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70 59. 예멘 =========================================================================
그리고 총기 밀반출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올랐다. 머스킷은 수출도 하니까 상관없고 군용 총기는 관리가 철저했으나 민수용으로 전환된 구형 단발 보병총 문제였다.
개척시대 미국처럼 조선에서도 백성들이 무기를 자유롭게 소지했고, 그것은 고산국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개병제에 가까운 조선에서는 무기도 백성들이 자체 조달해야 했으니 무기 소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화약무기라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특히 땅이 넓은 북미에서는 아직 고산국에 복속하지 않은 원주민들이 위협적일 수도 있기에 총기 소지를 금지하기 어려웠다. 도시마다 민병대가 조직돼 총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농민이나 목촉 종사자가 소유한 총기가 유럽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에 있었다.
고산국 총기가 우수하다는 사실은 이미 유럽에 충분히 알려졌기에, 새원산이나 새강릉에서 활동하는 유럽 상인들은 그야말로 천금을 주고라도 민수용 구형 단발총을 구입하려 했다. 유럽에 가면 그 가격은 몇 배로 뛰어 올랐다.
물론 총기를 불법으로 외국인에게 판매하면 법에 걸리지만, 공권력을 동원해 막는다고 해서 막힐 문제가 아니었다. 눈앞에 황금이 찬란한 빛을 반사하면 웬만한 사람은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유럽 각국에서 단발 보병총을 흉내 내어 제작하려 했으나, 몇 가지 기술은 따라할 수 없었다. 특히 총알 뒤쪽의 뇌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흑색화약과 전혀 다른 무연화약 제조법도 알아낼 수 없었다.
북미나 본토의 총기가 유럽으로 흘러들기 오래 전부터 이 문제가 고산국 조정에서 심각하게 논의됐다. 물론 민간이 소지한 총기도 시청의 관리를 받으나,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북미 백성이 유럽 상인에게 총을 팔고 나서도 계속 갖고 있다고 거짓 보고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래서 이민호가 선택한 것은 총기가 아니라 실탄이었다. 군대나 지역 민병대의 실탄을 철저히 관리하는 대신, 민수용 단발총의 실탄은 현대 미국에서 쇼핑몰이나 우편판매를 통해 구입하는 것처럼 잡화점에서 누구든 쉽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총알 하나에 은 한 냥이 정식 소비자 가격이었다. 방아쇠 한 번 당기면 최소 쌀 두 섬, 북미 서부 같은 경우 최대 열 섬이 날아갔다. 오직 고산국 왕궁에서만 총알을 독점 생산해서 이런 미친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당연히 취미나 생업으로 하는 사냥에 단발 보병총을 쓸 수 없었다. 그런 쪽에는 가격이 저렴한 화승총과 흑색화약을 사용하고, 민수용 단발총은 혹시 모를 북미 원주민이나 곰, 또는 유럽 해적의 습격에 대비해 집안에 비치했다.
총알 가격이 워낙 비싼 탓에 단발총 소유자가 10발 넘게 총알을 소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민수용 단발총은 북미의 고산국 농민들에게 확실하게 호신용 무기로 자리 잡았다. 총알이 아까워서 총기 사고도 거의 나지 않았다.
유럽에도 가끔 총알이 100발이나 500발 단위로 수출됐다. 그러나 고산국 총알의 복제를 이미 포기한 유럽 왕실에서 사낭용, 혹은 소수 근위대용으로 사용됐다.
함대는 달빛 아래에서 작은 항해등만 키고 북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네 시간 만에 100여 km를 항해해 자비드 서쪽 바닷가에 도착했다.
흔한 백사장 해안은 사막과의 경계를 구별하기 힘들었다. 해안선을 따라 넓게 흩어진 배에서 기병연대와 구르카 여단, 장갑차 대대까지 모두 한꺼번에 상륙했다. 기병연대가 제대로 집결하기도 전부터 첨병소대가 바로 동쪽으로 출발했다.
“타시죠, 도련님.”
“그래. 작전대로 됐으면 좋겠다. 계복이 네가 수고해라.”
이민호가 장갑차에 오르는 동안 백마를 탄 계복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말에 탄 계복이 더 걱정됐다.
“혹시 모르니 전투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계세요.”
“응. 호위 병력도 잔뜩. 이맘에게 일러바치러 간 자들이 지금쯤 도착했겠지?”
고산국 지상군이 모카 항 북쪽에 상륙했을 때 자비드의 이맘에게 알리려고 말이나 낙타를 타고 달려간 자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맘의 추종자들로 예상됐다. 함대가 새벽에 출항하는 것과 동시에 출발한 자들은 고산국 함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총함장 이순신은 예멘 말의 속도와 지구력을 정밀하게 계산해서 이 시간에 상륙시켰다. 나머지 전투는 현장 지휘관 계복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모카에서 여기까지 열두 시간 만에 달려올 수 있다니, 아라비아 말은 정말 우수한 품종인 것 같습니다. 말을 좀 사가죠? 아! 이번 전투에서 전리품으로 많이 얻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좋겠다.”
