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63화 (512/1,000)

00563   58. 이집트와 레반트  =========================================================================

“좋아. 다음은 상인들과 이야기를 하지.”

“먼저 선물을 바치겠습니다, 폐하.”

기다리는데 익숙한 상인들은 이민호가 예니체리 장군과 주지사, 울라마들과 대화하는 동안 계속해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상인들 뒤에 상자가 가득 쌓여 있고 헐벗거나 속살이 비치는 옷을 입은 미녀들이 여럿 앉거나 서 있었다.

이민호는 공개적으로 여자와 뇌물을 바치는 상인들 덕택에 마치 아라비아의 술탄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날아다니는 양탄자만 있다면 중동 지역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선물은 나중에 조용한 곳에서 바치고, 이야기부터 해봐.”

“헤헤! 고산국 국왕폐하와 말씀이 잘 통할 것 같습니다.”

“선물을 받으면 나도 비슷한 가치의 선물을 당신들에게 줄 거야. 나는 부자라서 당신들에게 뇌물을 받을 필요가 없어. 다음부터는 가져오지 마.”

관중들이 경기 입장료를 낸다는 사실에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가 자존심 상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민호도 몹시 불쾌했다. 이민호가 이집트의 상업을 부흥시킬 계획을 짜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런데 망해가는 상인들이 뇌물 바칠 생각부터 한다면 무역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베네치아 시녀들이 추산한 이 시기 이집트 상인들의 자본력은 몹시 취약한 편이었다.

“선물을 받는 것은 고귀한 신분을 가진 자의 당연한 특권입니다, 폐하. 저희들은 권력자로부터 보호를 받는 대신 응당한 대가를 지불할 뿐입니다.”

“뇌물을 바친 다음에 상업상의 특권을 달라고 요구하겠지. 그것은 정상적인 권리가 아니다. 다른 경쟁자 상인들이나 백성들에게서 빼앗아서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저걸 바치고 나면 무역할 자금이 남아있나?”

이집트에 탄광이 있다면 바로 보낼 뻔했다. 그러나 이집트 경제를 살리려면 알렉산드리아의 무역을 진흥시킬 필요가 있었다. 상인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치더니 태도를 바꿨다.

“사실 저희 이집트 상인들은 망해가고 있습니다. 저 뇌물도 빚을 내서 구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진작 그렇게 솔직하게 나왔어야지 허세 부리긴. 뭘 도와주면 되나?”

이집트 상인들이 무릎을 꿇고 조아리자 이민호도 그제야 제대로 도와줄 마음이 생겼다.

“저희 이집트 상인들도 다시 인도와의 향신료 무역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지? 요즘도 포르투갈 해적이 약탈하나?”

현재 이집트의 무역은 심각한 퇴조기였다. 포르투갈에 의해 인도양 항로가 열리고 홍해와 인도양에서 포르투갈 함대로부터 위협받은 이래 카이로가 향신료 무역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다.

인도 동부나 멀리 향신료제도까지 이집트 배가 갈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위험에 관련된 과다한 비용을 지출하고 나면 성공적으로 항해를 마쳤더라도 향신료 무역에서 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때맞춰 새로운 무역 상품을 찾아냈다. 예멘의 커피와 인도의 면직물을 구입해 북아프리카와 발칸 반도, 아나톨리아로 수출하는 중간 도매시장 역할을 맡으면서 쇠퇴를 약간 늦출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카이로에서 200km나 떨어졌지만 카이로의 외항으로 기능했다. 이 시대 예멘의 수도 사나의 외항이 남쪽으로 200km나 떨어진 모카 항인 것과 비슷했다. 낙타에 상품을 실은 대상들이 사막이 아니라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푸른 밭이 펼쳐진 나일 델타 지역을 왕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폐하께서 인도양의 해적들을 진압한 이후 이집트 상선이 약탈당한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홍해에서 예멘을 지날 때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예멘? 가끔 해적선이 나오는 곳이지만 고산국이나 오만 상선들에게는 공손하던데?”

