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62화 (511/1,000)

00562   58. 이집트와 레반트  =========================================================================

“주지사!”

“예! 폐하!”

맘루크 주지사가 맨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땀을 뻘뻘 흘렸다. 알렉산드리아, 이집트식 아랍어로 에스켄데레예의 주지사는 반란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휘하 맘루크 병사들 일부가 가담했다.

그것을 핑계로 주지사를 얼마든지 처단, 혹은 파면할 수 있었다. 물론 이민호가 직접 할 수는 없고 이집트 총독 이순신을 통해야 했다.

“병사가 아닌 맘루크 관료들은 지식인이라고 들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폐하!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앞으로 맘루크는 군인을 관두고 관료나 학교 선생이 되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기존 맘루크의 교육체계를 개편하라고 여러 맘루크 가문에 이르게.”

“예에, 폐하.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이번 반란을 계기로 맘루크를 몰살시키거나 이집트에서 추방할 수도 있기에 주지사가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군사력은 권력의 핵심이라서 맘루크의 힘 절반 이상의 날아가게 됐다.

그러나 기병은 사막 지형에서 필수적인 병종이기 때문에 존속시키는 편이 나았다. 기병 다수를 이집트인들 중에서 뽑는 대신 맘루크는 전투부대 장교가 아닌 교관이나 참모로만 남겨두기로 했다.

“잠깐! 맘루크는 노예 병사로 이어지지 않았나?”

“맘루크 왕조 시대까지는 노예를 사서 키웠습니다만, 그때도 이미 맘루크들이 결혼해서 후대를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노예를 사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편입니다.”

원래는 맘루크 가문이라 해도 주요 출신 종족을 뜻하는 말이었다. 맘루크 왕조 시대 전기는 바흐리 시대, 후기는 부르지 시대로 나눈다. 이는 다수파 종족이 투르크 족에서 코카서스 산맥의 케르케스 족으로 바뀐 것을 의미했다.

“좋아. 이곳은 이집트 땅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맘루크들이 이집트에서 살아가려면 이집트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거야.”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맘루크가 처음에 생길 때는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계통 위주로 노예를 사들였다. 중앙아시아 투르크인들은 대체로 기마민족이었기에 기병으로 쉽게 양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케르케스 족을 비롯해 동유럽의 알바니아나 그리스인 맘루크들이 점차 늘어났다.

이때 유럽 귀족 영지의 소작농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고 빈농이라 번역될 만한 아랍어 펠라, 복수형으로 펠라힌이라는 집단이 중동 전역에 있었다. 이집트의 펠라힌은 전 인구의 6할을 차지하며, 상부 이집트 사람들과 인종적, 문화적으로 가까웠다. 피지배층으로 전락한 옛날 이집트인의 후예라고 볼 수 있었다.

2천년 동안 피지배자로 살아온 펠라힌들을 이집트의 주인으로 만드는 일은 그들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맘루크 주지사에게 새로운 군대의 모집과 편성, 훈련을 맡겼다.

“펠라힌과 기타 이집트인들 위주로, 이곳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는 그리스인, 유대인, 쿠르드 족, 알바니아인, 아랍인 등 이 지역에 거주하기만 한다면 인종을 가리지 말고 군대를 모집하게. 명칭은 이집트군 알렉산드리아 연대야. 알렉산드리아에서 총 3천 명을 모집해서 훈련을 시키게.”

“폐하! 황송하오나 펠라힌은 무식하고 게으르고 겁이 많아서 군인으로 키우기 어렵습니다.”

“펠라힌은 이집트 문명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후예야. 지금이야 못 배우고 가난해서 그렇지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어. 그리고 주지사 자네도 조만간 펠라힌 출신 상전을 모시게 될 거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알렉산드리아 주지사 직책도 이집트인들에게 내놔야 했다. 맘루크의 몰락을 현실로 받아들인 주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알라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신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인데? 인간의 정치에 어째서 신성한 신의 이름을 빙자하는 건가? 아니면 인간인 내 명령을 거부하는 건가?”

