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66 58. 이집트와 레반트 =========================================================================
“폐하! 알 아즈하르 대학교에서 폐하를 초빙하고자 합니다. 부디 방문해주시겠습니까?”
“대학교에서 무슨 일로 고를 부르는 것이오? 혹시 고에게 명예박사 학위라도 주려고요?”
울라마들이 카이로 성채로 와서 이민호를 정중히 초청했다.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대학교는 970년 혹은 972년에 건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들 중에 하나였다. 중세 말이나 르네상스 초기에 지어져 제법 오래 됐다는 유럽 대학들보다 몇 백 년이나 빠르다.
“울라마와 학생들이 폐하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나는 신학을 모르오만?”
“폐하께서 무슬림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동방의 현자로 소문이 자자한 폐하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알라께서 폐하의 신앙심을 증명하실 겁니다.”
종교재판에 끌려가는 듯한 찝찝함이 들었으나, 울라마들이 잔뜩 모여 있다니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울라마들을 설득해 이집트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학으로 향했다. 대학이 카이로 성채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울라마들끼리 다급하게 대화를 나누더니, 대학교가 아니라 같은 담장 안에 위치한 아즈하르 모스크의 광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이민호를 안내한 울라마들은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광장에서 대화를 진행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이민호는 그가 앉을 자리와 광장 주변 건물들과의 거리를 가늠한 다음 허락했다. 건물에서 머스킷으로 쏘기에는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이 몰려올 줄은 몰랐네.”
“일만 명쯤 될 것 같아요. 카이로 성채에 연락해야겠어요.”
민영이 무전기를 등에 짊어진 호위병을 불렀다. 가까운 곳에 가느라 호위병을 많이 데려오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민영이 계복과 통화하면서 카이로 성채에서 병력을 이끌고 급히 오게 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보기에는 청중들이 다들 학자풍이라서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계복이한테 구르카 2개 대대만 끌고 오라고 하고, 총함장께는 카이로 성채를 장악해달라고 부탁해. 혹시 모르니까.”
“그럴게요. 그리고 저희들이 주인님을 지킬 거여요.”
“항상 고맙다.”
민영이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호위 업무에 임했다. 예상치 못하게 사람들이 많이 몰리자 호위들이 긴장한 사이 이민호가 자리에 앉았다. 유일하게 작은 천으로 햇빛을 가린 자리였다.
“대학과 모스크를 통틀어 가장 학식이 높은 울라마가 폐하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방금 전하를 이집트 총독 겸 오스만 해군 제독인 알리 파샤보다 높은 동방 제국 고산국의 군주로서 현재 이집트의 실질적인 지배자라고 설명했습니다. 오스만도 맘루크도 아닌 이집트인을 정치와 군사의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전하의 말씀을 전해서 청중의 반응은 아주 좋은 편입니다.”
통역장교를 통해 울라마들이 이집트식 아랍어로 대화하는 내용을 간추려서 들을 수 있었다. 표정만 봐도 청중들이 이민호에게 호감을 가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민호도 긴장한 와중에 억지로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질문과 응답 시간으로 넘어갔다. 통역장교가 이민호의 말을 옮기면 무아진이 큰소리를 내어 청중들에게 알렸다. 바로 옆에서 들으니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서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폐하께서 이교도라는 설이 있고 무신론자라는 설이 있습니다.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나는 이슬람의 형제 종교인 유대교나 가톨릭 신자는 아니오. 하지만 FSM교에서는 구약성서와 쿠란을 정식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소. 게다가 이 종교의 안식일은 이슬람과 같은 금요일이오.”
“오오~”
이런 좋은 분위기일 때 이민호가 선창을 했다. 메카의 항구 지다와 트리폴리 항의 사형 집행 현장에서 외쳤던 바로 그 구호였다.
“알라흐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아르~”
청중들의 호감도가 마구 오르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교도일지는 몰라도 무슬림들이 경멸하는 무신론자는 확실히 아니게 됐다. 무슬림들에게는 다신교나 불교도 무신론자 취급을 받았다.
“폐하! FSM의 뜻이 무엇인지요?”
젊은 대학생으로부터 가장 곤란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FSM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슬람교에서도 이 시대의 개신교와 같이 우상 숭배를 철저히 배격하므로 신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조각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FSM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라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소. 비록 형상은 아름답지 않으나 신도들의 상상 속에 그려진 모습으로 음식을 선택함으로써 신도들에게 푸근하고 넉넉한 인상을 안겨주신다오.”
“폐하께서 교리를 약간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어허! 이거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FSM교를 선교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어서 꺼려지오. 하지만 원한다면 말씀드리겠소.”
