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26 54. 남태평양 =========================================================================
다음 날 아침 함대가 올로고야 산호섬을 떠나기 직전에 원주민들이 몰려와 추가적인 교역을 원했다. 어제 협상이 잘 끝나서 기분이 좋았던 이민호는 원주민들에게 교역할 상품이 부족하더라도 무기를 원하는 만큼 내어주라고 어용상인과 통역에게 일러놓았다.
“주인님. 원주민이 탄 배 옆에 기다란 막대기를 연결한 이유는 뭔가요?”
“글쎄. 아마도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겠지. 배가 폭이 좁으면서도 꽤 길잖아? 저게 한쪽이나 양쪽에 있으면 배가 중심을 잡기 쉬울 거야.”
민영의 질문에 이민호는 아웃리거의 효용에 대해 잘 몰랐지만 대충 그런 용도라고 대답했다. 남태평양 원주민들이 장거리 항해가 가능한 것은 우수한 선박 건조 능력에도 있지만, 바닷물에 손을 담가 미세한 흐름으로 멀리 섬과 배가 있는지 감지해내는 초능력 같은 항해술 덕분이었다.
배에서 내린 통역과 상인이 원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고, 갑자기 원주민 전사들이 통역과 상인을 둘러싼 채 무기를 겨눴다. 단정에 함께 탔던 해병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으나 원주민들이 빠르게 통역과 상인을 제압해서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뭐야?”
“전하! 테로로코 마을 전사들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제 협상을 타결한 테타베아 마을과 다른 마을 사람들입니다.”
이민호는 놀라지도 않았고, 통역과 상인도 마찬가지였다.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순양함 갑판에 늘어선 해병들이 원주민들을 행해 총을 겨눴다.
“원하는 게 뭐래?”
“테로로코 마을의 허락도 없이 테타베아 마을 사람들과 교역한 것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철제 무기를 다 내놓고 가랍니다.”
“다? 그건 심하니까 적당히 50개씩 내주지. 또 있나?”
이민호가 한국에서 살 때 비슷한 사건 보도를 접한 기억이 났다. 키리바시에서 조업하던 자스민 9호라는 원양어선이 1998년 6월 키리바시 영해 침범을 이유로 나포돼 한국인 선장 등이 재판을 받는 중에, 한국 선박관리회사 사장이 현지 경찰관을 감금한 채 배를 몰고 부산항으로 탈출했던 사건이었다.
키리바시 당국은 해적 행위자 처벌은 물론 선박을 송환하라고 한국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선박 몰수를 시도했다. 무능과 신분세습의 대명사 한국 외교통상부 관리들은 한국인 선장과 선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주요 참치 어장인 키리바시 해역에 한국 어선의 입어가 거부될까봐 두려워 선박을 키리바시에 보내려 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선박 송환을 반대했으며 해양수산부는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데 배가 캄보디아 국적이라 부산항에 도착한 배를 키리바시에 넘겨주기도 어려웠다. 이때 선주인 인도계 영국인이 강력하게 반발해 전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 정부가 개입하면서 벌금을 내는 선에서 끝났다.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판단해보면 자스민 9호의 불법이 명백했으나, 항상 자국민을 핍박하는 외교부의 평소 일처리 행태와 맞물려 10여 년 후의 평가가 많이 달라진 사건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섬 근해에서 고기잡이할 배들은 무조건 어획고의 절반을 내놓으랍니다. 게다가 매년 젊은 여자 한 명을 바치랍니다.”
“입어료야 적당히 낼 수도 있지만 어획고의 절반이나 매년 여자 한 명은 심한데?”
대화는 끝났다. 인질이 된 통역과 상인을 구출하는 것이 작전 목표였다. 이민호가 여진족 호위들과 해병에 기병까지 다 동원하는 동안 원주민들이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배에서 전원 내리지 않으면 저희들을 죽이겠답니다. 저희들을 상관하지 말고 쏘십시오.”
“총을 쏠 테니 신호하면 엎드려.”
“언제든 준비됐습니다.”
“지금! 쏴!”
- 타타탕!
통역과 상인이 땅에 엎드린 직후, 칼을 들이대고 있던 원주민 전사들이 벌집으로 변했다. 주변에서 창을 들고 서 있던 원주민들도 마찬가지 꼴을 당했다.
- 터엉! 터텅!
카누에 탄 원주민들이 투창을 연속 던졌다. 그러나 창은 모두 갑판에 꽂히면서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함포와 기관총이 불을 뿜으며 카누 세 척을 가라앉혔다.
“테로로코! 테로로코!”
