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46화 (495/1,000)

00546  56. 지중해 원정  =========================================================================

“고산국은 동양의 큰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고산국이 오스만 제국의 신하를 칭한다면 고산국과 교역하는 유럽 여러 나라들이 당황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같이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정말 아쉽습니다. 우리 제국은 프랑스와 잉글랜드하고도 친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관계면 어떻겠습니까?”

“고산국은 어느 나라와도 우호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에는 특히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이 시대에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오스만 제국과 친해지려고 몹시 노력하는 나라들이었다. 유럽의 강대국 에스파냐에 대항하는 프랑스는 어쩔 수 없이 공동의 적을 갖고 있는 오스만과 동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일찍부터 이스탄불에 대사관을 둔 유럽 나라들 중 하나였다.

1543년 프랑스와 오스만이 연합해 니스를 공격했고, 프랑스 남부 툴롱에 오스만 함대가 겨울부터 8개월 동안 정박했다. 툴롱에 보급 거점을 둔 오스만 해군의 공격으로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에스파냐 동부 해안과 이탈리아 서부 해안이 큰 타격을 받았다. 1546년 투르구트 레이스의 함대가 안드레아 도리아가 지휘하는 함대에게 추격을 받았을 때도 툴롱으로 도주해 무사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는 시계 피아노 선물로 알 수 있듯이 오스만 제국에 헌상품을 바치는 유럽 국가들 중 하나였다. 그 외에 비밀리에 오스만 제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도 많았다. 나중에는 부끄러운 흑역사가 되더라도 이 시대에 오스만 제국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강대국이었다.

“또 실패했구나. 너는 황제가 됐으면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정말 무능하기 짝이 없구나.”

“제발 그만 좀 해요!”

사피예 술탄이 나무라자 황제가 화를 내며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사피예 술탄이 베네치아 시녀들과 하루 내내 붙어 다니더니 더욱 심하게 황제를 몰아붙였다.

“에, 술타나 사피예. 황제폐하는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나무라는 것보다는 응원해주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폐하! 저는 황제의 어머니예요. 황제가 잘못하면 제가 나서서 꾸짖을 수밖에 없어요.”

황제의 모후 발리데 술탄이라고 하지만 사피예 술탄은 오스만의 관습을 넘어 황제의 인사권까지 넘봐서 문제였다. 그러나 무역 문제를 두고는 베네치아 시녀들과 대화가 아주 잘 통하는 모양이었다. 사피예 술탄과 베네치아 시녀들이 쑥덕거리더니 어느새 무역협정 초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무역협정이 귀금속과 사치품에 집중돼 지금까지 황궁에 들어가던 뇌물을 빙자한 밀무역이 공무역으로 전환됐을 뿐이었다. 사피예 술탄이 의도적으로 고산국과의 무역을 제한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폐하! 저나 오스만 제국의 최근 상황을 보면 아시겠지만 베네치아 여자는 한 명만으로도 오스만 제국 전체를 휘어잡을 수 있어요. 그런데 고산국 국왕폐하는 거꾸로 베네치아 여자 일곱 명을 휘어잡고 계시더군요.”

“제가 좀 잘났지요.”

“하지만 긴장을 풀지 마세요. 이 아이들은 아직 후계자를 출산하지 않는 동안만 폐하께 순종할 뿐이니까요. 아기를 낳으면 전혀 달라질 거여요.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답니다. 폐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고산국에 후궁이 몇 명이나 되든 상관없이 베네치아 여자는 자기 자식을 기어코 폐하의 후계자로 만들고 말 거여요.”

후계자를 둘러싼 궁정 암투와 온갖 음모를 각오하라는 뜻이었다. 사피예 술탄은 이렇게 폭탄을 투하하고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베네치아 시녀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사피예 술탄이 너희들하고 친한 것 아니었나? 왜 같은 베네치아 출신인 너희들을 견제하는 소리를 하지?”

“후훗! 여자들끼리 벌이는 국가 간의 경쟁이에요. 저희들과 여자들끼리의 대화를 통해 승부를 봤어요. 사피예 술탄은 지금 오스만 제국이 고산국보다 약하고 장래에도 균형추가 뒤집히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주인님을 제대로 돕지 못하게 만들려는 거여요.”

“그런가?”

“무역협정 문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사치품만으로 품목을 제한한다 해도 상인들이 필요하면 우회 수입하든 어떻게든 결국 수입하게 돼 있어요. 협정으로 무역을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면화를 수입해 면직물을 생산하는 산업을 육성하고 있었다. 사피예 술탄은 고산국과의 무역으로부터 이 면직물 산업을 보호하려 했다. 베네치아 시녀들은 이 약한 고리를 공략하려 했으나, 이민호가 평소 추진하는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국가에서 보호하는 산업은 웬만하면 지켜주는 편이 좋아. 상대방의 약점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용해야지, 평소에 공격하면 저항력만 키워주니까.”

