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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548화 (497/1,000)

00548  56. 지중해 원정  =========================================================================

함대는 그 다음 날 오후에 몰타 섬에 도착했다. 멋모르고 함대 기함에 오스만 제국 해군기와 제독기를 달고 항구에 들어가는 바람에 요새화된 몰타 섬 전체에서 아주 난리가 났다.

항구 바깥의 양쪽 요새에서 성 요한 기사단 기사들이 대포를 쏘기 직전에 수석기사 후안 페드로가 간신히 막았다. 세인트 엘모 요새와 리카솔리 요새에서 순양함 깃대에 내건 태극기를 확인한 다음에야 소란이 가라앉았다.

고산국 함대는 세인트 안젤로 요새 남쪽, 일-크비르라고도 일컫는 ‘대 항구’에 차례로 입항했다. 대 항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시대 기준으로 거대한 함선 51척이 모두 정박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구호 기사단의 수석기사가 국왕좌승함에 올라 이민호를 영접했다. 환영의 말이 끝나고 수석기사가 당혹스러운 감정을 실어서 물었다.

“폐하께서 설마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을 줄은 몰랐습니다.”

“돈 후안께서 실망하셨소? 동맹은 아니고, 황제에게 의뢰를 받은 거요.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지만 대부분 평화로운 협상을 통해 오스만 제국에서 북아프리카의 해적들을 없애기로 결정했소. 다만 신성동맹 가입 국가들이 북아프리카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요.”

“예? 기쁜 일이지만 저희로서는 큰일이군요.”

“뭐가 말이오?”

“사라센 해적들이 해적질을 못하게 되면 구호 기사단도 존재 가치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잘 됐습니다. 이슬람 해적이 해산한다면 저희들도 사라지는 편이 낫습니다.”

수석 기사는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광신도 기질이 다분한 일부 젊은 기사들은 반발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민호도 수석기사와 생각이 달랐다.

“구호 기사단의 존폐 여부는 교황 성하께 상의를 드려야 할 것 같소. 내 생각에는 구호 기사단이 조직을 계속 유지해서 노예무역을 막고 해적을 감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몰타가 무역하기에 위치가 아주 좋으니 중개무역에도 유리하고 말이오. 그런 내용으로 교황 성하께 편지를 보내리다.”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 기사들도 회의를 열어 진로를 결정하겠습니다. 헌데 이번에 이렇게 함대를 이끌고 직접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야 당연히 작년과 같소. 무슬림 노예 전체를 내게 넘기시오. 사략선 선원도 예외는 없소.”

“음. 알겠습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노예일지도 모르겠군요. 노예 숫자가 줄어들면서 가격이 약간 올랐지만 작년과 같은 가격으로 정하겠습니다.”

작년에 비해 몰타의 노예시장에서 무슬림 노예들에 대한 처우가 상당히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예들이 철문 안 감옥이나 철창에 갇힌 것은 여전했으나 먹는 것이 지난번보다 사람이 먹는 것에 가까워졌고 목욕도 보름에 한 번은 시키는 것 같았다. 저번과 달리 벌거벗은 사람도 없었다.

비록 일부가 사라센 해적 포로라지만 사략선들의 존재가 이 시대에 불법은 아니었다. 그리고 노예들 중에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북아프리카에 건너간 유럽인들도 있었지만, 기독교도들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고 복수에 불타는 무슬림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북아프리카 도시에서 석방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남김없이 배에 태우기로 했다.

노예매매 계약이 완료되고 그 날 오후 내내 노예들을 씻기고 옷을 입혔다. 군의관들이 노예들을 살펴봤으나 작년보다 환자 수가 적고 특히 피부병 환자는 거의 없어서 진료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됐다. 그래도 구충제는 기본적으로 먹여야 했고 특별한 비누로 머리를 감게 해서 머릿니도 제거했다.

저녁에 구호 기사단 간부들을 국왕좌승함으로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작년에 로마 교황청에 가 있어서 못 만났던 총기사단장 마르틴 가레스도 만찬에 참가했다.

사제 신분인 기사들 듣기 좋으라고 축음기에 교회음악 판을 올렸다. 처음에는 천사들의 목소리로 오해했던 기사들은 고산국 왕립교회 성가대가 부른 찬송가를 녹음했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기뻐했다.