어제 항구 할양 조약을 체결한 테타베아 마을 사람들이 야자수 너머 마을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가 테로로코 마을 위치인 것 같았다. 통역과 상인이 단정을 타고 돌아오자 이민호가 물었다.
“뭐래? 적대적인 마을을 멸망시켜달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이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다른 마을에 횡포를 부리는 악마들이라고 합니다.”
“전사들 대부분을 쓰러뜨려줬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해.”
원주민들에게 쓰기에는 포탄 한 발도 아까웠다.
“통역! 앞으로 입어료나 항구사용료 그런 것 없다고 전해줘. 조금이라도 챙겨주려고 했는데 필요 없겠어.”
“그래도 좋다고 합니다. 추장이 전사들을 모아 당장 테로로코 마을을 치러 가겠답니다.”
싸우든지 말든지 내부 문제는 원주민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이민호는 나중에 고산국 어선들이 이 산호섬에 입항할 때 특히 인질극에 유의할 것을 기록하라고 항법사에게 지시했다.
이틀 넘게 남쪽으로 항해해서 태평양 탐사대가 이미 조사를 마친 타히티 섬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풍광은 기대 이상이었다. 땅콩처럼 연결된 두 화산섬 주위를 산호초가 감싸는 형식으로 섬이 이루어져 있어서 파도가 해안에 직접 닿지 않았다.
타히티 섬을 한 바퀴 쭉 돌아본 함대는 인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섬 북서쪽으로 진입했다. 해안 지대와 계곡에 수많은 집들이 지어져 있고, 부두에 원주민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원주민들 일부가 선수가 높이 솟은 형태에 30명씩이나 타는 대형 카누 세 척을 몰고 나왔다. 배 크기는 거의 판옥선에 육박했고 주갑판도 꽤 높았으나 다만 폭이 좁았다. 아웃리거도 양쪽에 장착했다. 남태평양에서 장거리 항해는 주로 이런 큰 카누로 하는 것 같았다.
각종 형광색의 천을 아랫도리에 두른 건장한 원주민들은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손에는 투창기 위에 올린 투창을 쥐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 환영을 하거나 전투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통역 잘 부탁하네. 우리는 멀리 서쪽 고산국에서 온 장사꾼들이다. 이렇게 시작하게.”
“장사꾼이라고요? 예. 언어가 통할지 모르겠지만 해보겠습니다.”
태평양이 넓다 해도 폴리네시아는 같은 언어로 다 통했다. 멀리 하와이에서 알로하가 새섬 마오리 족이 쓰는 언어에서 아로하로 바뀌는 차이 정도였다. 통역이 카누에 탄 원주민들과 길게 대화를 나눈 다음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철제 무기나 여러 가지 도구를 갖고 있다면 흑진주와 교환하자고 합니다. 여기가 원산지인데도 진주 가격이 의외로 비쌉니다. 손톱만한 진주를 기준으로 철제 식칼은 진주 한 개, 쇠로 날카롭게 만든 창날은 진주 세 개가 일반적인 교환비율이라고 합니다.”
“역시 다른 섬 주민들과 꾸준히 교역을 하고 있었군. 큰 칼을 하나 주고 진주 몇 개와 바꿀지 물어보게.”
몇 년을 두고 벼르다가 드디어 흑진주를 손에 넣게 되었다. 커다란 정글도를 나무로 만들고 상어 가죽을 두른 칼집과 함께 건네주니 원주민들이 몹시 기뻐했다. 원주민들은 그 칼에 흑진주 열두 개 가치를 매겼다. 흑진주를 받아본 이민호가 표정을 굳혔다.
“전하! 교환조건이 너무 박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진주알이 충분히 굵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너무 대박이라서. 하지만 판매자들 앞에서 좋다고 웃을 수는 없잖아? 하나 더 줘봐.”
원주민들이 눈치를 살피더니 가격을 올렸다. 결국 정글도는 굵은 흑진주 15개, 창날과 작은 칼은 5개, 식칼은 2개 등으로 교환 기준이 정해졌다. 고산국 제품이 워낙 우수해서 타히티 원주민들이 다른 섬과 교역할 때에 비해 나쁜 교환 비율은 아니었다.
“칼 하나에 흑진주를 열다섯 개나 주는 거야? 젠장! 대박이네. 아! 화난다.”
“그만하세요, 주인님. 다른 사람들이 웃어요.”
“쳇! 이럴 때 도와주지 않고 뭐하는 거야? 박 중사! 소 중위! 다들 웃지 말고 인상 찌푸려!”