이민호는 함대를 동원해 아덴만에서 무력시위를 하고 홍해 주변의 해적 근거지 몇 곳을 쓸어버린 기억이 났다. 오만의 해적선이야 잔지바르를 영토로 삼을 정도라서 조금 그럴 듯했지만, 예멘이나 건너편 아프리카 쪽의 해적선은 작은 뗏목에 불과해서 무역선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저희들은 오스만 제국의 속주인 이집트의 상인들입니다. 홍해를 통과하는 모든 배는 일단 모카 항에 의무적으로 입항해서 투르크 관리들에게 화물에 대한 세금을 냅니다.”

“모카 항에 가본 적이 없어서 그건 몰랐네. 모카 항에서 모카커피를 파나? 하하! 농담이야.”

“예. 커피의 주요 집산지가 모카입니다.”

아덴 항이 홍해 바깥쪽에 있는 반면 모카는 홍해 입구 바로 안쪽에 위치한 항구였다. 모카 항은 15세기부터 모카커피의 수출항이기도 했다.

“배 단위가 아니라 화물에 대한 세금이라. 많이 받겠군. 그런데?”

“문제는 투르크 관리들의 횡포가 심하다는 것입니다. 뇌물을 안 바치면 세율을 올리거나 자의적으로 세금을 부과해버립니다.”

“세리가 보통 그렇지.”

현대 국가의 세무공무원이 아니라 일정 지역에 대한 징수권을 가진 세리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법규가 아니라 자의적인 판단이 우선시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예멘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반 독립적인 자이디야파 이맘의 배를 만날 때마다 세금을 뜯깁니다. 두세 척만 만나도 도저히 수지 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예멘의 다섯 이맘파? 뗏목 수준이던데 배로 그냥 밀어버리면 되지 않나?”

“그들은 전사이고 저희들은 상인입니다. 저희들 배도 대포와 머스킷으로 무장을 했습니다만, 포르투갈 해적선 상대로는 잘 싸우는데 자이디야파 배를 만나면 싸우느니 차라리 세금을 내고 맙니다.”

“아니, 도대체! 상인이 해적 역할도 하는 시대인데 이집트 상인들은 왜 그리 순한가? 이집트 상인들의 노예근성이 문제가 아닐까?”

상인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마치 사라센 해적들을 상대로는 용감히 싸우다가 프랑스가 공격하자 같은 기독교 국가와 싸울 수 없다고 항복해버린 몰타의 구호기사단과 비슷한 사고방식이었다.

해결책으로 당분간 이집트 상선 깃대에 태극기를 동시에 게양하도록 했다. 예멘 산악지대에 자리 잡고 해적선을 홍해에 내보내는 자이디야파도 조만간 때려잡기로 했다. 지방 정권이 독립투쟁을 하든 기득권을 지키든 상관없으나 만약 해상교통로를 건드린다면 고산국이 국가 차원에서 응징을 가했다.

하산 파샤가 1580년부터 20년 간 예멘 총독으로 재직하는 동안 전쟁이 없었으나, 홍해를 지나가는 상선들 상대로는 여전히 세금을 걷는 모양이었다. 물론 고산국이나 오만 상대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고, 이집트 상선이나 메카 순례자를 태운 배는 만만한 착취 대상이었다.

“그럼 저희들은 홍해 통과세를 안 내도 되겠습니까?”

“홍해를 지나 장사를 하는데 세금을 안 낼 수는 없지. 그런데 예멘 총독은 홍해를 제대로 지켜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째서 홍해를 지나는 배들에게서 세금을 받는 거야?”

“맞습니다. 자이디야파와 휴전 협정을 맺어 평화 기간을 계속 경신시키고 있는데도 전쟁세와 해적 퇴치세 명목으로 세금을 걷고 있습니다.”

“알았다. 곧 해결해줄 테니 인도와 교역을 해라. 인도에서 후추를, 실론에서 계피를 사서 오스만 제국이나 레반트 지역에 팔면 되겠지. 고아의 포르투갈 상인들과 무역을 해도 좋다. 다만 포르투갈의 향신료 무역을 침해하면 안 되니까 향신료는 유럽 국가에 판매하면 안 된다.”

