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35화 (484/1,000)

00535  56. 지중해 원정  =========================================================================

말래카 해협을 통과해 안다만 해를 지나 벵골 만에 들어섰다. 구르카 여단이 고향에 송금하는 돈에 숟가락을 얹던 벵골 태수를 혼찌검 내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예조 판서가 오스만 제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굴 제국과 협의해서 해결됐다고 한다.

그래서 당분간 두고 보기로 했다. 그리고 벵골 태수를 압박했다간 조만간 인도에 들어올 잉글랜드에 붙어서 고산국에 저항할까봐 함부로 치기도 어려웠다. 20년 전에 무굴 제국에 속하게 된 벵골은 나중에 방글라데시가 되는 지역이었다.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초대해 술을 먹인 후 털어먹던 스리랑카도 고산국 함대의 위용을 확인하곤 몸을 사렸다. 1507년부터 포르투갈이 정착지를 유지한 스리랑카 남부 마타라에서 함선들이 하룻밤 안전하게 정박했다.

다음 날 오전에 섬 서쪽 해안도시 콜롬보에 가서 차와 계피를 대량 구입했다. 차와 계피는 유럽에 갖고 가서 판매할 상품이었다. 싼 가격에 놀란 베네치아 시녀들이 대량으로 사고 싶어서 눈이 뒤집혔으나, 이민호가 적당한 양만 구입하도록 했다. 유럽에서는 계피보다 후추가 더 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적재 공간을 비워놔야 했다.

“계피보다는 시나몬 향기가 더 고급스러운 것 같아.”

“같은 것 아닌가요? 아! 조금 다르네요.”

이민호가 개소리를 지껄여도 민영이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유럽에서는 실론계피나무에서 만든 계피를 식재료에 넣는 향신료로 여겼고, 동양에서는 계피나무로 만든 계피를 약재로 사용했다. 현대 한국에서 흔히 시나몬이라 부르는 실론계피와 동양의 계피는 같은 속의 약간 다른 종류였다.

“그런데 수정과가 너무 달아. 시나몬은 수정과에 안 어울려.”

“계피가 모기를 쫓는다고 해서 병사들 침상에 계피가루를 뿌리도록 했어요.”

“잘했어. 민영은 수정과 안 먹어? 생리통에 좋다며?”

“아기가 유산할 위험이 있다 해서 후궁들은 안 마실 걸요?”

흔히 보는 계피 하나에도 여러 가지 지식이 있었다. 국왕좌승함에 동승한 어의와 간호사들이 후궁들의 건강을 잘 챙겨줘서 다행이었다.

“갑자기 생각나네. 악어가방 있잖아?”

“예. 악어가죽이 튼튼해서 병사들 배낭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했었지요.”

“일단 악어가방을 유럽에 팔아보고, 평가가 안 좋아서 비싸게 팔리지 않는다면 그때 병사들 배낭을 만들기로 하자.”

“그래요. 그래도 악어는 호주나 북미에서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 않나요?”

“사람들이 잡다 보면 금방 멸종할 수 있어.”

현대 명품가게에서 3, 4천만 원씩 하는 바다악어 가죽가방 가격을 기억하는 이민호는 이 가죽을 병사용 배낭으로 만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유럽의 귀족 여성들이 명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악어가죽의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호주와 북미에서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농경지 주변의 강과 호수에서 대량으로 사냥하는 동물이 악어였다. 북미의 앨리게이터 가죽도 아름다웠지만 천연산이 다 그렇듯 뱃가죽에 흠이 많이 나 있었다. 만약 악어가죽 가방이 명품으로 자리 잡는다면 뱃가죽에 흠집이 가지 않도록 바닥을 대리석으로 만든 연못에서 양식을 하기로 했다.

밤새도록 항해해서 다음 날 고아에 도착했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캘리컷에 상륙한 이후 포르투갈이 인도 여러 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일명 포르투갈령 인디아로서 중심지는 고아였다.

인도 부왕이 항구에 마중 나왔다. 포르투갈령 인도의 지배는 부왕이나 총독을 임명해서 대리케 했는데 현재 부왕은 프란시스코 다 가마로서 1597년부터 부왕으로 일했다.

“진작 찾아왔어야 할 것을 이제야 뵙게 됐군요.”

“제가 병이 나서 미리 찾아뵙지 못한 점을 사과드립니다.”

배에 타는 시간보다 바람과 해류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 왕복에 1년 넘게 걸리는 길을 오라 가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산국에서 고아를 거쳐 아부다비를 왕복하는 연락선 노선이 개통돼 말래카와 마카오에서 일하는 포르투갈인들이 자주 이용했다. 이민호도 이 연락선을 통해 부왕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하하하! 고산국 함대의 위용에 인도인들이 아주 질려버린 것 같습니다. 덕택에 저들은 고아를 공격할 꿈도 못 꾸게 됐습니다.”

