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69화 (518/1,000)

00569  59. 예멘  =========================================================================

“총독! 나 좀 봅시다.”

“예! 폐하! 명을 내려주소서.”

명색이 오스만 제국에서 몇 명 안 되는 총독이며 직급은 파샤인데도 총독은 잔뜩 위축돼 있었다. 예멘을 평화롭게 다스리고 있다고 바깥에 알려진 것과 달리, 예멘에서의 군사적, 정치적 실패와 총독의 저자세가 연관됐다고 이민호는 판단했다.

“총독은 어찌 하여 사나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소?”

“이곳 모카 항구에서 나오는 수입이 훨씬 많아서 사나보다 더 중요합니다, 폐하.”

“그렇다고 총독이 수도이며 총독부 궁전이 위치한 사나를 장기간 떠나 있으면 되겠소? 내가 지금 총독을 꾸짖자는 게 아니오. 총독을 도와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알아보려는 것이니 솔직히 말해보시오.”

“사실, 지금 가진 병력으로는 예멘은 물론 사나라는 도시 하나도 제대로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맘 외에도 북쪽 부족들이 워낙 강성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자이디야파의 이맘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사나에는 오스만 제국의 병력이 명목상 조금만 남아서 숨죽이고 있다고 한다. 자이디야파의 이맘 알 만수르 알 카심의 아들이며, 10대 후반의 어린 이맘인 알 무아야드 무하마드가 지역 이맘들을 이끌며 사나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이맘은 모스크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이끌어주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였다. 울라마들을 비롯해 학식과 연륜을 쌓아 지혜를 가진 노인들이 이맘이라는 명칭으로 각 지역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수니파에서나 그렇고, 시아파에서는 이맘의 종교적 의미를 훨씬 강조했다. 이 시대 예멘과 오만, 현대의 이란에서 이맘이 종교적 지도력뿐만 아니라 강력한 세속적 권한을 가졌고, 국가의 수장 역할을 맡기도 했다.

“종교지도자인 이맘들만의 군사력으로는 어렵겠고, 북쪽 고원지대에 사는 여러 부족 세력이 강성하다는 뜻이군요.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메카나 지다처럼 예멘에도 자치권을 주어 적당히 세금만 받는 편이 나았겠소.”

“바로 그 메카와 지다를 지키기 위해 제국이 예멘을 점령하려고 했습니다. 두 번째가 인도와의 향신료 교역로 확보였습니다.”

메카는 예멘 북쪽 국경에서 400여 km나 떨어져 있었지만 충분히 군사작전이 가능한 거리였다. 1632년에 예멘의 이맘이 보낸 군대가 메카를 점령하고 메카의 지배자를 죽인 적이 있었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이집트에 주둔하던 병력을 메카에 황급히 파병해서 예멘의 군대를 격퇴시켰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소?”

“예멘 여러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면 오스만 제국이 바로 밀려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희는 몇몇 해안 도시만 간신히 지키고 있습니다. 보셨겠지만 심지어 모카에서도 온전한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휴전 중이나 실질적으로는 군비 경쟁을 하는 입장인 총독과 이맘이 동시에 모카를 관리하고 있었다. 총독을 엿 먹이려고 성격이 개차반에 마약중독자인 관리를 이맘이 일부러 골라서 보낸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홍해를 왕래하는 상선들에 물리는 과도한 세금 문제 때문이오. 이맘이 자의적으로 걷는 세금이 일단 문제겠지만 총독의 책임도 있는 것 같소.”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군비를 갖춰야 해서 당분간 세금을 과하게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총독뿐만 아니라 이맘도 그 이상으로 세금을 받고 있으니 상인들만 죽어나고 있소.”

실제 역사에서 오스만 제국의 군대는 1629년에 사나에서 완전히 쫓겨나고, 1635년에 예멘 땅 전체에서 물러난다.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가 독립한 19세기에 다시 예멘으로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다.

현재 예멘에서 오스만 제국의 문제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더라도 북부 고원지대를 온전히 지배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국군이 조금이라도 약화되면 예멘인들이 바로 반란을 일으켜 제국군을 몰아내려고 했다. 어쨌든 지금은 명목상 휴전 상태라서 오스만 제국과 이맘의 군대가 충돌하는 일은 없었다.