아라비아 원산이라는 서러브레드 품종은 사실 영국 암말과의 교잡종이었다. 오랜 시간 지속적인 품종 개량을 통해 우수한 경주마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현재 북미의 평원에서 뛰어놀고 있는 야생마는 주로 안달루시안으로서, 원래 알제리의 승마용 말을 무어인들이 에스파냐에 들여와 개량시킨 품종이었다. 이 시기 아라비아 말보다는 차라리 북미 야생마가 더 좋은 품종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민호는 기병이 타는 말에 그다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천리마라는 별명이 붙은 대완국의 한혈마를 구할 계획이 자꾸 늦춰졌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와 통교를 하고 나서 페르가나 명마를 구해볼 계획이었다.
계복이 직접 이끄는 기병연대에 이어 구르카 여단이 마차에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새벽이 다가오면서 시야가 희뿌옇게 밝아왔다.
곧이어 장갑차 대대와 나머지 차량들이 출발했다. 기병과 보병, 그리고 차량의 이동속도가 비슷했다.
“이봐! 자네!”
“예! 전하!”
이민호가 장갑차 출입문을 열고 마차에 탄 구르카 여단 부사관에게 손짓했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부사관이 땅을 한 번 박차고 장갑차 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동작 하나만큼은 무림 고수에 못지않았다.
“람 나라얀 이스포 하사입니다.”
“하사! 구르카 여단에 속한 병사는 가족과 함께 고산국에 정착해도 된다고 했잖아? 북미로 이주하면 더욱 좋고. 그런데 이주를 하지 않는 이유가 뭐지?”
고산국에서 이민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나라가 셋이 있었으니, 조선과 아일랜드, 그리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나라인 네팔이었다. 현대의 네팔 지역은 10세기 이래 말라 왕조 아래 유럽의 공국에 해당하는 세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고, 1559년에 드라비아 샤가 네팔 중부 고르카를 점령해 나라를 세웠다. 고르카가 18세기 후반에 네팔로 확장한다.
현대 영국에서 외인부대 계약기간을 마친 구르카 용병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1995년부터 재판을 해서 2009년에 끝내 쟁취해냈다. 그 권리 중에 하나가 영국 영주권이었으며, 퇴역 구르카 용병 대부분이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구르카 병사들에게 고산국으로 이민의 문호를 개방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된 게 이주를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이민호가 물어본 것이다.
“그거야 고향이 좋기 때문입니다. 사실 평지에서 사는 것은 고산지대에 살던 저희들에게 맞지 않습니다.”
“평지에 사는 사람이 고지대에 가면 문제지만, 그 반대는 상관없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이렇게 병사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야 고향 마을을 더 살기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배운 기술로 고향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고향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인생도 중요해.”
“맞습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평범한 백성이겠지만, 저희들이 고향에 돌아가면 귀족이나 다름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많은 재산과 기술, 지식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고향 사람들보다 많은 월봉을 받으니까 그것도 좋겠지.”
“전하! 구르카 여단 모병에서 떨어진 자들을 고산국에서 이민자로 받아들일 계획이라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갈 것입니다.”
고산지대에 살면서 호흡 능력과 지구력이 단련되어야 구르카 용병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구르카 병사의 후세가 평지에서 태어난다면 지금 같은 전투력을 갖기는 힘들 것 같았다.
“쳇! 알았어. 그 대신 앞으로도 대대로 고산국을 위해 용병으로 일해 줘.”
“바바니 여신의 이름을 걸고, 청년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구르카 여단에 지원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월봉이 많고 일이 힘들지 않으면서 외국을 구경할 기회가 많아서 청년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선 출신 고산국 병사들의 폐부를 찌르는 언사였다. 현재 다른 직종에 비해 낮아진 군인들의 월봉을 올려줘야 할 시기가 왔으며, 군사훈련은 힘들기로 악명이 높았다. 조선 출신들이 약골이 아니라, 구르카 용병들이 워낙 특이한 체질이었다.
“좋아. 용병이 아닌 자들은 고산국에 유학하러 오라고 해. 의료지원도 해주겠다.”
“저희들을 항상 좋게 대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하사가 다시 무림 고수의 풍모로 땅에 딱 한 번 딛고는 마차로 돌아갔다. 구르카 여단은 이스탄불 말고는 전투 경험이 거의 없었으나, 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구르카 여단은 승마 훈련도 이미 마쳐서 유사시에 용기병은 무리더라도 이동만 기마 상태로 하는 승마보병 정도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이들을 휘하에 두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졌다.