이민호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산과 나무, 난쟁이를 시작으로 4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고, 천국은 맥주화산과 발리 댄서를 무한대로 만들어내는 성소로 이루어졌다고 설파했다. 이집트인들이 맥주를 주로 마시므로 이민호가 설명한 곳은 천국이 확실했다.
힐끗 옆을 돌아봤더니 그리스 조각가와 네덜란드 화가들이 이민호가 무슬림 청중들 앞에서 교리를 설파하는 모습을 열심히 스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 조각가는 이민호의 얼굴 주변에 동그랗게 성스러운 후광을 그려 넣었다.
“내가 해적들을 퇴치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소. 그러나 이는 교리에 따라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요. 지금까지 이 세상에는 따뜻한 시기와 추운 시기가 번갈아 닥쳐왔소. 알고 있소?”
이민호가 묻자 청중들이 세계사를 전공한 학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즈하르 대학교에서 연구하는 역사는 이슬람 국가들 중심이긴 했으나 다른 나라에서 세계사라 부를만한 학문이었다.
아즈하르 대학교에서 역사는 세속 학문이 아니라 오래된 신학 범주에 속했다. 천문학도 달의 정확한 변화를 관측하고 예상하는 연구 위주였으므로 신학에 관련됐다.
“맞습니다. 이집트는 큰 상관이 없지만 온대 지방과 그 북쪽 추운 지방은 일정한 기후 변화 주기에 크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옛날 기록을 살펴보면 게르만 족이 남하한 것, 바이킹이 크게 불어나 지중해까지 침공한 것도 기후의 큰 변화 주기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이 갑작스럽게 추워져서 먹을 것이 부족한 탓에 대규모로 남하한 것입니다.”
“그렇소. 그런데 기후는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해적의 숫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소! 학자들이 수천 년 기간을,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과 이집트 람세스 2세와 3세 시기 바다 민족의 대규모 침략 시대부터 세밀히 연구했소. 그 연구에 따르면 해적의 수가 늘어날수록 기후가 차가워진다오.”
“바다 민족의 침략은 확실히 역사 기록에 있습니다.”
문제는 이 바다 민족을 해적으로 볼 경우 여차 하면 미케네인이나 팔레스타인인, 심지어 유대인과 그리스인까지 모조리 해적으로 분류해버릴 수가 있었다.
“바로 몇 십 년 전까지 기후가 따뜻해 온대 지방의 인구가 꾸준히 늘어날 수 있었으나, 최근 해적이 급증하면서 이 세상이 급격히 차가워지고 있소. 대서양에 빙산이 떠다니고 있는 것으로 거대한 기후 변화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증명할 수 있소. 학자들은 이를 작은 빙하기라 해서 소빙기라 부른다오.”
“그렇다면 기후가 차가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폐하께서 해적을 퇴치하고 계신 것입니까?”
“그렇소. 하지만 해적이 너무 줄어들면 지구 온난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앞으로도 해적 숫자는 적절히 유지 돼야 하오.”
현대의 FSM교에서 설파하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해적의 급격한 감소를 꼽았으나 지금은 그 반대로 설교했다.
이민호가 황급히 복장을 살폈다. 해적들이 입기도 했던 근대 해군 제독의 복장과 유사해서 다행이었다. FSM교의 교리를 설파할 때는 해적 복장을 입어야 무례를 범하지 않는다는 교리도 있었다. 쓸데없이 교리를 남들 앞에서 떠들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해적을 증오해서 무조건 없애시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에서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신 일이군요. 사실이라면 폐하께서 실로 훌륭한 업적을 세우신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맙소. FSM은 특정 지역이나 민족에 국한된 종교가 아니오. 교세 확장에 신경 쓰지 않고 이 세상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는 점을 이해해주시오.”
“아! 브루나이의 무슬림 공주님들이 폐하와 결혼 후에도 여전히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는데,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FSM의 교리에 대한 논의에서 점수를 많이 땄다. 그러나 이슬람 모스크에서 다른 종교의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피차 곤란하다는 이유로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로 합의했다.
“폐하! 이집트에서는 어떤 정치를 펼치시겠습니까?”
“일단, 이집트는 이집트인이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의 울라마들과 함께 이집트인의 교육에 대해 논했고, 새로운 군대를 주로 이집트인으로 채우려는 것이오.”
“저희들이 스스로 나라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이민족들이 이집트를 지배했습니다.”
“무슨 소리요? 그대들은 파라오의 후손들이 아니오? 게르만과 켈트, 심지어 로마와 그리스인들이 야만인이었을 때도 그대들의 조상은 피라미드를 쌓고 토지문서를 작성했소. 그리고 지금은 훌륭한 무슬림으로서 이집트인 대부분이 글을 읽을 수 있소. 충분히 독립이 가능하오.”
