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23 53. 북미 순행 =========================================================================
이틀 후 새인천에 도착하고 나서 어이없는 소식을 들었다. 세금으로 쌀 2백만 석, 밀 800만 석을 걷었다는 보고를 받고 이민호는 턱이 빠지는 줄 알았다. 두 가지 곡식의 생산량만으로 2천만 석 이상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새인천을 맡은 공조 참의는 지나친 풍요로움에 고민이 더 많아진 듯 일 년 사이에 폭삭 늙었다.
“새인천 북부의 땅이 기름지다는 소문을 듣고 본토 농민들이 꾸준히 이주하고 있습니다. 새인천 북부 평원의 개간이 완료되는 내후년에는 수확량이 올해의 대여섯 배 정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많아도 너무 많아.”
“계획대로 관개시설을 확장하더라도 쌀과 밀 같은 곡물 생산을 줄이고 면화, 사탕수수 같은 상품 작물 경작을 늘리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조선의 미곡 생산량이 19세기 중반에 2,564만 석이었다. 앞으로 2년 후에는 새인천 북쪽 중앙평원의 남쪽 절반만으로도 이미 조선 후기의 쌀 생산량과 맞먹을 수 있었다. 쌀 재배 면적이 밀밭보다 훨씬 적은데도 이 정도였다.
“기름진 땅에 면화와 사탕수수를 재배한다고?”
“빈 땅을 놀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농민들이 뭔가를 계속 경작해서 소득을 올려야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전하.”
세금으로 수확량 절반을 거둬들여 급히 지은 대형 창고에 쌓아놓았다. 조만간 농민들이 내놓은 물량이 대대적으로 시장에 풀리면 아시아 여러 나라의 곡물 가격이 폭락할 것이 뻔했다. 곡식 수요는 매년 일정한 편이므로 공급이 수요를 조금만 초과돼도 가격이 심하게 떨어질 수 있었다.
“아시아 곡물 시장 가격을 유지해야겠어. 시장 출하량을 무제한 수매하게.”
“새인천은 인구가 적어서 자체 소비량이 적습니다. 농민이 보유한 수확량 거의 전부를 수매해야 합니다.”
“쌀 2백만 석을 전부 수매해봐야 겨우 백만 냥이야. 가격 하락으로 인해 아시아 각국이 입을 손해는 수천만 냥에 이를 걸세.”
이 시대에 대부분 국가들이 곡물을 자급자족했으므로 쌀과 밀을 대량으로 소비할 곳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찾아보면 있었으니, 주로 군사력이 밀집된 지역이었다.
“명나라 만리장성 주변 군영에 백만 석, 조선 함경도와 평안도 감영에 20만 석, 아프리카 므부투에게 20만 석, 새인천 주변 원주민들에게 10만 석. 이상 150만 석을 보내게. 쌀값은 받지 않아도 좋아. 유구국의 배를 동원하면 수송력이 부족하지는 않을 걸세.”
“밀은 어떻게 합니까? 세곡 외에 농민이 보유한 물량 말씀입니다.”
“2백만 냥을 줄 테니 쌀과 함께 밀도 수매하게. 창고 건설비와 보관료가 더 들겠군. 밀 천만 섬을 수매되는 대로 새강릉으로 옮기도록 하게.”
중앙평원이 개발될 때 이민호가 강력히 지시해 남는 땅에 보리 대신 밀 재배를 추진했으니 이것도 책임져야 했다. 아일랜드에 대한 밀 지원은 새강릉에서 생산한 양만으로 충분했다. 남는 밀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수출하고 그래도 남는 것은 술이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전하께서 해결해주셨지만 곡물은 계속 몇 배나 증산될 것입니다. 식량 생산을 줄이고 다른 작물을 키워야 합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니야.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산하게. 남는 것은 내가 팔아주겠네.”
“세금으로 받은 쌀과 밀로도 부족하십니까?”
“그렇지. 내가 손해를 보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말게.”
새인천 북부 중앙평원만으로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민호가 미리 알고 포도밭과 과수원 등을 지어 토지를 다양하게 활용하라고 했지만, 넘쳐나는 곡물 생산량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 우르릉~
“이게 뭐야?”
이민호가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지진이 잦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도, 지난번에도 당하고도 이번에 또 놀랐다.
“놀라지 마십시오, 전하. 자주 있는 일입니다.”
“지진 때문에 백성들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백성들이 처음에는 놀랐으나 이제는 다들 돈 버느라 눈이 벌개져서 별 상관 안 합니다.”
“큭큭! 좋다고 해야 하나?”
