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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547화 (496/1,000)

00547  56. 지중해 원정  =========================================================================

“그런데 언제 환궁하실 겁니까?”

“왜 자꾸 절 배에서 내보내려고 하십니까? 고산국 함대가 떠나기 전 날에 황궁에 돌아가겠습니다.”

반란을 처음 당해본 황제가 겁을 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군함에서 애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노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원래 황제의 자식들인데다 이민호가 아이들을 좋아하고 조금 친해지다 보니 이 꼬마들이 함 내에서 떠들고 노는 것을 말리지 못하게 됐다.

황제는 아흐메드라는 아홉 살 꼬마를 자주 이민호에게 데려와 침을 튀기며 자랑했다. 어린 나이에 벌써 몇 개 국어를 구사하고 말을 잘 타고 시를 쓴다는데 부모가 아닌 이민호가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다 허당 같았다.

그리고 다른 황자들이 의젓한 것과 달리 아흐메드 혼자만 유독 싸가지가 없었다.‘엄마의 권리는 신의 권리’라는 오스만 전통의 관습이 있었으나 아흐메드는 생모 한단 술탄의 말도 듣지 않았다.

“이틀 후에 출항하겠습니다.”

“그것 참 아쉽게 됐습니다. 혹시 제 딸애들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애들이 있으면 서넛 골라 보십시오.”

“됐습니다!”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이 하라는, 그리고 여덟, 아홉 살짜리 꼬마를 시집보내겠다는 황제의 말에 기겁했다. 후궁들 나이가 많아야 20대 중후반이었고, 황제 메흐메트 3세의 후계자 아흐메드를 낳은 한단 술탄 헬레나도 1574년생에 불과했다. 한단 술탄은 인종적으로 그리스인인데 역시나 사라센 해적선에 납치돼 강제로 개종을 당했다.

“그럼 아직 시집 안 간 제 여동생들은 어떻습니까? 결혼 적령기인 열두 살짜리가 몇 명 있습니다.”

“호의만 받겠습니다.”

아무리 예언자 가족들이 조혼을 했다는 기록이 있더라도 어린 나이에 시집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특히 고산국 후궁이 되려면 그 지역을 잘 알아서 무역 증진을 시켜줘야 하는데 너무 어려서 자격 미달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상재에 밝았던 아라 공주 정도 되는 재능은 결코 쉽게 구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유구국이 국력을 기울여 인재양성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몇 안 되는 천재였다.

반란 진압이 끝난 직후 이스탄불 시내에는 병사들이 쫙 깔려 있어서 분위기가 자못 살벌했다. 그래서 함대에 동승한 병사들에게 외출도 못 시켜줬다. 해병과 수병, 구르카 병사들은 인내력이 충분해서 참을 만했고, 기병들만 말 훈련을 위해 교대로 육지에 내보냈다.

출항을 하루 앞두고 제국 재정관이 국왕좌승함을 방문했다. 재정관은 이민호에게 황제를 구해줘서 고맙다고 찬사를 잔뜩 늘어놓은 다음 본론을 꺼냈다.

“우연한 기회였다지만 황제폐하를 구해주셨으니 오스만 제국의 요청에 의한 원정으로 간주해 출전비용을 계산해드리겠습니다. 반란에 참가한 갤리선을 나포하지는 않았지만 격파한 것 중에서 중고로 쓸 만한 것도 나포로 계산합니다.”

“거 참 고마운 일이오.”

제국의 재정관은 꽤나 객관적으로 업무를 처리해나갔다. 황제에게 귀띔을 받고 고산국에 퍼주기로 작정했는지, 아니면 미래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도와달라고 부탁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는지 생각보다 보상금이 많았다.

베네치아 금화 3분의 2정도 가치이며 작은 은화 120악체에 해당하는 금화 50만 개와 그 액수의 두 배 가치의 금괴를 받으며 이민호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오스만 제국은 부자 나라였다.

사실 이번 지중해 원정에서 무역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전체 금화 유통량은 적은 편이라서 이것도 제국에서 간신히 마련해준 금액이었다. 황궁에 자리 잡은 화폐 주조소가 밤낮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해적들이 황궁에서 훔쳐가려 했던 예술품에 대해서도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전리품인데도 황궁에 돌려주기로 아히메흐멧 파샤에게 약속했다면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컥!”

그 동안 말을 안 하고 은근슬쩍 예술품을 들고튀려던 이민호가 덜미를 잡혔다. 사라센 갤리선에서 노획해 보관하던 황궁의 예술품들을 재정관 앞에서 모두 게워내야 했다. 예술품을 배에서 내보내고 대신 금괴 상자를 받은 이민호는 속이 몹시 쓰라렸다.

