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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552화 (501/1,000)

00552  56. 지중해 원정  =========================================================================

“제 말을 안 믿으세요?”

“믿어요. 믿습니다, 공주님.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이민호가 손등으로 훠이훠이 손짓해서 자칭 공주를 배로 보냈다. 물론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원정 출발 전에 유럽 왕실에 대해 알아봤는데, 현재 덴마크는 크리스티안 4세가 재임 중이며 얼마 전까지 국왕이 어려서 모후 메를렌부르크의 조피가 섭정을 맡았다고 했다.

게다가 덴마크 왕실에는 은근히 조혼 풍습이 있었다. 14살 넘는 공주가 시집 안 가고 왕실에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폐하께서는 여자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군요. 지난번에 폴란드 처녀들을 받으셨다고 들었기에 당연히 여자를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오해였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아니, 나는 여자를 좋아해요. 우크라이나 처녀들도 아주 잘 받았소. 덴마크 처녀들도 미인들이오. 고맙소.”

선물을 받았으면 기뻐해줘야 하는데 시큰둥해서 총독이 더욱 오해한 듯했다. 덴마크 처녀들을 고향에 돌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감정이 없었을 뿐이었다.

“어떻습니까, 총독? 해적은 사라졌소. 알제르를 스스로 지킬 수 있겠소? 나는 이것이 최대 관심사요. 적은 에스파냐뿐만이 아니오.”

“불가능합니다. 알제르는 노예무역과 해적들의 헤픈 씀씀이에 의존하던 경제구조라서 해적이 사라지면 수입이 전혀 없습니다. 조만간 알제르 앞바다를 지킬 군함도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에스파냐가 침공하지 못하게 막아주면 어떻겠소?”

“에스파냐도 문제지만 사막 유목민들도 거친 인간들입니다. 머지않아 인구가 줄어들면 산맥 너머 사막에 사는 야만인들로부터 도시를 지킬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심각하군요.”

사라센 해적이 알제르에서 노예무역을 못하게 됐다면, 에스파냐에서도 함부로 알제르를 공격하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었다. 이웃 도시 에스파냐령 오랑과도 교역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어쩌면 지금의 불리한 입지가 오히려 국경 무역도시로 발전할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총독은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총독이 가진 자원이 적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만 폐하께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너무 나한테만 매달리지 마시오. 농업 환경은 트리폴리보다 훨씬 나은데 그러시오? 일단 기독교 국가들과 무역을 해보시오.”

남쪽으로 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면 사하라 사막이었으나 이 시대에는 누구의 영토라고 하기 어려웠다. 트리폴리와 같은 아프리카 북부 해안으로 묶이더라도 알제르 부근은 지중해성 기후치고는 강수량이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알제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조사했으나, 정말 보잘 것 없었다.

“팔 물건이 없는데 말씀입니까? 조금씩 생산하는 보리나 포도를 유럽에서 사겠습니까?”

“알제르 위치가 좋아서 중개 무역이 괜찮겠소. 유럽의 상품을 매입해서 아프리카나 오스만 제국에 팔아도 이익이 짭짤할 것 같소.”

고산국 상인들이 지중해에 연한 항구마다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상품을 팔 여력이 되지 못했다. 결국 옛날처럼 항구 하나를 정해 대량 판매하면 서서히 다른 지역으로 상품이 확산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참다랑어를 얼릴 얼음을 구할 수만 있다면 알제르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아깝습니다.”

“자세히 말해보시오. 지중해에 참치가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오. 참치 중에서도 참다랑어라면 고급 어종 아니오?”

“북아프리카 어부들은 아주 옛날부터 참치를 잡았습니다. 대서양에서 살던 참치가 산란기에 지중해로 들어옵니다. 어부들은 산란기에 참치가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치가 죽으면 금방 독을 내뿜기 때문에 많이 잡더라도 팔 수가 없습니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온 마탄자, 그러니까 학살이라 해서 정치망 그물을 바다에 설치해 놓아 참치를 대량으로 잡는 전통적인 어획방법이 있었다. 현대 사르데냐 남서쪽 산 피에트로 섬에서도 참치 회유로를 따라 그물을 놔서 한꺼번에 잡는다.

그러나 이 시대에 문제는 잡은 참치를 신선한 상태로 보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민호는 참치 조업 현장에서 바로 참치 통조림을 만들까 했다가, 그 비싼 참다랑어로 참치 통조림을 만드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얼음이라.”