공조 참의는 지진 때문에 새인천 건설공사에서 문제점을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 상하수도관이나 전기 배관 지중 매설 공사를 할 때 완충작용을 위해 관 주위에 모래를 묻어야 하는데 명나라 노무자들이 귀찮다고 돌과 진흙을 마구 퍼부어서 지진 때 상하수도관 피해가 조금 더 커졌다고 한다.
이민호는 한국에서 살 때 도급회사가 설계변경으로 원가를 절감하고 현장소장이나 하청업체가 공사 자재를 빼돌려 팔아먹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노무자들이 귀찮아서 대충 일한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이민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계를 아무리 잘해도 실제 공사를 진행할 때 이런 인간들이 꼭 있었다. 걸리면 공사 감리를 맡은 다른 회사 직원이나 심지어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넘어가기도 했다. 다 이렇게 한통속이 되어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이 귀찮아서 대충 한 일이라도 나중에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
“난방과 취사를 위해 천연 가스를 도시에 공급하려고 계획했는데 포기해야겠어.”
“도시 전체에 가스 공급망을 건설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새인천에서는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지진이 워낙 심해서 자칫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새인천이 도시가 크고 앞으로도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했지만 잦은 지진 때문에 민간 건물은 3층 이상 못 올리는 등 제한이 많았다. 그래도 고산국 본토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농민이 농사만 지어서 팔자를 고칠 기회란 결코 흔하지 않았다.
“전하. 곡식 가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곳 중앙평원에서만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북미 다른 도시나, 앞으로 건설될 도시 주변에서도 계속 농지를 늘려나갈 것입니다.”
“당분간은 가능하겠지. 몇 십 년 정도는.”
“천기누설일 것 같아서 더 이상 여쭤보지 못하겠습니다.”
천기누설이 맞았다. 여러 지역에 탐사대를 보낼 때 지리와 지형뿐만 아니라 기후 측정도 세밀히 하고 있었다. 기후 변화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좀 더 자신감 있게 증산 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새 나하에서 유구국의 상풍 왕자가 찾아왔다. 상풍 왕자가 이민호를 만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상풍 왕자가 과도한 예를 차리는 것으로 봐서 뭔가 부탁할 일이 있나 싶었다.
“국왕전하의 은혜로 말미암아 속국인 유구국 새 나하에서 쌀 8백만 석을 수확했습니다. 기타 곡물이나 작물은 아직 계산도 못했습니다.”
“우와! 그거 축하할 일이네.”
“그래서 국왕전하께 세금으로 수확량 절반인 쌀 4백만 석을 바치겠습니다. 밀과 다른 곡식은 보다 정확히 추산한 다음 세곡을 바치겠습니다. 앞으로 개간이 더 이루어지면 더 많은 세금을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일세. 세곡이 남으면 동남아시아 지역에 팔지 그러나? 물론 가격이 계속 유지되면 좋겠지만 말일세.”
새 나하 동쪽 중앙평원 북부를 떼어준 것을 두고 고산국에서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이민호는 고산국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유구국이 보다 안정된 기반 위에서 성장하길 원했다. 유구국에서는 이민호가 내준 영토를 다시 회수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기름진 농지를 하사해주신 국왕전하께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경운차와 여러 건설 장비를 보내 농지를 개간하고 관개사업을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고산국에서는 농민에게 개간된 농지를 맡기고 절반을 세금으로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들도 전하의 백성이니 똑같이 의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유구국은 고산국의 속국이 아닌 독립국으로서 협조하는 거야. 분명히 하게. 쌀을 처분할 곳이 없나?”
유구국이 경제적으로 거의 고산국에 종속됐지만 정치적으로는 분명 독립 국가였다. 이민호는 유구국이 지금처럼만 협조해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세계 대부분 나라가 농업국이니 어차피 남는 쌀을 팔 곳이 없습니다. 새인천에서도 판매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어찌 감히 유구국에서 먼저 팔려고 하겠습니까?”
“좋아! 세곡 4백만 석을 받겠네. 대신 은 백만 냥에 상당하는 물품을 고산국에서 살 권리를 주겠네. 유구국에서 남는 쌀도 그 가격으로 새인천에 넘기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고산국과 명나라 중북부에서 평균적인 쌀값이 은 1냥에 2석이었지만 절반 가격에 해당하는 구매 권리만 주기로 했다. 어차피 아시아에서는 그 많은 쌀을 판매할 수도 없었다.