“폐하께서 이집트 총독은 받아들이셨으면서 북아프리카 총독 제안은 사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을 제압하려면 제국의 관직이 임시라도 필요할 것입니다. 국왕폐하께서 총독 직을 받지 않겠다면 이집트 총독처럼 수하 중에서 적당한 인물을 내세우시면 됩니다.”

“관직을 받을 사람이 반드시 무슬림이어야 하오?”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국은 이교도에게 언제나 관대합니다. 황제폐하의 호칭 중 하나가 기독교도들의 보호자 아니겠습니까? 다만 관직을 받을 폐하의 신하가 무신론자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이슬람에서 전통적으로 인정하는 종교는 기독교와 유대교밖에 없었으나 종파나 상황에 따라 범위가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불교도와 유학자는 보통 무신론자 취급을 받았다.

재정관이 빨간 바탕에 금색 초승달이 그려진 오스만 제국의 국기와 초록색 바탕에 금색 초승달이 새겨진 해군기를 넘겼다. 이전 시대에 초승달 오른쪽에 별이 붙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시기였다. 그리고 흰 바탕에 금색 초승달을 새긴 제독기와 동양의 둑기 비슷한 말총 달린 깃발 2개를 파샤의 깃발이라면서 건넸다.

“이것은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 인장입니다. 제독의 이름을 뭐라고 기록할까요?”

이민호는 급히 이순신을 국왕좌승함으로 불렀다. 재정관에게는 이순신이 FSM 교도라고 일러두었다.

“형님의 이름을 무하마드로 할까요, 알리로 할까요? 아니면 무하마드 알리로 할까요?”

“그게 무슨 소리, 말씀이십니까, 전하?”

“형님의 호칭 말입니다. 성이 이 씨니까 알리 파샤로 하지요.”

설명을 해줘도 얼떨떨한 이순신에게 제독 인장과 깃발 종류를 넘겼다. 함대 기함에는 앞으로 태극기 외에도 오스만 해군 제독기와 파샤의 깃발, 오스만 해군기 등을 달고 다니게 생겼다.

이로써 이순신은 고산국과 조선, 명나라의 공신으로 책봉된 것을 넘어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 직위까지 수여받았다. 이집트에 항구를 두고 작전에 나설 지중해 함대를 이순신에게 맡기면 안심할 것 같았으나, 조금 불안하더라도 이 일은 젊은 전단장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순신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집에서 편히 출퇴근하도록 배려하는 편이 나았다. 이순신의 모친은 어의들과 간호사들이 극진히 모신 덕에 장수를 누리고 계셨다.

다음 날 아침 황궁 아래 부두에서 출항했다. 황제와 주요 후궁들은 물론 그 동안 친하게 지냈던 황제의 자식들까지 나와서 배웅했다. 시계 오르간 제작자 토마스 달람도 항구에 나왔다.

“자네가 계약금을 떼어먹고 튀면 런던 시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거야.”

“고산국 국왕폐하! 저는 신념대로 계약을 꼭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니 괜히 저를 유혹에 빠지게 만들지 마십시오.”

“미안. 농담이야.”

토마스 달람은 조국에 원수라도 진 사람 같았다.

“폐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니체리도 고산국 군대처럼 과학을 최대한 활용한 선진 군대로 만들겠습니다.”

“아히메흐멧 파샤라면 잘해내실 것이오.”

예니체리 부대 지휘관이었던 아히메흐멧은 2계급 특진해서 파샤 칭호를 받고 황궁을 지키게 됐다. 외국의 장군이라도 국가에 충성하는 용감한 군인은 존경 받아 마땅했다.

북아프리카 해적을 해산하는 일을 돕기 위해 함대에 탄 몇몇 오스만 제국 관리들 외에 건축 기술자가 300명이나 됐다. 지나가는 말로 북미 여러 도시에 모스크를 건설하려는데 건축가가 부족하다고 황제에게 말했더니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모집해줬다. 건축 기술자들의 가족까지 다 배에 태웠다.

이 시기 건축 기술은 오스만 제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었다. 돔과 첨탑으로 인상 깊은 거대한 모스크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건물, 성곽, 목욕탕, 상하수도와 포장도로도 잘 만들었다. 이들을 실컷 부려 먹을 흑심을 품은 이민호가 흐뭇하게 웃었다.

에게 해를 천천히 움직여 다음 날 오후 함대는 그리스 땅 아테네에 도착했다. 인구가 부족한 이스탄불을 대신해 황제의 칙명을 내세워 기술자 위주의 이민자를 여기서 모집했다. 올리브 묘목도 종류 별로 대량 매입했다.

