌아온 곳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한 장소가 세 종교의 성지가 됐다.

노랗게 빛나는 돔은 그냥 금빛 타일만 두른 줄 알았는데 돔을 만들 때 금을 퍼부었다는 설명을 울레마에게 들었다. 정확히는 금과 납의 합금이었다.

너무 무거우면 돔이 무너질까 걱정된다는 개소리가 입 밖까지 새어 나왔다가 겨우 주워 담았다. 성전에 돈을 최대한 많이 들여서 신앙심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신도들의 마음이야 이해하겠지만, 종교시설을 귀금속으로 도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에, 폐하! 죄송하지만 바위의 돔에는 기독교인이 들어갈 수 없게 규정돼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 기독교인들이 함부로 성소의 기물을 파손한 탓입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오.”

제지하는 울레마를 밀치며 성전 내부를 구경했다. 대리석 기둥들이 이중으로 둘러싼 가운데 놓인 별로 볼 품 없는 바위에는 여러 가지 전설이 담겨 있었다. 이민호는 안쪽 회랑에 들어가 넓적한 바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자식을 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이야 견고한 신앙을 증명했다지만, 제물로 바쳐진 이삭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조선과 고산국에도 산삼 관련해서 병든 부모를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는 유사한 옛날이야기들이 있었다.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났다지만 실로 거북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민호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신도가 아니었다. 일신교가 다신교로부터 세상을 빼앗아 인간에게 주었는데, 인간은 다시 초월적인 존재에 의존하고 싶어 했다. 고산국 백성들에게 이민호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바깥으로 나오니 그 사이 화가들이 열심히 바위의 돔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가느다란 철사로 만든 측정도구를 들여다보며 정밀하게 그리는 화가도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데려온 모스크 장인들도 이슬람 건축물의 걸작인 바위의 돔을 샅샅이 조사하고 수십 장씩 스케치했다. 건물을 장식한 청색과 녹색의 페르시아 도자기 타일로 만든 꽃무늬 모자이크가 이민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모자이크가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의 것과 꼭 닮았어요.”

“그래? 성 마르코 대성당을 제대로 못 봐서 아깝다.”

베네치아 시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산마르코 대성당은 바위의 돔보다 훨씬 뒤인 832년에 건축됐다. 그러나 사실 산마르코 대성당의 모자이크가 오리지널이었다. 바위의 돔에 장식된 모자이크는 최근에 작업된 것이었다.

심지어 바위의 돔 자체도 성묘 성당을 모델로 확대한 건축물이었다. 종교에서 건물이나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았으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바위의 돔을 이렇게 크게 지은 것은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하는 무슬림들이 크고 아름다운 기독교 건축물들을 보고 위축돼 신앙심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자네 저 모자이크 만들 수 있나?”

“예, 폐하. 도자기 타일만 있으면 만들 수 있습니다. 저희들 중에 페르시아 도자기 장인도 있습니다.”

장인들은 말대답할 때마다 땅바닥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서 이민호가 대화하기가 몹시 불편했다.

“일어서게. 북미에 가면 세계 최고의 모스크를 만들어보게.”

“영광입니다, 폐하. 다만 라마단 때 메카 순례를 시켜주신다는 약속만 잊지 말아주십시오.”

“매년 메카에 보내주겠네. 해마다 한 달 동안 휴가를 주는 셈 치지.”

“한 번이면 족합니다, 폐하.”

“그럼 다른 해에는 한 달씩 이스탄불로 보내주겠네.”

기독교 성전을 짓기 전에 설계도를 제출하는 유럽 건축가들은 수학과 기하학을 확실히 배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설계자에 국한되고, 실제 작업을 하는 유럽의 장인들은 일자무식인 자들이 흔했다.

이 시대에 수학과 기하학을 제대로 배운 장인들이 이슬람 세계 말고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이슬람 장인들 최소 100명은 북미에 남겨두는 것이 목표였다.

예루살렘 성 밖에서 하룻밤 숙영하기로 결정했다. 예루살렘은 기원전부터 상수도를 이용해서 물을 구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상수도를 통해 예루살렘 성 안으로 침투하거나,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곽을 넓힌 사례도 있었다.

“그건 뭐야?”

“젖도 못 뗀 아기 고양이인데 애들이 괴롭혀서 데려왔어요.”

민영이 데려온 고양이 새끼는 귀 끝이 뾰족하고 그 끝에 검은 털이 나 있었다. 이민호가 황갈색 털을 가진 새끼의 등덜미를 잡고 들어 올리자 발톱을 드러내며 앙칼진 소리를 질렀다.

수놈이라면 자칫 밖에 돌아다니면서 고산국 본토의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을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암놈 한 마리라면 왕궁에서 계속 키워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키우려고? 아무리 봐도 스라소니 같은데?”

“스라소니는 아니어요. 애들이 카라칼이라고 부르던데요?”

민영에게 알아서 키우라고 했더니 몹시 기뻐했다. 민영이 보급장교에게 부탁해 젖병과 분유를 구했다. 노예를 대규모로 구조할 때나 이민선을 운영할 때 배에 탄 산모와 아기들을 위해 분유와 젖병을 보급품으로 준비했었다.

아기 고양이가 아직 어려서 우유를 먹이고 배변 훈련도 시켰다. 고양이는 민영만 잘 따랐다.

“나도 우유를 자주 주는데 왜 나는 안 따라? 사람 차별하는 거야?”

“우유를 먹일 때 눈을 마주쳐보세요. 그럼 엄마로 알아요.”

이민호가 따라했더니 고양이가 젖병을 빨다가 발톱을 세웠다.

이틀 뒤에 군대 행렬을 다시 서쪽으로 돌렸다. 사해에서 물에 뜬 채로 독서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하루라도 시간이 아까웠다.

