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71화 (520/1,000)

00571  59. 예멘  =========================================================================

- 타타탕! 타탕!

예멘 이맘이 뒤로 넘어가기도 전에 주변에 있던 이맘들도 서너 발씩 맞아 쓰러졌다. 사격훈련을 많이 한 저격병이 아니더라도, 시력이 좋은 구르카 병사들에게 400미터는 총으로 쏘기 딱 적당한 거리였다.

이맘들이 단체로 쓰러진 직후 구르카 병사들이 다른 표적을 잡았다. 찰갑 형식의 갑옷을 입고 투구나 터번을 쓴 자들이 총탄에 맞아 마구 죽어갔다. 예멘 병사들이 상체를 낮췄으나 성벽에 오른 병력의 절반이 이미 쓰러진 다음이었다.

- 탕!

아주 간헐적으로 자비드 성채 위에서 머스킷을 발사했다. 그러나 흰 연기가 피어오른 곳을 향해 구르카 용병 최소 30명이 대응 발사했다.

총탄을 발사한 직후 전사한 병사는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었다. 예멘 총병 대부분은 조준해서 발사하기도 전에 구르카 용병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현재 교전거리에서는 머스킷을 쏴도 사거리 바깥이었다.

동료의 불행을 본 예멘 머스킷병들은 몸을 살짝 내놓고 사격한 즉시 상체를 숙였다. 그러나 총을 쏘고 몸을 잽싸게 숙이던 예멘 병사 하나는 성벽 중간 총안구 사이를 지나온 총탄에 맞아 죽었다.

좁은 총안구를 통해 머스킷을 쏘는 예멘 총병들도 여지없이 구르카 용병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성벽 위로 상체를 내밀어야 하는 궁병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포다!”

이민호가 깜짝 놀랐다. 이 시대 아랍 지역 성곽의 기준 장비처럼 자비드 성채에도 대포 몇 문이 있었다. 아랍 지역에서 흔히 사용하는 대포의 유효사거리는 200미터도 안 됐지만, 최대사거리는 조금 긴 편이었다. 현재 자비드 성을 사방에서 포위한 구르카 대대들이 포진한 거리가 400미터 정도였다.

그러나 자비드 성채의 대포 사거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구르카 여단 포병대대에서 전진 배치한 3인치 포가 발사됐기 때문이다. 성채 위에서 사격 준비 중인 대포를 성벽 여장과 함께 날려버렸다.

- 콰아앙~

대포 주변에 화약통을 많이 쌓아 놓았는지 한꺼번에 폭발했다. 대포 조작수를 비롯한 포병이라 말할 수 있는 자들이 폭사하거나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날뛰다가 성벽 뒤로 떨어졌다.

계속된 포격에 동서남북의 성문이 모두 뚫리고 성벽 위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전투 초기에 이미 자비드 성 전체가 타오르는 듯했다.

“이 정도면 항복해야 하는 것 아냐?”

“이맘이 죽었는데 항복을 결정할 자가 남아 있을까요?”

기관총을 잡고 저격총으로 운용하던 민영이 대꾸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예멘인들이 열심히 싸우고는 있었지만 뭔가 조직력이 붕괴됐다는 조짐이 보였다.

“쳇! 사격 중지!”

지휘 장갑차 후방 보병 탑승석은 통신실로 개조돼 있었다. 통신병들이 예하 부대에 바쁘게 연락하고, 잠시 후 총성이 점차 잦아들었다. 성벽 위에서 아주 가끔 쏘던 총성도 멈췄다.

남쪽으로 추격하러 간 기병연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조금 불안했으나, 기병연대 통신병으로부터 계속 추격 중이라는 연락이 와서 안심했다. 이민호가 아랍어 통역장교를 불렀다.

“너희들은 완전히 포위됐다. 목숨을 살려줄 테니 항복하라고 전달하게.”

“목숨만 살려주고 노예로 삼을지 모른다고 걱정할 겁니다. 고산국에 노예제가 없다는 사실을 예멘인들은 잘 모릅니다.”

“쳇! 내가 이교도라서 더 겁먹었겠군.”

그러나 같은 무슬림끼리 포로가 되면 노예로 삼지 않더라도 몸값을 내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포로에게 당연하다시피 행하는 강간도 두려울 것이다. 여자 말고 남자도 강간당했다.

“성을 비우고 가족과 함께 떠나라고 해. 무기를 들고 가도 좋다. 말 두 마리와 마차에 가재도구를 싣고 떠나도 좋다. 추격하지 않겠다고 신에게 맹세한다고 전해.”

통역장교가 자비드 성채에 접근해서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적인 아랍인이 아니라 광신도에 가까운 이맘의 군대였다.

“성이 무너지더라도 우리는 이맘의 시해자이며 예멘을 침략한 자들에게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성채 위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고산국 군대는 침략자가 맞았다. 오스만 제국보다는 이맘의 군대가 합법적인 예멘 군대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집트의 무역이 마비될 정도로 홍해 통과세를 과도하게 받는다면 그 어느 나라라도 군대를 움직였을 것이다.