“네. 그럼 오스만의 면직물 산업은 보호해줄게요.”

지중해 무역의 대략적인 구도가 베네치아 시녀들에 의해 그려졌다. 북아프리카와 이집트 문제만 해결하면 지중해에 평화가 정착해서 무역도 정상적인 궤도에 오를 듯했다.

“서유럽에서는 무역수지를 억지로 맞춰줄 필요는 없어. 금이든 은이든 너무 많아서 문제니까 무역을 통해 흡수하는데 주력해.”

“예. 주인님이 황금의 성에서 살게 해드릴게요.”

베네치아 시녀들의 자신만만한 약속을 듣고 이민호는 황금의 성에서 살면 시력이 나빠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유럽에서 일어날 산업혁명을 늦추려면 기계의 활용을 억제하는 것보다는 물가를 낮추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유럽 상대로는 마음 놓고 무지막지한 무역흑자를 내도 좋았다.

함대는 며칠 이스탄불 앞바다에서 머물렀다. 고관대작들이 수시로 국왕좌승함으로 찾아와 황제를 알현한 다음 결정 사항을 들고 황궁으로 돌아갔다. 반란은 거의 완전히 진압됐다.

“이제 제도가 평온을 되찾은 것 같은데 환궁하지 않으십니까?”

“고산국 요리사들이 제공하는 음식 맛이 워낙 좋아서 며칠 더 머무르고 싶습니다.”

“하하! 설마요.”

“허허허!”

이민호가 오스만 제국에 욕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황제 입장에서는 고산국 함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날이 갈수록 국왕좌승함이 황제의 식구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스만 호위병들이 국왕좌승함에 탑승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나 관리 등 민간인들의 출입은 제한하지 않았다.

그래서 황제의 후궁과 딸, 아들들로 배가 만원이 되었다. 국왕좌승함 안에서 술탄과 술타나 칭호를 가진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녔고, 수병들은 황제의 자식들이 위험한 곳에 못 들어가게 말리느라 바빴다.

제3 중정이 한때 반란군에게 완전히 점령됐으나 하렘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황제의 후궁이나 자식들 중에서 상처 입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여자 궁중 악사가 팔에 자상을 입은 것이 인명 피해의 전부였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부패한 대재상부를 혁파하고 황제를 제대로 모신다는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에 황제의 하렘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반란이 최초로 일어난 제4 중정에서는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탓에 인명 피해가 숱하게 났다. 예니체리 총사령부 건물은 아예 무너졌고 각종 관리 양성기관도 피해를 입었다.

오스만 제국의 지도층인 고위 관료들이 큰 인적 타격을 입었으나, 황제가 인사권을 발동해 빠르게 행정 공백을 메워 나갔다. 공석이 됐던 예니체리 사령관 자리도 금방 채웠다. 함대에 동승했던 장군도 승진해서 꿈에 그리던 파샤 칭호를 받게 됐다.

며칠 후 황제가 요청해서 오스만 제국의 고위 장교들과 고관대작들이 보는 앞에서 사격 시범을 보였다. 구르카 용병들을 사격 시범에 내보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력이 좋고 강인하고 용감한 구르카 병사들이 도대체 뭘 못할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해군에서도 시범을 보였다. 함대가 빠르게 좌우로 기동한 다음 반쯤 부서진 갤리선과 갈레온 10여 척에 함포를 쏘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배들이 단숨에 침몰하는 것을 지켜본 오스만 제국의 관료, 장군들이 경악했다.

“으음~”

여러 배에 동승한 참관인들의 표정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지금까지 오스만 제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관료들이 신음을 내뱉었다.

그것 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한 황제가 이민호에게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통역을 맡은 갈라티아 궁녀들이 긴장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옮겼다.

“고산국의 우수한 함선과 대포, 총을 수입하면 좋겠지만 외국에 판매를 하지 않는다니 아쉽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좋은 동맹관계가 지속됐으면 합니다.”

오스만 제국에 고산국 무기를 판매하면 몇 년도 못 가서 유럽을 정복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황제와 관료들은 고산국이 다른 유럽 국가에 무기와 함선을 판매하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고산국을 적으로 돌리지만 않는다면 현 상태에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청년 장교와 학자들을 유학 보내고 싶습니다. 고산국에서 배울 게 많을 것 같습니다.”

“고산국에서도 오스만 제국에 학생과 학자들을 유학 보내겠습니다.”

“황실 가족들을 위한 어의도 부탁합니다.”

“무슬림 의사들에게 황궁 주치의가 될지 물어보겠습니다. 그런데 제국의 공중위생 부문도 강화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슬람 국가의 교육제도는 이 시대 기준으로 매우 훌륭한 편이었다. 식민지 속주에도 모스크 부속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학교를 세웠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마드라사가 오스만 제국령 헝가리의 39개 도시에 세워졌고 12개 학교는 부다에 건립됐다.