이민호가 고개를 들었다. 멀리 아틀라스 산맥 정상 부위에는 아직도 눈과 얼음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있는 얼음을 알제르까지 가져오려면 수송비용이 훨씬 더 들 것 같았다. 결국 전기로 얼음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싸게 먹혔다.

“얼음을 만들어줄 수 있소. 물론 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모스크에서 확인해줄 수 있을 것이오.”

“얼음을 만든다고요? 참! 물도 부족합니다. 트리폴리처럼 이곳에도 샘을 만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하수라면 기술자들에게 찾아보라고 시키겠소. 안 나오더라도 실망은 하지 마시오.”

알제르도 현대에 들어서서 산유국이 됐으나 유전 대부분이 아틀라스 산맥 너머 사하라 사막에 집중돼 있었다. 가끔 해안에도 유전이 발견되긴 했으나 알제르 근처에 유전이 있다는 말은 이민호도 들어보지 못했다.

원유 매장량이 많은 트리폴리에서도 원유 대신 지하수가 쏟아졌으니 이곳에서도 지하수가 나오길 기대했다. 굴착기술자 한 조를 물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는 황무지로 보내 지하수를 개발하게 했다.

점심 때 총독관저에서 연회를 열어 이민호를 초청했다. 3미터 가까운 참다랑어가 통째로 구워져서 나왔다. 잡는 즉시 배에서 구워 독성물질 배출을 막고, 먹기 전에 다시 제대로 굽는다고 했다.

그런 설명을 들어서 그런지 먹기가 불안했고 맛도 예상보다 별로였다. 이민호는 비싼 참치를 구이로 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현대에 유통되는 참치 가격은 정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특별한 예외에 속한다 해도 18억 원이나 하는 참치들은 도대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했다.

알제르에서 나는 포도와 오렌지 종류는 당도가 아주 높아서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주변 지중해 국가들 중에서 건포도를 사줄 나라가 없었다. 알제르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중에 에밀리아가 제안했다.

“알제르는 최근까지 노예무역의 중심지였어요. 그래서 유럽 상인들도 불안해서 오기 어려울 거여요. 지중해의 해적을 퇴치하신 주인님이 이곳을 보호령으로 삼아서 무역항으로 널리 알리는 방법이 있어요.”

“좋은 방법이긴 한데 이곳에 병력을 주둔시킬 여유가 없어. 내가 오스만 제국 황제에게 통치권을 위임받은 땅은 이집트인데, 그곳만 지키기에도 벅차.”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상품이 반은 이스탄불과 레바논으로 향하고, 반은 지중해를 따라 서쪽으로 흐르게 하면 어때요? 그 중간 중간에 위치한 항구에서 북쪽 유럽 국가들로 향하고요.”

“크레타, 몰타, 튀니스, 알제르로 동서 축을 만들고, 거기서 다시 북쪽으로 향하게 한다? 유럽 상선들이 북아프리카 해안에 오겠군. 좋아. 그렇게 하자. 그럼 베네치아는 손해 아냐?”

“크레타가 베네치아인데요?”

“참! 그렇군.”

아직도 이민호는 크레타를 그리스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고, 크레타는 베네치아 영토였다.

짧은 시간에 대충 만들어진 무역축을 함대에 돌아가서 자세히 검토하기로 하고 계속 음식을 들었다. 그때 전령이 급히 달려와서 보고했다.

“땅을 파는 곳에서 시커멓고 더러운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이민호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찌 된 나라가 유전지대도 아닌 곳에서 원유가 쏟아지고 있었다. 굴착기술자도 금방 달려와서 보고했다.

“전하! 원유가 발견됐습니다. 그래서 마개를 잠가서 차단했습니다.”

“내버려두고 멀찍이 떨어진 다른 곳에서 지하수를 찾게나.”

지금까지 원유가 발견된 곳이 다들 어정쩡한 위치에 있어서 고산국 상선이나 함대에 시간을 잡아먹게 했다. 아부다비는 해안에서 채굴되어 상업적으로 효율적인 유전이었지만 수에즈 항로에서 천 km 이상 벗어난 지역에 있었다. 알제르는 지중해에서도 서쪽에 치우쳐져 있어 별로 좋은 입지가 아니었다.