주지사가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만찬장 한 구석에 몰려 앉은 이집트 율법학자들이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몰라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알라의 뜻이란 아랍어에서 그저 관용구일 뿐이었다.

“저희 맘루크들이 살아남을 길이니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자금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죽거나 도망친 맘루크 기병에게 분배됐던 봉토를 모두 회수하게. 그것으로 남을 거야. 다만 그들의 가족들을 보살펴줘야 할 테니 일부는 남겨두게.”

맘루크는 부유한 편이었으므로 가장들이 전사하거나 도주했더라도 과부나 아이들이 먹고 살 형편은 됐다. 또한 나름대로 가문과 파벌을 꾸리고 있던 맘루크들의 상호 부조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그래서 주지사는 쉽게 그 일을 맡았다.

“제가 예전 동료들의 재산을 빼앗는 악역을 맡겠습니다. 하오면 훈련과정은 어떻게 됩니까?”

“그 문제는 저기, 알리 파샤 밑에 육군 총사령관과 상의하게.”

계복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맘루크 주지사를 손가락으로 불렀다. 아랍어 통역장교와 함께 세 사람이 머리를 싸매며 훈련 내용을 정했다.

그러나 계복은 다음 날 오전 이집트군의 교관을 맡을 맘루크 퇴역 군인들의 실력에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이 시기 맘루크는 몽골군을 섬멸하고 십자군을 격퇴해 무슬림의 보호자로 추앙받던 예전의 맘루크 기병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스만 속주 시기의 맘루크는 이 시대 기병치고는 화약무기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엿보였다. 고산국에서 생산한 머스킷으로 무장할 이집트군을 맘루크나 예니체리보다 강하게 양성할 계획이었다.

아랍 지역 사정에 정통한 베네치아 시녀들이 이번 일의 준비를 잘 해주어서 좋게 끝났다. 알렉산드리아 주지사와 상의한 일들은 조만간 이집트 전체에 적용할 표준 정책이 될 예정이었다.

맘루크 기병의 봉토를 회수하고 군대를 창설하는 문제도 다른 주들에서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맘루크 봉토를 회수한 이후 관개작업이 훨씬 순조롭게 진행돼 농업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었다.

“거기 울라마 여러분은 들으시오.”

어떻게 통역이 되든 상관 않고 이민호는 성직자와 교사에게 기본적으로 존댓말을 사용했다. 일반 무슬림들에게 스승이라 불릴 정도면 나이가 많고 턱수염을 길게 길러서 반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면도 있었다.

울라마는 학자, 대표적으로 이슬람 법학자를 의미했다. 그러나 이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은 자들이기에 아랍 지역에서 관료로 진출하거나 모스크에서 예배를 주도했다. 또한 이슬람 공동체의 수장인 뮬라(Mullah) 또는 이맘이 되기도 했다.

“예, 폐하!”

“모스크나 그 부설 교육기관에서 이집트인들을 교육시킨다고 들었소. 교육 과목은 뭐가 있소?”

이 시대의 로마가톨릭은 라틴어 성서의 현지어 번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지역별 언어로 번역할 때 오역의 가능성이 있고, 성서를 신도가 직접 읽다가 오해해서 이단으로 흐를 여지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에서도 쿠란의 현지어 번역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신도들에게 쿠란을 직접 읽게 하기 위해 글과 아랍어를 가르쳤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둘 다 원전이 잘못 번역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같았으나, 로마가톨릭은 라틴어가 어렵다고 신자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고, 이슬람에서는 아랍어 문어를 가르쳤다는 차이가 있었다. 오스만 제국령 헝가리에서 보듯이 제국은 속주에도 학교를 세워 신학과 문학, 수학 등을 가르쳐 피지배민의 교육 수준을 높였다.

그래서 무슬림은 대부분 기본적으로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시대 다른 대부분의 문화권과 달리 여자들도 글을 익혔다.