이민호가 교역에 신경 쓰는 사이 바깥 바다에서 대기 중인 순양함에서 해병들이 조용히 물속으로 잠수했다. 흑진주를 생산하는 조개, 흑접패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동승한 학자들이 해수의 수온과 염도 등을 측정했다. 서식 조건이 비슷한 지역에서 흑접패를 대량 양식하기 위해서였다.
타히티는 고산국에서 너무 멀었고, 생산량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인공 양식을 해야 대량 생산이 가능했기에, 다른 지역에서 서식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살아있는 조개를 구하려 했다.
국왕좌승함에서는 흑진주를 감정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무술을 배운 함장이 칼로 내리쳐 진주를 정확히 반 토막 냈다. 보석 전문가가 살펴보더니 진주조개에 인공 핵을 삽입하지 않은 자연산 흑진주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품질이 아주 좋습니다, 전하. 흑진주라도 다 같은 흑진주가 아닙니다. 적갈색, 녹갈색, 황갈색의 색소가 배합돼 간섭색이 무지개처럼 오묘하게 나타납니다.”
“백진주도 여러 가지 색이더니 흑진주도 그렇구려.”
“그러나 백접패에서 만드는 3센티미터 크기의 흑진주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큰 것은 2센티미터에 불과합니다.”
“흑접패가 작아서 그 이상 크기는 못 만드는 것 같소. 3센티미터면 귀걸이나 목걸이를 만들기에 지나치게 굵지 않겠소?”
진주 단독 혹은 다른 귀금속과 합해서 귀걸이와 목걸이 외에도 반지, 팔찌와 브로치 등을 만들 수 있었다. 진주알이 염주 알처럼 크면 고급스럽지 않고 오히려 어색할 것 같았다.
“진주가 크면 단 하나만으로도 비싼 장신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항상 작아서 문제지 커서 문제겠습니까? 크면 얼마든지 쓸모가 있습니다.”
“그렇긴 하겠소.”
조선 남해안처럼 온대 지방에서 생산하는 진주는 최대 크기가 1cm 넘어가기 힘들었다. 이것은 진주를 만드는 조개의 크기가 작은 탓이었다. 전복이나 피조개에서 나는 진주는 더 클 수도 있으나, 양식 진주조개보다 생산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전복은 껍질이 한 장이라 주로 반구형 진주가 만들어져서 좋은 가격을 받기 어려웠다.
현대에 백접패는 호주, 필리핀, 보르네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버마 등 열대 기후에서 생산이 가능했다. 흑접패는 타히티와 피지를 포함한 폴리네시아와 오키나와 같은 열대와 아열대 바다에서 양식이 가능했다. 흑접패는 수온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산호초가 많고 물의 투명도가 높은 바다가 이상적인 서식 조건이었다.
교역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남자들이 무기를 들고 희희낙락하는 동안 이번에는 원주민 여자들이 교역을 주도했다. 이틀 전에 발생한 인질극 때문에 상륙을 꺼린 이민호는 원주민들이 탄 배가 국왕좌승함에 몰려와서 교역을 진행하도록 했다.
긴 치마를 입은 원주민 여자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상반신을 노출하고 있었다. 타히티 원주민들은 남자나 여자나 다들 체구가 커서 밝은 갈색의 피부와 어울려 몹시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젊거나 늙거나 남자 승조원들이 모조리 갑판에 몰려나와 교역 현장을 지켜봤다.
“원색으로 염색한 천이 있을라나?”
“원색은 비단밖에 없습니다, 전하.”
“비단만 주면 좀 그러니 거울을 가져오게.”
오랜만에 거울 화장대를 교역 상품으로 내밀었다. 여자들이 눈을 크게 뜨더니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즐거워했다. 비단도 좋은 평가를 받아 한 필에 진주 10개, 화장대는 진주 7개와 바꿨다. 여자들이 웃고 떠들어서 이민호가 통역에게 물었다.
“이 여자들이 뭐래?”
“매년 들러서 교역을 하면 좋겠답니다.”
“흑진주가 많으면 자주 오겠다고 해.”
“다른 섬 사람들과의 교역을 줄이고 우리하고만 교역을 하고 싶답니다. 진주를 더 많이 구해놓겠답니다.”
“그게 될지 모르겠어.”
거리가 너무 멀어서 상선이 자주 오긴 힘들 테고, 주변 어장에서 참치를 잡는 어선에 흑진주 교역을 맡길까 고민했다. 다른 지역에서 흑접패의 인공 양식에 실패한다면 흑진주가 그나마 대량으로 생산되는 곳은 이곳 타히티밖에 없었다.
당분간 매년 상선을 이 섬에 보내 교역하기로 했다. 관광지로서도 입지가 아주 훌륭했으나 앞으로 몇 십 년 안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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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간신히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