“폐하! 더러운 물이란 아마도 석유일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그것으로 ‘그리스의 불’ 같은 이상한 무기도 만들고, 지금도 일부가 연금술사들에게 사용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치가 물보다 훨씬 못하지요. 쓸데없는 땅에서 쓸데없는 것이 나와서 죄송합니다.”

무스타파 2세 파샤가 괜히 사과했다.

“알았소. 억지로라도 알제르를 무역항으로 만들어야겠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알제르는 고산국의 보호령이 될 것이오. 물론 여전히 오스만 제국의 영토이지만, 이 지역을 지키는 것은 고산국 지중해 함대요.”

수에즈 운하를 기준으로 하면 알제르는 지중해의 서쪽 변방에 불과했다. 그러나 스케일을 크게 해서 북미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 무역을 한다면 알제르가 중요한 위치였다.

알제르에서 에스파냐, 프랑스, 이탈리아 서부 도시들을 무역권으로 둘 수 있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레바논과 오스만 제국, 이탈리아 동부 해안 도시를 무역권으로 두면 적당히 나눠질 것 같았다.

“폐하! 이곳을 그냥 고산국 영토로 하면 안 됩니까? 해적도 없어진 마당에 에스파냐가 쳐들어올까 불안해서 말입니다.”

“제국의 총독께서 영토를 포기하자는 말씀을 하시오?”

“자금도 없이 무조건 변경을 지키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바로 서쪽에 에스파냐령 와흐란에서 호시탐탐 이곳을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와흐란은 오랑의 아랍어 발음이었다. 탐사선을 알제르 서쪽 오랑에 보내 친서를 전달하게 했다. 그리고 이민호는 함대를 이끌고 발렌시아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람을 3만 명 넘게 태운 수송선들을 계속 끌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이주민을 실은 수송선들을 순양함 네 척의 호위 하에 북미로 보내기로 했다. 지브롤터를 지나가는 길에 에스파냐 해군 제독에게 보내는 친서를 넘기라고 했다.

“노예는 얼마나 있소?”

“예, 폐하! 폐하께서 오실 것을 알고 2만 명이나 준비했습니다.”

“많군요.”

“갤리선 노잡이들이 1만 명이 넘습니다. 폐하께서 구입하실 것으로 예상해 그 전보다 잘 먹이고 깨끗이 씻어 놓았습니다. 아마도 알제르에서 판매하는 마지막 노예가 될 것 같습니다.”

“총독께서 수고하셨으니 특별히 더 쳐주겠소.”

해적들이 갤리선 노잡이들을 헐값에 팔고 도망친 것 같았다. 노예를 더 싸게 살 수도 있었지만 특별히 노예 일인당 금화 2개씩 쳐줬다. 총독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역시 노예 시장에 총독도 숟가락을 얹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몰타 섬에서 온 구호 기사단이 노예들 절반 정도를 배로 실어갔다. 이민호가 수석기사에게 시간 맞춰 알제르에 오라고 요청했었다. 나머지 1만 명은 수송선에 탑승했다. 이제 4만 명이 넘어 수송선의 수용 인원에 한계가 왔다.

“물이 나옵니다! 차가운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습니다!”

전령이 다시 오찬장에 달려와서 큰소리로 보고했다. 오찬이 오전 11시부터 3시까지 이어지고 있었으니 금방 지하수를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총독이 좋다고 뛰쳐나가고, 이민호도 따라갔다. 석유가 나온 것은 실패로 간주돼서 굴착기술자들이 동시에 세 군데를 팠는데, 세 군데에서 다 물이 나왔다.

굴착기술자들은 상부 지형을 파악해서 지하에 액체가 고일만한 땅을 수직으로 뚫는 식으로 지하수를 찾았다. 석유를 찾는 데는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었으나 지진파로 탐사하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폐하.”

“그 정도로 충분하오. 이제 그만 일어서시오.”

여자를 다룰 때는 변태 같은 노인이 그래도 감사할 줄은 알았다. 다른 통치자들처럼 백성들이 살기 편하게 됐기에 감사하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범죄자들이 다 그렇듯 상대방을 강자로 인식했을 때에 한해 과도한 예의를 표하는 것뿐이었다.

============================ 작품 후기 ============================

트리폴리에서 관정을 뚫었는데도 원유가 발견되지 않은 이유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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