“감사, 감사합니다. 드디어 자카트뿐만 아니라 세금도 부담 없이 낼 수 있게 돼서 기쁩니다.”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의미가 큰 것은 자선으로 번역될 수 있는 자카트였다. 이는 자발적인 기부가 아니라 경제적 여유가 있는 무슬림에게 종교적 의무였으며, 그래서 자카트는 세금에 우선했다.

금융자산의 경우 40분의 1을 내고, 농작물, 귀금속, 광물, 가축의 경우 40분의 1에서 5분의 1 사이였다. 이것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부의 재분배 수단이었으며, 사후에 신에게 그 보상을 받는 것으로 여겨졌다. 자카트를 경제규모로 따지면 현대 기준으로 이슬람을 제외한 전 세계 인도적 기부금의 15배에 달했다.

무슬림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데도 자카트를 내지 않으면 천벌 받아 지옥 간다고 믿었다. 절대적 빈곤에 빠진 자, 노예나 포로 신분에서 풀려나기 위해 몸값을 내야 하는 자, 여행자 등은 비무슬림이라도 자카트를 받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자카트를 받아도 천벌을 받는다.

“이슬람교는 빈민구제와 공교육이라는 면에서 참 좋은 종교야.”

“가톨릭도 빈민구제를 잘해요.”

“물론이지.”

이민호는 네리사의 말에 얼른 동의해줬다. 그러나 이슬람이 빈민구제와 공교육의 체계화가 더 잘 되어 있었다. 반면에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은 가톨릭이 체계적이었다.

교육이나 빈민구제 같은 것들은 사실 국가가 해야 할 일들이었으나 이 시기 유럽과 중동에서는 기존의 지역별 공동체와 종교기관이 맡고 있었다. 국가에서 세금을 받더라도 더 중요한 왕실의 사치와 정복전쟁에 사용하느라 남는 자금이 없었다.

“저, 폐하. 선물은 어떻게 할까요?”

“가져가서 무역자금으로나 써.”

오히려 여러 가지 사치품 견본을 상인들에게 떠맡겼다. 이집트 상인들이 베네치아 시녀들이 모르는 사치품 시장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시장 개척을 위한 투자였다. 이들이 이집트 상인들이니 나일 강 중류의 상 이집트나 수단과 에티오피아와 연결될지도 몰랐다.

“폐하께서 하사하신 상품을 멀리서 팔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녀들은 두고 갈까요?”

헐벗은 미녀들이 이민호를 주시했다. 큼직한 눈에 시커먼 눈 화장을 해서 아주 섹시해 보였다. 허리에 살이 약간 접히고 똥배가 볼록 나온 것도 오히려 더 육감적이었다.

미녀 다섯 중에 둘이 금발 백인이었는데 유럽이 아닌 페르시아 북부 고원 출신인 것 같았다. 자기들이 유럽 금발 백인들의 오리지널일지도 모르는데 현대의 일부 극우 이란인들은 독일과 혈연적 연관이 있을 것 같다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즉, 과거에 독일인들이 이란 북부에 와서 정착했거나 씨를 뿌렸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 것이다. 백인우월주의에 유럽 사대주의가 섞인 멍청한 소리였다.

“데려가. 나는 지금 있는 후궁들도 감당 못해.”

“고산국 국왕폐하의 후궁은 100명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대왕이시라면 최소 500명은 거느리셔야 사나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중노동의 고통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리고 100명은 벌써 넘었어.”

이민호가 입맛을 다시는 가운데 상인들이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챙겨서 천막에서 나갔다. 오스만 제국의 전통이라면서 멀쩡한 건물과 연회장을 놔두고 마당에 천막을 치고 만찬을 열었다.

다음 날 오전에 순양함과 수송선, 상륙함에서 병력이 대거 상륙했다. 이집트에 고산국의 강력한 군세를 보여주기 위해 기병연대와 구르카 여단, 장갑차 대대까지 다 내렸다.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부두가 좁아서 배에서 내린 병력은 얼른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맘루크는 어때?”

“영 별로입니다. 일단 기병 교관으로는 그런 대로 쓸 만합니다.”