포르투갈인들 밑에서 일하는 인도인들이 거대한 배들의 위용에 압도돼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항상 적대적인 세력에 둘러싸인 포르투갈의 요새 항구는 고산국 함대가 입항하는 것을 언제든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물론 고산국 배들도 인도 고아와 스리랑카 마타라, 말래카 등 포르투갈이 보유한 안전한 항구를 이용할 수 있어서 서로 좋은 일이었다. 남의 나라 영토에서 항구를 온전히 보유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항구 유지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 그리고 방어 병력을 감안하면 포르투갈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요즘 인도양에 네덜란드 배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들이 고아나 다른 항구를 욕심내지 않습니까?”

“네덜란드가 아마도 인도 전체에 욕심을 내는 것 같습니다. 인도양에서 네덜란드 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주로 교역과 측량 위주로 활동하면서 아직은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은 어떻습니까?”

“인도 땅 말씀이십니까? 하하! 기회가 되면 인도를 갖고 싶긴 합니다만, 너무 큽니다. 인도는 인종과 종교가 나뉘어져 서로 관계가 나쁩니다. 그것을 이용해 현지인을 병사로 고용하면 전쟁에서 이기고 인도 전체를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무굴 제국을 상대로 싸워 승리하더라도 오랜 기간 지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인도를 정복한다 해도 이익을 보기도 어렵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고산국이나 포르투갈처럼 네덜란드도 인구가 적어 인도 전체를 감당하지 못할 텐데 욕심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영국이 인도를 정복하지만 식민지 경영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인도를 경영하면서 생기는 적자 때문에 영국이 망하겠다고 하원의원들이 우는 소리 하기 바빴다. 결국 인도의 아편을 청나라에 강매하는 무리수를 두게 되고, 제국주의의 폐해를 지적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고아에서 후추를 대량으로 사서 함대에 실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이후 유럽의 후추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인도 산지 가격보다 몇 배나 비쌌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매입원가와 운송비, 보험료에 약간의 이익을 더한 수준에 맞춰질 때까지 가격이 계속 하락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번에도 무굴 제국의 관리와 만나지 못했다. 함대는 쭉쭉 서쪽으로 나가 오만을 지나 아부다비로 향했다. 오만 항구에서 나온 배가 허겁지겁 함대를 뒤따라 왔으나 함대에서는 모른 척했다. 속도 차이가 나서 그 배는 금방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 사이 아부다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항구와 요새가 말끔하게 완비되고 채굴기에서 뽑은 원유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정제소로 향했다. 거대한 저유소에서 석유를 실은 유조선이 막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부두에는 서로 적국인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상선들이 나란히 정박하고 있었다. 전쟁을 하느라 두 나라 사이에서 무역을 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고산국이 중립 항구를 열어서 애용하게 되었다. 고산국 상품도 두 나라에서 인기가 좋아 많이 수입해갔다. 그리고 항구 거리에는 주변 유목민들이 몰려와 시장을 열었다.

“이봐! 아무리 군사 기지라지만 최소한 사람이 사는 곳처럼 만들어놨어야 할 것 아냐? 그렇지 않아도 황량한 사막과 바다밖에 없는 곳인데 병사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서라도 나무 몇 그루 정도는 옮겨 심었어야지!”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육군 총사령관 계복이 아부다비 요새 주둔군 지휘관을 나무라고 있었다. 요새가 완성되면서 아부다비 수비군이 해병 중대에서 육군 중대로 변경돼 계복이 수비군의 최고 상관이 된 셈이었다.

아부다비에서 지하수를 발견해 물을 충분히 뽑아 올리고 있으니 그까짓 나무 몇 그루 키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적은 병력으로 할 일도 많은 수비군 병사들이 나무를 심고 옮기는 일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계복은 심으라면 심고 뽑으라면 뽑아야 하는, 일명 ‘사단장의 나무’를 지휘관에게 시전하고 있었다. 말이 좋아서 병사들 정서 함양이지, 결국에는 병사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부다비 항구와 요새가 푸른 종려나무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밤새 일했는지 주둔군 병사들의 눈이 퀭하게 들어갔다. 반대로 중대 행보관이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민호는 병사들이 불쌍해서 금일봉을 하사하고 휴가일수를 늘려주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써먹지도 못하는 휴가였다.

멀리 북쪽 바다에서 아랍 범선이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고 항구로 나왔다. 오만 술탄이 하루 늦게 도착해서 이민호에게 알현을 신청했다. 어제 함대를 뒤따르던 배에 오만 술탄이 탔던 모양이었다.