살짝 열 받은 이민호가 장갑차 후방 탑승석을 향해 외쳤다.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해군 함대의 화력을 이용하는 편이 안전했다.

“해군에 통신 연결해서 좌표 찍어줘. 저들이 원하는 대로 성 전체를 무너뜨려주지.”

“주인님. 나중을 생각하셔야 해요. 아랍인들은 오스만의 투르크인들보다 예멘인들을 더 가깝게 생각할 거여요. 그리고 성채 안에 모스크가 여러 개 들어서 있어요.”

“쳇! 그놈의 모스크. 아차! 대학교도 있지.”

돔부터 벽까지 온통 흰색인 자비드 모스크와 뾰족하게 솟은 첨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슬림들에게 성전이라 할 수 있는 모스크는 종파가 다르더라도 함부로 파괴하지 못했다. 1597년에 오스만 제국이 사나에 세운 알 바키리야 모스크의 경우 오스만 제국 군대가 쫓겨난 이후에 이맘과 그 추종자들이 차마 무너뜨리지 못하고 200년 가까이 방치했을 뿐이었다.

또한 자비드는 9세기부터 예멘에 자리 잡은 여러 왕조의 수도가 있던 곳이라서 오래 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자비드 대학교는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 교육의 중심지였다. 즉, 다른 아랍 국가 학자들이 자비드에 와서 여러 가지 학문을 연구하는 중이라는 뜻이었다. 이슬람 세계와 척을 지고 싶지 않은 고산국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 학자들까지 전쟁에 말려들게 해서 욕먹을 필요가 없었다.

“알았어. 지상군 각 포병에 연락해서 성문 위주로 집중 포격!”

기병연대 포병대까지 합세해 포격 준비에 들어갔다. 기병연대 포병대나 장갑차에 탑재한 포는 대부분 3인치였다. 그 위력이 성벽을 무너뜨릴 정도가 되지 못했다.

구르카여단 포병대대 중에서 1개 포대가 5인치 포였으나, 기동성을 중시해 단포신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동일한 구경의 함포에 비해 사거리가 짧고 위력이 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3인치 포보다는 훨씬 위력적이었다.

자비드 성채를 포위한 포병대가 포격을 시작했다. 강력한 폭발력을 담은 포탄이 성벽을 때리고, 오래지 않아 성문 주위의 성벽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성벽이 절반 가까이 무너졌지만 예멘인들은 항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구르카 여단장이 이민호에게 건의했다.

“전하! 구르카 여단을 투입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들은 용감하고 강한 전사들입니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잃으면 더 아까워.”

사나는 산악지대라서 방어자에게 유리하고, 산악지역 전투에 특화된 구르카 여단이라 해도 어느 정도 병력 손실을 각오해야 했다. 평지성인 자비드에서부터 인명 피해를 내고 싶지 않았다.

“전하! 적이 첨탑에 황기를 내걸었습니다. 황기는 무슨 뜻입니까?”

“원래는 백기인가 봐. 포격 중지!”

잠시 후 무너져 내린 자비드 남문의 잔해를 넘어 예멘인 네 명이 나왔다. 통역장교의 안내를 받은 항복 사절단이 이민호 쪽으로 걸어왔다. 사절단은 이맘을 시해한 자들의 지도자라는 이유로 이민호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같은 이유로 몹시 두려워했다.

“저희들은 끝까지 싸우려했지만 모스크가 무너지고 학자들이 다칠까봐 어쩔 수 없이 항복하겠습니다.”

“나도 같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성벽만 공격한 거야.”

“혹시 무장한 채 자비드 성채에서 퇴거하는 조금 전의 항복 조건과 동일합니까?”

“아까는 조건이 좋았지. 이번에는 좀 다르다. 무장은 하되, 맨몸으로 걸어서 가라. 이맘의 유해는 가져가도 좋다. 특별히 마차 하나를 내주겠지만, 사람이 직접 끌어서 가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아파에서 이맘은 정치와 종교의 최고 지도자로서 신도들에게 숭배를 받았다. 수니파가 종교공동체의 합의를 강조하는 반면 시아파는 이맘이 초인이라는 개인숭배에 경도되고, 예언자 무하마드의 사위 알리로부터 내려온 혈통을 중시했다. 시아파는 이민호가 싫어하는 요소들만 골고루 모아놓았다.

시아파에서 이맘의 결정은 쿠란의 경전 내용보다 우선됐다. 심지어 이맘이나 이맘 후손들의 무덤을 순례하는 것을 메카 순례와 동급으로 중시했다.

“예멘의 이맘 알 만수르 알 카심에게는 후계자들이 있습니다. 후계자들이 살아남은 동안에는 앞으로도 영원히 예멘의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

“알았어. 그렇다면 알 카심의 자식들을 다 죽이면 되겠군.”