“공중위생도 중요하지요. 백성들 숫자를 늘리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니까요. 저는 땅이 아니라 인구를 대폭 늘린 황제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지요.”

항상 인구 부족 문제에 시달려온 이민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인구를 뽑아먹기가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는 어느 나라든 인구가 남는 곳이 드물었다.

사실 그리스와 아랍을 빼면 오스만 제국 본토의 인구는 천만도 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절반 이하에 불과했다. 예니체리와 해군 사략선 선원들은 대부분 동유럽 출신으로 채워졌으며, 이스탄불에서 외국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제국으로서 잘 해왔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원래 에스파냐에서 추방될 모리스코들은 오스만 제국에서 받아들이려고 준비했습니다. 북아프리카 몇 곳에 그들을 받아들일 도시도 준비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알 마그리브 지방의 라바트에 옛 로마시대의 식민도시 살라가 있습니다. 이곳도 그들에게 내주려고 비워두었습니다.”

이 당시 북서 아프리카 모로코 땅에 베르베르인이 살았지만 내륙지역에 알라위 왕조가 성립된 것은 1631년 이후의 일이었다. 살라 남서쪽 카사블랑카는 에스파냐 영토였으며 지브롤터 해협에 가까운 도시들인 텐지어와 세우타도 마찬가지였다. 살라는 그 중간에 위치한 도시였다.

실제 역사에서 살라는 에스파냐에서 추방된 모리스코 3천 명이 1601년에, 1만 명이 1609년에 정착해 살다가 점차 해적 도시로 발전한다. 무라트 레이스 2세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해적 얀 얀스존이 활동하다가 떠나고 1627년에 보우 레그레그 공화국이 수립된다.

“에스파냐가 북서 아프리카를 손에 넣지 못하게 방해할 계획이셨군요.”

“맞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아프리카는 제법 풍요로운 땅입니다. 그리고 에스파냐가 북아프리카를 통해 이집트 방향으로 꾸준히 진출하려는 것도 걱정되기에 미리 대비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황제라서 스케일이 무지 컸다. 그리고 황제는 고산국도 수에즈 운하를 개통하면서 이집트에 대한 이권을 가지고 있으니, 책임을 어느 정도 나누어서 지라고 요구했다.

“오늘 오전에 이집트에서 보낸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맘루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예니체리 군관구 병력에게 패했습니다. 이집트 총독이 반란에 가담했다가 전사했고 현재 잔적을 추격 중입니다.”

“맘루크 지도자들이 욕심을 내더니 결국 그렇게 됐군요.”

제국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총독으로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독립하고픈 야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집트 경제가 풍요로운 나일 강 덕택에 유독 독립성이 강한 탓이었다. 그러나 고산국 본토와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하게 결합된 여러 지역의 총독들은 사정이 전혀 달랐다.

“예니체리 사령관이 어디서 수입했는지 무척 잘 만든 머스킷을 다수 얻게 됐다고 좋아하더군요.”

“고산국에서 외국에 판매하는 머스킷이 맞습니다. 선물로 200정씩 나눠줬습니다.”

“무기가 아무리 좋아봤자 맘루크 특유의 구시대적 사고방식 때문에 안 됩니다. 어쨌든 이집트는 현재 행정 공백 상태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반란으로 인해 이스탄불에도 고위 관료가 부족합니다.”

황제가 집요하게 이집트를 맡아달라고 이민호에게 요구했다. 현재 헝가리에 들어가는 전비가 만만치 않아 제국은 이집트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집트를 독립시켜줄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제국 입장에서는 레바논 지역과의 무역, 시리아의 군사적 안정이 더 중요합니다. 이집트에 근거지를 둔 해적선이 동 지중해 무역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사실 이집트는 없어도 됩니다. 우리 편이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다만 제가 재위하는 동안 이집트가 독립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알았습니다. 이집트 총독을 저희 관료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한두 세대 뒤에 독립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집트 지도자에게 말해주십시오. 명목상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기만 하다면 실질적으로 독립해도 상관은 없다고 말입니다. 다만 세금은 이스탄불에 조금이라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이집트에 주둔하던 예니체리 부대 2개를 제국으로 귀환시키는 것이 황제의 제안에서 사실상 핵심이었다. 나머지 4개 지방 군관구도 고산국에서 지휘를 맡기로 했다.

이민호는 이집트를 영토로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을 교육시켜 스스로 나라를 세우는 것을 돕기로 했다. 그러나 외국인 지배층인 맘루크는 철저히 배제시키기로 작정했다. 어쩐지 신탁통치와 비슷한 지배 형식이 될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이집트 반란을 도와준 것이 들통나서 결국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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