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21화 (470/1,000)

00521  53. 북미 순행  =========================================================================

“관할 면적에 비해 새순천에 속한 병력이 너무 적지 않소?”

새진주처럼 새순천도 관할 면적이 현대 미국의 몇 개 주에 걸쳤다. 텍사스뿐만 아니라 그 북쪽과 서쪽, 멕시코 국경도 새순천에서 관할했다. 병력은 몇몇 개척 도시들처럼 기병과 보병 각 1개 중대, 여진 기병 1천에 불과했다.

“그래서 산악 지역에 거주하는 부족인 메스칼레로 부족 전체를 척후로 고용해서 국경 정찰을 시키고 있습니다. 리오그란데 남쪽 치와와 지방에도 이들의 친척 부족이 살고 있어서 멕시코 쪽 정보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조만간 멕시코 북부 지방의 정보를 정리해서 왕도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호! 기대가 되오.”

강항 이 사람은 주변 사물에 호기심이 지나치게 많고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해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했다. 그런 성격은 유학자나 과학자와 비슷하면서도 하는 짓은 천상 간첩이었다. 이민호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메스칼레로 족은 특이하게 선인장을 주식으로 삼는 부족이었다. 중남미 원주민들이 선인장에서 뽑아낸 섬유로 천을 만들고 술 원료로 사용했으나 주식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었다. 메스칼레로 족은 아파치의 일족으로서 초원 원주민들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 가죽 천막인 티피를 주거지로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생활방식은 일반적인 아파치와 많이 달랐다.

“우리가 개입함으로써 원주민들 사이의 세력 균형은 이미 무너졌을 것이오. 새순천에 고용된 부족이 다른 부족들을 침탈하지 않도록 주의시키시오.”

“물론입니다, 전하. 그들이 영역을 확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잘 살게 돼서 과한 욕심을 내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온데 원주민 척후들에게 말을 지급해도 되는지요?”

“뭐요? 그렇다면 원주민 척후들이 그 동안 국경까지 천리 길을 걸어 다녔단 말이오?”

“북서쪽은 왕복 5천리나 됩니다. 텍사스 주변에는 말을 타고 다니는 원주민이 없습니다.”

이민호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물론 호전적인 원주민들이 말을 획득해서 기동력을 갖추는 것은 고산국으로서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북미 탐사 단계부터 서부 평원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부족과 교전을 했었다.

다른 부족들도 야생마를 길들여 타고 다니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민호가 아예 포우하탄 부족 연맹에 말을 제공해 마차를 몰고 다니도록 했고, 기병도 500기나 생겼다. 물론 부족의 영역 밖으로 나가는 일을 금했고, 다른 부족에게 말을 팔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말과 기마술이 퍼지게 마련이라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척후들에게 말 타는 연습을 시켜서 임무 수행 때 말을 타고 다니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들이 원하면 부족에서 말을 키우도록 강 선생이 은혜를 베푸시오.”

“알겠습니다. 그래도 원주민 부족들 사이에 기마술이 퍼지는 속도를 가급적 늦추겠습니다.”

대부분의 아파치 부족들은 농사와 들소 사냥 외에도 다른 부족을 공격해 약탈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이들이 말을 보유하면 약탈하기 훨씬 쉬워져서, 실제 역사처럼 부족 남자들이 약탈만 전문으로 하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이민호는 그 전에 아파치를 포함한 모든 원주민 부족들을 정착시켜서 농업과 목축, 임금 노동만으로 먹고 살게 만들 계획이었다. 그래도 욕심쟁이는 어디든 있기 마련이라서,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약탈하고 다닐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뒀다. 법을 어기면 군사적인 제재를 어느 정도 할 수밖에 없었다.

“원주민들과 우호관계는 잘 다지고 있소?”

“예. 가까운 치리카후아 족은 물론 멀리서 오는 여러 아파치 부족들과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농업과 목축을 가르쳐 가급적 한 지역에 정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했소. 그리고 이제부터 돼지 목축을 시켜도 좋소. 본토에 돼지를 대량 주문해서 이주민과 원주민을 가리지 말고 분양하시오. 다만 축산 오물이 강에 흘러들지 않게 유의하시오. 텍사스는 건조한 지역이니 햇빛에 말리는 식이 좋겠소.”

“오! 잘됐습니다. 가축 분뇨 때문에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

“그래도 텍사스는 전반적으로 건조한 지역이니 대규모 목축을 할 것이라면 소를 키우는 게 낫겠소.”

“예. 소와 양을 우선으로 목축을 하고 있습니다. 고지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에게는 양이나 염소를 키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에서는 소가 가장 중요한 가축이 될 것이며 면직물 공업을 위해서는 양이 그 다음으로 중요했다. 북미 중앙평원도 가축을 키우기 좋은 곳이었으나, 농경지에 더 적합했다.

