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36 56. 지중해 원정 =========================================================================
“전하! 아부다비에는 지하수가 풍부한 편입니다. 이 물로 사막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습니까? 본토에서 건설회사를 따로 불러올 필요 없이 병사들을 동원해 논밭을 개간하겠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병사들이 노는 꼴을 못 보는 행정보급관이 건의했다. 병사들에게 놀거나 생각할 만한 여유 시간을 주면 반드시 사고를 친다는 인식을 가진 행보관들이 꽤 흔했다.
“농작물을 재배하겠다고? 잎에서 수분이 증발해서 어려워.”
“햇볕이 강하다지만 동쪽 바닷가에 울창한 숲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곳에도 인공적인 오아시스를 만들어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부다비 섬 동쪽과 주변 여러 곳에 강 하구가 아닌데도 홍수림이 펼쳐져 있었다. 홍수림(紅樹林)은 홍수가 나는 곳에 생기는 숲이 아니라 나무 종류를 나타낸다.
“그곳 나뭇잎을 조사해보게. 잎이 두껍고 각질이 덮여 있을 거야.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한 구조지. 사막에서 일반적인 농작물을 재배하려면 다른 지역보다 물이 몇 배나 더 들어. 지하수를 계속해서 사용하려면 물을 아끼게.”
“곡식을 외부에서 들여오는 게 효율적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주둔군 병사들은 이민호 덕택에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무의미한 사역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해외주둔을 달가워하는 병사들은 별로 없었다. 아무리 격오지 수당이 지급된다 해도 휴일에 놀 곳도 없는 사막지역 주둔을 반기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오아시스를 만드는 것은 나도 반대야. 항구 요새에 적의 접근을 허용하게 되잖아! 밤새 나무를 심은 건 좋은데 경계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게. 내 생각에는 바다 쪽으로 방풍림을 조성하는 게 좋겠어.”
“아! 묘안이십니다, 총사령관 각하! 병사들을 시켜서 나무를 옮겨 심게 하겠습니다.”
계복이 지휘봉으로 바닷가를 가리켰고, 행보관이 감탄성을 토해냈다. 협의는 두 사람이 하고 나무를 뽑았다가 다시 심는 일은 병사들이 해야 할 판이었다.
계복과 행보관이 잘 어울리는 꼴을 본 이민호는 기가 막혔다. 병사들을 편하게 쉬게 해주는 편이 사기 유지에도 유리했으나, 방풍림 조성이 반드시 필요 없는 일도 아니었다.
“알았다. 이곳에 건설사를 보내 바닷가에 방풍림을 조성하도록 하겠다. 병사들은 경계 임무에만 전념시키도록 해.”
“예, 전하.”
“그리고 홍수림은 벌채하지 말고 내버려두게. 어느 습지나 마찬가지지만 홍수림도 해양생태계의 요람이니까.”
“그렇게 중요한 곳인 줄 몰랐습니다. 홍수림에 병력을 배치해 앞으로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겠습니다.”
“홍수림 덕에 먹고 사는 이곳 사람들도 있을 거야. 내 말은, 지금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일세.”
병사들에게 일을 시키지 못해 안달난 행정보급관 때문에 조금 답답하긴 했어도 아부다비는 이제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 서쪽으로 200여 km 떨어진 카타르와 그 서쪽 바레인이 욕심났지만 오스만 제국의 영토 바로 바깥이라 당분간 접근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간 자칫 대업을 망칠 수도 있었다.
북동쪽 두바이에는 두바이 강 주변에 아랍인들이 좀 살았고, 그 앞바다에서 진주조개를 채취하는 어업이 성행해 1580년부터 베네치아 상인들이 멀리서도 방문할 정도였다. 두바이 바닷가에는 오래 전부터 바다 건너 페르시아 상인들이 찾아오는 작은 항구가 있었으나 아직 도시가 형성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에 아부다비가 먼저 큰 항구 도시로 발전하면서 두바이가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주변 아랍 유목민이나 페르시아 상인들이 두바이가 아니라 아부다비 항구 주변에 정착하고 있었다. 장사하기도 좋고 식량 가격도 싸고, 특히 고산국 주둔군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하! 빗물을 받아 저수조를 만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병사들 부려먹을 생각은 그만 두게. 여긴 사역을 시키기에는 너무 더운 곳이야. 비번인 병사들은 그늘에서 쉬면서 음악방송이나 듣게 하게.”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어명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민호는 행보관이 무슨 의미로 그렇게 대답했는지 미처 생각을 못하고 넘어갔다. 행보관의 말은 병사들이 음악방송에 나온 모든 음악에 대한 정보를 외우고 가사가 붙은 노래는 직접 부르게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병사들이 어렵다고 거부하면 행보관이 어명을 들이대며 강제로 시킬 심산이었다.