이민호는 예멘인들이 독립을 이루기에 충분한 훌륭한 전사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건 예멘의 국내 문제였고, 고산국 입장에서는 홍해의 통상로를 위협하는 집단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이맘에게 압력을 가해서 홍해에서 통행의 자유를 얻어내는 것이 이번에 함대가 예멘을 방문한 목적이었다. 이 때 이맘이 보낸 관리가 무례를 저지른 것은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는 훌륭한 핑계였다.

“밖에서 듣던 것과 영 다르구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헝가리 문제 때문에 이스탄불에서 대규모 병력을 예멘에 보내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노력한 것이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 같습니다.”

밖에서는 예멘 총독 하산 파샤가 이맘과 잘 지내면서 10년 넘게 평화를 유지해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동안 예멘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어보니 실로 한심했다.

오스만 제국에서 파견한 하산 파샤는 예멘 전체의 총독이 아니라 해안가 일부 지방의 중하급 관리에 불과했다. 북부 고원지대는 여전히 이맘과 현지 부족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다섯 이맘파의 지도자인 이맘, 알 만수르 알 카심의 제자들이 총독 하산 파샤에게 예멘에 왕국을 세워서 이맘이 되라고 꼬드겨서 거의 넘어갈 뻔했다고 한다. 이맘과 북부 부족들에게 밀리는 판에 총독이 독립 왕국을 세웠다간 오스만 제국의 군사적 지원도 못 받고 바로 멸망할 것이다.

알 만수르 알 카심은 오스만 제국에서 자이디야파 대신 수니파 하나피 학파 출신자들을 종교법원에 임용한 것을 문제 삼아 1597년에 이맘 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과 화전양면 전술을 구사하면서 북부 고원지대를 장악하는 작업에 들어가는 동시에 휴전을 체결했다.

전투는 없었지만 제국과 이맘은 치열한 신경전 중이었다. 그리고 북부 고원지대에서는 이맘이 주변 부족들을 복속시키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그렇게 왕 노릇을 하고 싶었소?”

“죄송합니다. 지나고 보면 바보 같은 생각이었지만 현지 주민들이 밀어준다는데 누구든 솔깃하지 않겠습니까?”

이래서 총독 제도는 불안했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군권과 행정권을 모두 쥐고 있으면 누구라도 자연히 왕이 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된다.

고산국처럼 함대 이동이 빠르다면 몰라도 계절풍을 기다려야 하는 이 시대 범선으로 함대를 유지하다간 지방 세력의 독립을 막기 어려웠다. 19세기에 이집트에서도 총독이 반란을 일으켜 독립 왕국을 세웠으며, 현재 시리아에는 여러 지방 세력들이 사실상 군웅할거 중이었다.

“어쨌든 좋소. 이런 상황이니 고산국 군대로 북부 고원지대나 사나를 쳐도 괜찮겠소? 이맘하고 대화를 좀 할 것이 있어서 말이오.”

“그렇게 해주십시오. 사나를 계속 점령하지 않으신다면 이스탄불에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멘을 갖고 싶더라도 주둔시킬 병력이 없소.”

“폐하께서 이집트 현지인으로 군대를 꾸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자비드를 점령해주십시오. 어쩌면 그곳에 알 만수르 알 카심 이맘이 있을 것입니다.”

북부 고원지대 사나 주변에는 하쉬드와 자킬이라는, 이맘의 두 날개라 불리는 산악 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맘에게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이었으며, 주변 부족들을 통합하는 무력의 기반이 됐다. 그런데 지금 두 부족의 핵심 전력이 이맘과 함께 자비드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자비드라. 생각해보겠소. 지도를 좀 봅시다.”

자비드는 모카 북쪽 100여 km에 위치하며 홍해 해안에서 내륙으로 20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였다. 건천인 와디 주변 농경지에 위치한 자비드는 아주 오래된 도시였다.

“꽤 높은 성벽이 자비드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점령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언제 자비드를 점령한다고 했소?”

“히익! 그럼 자비드 주민들까지 모두 몰살시키실 셈입니까?”