잠시 망설이던 강항이 굳은 표정으로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북서쪽에 사는 통카와 족이 주변 부족들을 습관적으로 약탈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부족 원주민들을 통해 그들에게 식인 풍습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육군과 여진 기병을 동원해 멸절시켰습니다.”

“뭐요? 인구가 얼마나 되는 부족이었소?”

“세 부족 합해서 1,500명쯤 됐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을 다른 부족의 노예로 나눠줄까 하다가 혹시나 나쁜 풍습이 다른 부족에 이어질까봐 우려돼서, 그리고 다른 부족들에게 본보기를 삼기 위해서 모두 처형시켰습니다.”

“으윽! 아이들까지 모두 죽였단 말이오? 강 선생, 당신 미쳤소?”

이민호는 눈앞이 캄캄했다. 고산국에 의해 북미에서 최초로 한 부족을 통째로 몰살시키는 인종청소가 자행됐다. 유학자인 강항은 식인 풍습에 극도로 혐오감을 갖고 있어서 이런 참혹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정신 이상자의 개인적 일탈 행위나 기근 때 가끔 발생하는 식인행위와 구별해 특정 집단의 일상적인 식인 풍습에 대해서는 아주 가차 없이 대응한 셈이었다. 어느 한 부족이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렀어도 여자와 아이들까지 죽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나, 식인 문제에서는 조금 달랐다.

통카와 부족 밑에는 에르비피아메 족, 마예예 족, 요우아네 족이 있었고, 보통 때는 평원을 오가면서 들소를 사냥했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아파치 부족과 캐도 족 등 주변 부족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새순천에서 통카와 부족을 몰살시킨 후에 다른 부족들에게서 반감을 사기는커녕 오히려 호감을 샀다고 한다.

“원주민 여자와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그들을 죽여야 했던 우리 병사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소?”

“물론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저항하지 못하는 여자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병사들에게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가 아니라 광기가 필요한 일이오! 우리 병사들이 그 일로 평생 고통 받을 것이오.”

“전하의 분노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일부 원주민 부족 사이에 남아있는 식인 풍습을 근절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병사들을 설득한 다음 지원자를 뽑아 총살형을 집행했습니다. 신병보다는 주로 부사관이나 고참 병사들이 책임을 지고 자원했습니다. 병사들에게는 죄가 없으니 명령권자인 저만 처벌해주십시오.”

강항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간첩으로 낙인찍힌 몸, 강항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으면 혹시나 있을지 모를 원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이민호가 후세에 받을 도덕적인 비난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민호도 강항과 함께 도덕적, 역사적 책임을 나눠지기로 했다.

“어휴! 이쪽에나 저쪽에나 몹쓸 짓을 한 것 같소. 그렇다고 강 선생을 책망하지는 않겠소. 불쾌한 결정을 힘들게 내린 것 같소. 수고하셨소.”

그렇다고 칭찬해줄 수도 없었다. 이민호는 몹시 역겨웠으나 강항의 결정을 비판할 수도 없었다. 고산국 본토에서 이주민을, 유럽에서 이민을 받아야 하는 북미에 식인종이 있다고 소문나는 것을 이민호는 바라지 않았다.

아스텍과 비슷한 혈통이나 문화를 가진 몇몇 원주민 부족들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예전에 식인 풍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도 식인 풍습을 유지하는 부족은 통카와 족 외에도 플로리다 남서부에 분포하는 칼루사 족이 있었다.

식인행위는 보통 단백질 부족 때문이 아니라 종교적 제의의 일환으로, 또는 상대방의 힘을 흡수한다는 미신에서 행하는 특이한 의식이었다. 그러나 다른 부족들에게 혐오감을 유발하고 부족의 몰살을 목적으로 하는 무자비한 공격을 유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식인 행위는 거의 사라지거나 일부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것 같았다.

북미 외의 고산국 영역에서 식인 풍습이 남아있는 종족은 새섬의 마오리 족과 파푸아 섬의 몇몇 원주민 부족들이었다. 파푸아 섬 고원지대는 사냥할 동물이 부족해서, 정말로 단백질이 부족해서 식인을 하는 것 같아 가축을 방목하도록 했다. 새섬의 마오리 족은 어떻게 해야 식인 풍습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미 지난 일이오. 총살집행에 참가한 우리 병사들이나 지속적으로 보살펴주시오.”

이 시대에도 유럽에서는 사형집행인을 위한 여러 가지 보호 장치나 우대책이 있었다. 조선의 망나니는 공개된 사형집행인이었지만 사형수의 유족에게 뇌물을 받는다면 몰라도 복수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최소한의 익명성 보장도 없이 병사들을 공개적인 총살집행에 내몬 것은 분명 잘못됐다. 원주민들이 복수하자고 나서지는 않겠지만, 이 문제로 병사들이 평생 심리적으로 고통 받을지 몰라 걱정됐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 보고하시오.”