“저희 기사들은 폐하의 제안을 검토하는 회의를 가졌습니다. 결론적으로 폐하의 제안을 환영하고 적극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그랜드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는 독립적인 총기사단장을 뜻했다. 튜턴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는 이교도와의 싸움을 통해 세력을 불리다가 국가를 세워 지배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물론 성 요한 기사단의 해산도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꽤 오랜 기간 지중해 전체를 고산국의 해군력만으로 해적이나 전쟁 행위를 억제하셔야 합니다. 고산국 해군이 강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멀리서 온 함대가 오랫동안 꾸준히 주둔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집트에 군항을 열어서 지중해-인도양 함대를 배치하기로 했으니 돈 후안은 걱정 마시오. 참! 오스만 제국의 요청에 의해 이집트는 당분간 고산국에서 통치하기로 했소. 신탁통치 기간이 끝나면 이집트는 이집트 사람들이 통치하게 될 것이오.”

“맙소사! 세계정세가 급변하겠군요.”

“지중해에서 앞으로 해적 행위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오. 그리고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인도나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배들이 얌전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소.”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 전에 모든 배의 양현에 선명을 크게 써놓도록 했다. 중간에 이름을 숨기고 해적질을 하더라도 배의 선형과 돛대 형식을 등록함으로써 해적선이 수에즈 운하를 다시 통과할 때 모두 잡힐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아프리카 남단에 고산국 함대 세력이 아직 배치되지 않아 해적에 대한 대책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해적 대책을 완벽하게 세우려면 함선과 수병이 끝도 없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현대 들어서도 해적이 완전히 퇴치되지 않았는데 이 시대에 완벽을 기할 수는 없었다.

“참! 성 요한 기사단이 원래 예루살렘에서 시작됐지요?”

“그렇습니다, 폐하. 성지 순례자들을 구호하기 위한 병원에서 비롯됐습니다.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고 그 후 키프로스, 로도스, 북아프리카까지 옮겨 다녔지요. 되도록 성지에 가까이 있으려 했으나 이제 황혼에 접어들었습니다.”

11세기에 설립된 이후 수백 년 동안 기사단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사단은 항상 오스만 제국과의 최전선에서 싸우느라 인명 피해도 컸고 결국은 로도스 섬 같은 기반을 내주고 차례로 쫓겨나 한동안 이곳저곳 떠돌아 다녔다.

신교도 혁명 이후에는 더욱 사정이 나빠져 신교도 국가에서는 지부가 해산되고 몇몇 나라에서는 독립적인 구호 기사단이 생겼다. 그 와중에 1530년부터 이곳 몰타 섬에 정착해 오스만 제국의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섬을 지키고 지중해 전역에서 사라센 해적들과 싸웠다.

“그랜드 마스터에게 묻겠소. 예루살렘은 기독교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의 성지요.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가 평화적으로 가능하다면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아줄 수 있겠소? 병든 순례자들을 구호하는 병원 운영과 경비도 맡아야 하오.”

“예? 그게 가능하다면 저희들은 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방문한 베이루트에서는 여러 종교와 종파의 신도들이 서로 잘 어울리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파흐르 앗 딘이라는 드루즈파 지도자의 영지라서 특별한 경우라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무슬림들이 굳이 기독교 순례자들을 핍박할 이유는 없었다.

“오스만 제국 황제와는 이야기를 끝냈소. 그러나 현지 토착 집단과 적대하면 절대 안 되오. 그곳 지배자들도 영토에 대한 위협만 없다면 순례자들이 많이 올수록 수입이 늘어나니 기독교 순례자들을 반길 것이오.”

“이교도 놈들에게 굴복할 수는 없지만 성지 순례가 가능하다면 저희들의 명예는 어찌 돼도 상관없습니다! 베이루트에서 프랑스 기사들이 하는 것처럼 이교도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적들과 싸우면서 해적질에 익숙해진 기사단이었지만 그래도 기본이 사제들이었다. 유럽에서 지배층을 형성한 귀족 출신 사제들보다는 오히려 순수한 종교적 열정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었다.

“문제가 하나 더 있소. 현재 기사단의 강령에 기독교 국가들끼리의 싸움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고, 심지어 싸울 수 없도록 규정된 것 맞소?”

“그렇습니다. 여러 나라 출신의 기사들로 구성됐으니 당연합니다.”

“만약 어느 기독교 국가가, 예를 들어 프랑스가 몰타를 점령할 경우 순순히 내줘야 한단 말이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기독교 국가가 몰타 섬을 침공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저희들은 저항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종교적 신념이 확고한 사제 기사단이라서 이민호가 고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고수하고 있으므로 고산국과 동맹을 맺기도 곤란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1798년 프랑스 제1 공화국에 의해 몰타에서 저항도 못하고 쫓겨난다.

“심지어 교황령도 외부 침략자에 저항해 싸우는데 이곳은 참 특이하구려.”

“교황령 기사는 교황령이 조국이니 당연히 침략자를 상대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저희 구호 기사단의 임무 특성상 같은 기독교도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몰타는 이슬람 세력에게는 철옹성이었지만 기독교 세력을 상대로는 내재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몰타를 고산국의 형식상 보호국으로 삼는 문제를 총기사단장 및 교황과 협의하기로 했다.