이민호는 대답하지 않고 기병연대를 상륙시켰다. 커다란 배에서 완전무장한 기병들이 꾸역꾸역 내리자 총독을 비롯한 관리들과 구경 나온 상인들, 모카 주민들까지 아주 질려버렸다. 기병연대 3천여 기가 모카 북쪽에 집결해 행군 대열을 갖췄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구르카 여단이 상륙해서 대대별로 진용을 갖추고 포병대까지 상륙했다. 예멘인들이 패용한 잠비아보다 구르카 병사들이 허리에 찬 쿠크리 단검이 훨씬 크고 강하고 화려해 보여서 예멘인들이 괜한 열등감에 빠졌다.

쿠크리 단검은 구르카 여단 창설 후에 이민호가 관심을 보여 진짜 좋은 작업도구로 성능이 상향됐다. 좋은 철을 재료로 열처리까지 해서 구르카 병사들이 안심하고 나무를 자르고 땅을 팔 수 있게 됐다.

“우아!”

구르카 병사에게 이맘이 파견한 관리의 처형을 맡겼다. 단칼에 마약중독자의 목이 날아가자 예멘 사람들은 비명이 아닌 감탄을 지르며 쿠크리 단검에 눈독을 들였다.

“폐하께 무례를 저지른 이맘의 관리를 이렇게 처형했다. 고산국의 군대는 오늘 밤에 출발해 이맘이 있다는 자비드를 징벌하겠다!”

통역장교가 아랍어로 포고령을 내리자 예멘인들이 웅성거렸다. 모카에도 이맘에게 충성하는 자들이 많았으니 몇몇이 오늘 밤중에 자비드로 달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 카라라랑~

상륙함에서 장갑차들이 내리는 순간이 오늘 오후에 모카에서 펼쳐진 쇼의 절정이었다. 예멘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갔다. 그들의 눈에는 장갑차가 이야기로만 들었던 거대한 전투 코끼리로 보였다.

“도련님! 말과 낙타를 탄 자들이 여러 차례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을 추격하고 싶어?”

그러나 계복도 그 사이에 많이 늘어서 이민호의 노림수를 간파했다.

“일부러 보여준 것 아닙니까?”

“그렇지. 밥 먹게 다시 승함시켜.”

어느새 해가 지려고 해서 곧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모카 북쪽에 포진한 1만에 달하는 병력이 차분히 배로 돌아갔다.

식사가 끝나고 다시 지상군 병력에게 취침 시간을 주었다. 오후 내내 자다가 깨어 드디어 출동하나 했더니 저녁을 먹고 다시 취침 시간이었다. 병사들이 투덜거렸으나 새벽에 전투가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끙! 이건 열대야야.”

이민호는 배가 서서히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더워서 깬 다음 배가 움직이는 것을 느낀 것일지도 몰랐다. 현재 4월 초인데도 이 지역은 낮 최고 기온이 35도가 넘고 밤에도 26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더워 죽겠는데 침대에는 항상 서너 명이 있어서 더 더웠다. 아이누 출신 후궁 두 명은 속옷 하나만 입고 자는데도 너무 더워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직 한 시밖에 안 됐군.”

그러나 함대는 이미 모카 항을 떠나고 있었다. 앞으로 서너 시간은 더 잘 수 있었지만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을 갖춰 입었다. 호위 당직 지수가 옷 입는 것을 도왔다.

“군인들은 무엇을 가장 중시할까? 생존, 명예, 전투 자체, 승리, 승진, 전리품 등등 전쟁 중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말이야. 잃기도 하고.”

“승리 아닐까요?”

“그렇군. 하지만 내 밑에 있으면 전투에 투입될 일 자체가 적어서 불만일 거야. 승리할 일도 별로 없어.”

혹시나 싸울 일이 있더라도 북아프리카처럼 해군 함대의 포격으로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스탄불에서는 반란 와중에도 지상군 투입을 극도로 자제했다.

이민호는 조금 걱정했으나 병사들이 딱히 불만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리품을 분배받을 기회가 적어지더라도 우연히 받게 되는 행운일 뿐이라고 인식한 것 같았다.

“하지만 주인님 밑에 있으면 언제나 승리한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 병사들은 주인님이 꼭 필요할 때만 군대를 투입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억지로 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어요.”

“그래? 그렇게 알아줘서 고맙다.”

지수가 호위라서 더 긍정적으로 대답해준 것 같았다. 사실 전쟁을 원하는 병사들도 일부 있어서, 그들이 군에서 나와 유럽으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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