“사실 여기 모인 청중들의 3분의 1은 이민족의 후손들이거나 혼혈입니다. 저들을 이집트 영토 밖으로 내몰아야 합니까?”
이민족이거나 혼혈들의 안색이 변했으나, 반드시 듣고 싶은 질문이었다. 이민호가 당당하게 확신을 담아 답변했다.
“결단코 아니요. 이민족은 옛날에 파라오 시대에도 이집트에서 함께 어울려 살았소. 이민족의 후손이라 해도 지금은 이집트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이집트인은 모든 권리에 있어서 동등할 것이오.”
고왕국은 자신이 없어서 파라오 시대라고 뭉뚱그렸다. 이민호는 람세스 2세의 군대에 여러 민족의 용병 부대들이 속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산국이 동방의 강국이며 오스만 제국의 동맹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이집트의 통치를 위임받은 까닭이 있습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산국이 이집트를 통해 얻을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봐도 강대국이 자국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외국의 일에 나서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있지 않소? 수에즈 운하는 무역으로 성장한 고산국에게 몹시 중요한 길목이오.”
청중들이 꽤나 충격을 받았다. 나일 델타의 곡식, 면화, 아프리카로의 침공로, 이집트인의 대규모 징병 등을 예상했던 청중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고산국에서 만든 운하 아닙니까?”
“바로 그렇소. 이집트 땅에 만든 운하라서 원래부터 이집트인에게 관리를 맡기려 했소, 이집트인과 좋은 관계를 맺어 앞으로도 고산국 배들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데 불편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하오.”
“고산국에서 통치하는 기간 동안 이집트인들을 착취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집트에서 가져갈 거라도 있소? 모르지요. 이집트가 독립할 때쯤에는 그런 게 있을지.”
이집트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긴 했으나, 부정하지는 못했다. 물론 현대 이집트에서는 석유가 나고 천연가스를 수출했지만 이민호는 유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현대 이집트의 최대 산업인 관광업은 이 시대에 기대하기 어려웠다.
“폐하께서 에스파냐 같은 기독교 국가들과 가깝다고 들었습니다. 북미 대륙으로 이민자를 받고 계시는데, 주로 기독교 국가 출신입니다. 기독교와 더 친하신 것은 아닙니까?”
“동방의 브루나이 제국은 독실한 무슬림 술탄에게 통치를 받고 있소. 내 장인이시오. 그리고 북미 이민자 중에는 몰타에 잡혀갔던 무슬림들도 많소. 에스파냐에서 추방된 모리스코인들도 대다수가 북미를 택했고, 나는 그들을 환영했소.”
이민호가 이민자들을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유일하게 집시만 입국을 막았으나, 갖은 방법을 동원해 들어왔다가 쫓겨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랍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아 딱히 이민을 받기도 어려웠다. 이스탄불에서도 이민자가 아닌 모스크 건축기술자 몇 백 명만 빌려왔을 뿐이었다. 그리스에서는 인구가 조금 남아 이민을 받을 수 있었다.
“고산국이 오스만 제국보다는 이교도 국가인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더 가까운 것 같아 우려가 듭니다.”
“에스파냐가 지배하는 남미에 파나마 운하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에스파냐와 우호를 증진할 수밖에 없소. 수에즈 운하가 이집트 땅에 있으므로 앞으로 영원히 이집트는 고산국의 맹방이 될 것이오.”
“우와!”
이민호가 선언하자 청중들이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이집트인들에게 신뢰를 조금 준 것 같아 이민호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집트인들 입장에서는 고산국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타게 된 셈이었다.
“네, 네놈은 뭐냐?”
갑자기 청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지면서 훤칠하게 키가 큰 사내가 연단 쪽으로 이동했다. 청중들이 강제로 막으려는 것을 이민호가 말렸다.
“이 모스크에 들어온 누구에게나 발언할 권리가 있소. 이리 올라오시오.”
“고맙습니다, 폐하!”
이민호는 터번을 쓰고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연결된 아랍 남자들 중에서 저렇게 멋지게 생긴 남자는 생전 처음 봤다. 마치 너무 잘 생겨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쫓겨난 아랍에미리트 미남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남자의 몸에서 명나라 황궁에 갔을 때 맡은 역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냄새야! 저리 좀 물러가게.”
“저에 대해서만 말투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폐하.”
“내가 마약 종류를 싫어해서 말이야. 자네는 울라마도 아니지 않나?”
사내가 매력적인 웃음을 흩날렸다. 그를 알아본 일부 청중들이 당혹감이 가득 담긴 소리를 질렀다.
“저놈, 알 아사신이다! 당장 끌어내고 폐하를 지켜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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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여론주도층인 이슬람 율법학자들을 장악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