“황공하옵니다, 전하. 농업과 어업은 잘 돼갑니다. 텍사스가 워낙 넓어서 일괄적으로 평하기는 곤란하나 대체로 기후가 덥고 땅은 기름지며 평지가 대부분입니다. 다만 강우량이 적어 문제이나 관개시설만 갖춰지면 농업은 걱정할 게 없습니다. 벼농사는 이모작을 하고 있습니다. 새인천보다는 못해도 새강릉보다 단위당 소출이 확실히 높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좋군요. 인기가 좋은 새인천 경작지가 채워지면 그 다음 순서로 이 지역에 본토의 농민을 이주시키겠소. 척박한 황무지에서는 목축을 하거나 면화 농업을 하면 될 것 같소. 원주민들을 농업 노동자로 활용해도 좋겠지만 이들도 결국 농민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북미 원주민들과 유럽 이민들을 농업에 종사시킨다 해도 농업 생산성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일정한 수준의 농업기술이 이들에게 충분히 전파될 때까지 고산국 본토 농민들이 우월한 기술력으로 농업을 이끌어나가야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본토에서 이주한 농민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꾸준히 줘야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소. 물론 이주 초반에는 당연히 경작지 개간과 주택 건설을 지원해주시오. 그러나 본토 농민들에게 별다른 특혜를 주지 않더라도 농업기술과 자본의 차이, 언어와 문화 때문에 결국은 원주민들보다 항상 앞서나갈 것이오. 어업은 어떻소?”

다른 지역과 달리 국경지대의 농업과 어업은 국가 방위와 깊은 관련을 맺게 된다. 함경도의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조선 조정에서 삼남 지방의 농민들을 이주시키는 사민정책을 괜히 쓴 것이 아니었다. 농민이 생산한 작물은 군량이 되고 농민 자체가 병사로 징집되기 때문이다.

어민도 마찬가지로 바다를 통한 적의 침입을 빠르게 알려주는 조기경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또한 유사시 해군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었다. 조선 출신이 대부분인 고산국 본토에서는 조선 수군처럼 막중한 군역 부담을 질까봐 한때 해군에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육군보다 해군을 좀 더 편하게 여겼다.

“현재 어선 몇 척이 조업 중인데 어황도 아주 좋습니다. 어업연구소 분소가 세워져 멕시코 만 전체를 조사 중이며, 몇 가지 어종의 치어를 방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순천만 안쪽에 가두리 양식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연안섬 일부에 조성된 염전에서 소금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계시는구려. 급한 건 아니니 뭐든 장기적으로 진행하시오. 그리고 경작지 확보도 좋지만 가급적 숲을 보호하시오. 유실수라도 심어서 말이오. 우리가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업이오.”

“예, 전하. 여러 가지 유실수 묘목을 확보해 도시 주변부터 심고 있습니다.”

이때 창밖에서 청아한 새소리가 울렸다. 예전에 들어봤던 클라리넷과 비슷한 음색인데 새강릉에서도 자주 들었던 새소리였다.

강항이 새장을 들고 왔다. 그 안에 온몸이 아주 새빨간 새 한 마리와 흐릿한 회갈색 새 한 마리가 위아래 횃대 사이를 옮겨 다녔다.

“이건 홍관조라 불리는 새입니다.”

“앵그리, 아니 참새처럼 생겼구려.”

온몸이 빨갛고 입 주위가 까매서 앵그리 버드 ‘빨간새’와 닮았다. 북미 동부와 남부에 걸쳐 살며 새빨간 빛깔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카디날이라 불렸다.

“새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습니다. 애완용으로 왕도에서 키우시면 어떻겠습니까? 새장에 가둬 키우면 생태계를 파괴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작물이나 가축 외의 동식물을 서로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는 편이 좋겠소.”

동물원과 수족관은 예외로 뒀지만 이 원칙은 지키는 편이 좋았다. 한국에 반입된 황소개구리나 미국 생태계를 박살내는 한국과 동남아 가물치처럼 귀화 동식물은 생태계에 재앙이 될 수도 있었다.

홍관조 수놈이 먹이통에서 해바라기 씨앗을 물어 암놈 주둥이에 물려주었다. 홍관조는 암놈보다 수놈이 새끼들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우리도 열심히 일해서 처자식을 먹여 살립시다.”

“물론입니다. 전하께서는 특히 더 열심히 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동해안 도시에 석유를 지원하는 문제 협의를 마치고 새순천에서의 일이 끝났다. 이제 파나마 운하를 넘어 새인천에 잠깐 들렀다가 왕도로 돌아가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여러 거점 도시들을 탐험 때 한 번, 개척 초기에 한 번씩 방문해서 묘사를 마쳤습니다. 서해안도 잠깐 들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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