맘루크들의 실력을 살펴보고 온 계복이 툴툴거렸다. 새로 창설할 이집트군의 훈련 종목을 선정한 다음 교관이 될 맘루크들에 대한 훈련은 해병들에게 맡기고 계복은 전체 지상군의 지휘를 맡았다.

이민호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이집트를 떠맡은 대신 철저히 이집트의 인력과 자원만으로 정상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이집트군을 창설할 때도 맘루크 기병의 봉토를 몰수해서 새로운 부대의 운영비와 병사들 봉급을 감당하도록 했다.

아직은 크게 무리가 없었다. 관개시설을 개축하고 농지를 대형화하는 구획사업 문제는 뒤로 미뤄두었다. 상업도 더 발전시켜야 했다.

“가자.”

“전군, 전진!”

백마에 탄 계복이 지휘봉을 앞으로 뻗자 기병연대 첨병소대가 앞서 나갔다. 해군은 며칠 후에 출항하기로 하고 지상군이 카이로를 향했다.

알렉산드리아 시내에 이집트인들이 몰려나와 고산국 지상군의 행렬을 구경하면서 위용에 크게 감탄했다. 특히 장갑차가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치거나 발이 얼어붙었다.

“장갑차가 철 코끼리래.”

이민호가 키득거리며 장갑차에 탑승했다. 기병연대는 말을 타고, 구르카 여단은 마차나 장갑차 상부에 탄 채로 이동했다.

장갑차가 전투용이라는 생각에 장갑차부터 개발했으나, 사실 전쟁하는 군대에서 더 많이 사용하고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은 수송용 트럭이었다. 이차대전 때 독일군이 기갑부대를 대량 운용하면서 수송은 말로 했다가 고생했던 전철을 이민호도 고스란히 밟고 말았다.

폭이 50미터도 안 되는 나일 강 하류를 따라 말과 장갑차들이 줄지어 달렸다. 나일 강 하류라는 것이 수에즈 운하 북쪽 출구 옆에도 있더니 200km 넘게 떨어진 이곳 알렉산드리아에도 있었다. 이렇게 나일 강이 하류에 오면서 나뭇잎의 세맥처럼 퍼져 있으니 나일 델타가 전체적으로 풍요로웠다.

“관개사업만 잘하면 지금보다 몇 배 더 수확하는 건 문제도 아니겠어.”

“맞아요. 땅도 몹시 기름진데 농지구획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기관총 사수석에 앉은 민영도 바깥 풍경을 보면서 동의했다. 현대 이집트의 인구가 8천만에 달하고, 이 시기에는 4백만에 미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흑사병이 몇 번 더 돌고 경제가 극도로 쇠퇴하면서 17세기 후반에는 오히려 2백만 명 후반대로 떨어진다.

중간 중간에 펠라힌들이 거주하는 다 쓰러져 가는 흙벽돌집들을 살피며 이민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기름진 옥토에서 농민들이 이 정도밖에 못 사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애들 예방주사부터 놔줘야겠어요.”

“그래. 할 수 없지.”

고산국으로 대거 이주하는 아일랜드가 아니라면 예방주사를 유럽이나 중동에서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굶주리고 병든 이집트인들부터 살리고 볼 일이었다. 인구가 너무 적으면 회복도 더디기 때문에 일단 인구 증가가 우선이었다.

흙먼지를 휘날리며 고산국 지상군이 빠르게 이동했다. 저 멀리서 이번 반란에 실패해 산적으로 변신한 맘루크 패잔병 몇 명이 말을 타고 후다닥 달아났다.

이민호는 기병연대장에게 추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괜히 잡아봤자 귀찮기만 했기 때문이다.

“혹시 저 맘루크들이 새로 창설할 이집트군 병사로 지원할 수 있을까요? 사회 불안요소도 흡수하고 좋잖아요.”

“절대 아냐.”

지배층이 일반 병사로 지원할 리도 없거니와, 괜히 맘루크를 새 이집트군에 받아들였다간 쿠데타가 걱정됐다. 저들은 이미 이슬람 여러 지역에서 정당한 군주들을 암살하거나 갈아치우면서 지배층으로 올라섰던 상습범들이었다.

============================ 작품 후기 ============================

지금 자면... 역시 새벽 지나서 오전이나 돼야 새 글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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