그런데 오스만 관료들이 과잉 충성을 해서 직공, 제화공, 도공, 화가 등과 그 가족 1500여 명이 항구로 거의 끌려오다시피 했다. 이민호가 기술자들에게 3년이 넘으면 귀국할 수 있다고 안심시킨 다음 배에 태웠다.

그리스 남자들은 원피스 치마 같은 푸스타넬라를 입고 여자들은 동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옷을 입었다. 예전처럼 여자들이 천 한 장으로 몸을 두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서 아쉬웠다. ‘팬티가 아니라서 부끄럽지 않을’ 미풍양속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스탄불의 건축 기술자들은 몇 년 일을 시키다가 돌려보내줘야 하지만 이들 그리스인들은 명목상 이민자로 데려갔다. 요리사들도 모집했는데 궁중요리사 외에 개인 가게를 차린 사람들도 다들 크게 성공해 나중에 그리스로 귀국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교회 창문에 스테인드글라스 공사를 할 기술자들도 모집했다. 뭔가 특별하지 않더라도 기술만 있다면 다 데려가려고 욕심을 냈다.

이민호는 베네치아 시녀들과 함께 국왕좌승함 갑판에서 아테네 시내를 구경했다. 오래된 도시의 해질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그때 마차를 몰고 온 사람이 이민호에게 말을 걸었다.

“외국의 귀족 나리!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품을 가져 왔는데 혹시 사시겠습니까? 90여 년 전에 발굴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입니다.”

“좀 보여주게.”

30대 미술품 상인이 지붕 없는 마차에서 천을 걷었다. 커다란 조각상은 목마를 트로이 성 안에 들이지 말라고 경고 했다가 신들에게 미움 받아 바다뱀들에게 칭칭 감겨 질식당하는 불행한 트로이의 사제와 그의 두 아들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적당히 손때를 타서 반질반질한 것이 더욱 진짜 같았다.

“오오! 그거 괜찮군. 얼마야?”

“금화 스물다섯 닢만 주십시오.”

손바닥만 한 빵 하나가 1악체, 3악체가 1파라였고 말 한 마리 가격이 금화 열 닢, 즉 1,200악체였다. 1558년 완공된 이스탄불의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의 건축비로 5,900만 악체가 들었다.

“혹시 밀로의 비너스 있나?”

“그게 뭡니까, 나리?”

“아니, 밀로 섬의 아프로디테 조각상 말이야. 상체를 벗고 팔이 잘린 여신상.”

“밀로 섬이라는 곳이 그리스에 있습니까?”

미술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민호가 아는 <밀로의 비너스>에서 그 섬은 그리스어로 멜로스 섬이었고, 조각상은 19세기에 발견됐다. 당연히 이 시대 사람들이 모르는 이름이었다.

“모작을 아주 잘 하는 것 같군. 훌륭해. 자네가 만들었나?”

“헉! 살려주십시오. 재료비가 떨어져서 예전에 만들어둔 모작을 팔고 있습니다. 진품이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벌주려는 게 아니야. 혹시 재료비 걱정 없이 고산국에서 마음껏 조각을 하고 싶으면 가족들 데려와서 배에 타게. 계약금을 받게나.”

미술상 행세를 했던 조각가에게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를 던져줬다. 주머니를 확인한 조각가가 마차에서 말만 떼어 타더니 도로를 달렸다. 조각가는 그날 저녁에 함대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아테네를 떠난 함대는 정오쯤에 에게 해 끄트머리를 지나 크레타 섬 서쪽을 지나쳐갔다. 함장이 해도를 살펴보다가 이민호에게 의견을 냈다.

“전하. 만약 그리스가 독립한다면 순양함 7척만 있으면 오스만 제국에 대한 해상 봉쇄를 시킬 수 있겠습니다. 아! 이를 테면 말이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함장이라면 그런 생각을 미리 해두는 게 좋겠지.”

우방이든 아니든 해군 장교로서 기본적인 직업의식이 있다면 당연히 생각해둬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우호와 친선을 위해 오스만 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인데도 함장에게 핀잔을 주지 않았다.

외교관이 상대국에 주재하는 것이나 상인들이 왕래하는 것, 해군이 순항훈련 기항지로 방문하는 것 모두 유사시 적대국 또는 우방국의 지리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 수집 차원에서 활용됐다. 심지어 냉전시대 구소련에서는 KGB나 스페츠나츠 대원을 스포츠 선수로 양성해 유럽이나 미국에서 마음껏 스파이활동을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시간 좀 걸렸습니다.

지금 자야 하니 다음 회는 조금 늦게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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