“지하수가 언제 끊길지 모르니 빗물을 담을 저수조는 만들어주지. 하지만 병사들이 아니라 본토에서 건설사를 보내 공사를 하겠네.”
“예, 전하.”
병사들이 사역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행정보급관 입장에서는 전혀 의미 없는 공사라서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행보관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건설사가 공사하는 동안 공사현장을 주둔군 병사들이 밤낮으로 경비하는 것이다.
건설사에서 간수군 이십여 명을 데려와서 직접 경비하겠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행보관에게 중요한 것은 공사가 아니었다.
연료 공급을 마친 함대는 바로 출항했다. 오만 술탄이 탄 배가 바람 방향이 안 맞아 헤매고 있기에 순양함에서 예인해줬다. 속도가 빨라 술탄이 잠시 비명을 질러댔다.
함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도중 이민호는 대낮부터 침전에 들었다. 더워서 밖에 나가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도 더운데 침전에서 설비가 자꾸 지분거렸다. 며칠 전에 생일이 지나서 이제 만으로 열아홉 살이었다. 궁성에서 모든 이에게서 귀여움 받고 자란 설비가 이번에 성인이 되면서 이민호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오빠! 이 옷 어때요?”
“응. 좋다.”
설비는 짧은 원피스를 입고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어 옆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각도에서 보면 설비의 허벅지와 종아리가 드러나고, 커다란 엉덩이와 가느다란 허리가 대비되며, 가슴까지 강조되는 자세였다. 심지어 분홍색 발바닥까지 드러나 설비가 거울을 보며 이민호를 유혹할 자세를 연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자 설비가 이민호 몸 위에 올라왔다. 그리고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이민호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러나 이민호가 피식 웃었다.
“제법 과감한데? 하지만 너 지금 몸을 떨고 있다.”
“에잇! 몰라!”
토라져 뛰쳐나가려는 설비를 이민호가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렇게 분위기 망치고 목석같은 오빠를 언니들은 어디가 좋다고! 칫!”
“그러게 말이다.”
설비에게 언니라면 혜영과 혜진, 주상아 공주, 아라 공주, 미카, 민희와 민영이었다. 그러나 설비의 신분은 부모 잃은 전쟁고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설비가 언니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설지 여부는 온전히 설비의 능력에 달렸다.
“오빠! 혜진 언니와 아라 공주님을 아직 안지 않았죠?”
“응.”
혜진이라면 몰라도 아라 공주는 이민호에게 적극적이었고 19세가 갓 넘었는데도 아직 망설이는 것 같았다.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처녀로 늙어죽게 만들 셈이에요?”
“아니. 원할 때 안으려고.”
다른 나라와 달리 후궁으로서 반드시 이민호와 동침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이민호 얼굴 앞에 다가온 설비가 입을 살짝 벌리고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때 침을 꼴깍 삼키는 아이누 족 처녀들이 이민호 눈에 들어왔다.
“너희들도 침대에 올라와서 쉬어라.”
“너무해!”
품에서 벗어나려는 설비를 이민호가 꽉 안았다. 활달한 설비는 그 동안 여동생으로서 역할을 너무 잘 해줬다. 그래서 이민호 입장에서는 설비가 후궁이 되는 것이 아까웠다.
그 사이 아주 잠시 갈등하던 아이누 족 출신 예비 후궁 두 명이 침대 위로 올라왔다. 추운 곳에서 살던 애들이라 더위에 몹시 약했다. 그런데 아이누 전통 문양이 새겨진 품이 넓은 전통 복장을 하고 있어서 더 더워보였다. 굵은 머리띠와 빨간 리본은 이민호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액세서리였다.
“상의는 벗어라.”
이민호가 명령하자 아이누 족 후궁들이 주저하지 않고 상의를 벗었다. 그런데 속에 아무 것도 안 입었다. 더워서 벗었는지, 원래 의상이 그런 형식인지 알 수 없었다. 둘은 옷을 다 벗지는 않고 몸에 걸치고 있었다.
“더워서 벗으라는 거였는데.”
손짓으로 한 명을 불러서 가슴을 손으로 만져봤다. 털이 많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피부는 매끈했다.
“제모제를 썼나?”
“예, 전하. 주상아 공주님이 마련해주셨어요.”
제모제 외에도 주상아 공주가 예비 후궁들에게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베풀었다. 예비 후궁들의 체격은 어린애들에게 일단 잘 먹이고 보는 이민호가 만들어준 셈이었지만, 미모는 실상 주상아 공주의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예비 후궁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용모나 신체적 매력이 지금보다 훨씬 덜했을 것이다.