“앞으로 논을 더 이상 늘리지 말고 새로 개간한 땅에서 밀농사를 확대하게. 밀은 유럽에 팔면 되니까 말일세. 유구국에서 생산한 밀을 내가 좀 팔아주겠네. 올해 생산해서 남는 밀도 내게 넘기게.”
“항상 신세만 지는 것 같습니다. 밀은 세곡 천만 석 외에도 남는 것만 8백만 석이 넘을 것 같습니다.”
“좀 많군. 새강릉으로 보내게.”
중앙평원 한 지역에서만 쌀이 1,200만 석, 밀이 3천만 석 정도 생산됐다. 그런데 앞으로 개간이 진행되면서 너덧 배 정도 더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 아닌 문제였다. 포도밭과 각종 유실수를 심은 과수원들을 제외하고도 이 정도였다.
유구국에서 새인천보다 더 많은 곡물을 생산한 것도 특이한 일이었다. 약소국인 유구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국력을 기울여 새 나하를 건설하고 중앙평원 북부 농지를 경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미로 이주한 유구국 인구는 아직 5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북미로 이주한 유구국의 선원들 외에 농업에 종사하는 모든 가구가 천석꾼이 되면서 살림살이는 명나라나 조선보다 훨씬 나아졌다.
새인천을 조금 돌아다녀 보니 거리에서 원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벌거벗은 원주민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름이 되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계절이 될 것 같았다.
옛날부터 이 지역에서 살던 원주민들 다수는 새인천 시청에서 개간해준 농경지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부는 시청에 고용돼 공용마차 마부나 청소부로 일했다. 농경지에서 일손이 부족한 시기에는 이들이 퇴근 후나 휴일에 가족이나 친척의 농사를 도와주는 식으로 일하는 것 같았다.
원주민들이 아예 전업 농업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전부터 새인천과 중앙평원 인근에 살던 원주민 부족들이 농업으로 부유해질수록 그 소문을 들은 다른 지역 원주민들이 새인천에 꾸준히 유입됐다.
이들은 개간된 농지를 분배받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으나, 2년 동안 새인천에서 농업 노동자로 일하면 3년 차에 우선적으로 농지를 받기로 했다. 지금은 인턴 기간인 셈이었다.
“어차피 농지는 남고 농민이 부족한데 그냥 농지를 나눠주지 그랬나?”
“사람은 쉽게 얻은 권리는 소중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3년 후에는 이 원주민들이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전하의 신민이 될 것입니다.”
“원주민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야.”
이민호가 힐난하자 공조 참의가 피식 웃었다. 원주민들이 농업 노동자로 남의 땅에서 일한다지만 현대 멕시코의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처럼 빈곤하게 살지는 않았다. 계속 티피에서 살려는 이들을 가족 단위로 연립주택에서 거주하도록 강요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질 때도 있었지만,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집에서 며칠만 살아봐도 만족도가 대폭 높아졌다.
특히 남자들이 매일 벌어오는 품삯만으로도 처자식들이 충분히 배불리 먹고 살게 되면서 원주민 남자들의 권위가 급격히 올라갔다. 그 전에는 어느 문화권이나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일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었는데, 새인천에 정착하면서 원주민 여자들은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먹고 살기 좋아지면 인구 증가가 자연히 뒤따르기 마련이었다.
새인천 시가지는 동서와 남북 100km에 이르는 넓은 분지 지역에서도 주로 바닷가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새인천에 속한 마을은 새인천 분지뿐만 아니라 북쪽 중앙평원에만 수십 곳이었다.
그리고 새인천 북쪽 산 너머 건조지대에도 시험적인 농경지가 있었다. 거의 황무지인 땅에 관개수로를 건설하고 구아노 비료를 사용해 면화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비번인 여진족과 그 가족, 그리고 원주민들을 고용해 소 목축도 대량으로 진행 중이었다. 울타리도 없이 방목한 소가 야생화하면서 들소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참으로 풍요로운 땅이야.”
이민호가 북미 대륙을 에스파냐로부터 구입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자화자찬했다. 앞으로는 북미와 호주를 잘 지키기만 해도 후손들로부터 대왕 소리를 듣고도 남을 것 같았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몇몇 자부심 넘치는 원주민 부족들과, 남의 것을 빼앗는 짓을 자랑으로 여기는 유럽 해적들뿐이었다. 북미 대륙 전체를 완전히 지배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대서양을 지키기에는 해군력이 부족했다.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서 국가의 군사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고 했는데 그 기준이 문제였다. 현대 미국처럼 대서양을 자기 집 연못으로 만드는 수준은 과하더라도, 최소한 유럽 해적선단을 막을 정도로 해군을 더 증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쿨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