“마드라사는 유럽에서 말하는 일반 학교입니다. 신학교육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 과학, 문학, 역사, 외국어 등도 교육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10세기부터 모스크 부설 초등 교육 기관으로 마크타브가 세워져 6세 아동부터 다녔다. 여기서는 14세까지 쿠란, 철학, 언어, 문학을 비롯해 수공업이나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쳤다. 일종의 공교육인 셈이었다.

14세 이상의 학생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관심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문학, 설교, 약학, 기술, 상업, 지리 등이 전공과목들이었다.

마드라사는 의미 자체는 마크타브를 포함한 일반적인 학교였으나, 마크타브와 비교할 때는 고등 신학 교육기관으로 따로 분류되기도 했다. 마드라사의 교육 과정 중에서 아랍어, 쿠란의 내용 해석 위주인 타프시르, 이슬람 율법 샤리아,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다룬 하디스 등은 신학과 관련된 과목이었다.

그러나 대학교와 같은 고등 교육기관으로서의 마드라사에서도 신학 외에 논리학과 철학 등 인문학, 수학과 기하학, 천문학 등 과학, 문학과 아랍 역사 등을 전공으로 선택해 연구할 수 있었다. 필요에 따라 영어나 불어 같은 외국어도 개설됐다.

“학생들이 배우는 게 너무 많소.”

“그렇다고 종교과목을 뺄 수도 없고, 실제 도움 되는 세속 학문을 빼기도 어렵습니다. 혹시 폐하께서는 이집트에 우민정책을 시도하시려고 하십니까?”

“그건 아니오.”

“백성들이 오직 신학만 공부하게 되면 다스리기는 쉬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학문 특히 인문학은 신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과학이나 기술은 이집트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어느 종교든 광신도들은 사람들이 종교 외의 것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발버둥 쳤다. 현대 사회에서도 만화, 영화, 팝 음악 등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서 종교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대중문화에 대해 집요하게 공격한다. 그러나 이집트 율법학자들은 인문학과 과학, 기술 과목을 지키기 위해 바짝 긴장했다.

“천만에 말씀이오. 배우는 게 많으면 좋겠지만, 애들은 뛰어노는 게 우선이라서 말이오. 14세 이하는 쉬엄쉬엄 공부를 시키시오.”

현대 아랍 세계에서는 학생들이 낮에는 세속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기숙사형 마드라사에서 신학 위주로 공부했다. 이 시대에 학생들에게는 다행인지 신학교와 세속 학교가 구분되지 않았다.

“폐하! 그렇다면 체육 과목을 넣으면 어떻겠습니까?”

“과목이 늘어나서 좋아할 학생은 아무도 없소. 14세 이하 수업 시간을 조금 줄이도록 하시오. 어른들이 시키지 않더라도 시간만 준다면 아이들은 어디서건 알아서 잘 놀 것이오. 애들을 가축처럼 가둬서 키우지 마시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스크나 부설 재단에 기부된 토지가 많아 마크타브는 물론이고 고등교육 기관인 마드라사라 해도 교육비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슬람 교육제도의 특징이라면 고아나 가난한 학생을 받아들여 교육을 시킨다는 점이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마드라사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울라마는 지배층과 백성들 사이를 연결해서, 백성들의 불만과 요청을 지배층에게 전달해준다고 들었소. 맞소?”

“그렇습니다, 폐하. 반드시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세속적인 요구에 대해서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결정합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상부에 건의해 해결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서방 세계에 이슬람교의 법률학자라고 번역되는 울라마가 무슬림들에게 스승으로 존경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울라마는 기본적으로 신학자로서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연구하고 집행하기 때문에 서구인들이 보기에 법률가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울라마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했고, 민중의 요구를 맘루크나 오스만 제국 관료 등 지배층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울라마는 신학자 겸 법률가 겸 교사 겸 촌장으로서 민중의 스승 역할을 했다. 유럽에서도 신부가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울라마에 비해 지배층에 훨씬 가까워 대부분의 경우 지배층 자체였다.