상륙한지 두 시간 만인 이른 아침에 자비드 외곽에 도착했다. 자비드 시가 전체를 둘러싼 높은 성벽이 동쪽 산맥에서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황금처럼 빛났다. 구르카 병사들은 모스크 돔에 붙은 벽돌이 진짜 황금이라면서 웅성거렸다.
“기병연대 첨병소대 전령입니다, 전하!”
“보고하라.”
이민호가 살펴보니 다른 전령이 계복에게 가서 보고하고 있었다. 전령이 빠르게 요약해서 보고했다.
“이맘의 군대 5천여 기가 30분 전에 남하했습니다. 방금 자비드 성에서 나온 전령이 급히 달려갔으니 곧 돌아올 것입니다.”
“좋아. 아주 좋아.”
이번 작전의 핵심은 성에서 빠져 나온 이맘의 기병들을 성 밖에서 각개 격파하는 것이었다. 기병을 먼저 패주시키면 이맘을 항복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 두두두두~
계복이 기병들을 몰고 남쪽으로 달려가 양쪽 언덕에 포진했다. 그 사이 이민호는 구르카 여단과 장갑차 대대를 지휘했다.
자비드 성의 동서남북에 구르카 용병 1개 대대씩 두고 나머지 1천여 명과 포병대는 이민호가 직접 지휘했다. 장갑차도 일부 분산 배치하고 포병대대와 병참부대를 휘하에 두었다.
“예멘의 이맘 알 만수르 알 카심이 고산국 국왕에게 지혜로운 말씀을 전합니다. 당장 병력을 거둬 돌아가지 않으면 알라의 징벌이 고산국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오. 이맘께 머리 숙여 사죄하고 당장 물러나시오.”
“일단 싸운 다음에 대화를 하지.”
예멘 이맘이 보낸 사절단을 자비드 성으로 돌려보낸 직후 남쪽으로 갔던 예멘 기병들이 몰려왔다. 이맘의 두 날개라는 하쉬드와 자킬 부족 연맹 소속 전사들이었다.
이들은 전열을 정비하지도 않고 바로 기병연대를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고산국 기병을 먼저 제압해 기동력을 상실케 한 다음 보병을 포위해서 서서히 목을 조이려는 의도였다. 하쉬드는 오른쪽, 자킬은 왼쪽을 향해 돌격했다.
- 콰콰쾅! 콰쾅! 따다다다닷!
그러나 말이 기병과 보병부대지, 이들 부대에 속한 포병이 연대급이었다. 기병연대에서 포병과 기관총 사수만 전투에 참가하고, 나머지 기병들은 전투를 구경만 했다.
한꺼번에 몰려오던 이맘의 기병들은 포화에 휩쓸리는 동시에 기관총탄에 맞아 말과 함께 픽픽 고꾸라졌다. 터지면서 파편을 흩날리는 포탄도 처음 봤고, 총탄을 퍼붓는 기관총도 처음 상대하게 된 이맘의 기병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 타타탕!
그래도 반월도를 뽑아들고 끝까지 언덕에 오르려던 예멘 기병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기병연대 기병들이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고 쏘는 기병소총의 밥이었다. 고산국 기병들의 조준 사격에 의해 절반 가까이 쓰러지고 나머지 이맘의 기병들이 말머리를 돌렸다.
- 두두두두~
예멘 기병의 전면적인 패주가 시작되고, 이번에는 고산국 기병연대 기병들이 이맘의 기병들을 향해 돌격했다. 이맘 기병들이 몸집이 커다란 말을 타고 뿔뿔이 흩어졌으나, 기병연대 기병들이 쫓아가면서 총을 쏘아 하나씩 낙마시켰다. 예멘 기병들이 분산을 잘해서 도주하는 바람에 추격전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았다.
쓸데없이 호위 병력을 휘하에 많이 둔 이민호에게도 할 일이 있었다. 이민호가 망원경을 조정하며 성벽 위에 올라 햇빛에 드러난 예멘인 성직자들을 살폈다.
이맘들 중에서 누가 예멘의 이맘 알 만수르 알 카심인지 복장만으로는 판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맘들 가운데 위치에서 앞으로 손을 뻗은 채 화를 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예멘 기병들이 패주하자 비난하고 있는 듯했다.
“5대대 저격병들 준비! 이맘들이 성벽 중앙에 나타났다. 1559년 11월생이면 40세. 흰 수염들 사이 가운데에 검은 턱수염을 노려라!”
- 타앙~
통신병이 이민호 앞에 송화기를 들이밀고 있었다. 명령을 내리자마자 자비드 성채 남쪽에 배치된 5대대 쪽에서 세 발이 발사됐다. 망원경 속에서 이민호가 목표로 지정한 자의 이마와 목, 가슴에서 피분수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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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조금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