기사들은 성지 순례자를 보호하는 임무를 자기들 세대에 다시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래서 만찬 중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자네 식사 안 하고 뭐하나?”

“아! 죄송합니다. 기사님들 스케치를 하고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고용한 조각가가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 조각가 외에도 네덜란드 화가 두 명이 따라다니면서 함대가 가는 곳마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식사 시간에도 그림 모델이 되는 것은 좀 불편했다.

“오늘 대화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길 만한 중요한 사건일 수도 있어. 하지만 조각품으로 남길 만한 극적인 사건은 아니지 않나?”

“박물관 건물의 부조로 남기기에는 충분한 사건입니다.”

“그런가?”

“눈이 즐겁습니다. 만찬에 참가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찬에는 고산국 국왕 이민호 외에도 총함장 이순신, 육군 총사령관 계복이 참가했다. 구호 기사단에서도 총기사단장과 수석기사, 항구 도시 비르구의 세인트로렌스 성당 주임 신부가 참가했다. 심지어 이 자리에는 오스만 제국의 관료도 몇 명 있었다.

화가들은 이 특이한 만찬을 그리면서 세 나라의 복식에 특히 유의했다. 구호 기사단의 사제복과 판금갑옷, 이민호의 국왕 복식인 면복, 계복이 입은 육군 장군의 예복, 이순신이 입은 조선 구군복 등 다양하고 화려한 복장에 화가들의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여기에 여진족 호위들의 복장과 만찬장에 음식을 나르는 궁녀들의 복장도 좋은 회화 소재였다. 화가들 입장에서는 밥 먹느라 이 좋은 소재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이틀 후 몰타를 떠난 함대는 현대의 리비아 북부 해안인 트리폴리 지방에서도 트리폴리 항으로 향했다. 구호 기사단 함대도 갤리선과 갈레온에 무슬림 노예들을 가득 싣고 뒤따랐다. 갤리선 노잡이는 노예가 아닌 고용된 몰타 섬 주민들이 맡았다.

아프리카 북부 해안 마그레브 지방은 알제리, 튀니스, 트리폴리로 나뉘어 있었다. 아랍 세력이 지배하던 이 땅은 1510년 에스파냐가 점령했다가 1530년 로도스 섬에서 쫓겨난 성 요한 기사단에게 넘겼다. 그러나 1551년 오스만 제국의 해군에 의해 점령된 이후, 오스만 제국 황제가 직접 지명하는 알제르 파샤와 트리폴리 파샤에 의해 느슨한 지배를 받고 있었다.

“고산국 국왕폐하에 이어 이 분은 지중해 전체를 관할하는 대제독 알리 파샤이십니다.”

부두에 친 커다란 천막에서 이민호에 이어 이순신도 트리폴리 파샤에게서 절을 받았다. 이순신도 트리폴리 파샤의 상급자였다.

현재 트리폴리에는 이브라힘 파샤가 1595년부터 재직 중이었다. 파샤는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농경지에서 받는 세금, 종교 기부금의 일부, 그리고 사략선이 바치는 전리품 일부로 영지 운영비를 마련했다.

예니체리 주둔군 사령관도 인사를 올렸다. 지금은 충성스러운 정예군이지만 조만간 이스탄불에서 예니체리의 권력이 강화되면 이곳에서도 예니체리가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다. 파샤는 종교나 의전에서만 대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보시오, 총독! 사략선 선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어찌 된 일이오?”

“황공하옵게도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해군 놈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산국 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사략선 선원들 일부는 이미 멀리 도망쳤다. 몰타 섬에 고산국 함대가 도착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배를 탄 해적들은 주로 서쪽으로 달아났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해적들은 해전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니까 트리폴리 남쪽에서 지상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1만 5천에 달하는 해적들은 함포 사거리 바깥이라고 판단한 트리폴리 항 5km 남쪽에 포진했다. 트리폴리 주둔 예니체리 부대 겨우 몇 백 명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대규모 병력이었다.

“풋!”

살짝 비웃어준 이민호가 천막 밖에 모여 있던 사략선 선장들을 불렀다. 사략선이나 해적 선장은 보통 선원들에 의해 투표로 뽑힌 경우가 많아 선장이라 해도 선원들의 대표 자격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베르베르인, 투르크인, 동유럽인 선장들은 이민호에게 절을 하고 서유럽 출신 선장들은 기사 흉내를 내면서 무릎을 꿇었다. 어쩔 수 없이 항복하는 해적들이라 얼굴 표정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 작품 후기 ============================

오늘 안으로 하나 더 올려야겠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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