“핫핫핫! 국왕폐하! 오만에도 들러주시지 그러십니까?”

“오! 술탄! 별 일 없으면 들를 필요는 없지 않겠소?”

“그렇긴 합니다만, 섭섭해서 드리는 말씀이지요. 폐하 덕택에 오만은 별 일 없이 평화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오만 백성들이 폐하를 도와서 평화로운 인도양 세계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오만의 북쪽 해안지방에서 조금씩 짓는 농사와 해적질 외에 오만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없었다. 영토 대부분이 황량한 사막인 오만에서 해적질은 거의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다. 다른 나라 해적들처럼 더 잘 먹고 살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수단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단으로서의 해적질이라 다른 지역과 성질이 조금 달랐다.

그러나 만약 이민호가 충고한 대로 오만 사람들이 해적질을 그만 두지 않았더라면 해안 지방에 인구 대부분이 몰려 사는 오만의 특성 탓에 금방 망했을 것이다. 고산국에서 내버려뒀더라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잉글랜드 배들이 잡기 쉬운 표적인 오만의 해적선들을 나포해 남자들을 모조리 노예로 팔아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오만 사람들은 인도양에서 해상운송을 주도하며 먹고 살 길이 활짝 열렸다. 이민호에게 자금을 빌려 향신료 무역에 나선 오만은 인도의 후추를 수에즈로 갖고 가 팔면서 천 년 전의 영광을 이 시대에 재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산국에서 말래카에 식량 등을 실어 나르면 오만 배들이 그 화물을 잔지바르 섬으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운송료도 받고, 그 과정에서 식량을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예전보다 훨씬 편하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호주의 새여수에서 양을 가득 실은 수송선이 오만까지 왕복해서 오만 사람들은 갑작스런 풍요로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오만이 해적질을 완전히 그만 둔 것도 아니었다. 이민호도 오만 상선들이 무장하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홍해와 아덴만의 치안 유지를 맡겼다.

예멘과 에티오피아 해안에서 창궐하던 해적들은 오만의 크고 빠른 배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어느 항구가 해적들의 근거지로 지목된다면, 오만의 배 수십 척이 나타나 항구를 완전 초토화시켜버렸다. 덕택에 수에즈 운하로 향하는 배들이 안전하게 홍해와 아덴만을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잘 하셨소. 후추 무역은 잘 됩니까?”

“물론입니다. 올 연말이면 드디어 부채를 다 갚을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오! 예상보다 몇 년 빠르군요. 술탄이 그 동안 열심히 일한 것을 이것으로 알 수 있겠소.”

“모두 폐하 덕택입니다. 그런데 저번에 말씀드린 머스킷과 대포는 어찌 됐는지요?”

“열심히 일한 술탄에게 보상을 해주겠소.”

그래서 머스킷 200정을 오만 술탄에게 하사했다. 대포 10문과 화약도 술탄에게 넘겼다. 좋아서 입이 찢어진 술탄은 이민호에게 황금 몇 상자를 공물로 바쳤다. 말이 하사와 공물이지 실상은 교역이나 다름없었다.

오만 술탄은 분명히 독립국의 군주였지만, 실제로는 고산국의 지역 관리자로서 일하고 있는 셈이었다. 말 잘 듣는 술탄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길게 봐서도 좋았다. 술탄이 고산국과 연결하는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지난번에 고산국 궁성에 왔었던 2개 부족 대표들과 종교 지도자는 물을 먹고 있었다.

아부다비와 두바이 등 주변 지역 토호들에게도 옥 도자기와 비단 등 선물을 하사했다. 토호들은 아부다비에서 고산국 물건을 떼어 사막 깊숙이 들어가서 파는 카라반 무역을 하고 있었다. 즉, 아부다비 항구가 생기기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이익이 남는 안정적인 상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민호가 선물을 하사한 기회를 틈타 토호들이 역시나 황금을 공물로 바쳤다. 이것의 실체는 세금이라서, 절반을 떼어 아부다비의 운영비로 사용하게 했다. 아부다비 시장에 세운 상가건물을 이 지역 주민들에게 빌려주고 비싼 세를 받는 것도 실상은 세금이나 다름없었다.

“상품 판매 이익만으로 아부다비 항구와 유전의 운영비는 충분히 나옵니다. 그러니 국가에 도움이 될 곳에 써주십시오, 전하.”

“귀관의 바람대로 하겠다.”

이민호는 사양하지 않고 황금 상자를 챙겼다. 그러나 이민호만큼이나 혜영도 황금을 좋아해서, 이 황금 상자들은 고스란히 국고로 직행할 예정이었다. 소박한 이민호는 석유에 만족했다.

============================ 작품 후기 ============================

지중해는 다음 회에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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