“교육과 신학 외에도 지방자치행정을 담당하는군요. 하던 일을 계속하시오. 다만 앞으로 이집트의 운명은 이집트인이 결정해야 할 것이오. 정치나 행정, 군사 모든 분야에서 이집트인들이 나서야 하오.”

“고산국이 오스만 제국을 대신해서 이집트를 다스리지 않습니까?”

이집트인들은 이번 일을 지배층 일부의 교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1517년에 맘루크 왕조가 멸망하고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지배하게 됐으나 지배층은 여전히 맘루크들이었다.

결국 이집트인들이 보기에 총독이 오스만이나 맘루크 출신에서 고산국 관료로 교체된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며, 앞으로 크게 달라질 것이다.

“내가 임명할 고산국 관료가 당분간 이집트 총독의 역할을 맡겠지만 임시조치일 뿐이오. 앞으로 짧으면 10년, 길어도 20년 이내에 이집트는 이집트인이 다스리게 될 것이오. 그 기간 동안 준비할 것이 많소.”

“이집트가 독립할 수 있다면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침공하면 어떻게 합니까?”

“바로 그게 문제요. 오스만 제국의 황제도 이집트를 독립시켜준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소. 그러나 제국에게 이집트가 큰돈이 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오. 오히려 주둔비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소.”

“저희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을 위해 폐하께서 조언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당분간 모든 이집트인들이 고생해야 할 것이오. 그래도 미래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독립을 쟁취해야 하오. 그러나 이집트가 독립하게 되더라도 형식상 계속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남는 것이 좋을 것이오.”

“완벽한 독립은 아니군요.”

울라마들이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지난 2천 년 동안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이집트인들이 처음부터 완벽한 독립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19세기 초에 총독으로 왔다가 이집트의 독립과 근대화를 이룬 무하마드 알리 파샤도 명목상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이집트를 남겨두었다. 시리아를 놓고 제국과 싸워 이기고 한때 제국 본토를 위협했던 이집트였지만 다 쓰러져가는 오스만 제국의 그늘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비용에 비해 이익이 크다면 당분간은 속국으로 남는 게 나을 수도 있소. 그리고 이민족인 맘루크의 지배를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하온데 폐하! 이집트가 무하마드 시대와 같은 이상적인 제정일치의 사회를 지향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민호는 신학자와 율법학자들이 다스리는 이슬람 국가라는 지옥을 생각하면서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명예살인을 권장하는 현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나 중세 유럽의 이단재판처럼 혐오스럽기도 했다.

“울라마들도 역사를 배웠다면 아실 게요. 그대들이 생각하기에 제정일치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라 해도 결국 어떤 나라든 현실적으로 세속 국가가 되지 않았소? 칼리프든 이맘이든 세속 군주 술탄에게 힘을 잃거나, 아니면 종교 지도자의 명칭을 달고도 세속 군주화되는 경향이 크다오.”

“그렇다 해도......”

“당신들이면 잘할 수 있다고요?”

이민호가 ‘니가?’ 라는 식으로 경멸이 담긴 표정을 드러냈으나, 울라마들은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순수한 열정과 의욕으로 가득 찼겠지만, 과거 아랍 역사를 살펴보면 누구도 미래를 자신할 수 없었다.

“괜한 혼란을 일으킬 뿐이오. 욕심을 버리시오.”

“죄송합니다. 폐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민호는 울라마들에게 지지를 받으면서 이집트인 민중의 지지도 덤으로 얻게 됐다. 이 날의 대화는 일부 윤색되고 미화되어 이집트 여러 지역에 퍼져나갔다.

============================ 작품 후기 ============================

한 나라의 발전방향을 겨우 2~3회로 압축해서 올리는 것은 사실 무리입니다.

오늘 중에 한 편 더 안 올라오면 제가 자는 줄 알아주십시오. ㅜ.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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