만수르는 승리자라는 의미가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허무하게 죽었어도 어떻게든 신도들에게 신격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시아파에서 이맘은 신의 비춤을 받은 자이며 심지어 4대 칼리프 알리는 신의 친구 왈리(Wali)였다. 이맘이 죽으면 사라졌을 뿐 숨어서 살다가 최후의 심판에 날에 돌아올 것으로 믿는 종파가 시아파였다.

“그건 종교적인 탄압입니다.”

“그럼 차기 이맘이 조용히 숨어 지내다가 최후의 심판 때나 나오라고 해! 이맘이 싸우겠다고 하면 나도 이맘을 상대로 싸워야 하잖아. 전투 중에 이맘을 죽일 수도 있고. 그렇지?”

“그, 그렇습니다. 차기 이맘께 폐하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맘의 직위를 자식이나 후손들에게 상속한다면 종교적인 지위가 이미 아니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 시아파에 대한 모독이기에 발언하지 않았다. 괜히 지하드 어쩌고 하면서 집요하게 도전해온다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이맘의 군대가 자비드 성채에서 나와 북쪽으로 향했다. 다 합해서 2천 명 정도였는데 부상을 입은 자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이들은 전사자들을 순교자라면서 자비드 주변의 황무지에 매장하고 떠났다.

이민호는 구르카 보병 1개 대대를 자비드에 보내 수색을 시켰다. 모스크나 대학교는 건드리지 않고 이맘의 군대가 주둔했던 병영과 이맘의 주거지인 왕궁만 샅샅이 수색했다. 딱히 전리품 수집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맘의 군대가 남아있을 경우 색출해서 추방하기 위해서였다.

“주인님. 사나를 점령하러 가실 건가요?”

“점령하는 건 중요하지 않고, 이맘의 군대를 쳐부숴서 힘을 꺾어 놓아야 해. 나머지는 오스만 제국이 알아서 하겠지.”

문제는 해안지방에서 사나로 가는 험준한 산길이었다. 마차도 못 지나가는 곳이라 장갑차가 갈 만한 길이 절대 아니었다. 사나 서쪽 해안의 호데이다 같은 항구도시는 아직 생겨나지도 않았고 호데이다에서 사나까지 연결되는 도로는 1961년에나 완공된다.

모카에서 사나로 비교적 넓은 길을 통해 가는 길은 있었다. 그러나 모카 동쪽 길을 따라 산악지방으로 들어선 다음 빙빙 돌아서 북쪽으로 향해야 했다. 모카에서 직선거리로 300km가 안 되는데 거의 천 km 가까이 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사나를 공략하는 작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주인님은 웬만하면 오스만 제국보다 지역 주민들의 자치를 더 중시하는데, 예멘은 예외네요.”

“오죽하면 내가 그러겠어?”

민영과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자비드 성채에 들어갔던 구르카 대대장이 돌아왔다.

“전하! 몇몇 모스크의 돔에 붙어있는 것은 황금이 아니라 싸구려 황동판이었습니다.”

“모스크는 건드리지 말라니까! 우리는 약탈자가 아니야!”

이민호가 소리를 질렀으나 그도 자신하기 어려웠다. 구르카 대대장이 얄밉게 씩 웃었다. 대대장은 몇 년 전에 조선 해동상단의 간수군으로 얼굴을 몇 번 마주쳤던 기억이 났다.

“모스크를 장식한 것이라도 만약 황금이면 가져갈 만하지 않습니까?”

“부담스럽지만 욕심은 나는군. 모스크에 황금이 없어서 다행이야.”

모스크에는 양탄자 외에 값나갈 만한 내부 장식이 거의 없었지만 돔에 장식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특히 현대 브루나이 황금 모스크의 경우 브루나이 술탄이 얇은 황금판을 돔에 붙였다. 이 시대 브루나이 술탄은 고산국 덕택에 가난에서 갓 벗어나서, 지금은 군비 증강과 무역 증진에 전념하느라 사치를 즐길 여력이 없었다.

“기뻐하십시오, 전하 그 대신 이맘의 왕궁에서 금은보화가 가득 찬 방을 세 개나 발견했습니다. 국왕좌승함으로 옮길까요?”

“험! 험! 전리품이니 옮겨야지. 반란군의 군자금으로 남겨둘 수는 없지 않나? 외국 학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 어깨에 짊어지지 말고 마차로 옮기게. 괜히 금화 같은 것을 줄줄 흘리지 않도록 잘 포장해서, 남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게 잘 가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이맘이 어째서 사나를 자식에게 맡기고 자비드에 와 있었는지 알만했다. 자비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부유한 도시였고 여러 왕조의 수도였던 만큼 그 동안 여러 차례 약탈당했는데도 여전히 부유했다. 요즘 홍해에서 거둬들인 통과세도 자비드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 작품 후기 ============================

내용에 있듯이 사나를 점령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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