주상아 공주가 분명 예비 후궁들에게 잘해주긴 했으나 이민호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후궁들 숫자가 많다 보니까 신체 특성이 다양할수록 좋았다. 예를 들어 아이누 처녀들은 털이 길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눈은 움푹 들어간 용모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주상아 공주가 마술을 부린 다음 종족의 특성이 많이 약화돼버렸다.
아이누 처녀를 잡아당겨서 입을 맞추며 가슴을 만졌다. 생전 처음으로 강렬한 자극을 받은 처녀가 숨을 헐떡이면서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바로 옆에서 설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봤다.
그리고 견습 호위로서 침전에 입시한 지수와 지영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앞으로 몇 년간 호위들 이름은 지자 돌림이었다. 조만간 이민호가 다 안아야 할 처녀들이었다.
“설비야. 어때?”
“뭐가요?”
이민호가 양쪽에 아이누 후궁들을 끼고 물어보자 설비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이민호는 아이누 후궁 두 명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만지면서 다시 물었다. 둘 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면서도 이민호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국왕이 여자 여러 명을 안는 것 말이야.”
“왕실의 번창과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 바람직하기는 개뿔, 미워욧!”
이민호가 한참 낄낄대며 웃었다. 이민호는 그저 처녀들과 노닥거리면서 노는 것에 불과했지만 성희롱이나 다름없었다. 이 처녀들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었다.
이민호가 손짓으로 부르자 설비가 뾰로통한 표정을 한 채로 뽀르르 다가왔다. 이민호는 설비를 무릎에 앉혀놓고 몸 이곳저곳을 만졌다. 설비가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민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민호의 손길이 뜨거워질수록 설비는 더욱 달아올랐다.
“잘 자랐구나.”
설비는 이제 남자를 받아들여도 될 정도로 충분히 성장했다. 그래도 설비가 어렸던 모습에 더 정감이 가서 아쉬움이 커졌다. 그러나 이민호 개인의 욕심보다는 설비와 예비 후궁들의 소원이 더 절실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호위대장에게 말해서 날짜가 되면 승은을 받도록 해라.”
“오빠! 정말요?”
“승은을 입은 다음부터는 오빠라고 부르지 마라.”
“네! 헤헤! 주인님!”
설비가 이민호 품에 안겨들었다. 이민호는 예나 지금이나 막내라서 오빠라 불리면 좋아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설비는 8년 동안 같이 살아서 진짜 여동생으로 인식돼서 그런지 안고 나서도 오빠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주인님이 두 곳에 무기를 줬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아체에는 공짜로 주고 오만에서는 대금을 받았어요?”
“내가 그랬나? 왜 그랬겠어?”
“움~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서? 아체 술탄국은 앞뒤로 서양의 함대 세력을 맞는 형세라서 불리하잖아요.”
“핑계가 그럴 듯하구나. 정답이다.”
그러나 이민호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이었다. 오만은 자금이 풍부했고 아체는 적다는 차이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설비가 말한 이유와 차이가 별로 없었다. 아체 술탄국은 서양 함대의 침공을 막느라 국력을 소진시켜서 현재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말래카 항구가 아체와 조호르 중간에 끼어서 불리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포르투갈은 오히려 아체를 도와줬어야 했다.”
“아체가 무너지면 네덜란드가 다음 순서로 당연히 말래카를 공격하겠죠.”
“그래.”
왕립여학교를 졸업한 예비 후궁들은 뛰어난 국내외 학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아서 전반적으로 높은 지식과 판단력을 보유했다. 왕립여학교는 고등학교 졸업 나이와 같더라도 전공이 나눠져 대학 교육까지 받은 셈이었다. 설비는 졸업생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재원이었다.
그러나 설비는 음식이나 만들고 화약 제조를 하느라 궁성 깊숙한 곳에 평생 남아야 했다. 이번이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었다.
사흘 만에 지다에 도착했다. 메카는 일정한 시기에 순례하는 곳이지 가까이 있다고 가는 곳이 아니었다. 원정 함대에 무슬림이 꽤 있었으나 메카에 가고 싶다는 건의를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지다의 아미르가 이민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정중한 영접보다 이렇게 쾌활한 환영을 받아 더 즐거웠다.
“북아프리카의 해적을 때려잡으러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소문이 다 났소?”
“소문이 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왕폐하께서 이렇게 대 함대를 이끌고 가시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소.”
고산국 국왕이 직접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지중해로 간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러 간다는 생각은 못하는 거요?”
“예? 설마요.”
“농담이오. 하하!”
지다의 아미르는 너무나 놀라서 이민호가 한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이만 자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