며칠 사이에 교황이 내년에 예루살렘 순례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입성할 때와 달리 열렬한 환송 분위기가 조성됐다. 텔아비브가 건설 중이라 유대인들도 더 이상 대규모 순례가 몰고 올 파장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아슈도드에 도착해서 항만 건설현장을 살폈다. 방파제는 바다에 바위를 쏟아 부어 쉽게 완성됐지만 부두 확장 공사는 손이 많이 갔다. 완공에 몇 달 걸린다지만 올해 안에만 공사가 끝나면 상관없었다.

부두에 창고, 시내에 숙소 건물도 많이 짓고 있었다. 순례 때는 부자들도 일부러 노숙을 하거나 천막을 친다고 해서 일정한 거리마다 순례자들이 사용할 우물을 파고 천막을 칠 넓은 공간도 도로변에 준비했다.

파샤와 추기경, 구호 기사단 선임 기사, 텔아비브를 건설 중인 유대인 대표들과 회의를 가졌다. 건설 단계의 재정적인 문제는 모두 해결한 다음이었다.

결국 자본력이 큰 이민호가 아슈도드와 텔아비브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됐다. 그 다음이 아흐마드 파샤였으며, 교황청은 가장 적은 지분을 소유했다.

“내년까지 파샤가 하실 일이 많소.”

“마땅히 제가 할 일입니다, 폐하.”

아흐마드 파샤는 이번에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은 것일지도 몰랐다. 할아버지 대부터 가자와 예루살렘 지구를 지배한 것이 이번 세대의 파샤에게 큰 행운이 되었다.

이민호는 아슈도드와 예루살렘을 지킬 아흐마드의 군대에 나중에 대금을 받기로 하고 머스킷 500정을 공급했다. 이것만으로도 다른 지역에 비해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증강됐다.

현재보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아흐마드 파샤는 내년 순례를 안전하게 끝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큰 문제만 안 생긴다면 앞으로 파샤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옛날과 달리 순례자들에게 세금을 받아 나누는 것이 아니라서 다른 방법으로 운영 경비를 마련하기로 했다. 순례자를 태우고 온 배에서 입항료를 받거나, 예루살렘의 상인들에게서 세금을 올려 받는 것도 결국 순례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므로 피하기로 했다.

순례와 관련된 경제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됐으나 순례자들에게 돈 때문에 욕을 먹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슬람이 예루살렘 지역을 정복하고 나서 기독교도 순례자들이 줄어든 것은 종교적 박해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요인이 컸다.

“이로써 밀 등 식량과 향신료, 면직물은 고산국이, 맥주와 와인은 구호 기사단이 아슈도드와 예루살렘에 독점 공급하기로 결정됐습니다. 이 지역 물가에 비해 수입 단가가 워낙 싸니까 현재 가격으로 팔아도 이익이 많이 남겠군요.”

“예, 폐하. 제 책임으로 판매해서 이득을 공평하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술 종류는 기독교 쪽에서 판매해주십시오.”

“기독교도 상인들 중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가 적고 구호 기사나 성묘 기사가 술을 팔기도 어렵습니다.”

맥주와 와인은 무슬림에게 판매 금지 품목이었고 기독교 쪽에서 판매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결국 주류는 현지 유대인과 동방정교회 신도인 아르메니아인들이 판매하기로 했다.

돼지고기와 비늘 없는 해산물은 반입이 아예 금지되고 고기는 이슬람식으로 도축한 할랄 푸드로 준비하게 했다. 식량 대부분을 기독교인들이 소비하겠지만 다른 종교 신자들이 부정한 음식으로 성지를 더럽히는 것은 그 어느 쪽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 음식에 대한 금기가 많았다.

“양고기 소비가 대폭 늘어날 텐데 주변 지역에서 생산한 것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양을 50만 마리쯤 시칠리아나 다른 곳에서 사올 수는 없겠습니까? 페르시아 쪽은 군사적 긴장 때문에 수입하기 곤란합니다.”

“우와! 시칠리아에도 그 정도 여유분은 없을 겁니다. 혹시 폐하께서 양 산지를 아시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물론 알지요. 내년 부활절 즈음해서 한 달 동안 30만 마리, 나머지 기간에 적당히 나눠서 20만 마리를 공급하겠소. 조금 멀어서 문제겠지만, 이 지역 양고기 값에 맞춰서 공급할 수 있소.”

“그 정도면 충분하겠습니다. 대단하십니다, 폐하.”

호주에서 키운 양을 긁어모은다면 내년 50만 마리 공급이 가능할 것 같았다. 수마트라와 자바 섬 무슬림 지역에 대한 양고기 공급이 줄어들 수도 있었으나, 새섬에서 마오리 원주민들이 양을 잘 키웠다면 여유가 생길 수도 있었다.

아슈도드와 예루살렘, 그리고 텔아비브까지 도시 셋에 관련된 모든 일을 마치고 함대가 아슈도드 항을 출항했다. 몰타 섬과 로마를 거쳐 에스파냐 북서부 비베이로로 향하기로 했다. 교황의 순례 준비를 성공적으로 마친 추기경은 너무 흥분해서 자칫 승천할 것 같아 걱정이었다.

국왕좌승함에서 구호 기사단 갤리선을 예인했다. 얼마 전과는 달리 노잡이들의 발목에 쇠고랑이 채워져 있지 않았다. 자유민인 몰타 주민들을 노잡이로 고용한다고 했다. 지중해에도 갤리선보다 범선이 늘어나는 것은 이민호로 인한 영향이 없더라도 시대적 흐름이었다.

============================ 작품 후기 ============================

내용이 조금 기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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