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18화 (467/1,000)

00518  53. 북미 순행  =========================================================================

참판의 안내를 받아 요새 응접실에서 대화를 나눴다. 참판에게서 새동래 현황과 대서양 함대의 활동에 대해 보고를 받은 다음 이민호가 상당히 곤혹스런 표정으로 설명했다. 옛날에 국방연구소에서 일할 때 사고란 사고는 위에서 다 치고 뒤처리는 힘없는 아랫사람이 해야 하는 상황을 개탄했었는데, 이제는 이민호 자신이 사고를 치고 다니는 윗사람이 되었다.

“에, 그래서 에스파냐 신임 국왕 펠리페 3세에게서 바하마 제도를 선물로 받았소. 영토가 늘어났으니 기뻐해야겠지요. 그러니 앞으로 바하마 제도까지 대서양 함대의 작전 해역 범위에 넣고 정기적인 순찰과 무인도에 대한 수색을 하도록 하시오.”

“전하!”

몇 척 안 되는 전선으로 대서양과 멕시코 만을 지켜온 대서양 함대에게 섬이 700개가 넘는 바하마 제도까지 지키라고 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이민호도 잘 알고 있었다.

“깜짝이야! 그래서 순양함이 새로 취역하는 대로 두 척을 승조원들과 함께 대서양 함대에 우선적으로 배속시키겠소.”

“휴우~ 그렇게 해도 여전히 무리지만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바하마 제도라면 쿠바 앞바다까지, 맞습니까?”

병조 참판이 해도를 펼치면서 묻자 이민호가 찔끔해서 대답을 못했다. 병조 참판이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마주쳤다.

“미안한데, 아이티 북쪽의 터크스케이커스 제도까지요.”

“으악! 이건 아닙니다, 정말. 이런 식으로 영해를 늘려나가면 조만간 카리브 해까지 우리 함선이 순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설마 그렇게 되겠소?”

“지금까지 에스파냐가 한 짓을 생각해보십시오. 필리핀 북부와 북미 대륙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나 플로리다 남부에 이어 바하마 제도와 터크스케이커스 제도까지 꾸준히 우리에게 넘기고 있습니다. 에스파냐 보물선단이 지나는 항로이면서 프랑스와 영국 해적이 들끓어 에스파냐 해군이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해역입니다.”

“나도 잘못한 것은 알겠으니 너무 꾸중하지 마시오.”

“어찌 신하가 주상전하께 꾸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다만 충언입니다. 지금은 배도 적고 수병은 더욱 부족합니다. 현재 수행하는 임무도 사실상 무리입니다.”

“얼른 배를 더 만들고 급히 수병을 늘려서 함대를 확충하겠소.”

한때 조선 수군에서 군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는 병조 참판이 이민호에게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하! 해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큰 함선, 강력한 함포, 지리? 그리고 육군에도 적용될 군사들의 사기 등이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오.”

“해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숙련된 수군, 그러니까 함장부터 말단 수병까지 그 배에 타는 승조원들의 숙련도입니다. 세계 전사를 쭉 살펴봐도 배가 많다고, 무기가 좋다고 해서 해전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맞는 것 같소.”

“사기와 정신력만 높은 적은 임진왜란 때 전하께서도 자주 보셨지 않습니까? 예. 맞습니다. 바로 왜놈 수군입니다. 해군은 배를 내 몸처럼 알고 바다를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숙련된 승조원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민호는 현대 해군 함정에 부사관이 수병보다 더 많이 타는 것을 떠올렸다. 괜히 비싼 월급 주고 직업군인인 부사관들을 배에 태우는 것이 아니었다. 승조원들이 실수하는 순간 끔찍하게 비싼 전투함이 바로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었다.

고산국 해군은 전원 직업군인이기에 처음부터 부사관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일은 고되고 집에서 쉴 수 있는 날은 적고 다른 직종에 비해 봉급은 더 적었다.

해양대국을 강조할 때 초반에 반짝 늘어나던 해군과 해병 모병 지원자가 요즘 들어서는 확 줄어들었다. 북미 서해안에 이주한 농민들이 지난봄부터 상상도 못할 큰 수입을 얻은 것도 분명 영향을 끼쳤다.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사관학교에 더 좋은 교수를 많이 임용하겠소. 해군학교 교육에도 더 신경 쓰겠소. 왕도에 돌아가면 봉급 인상도 논의해보겠소.”

“물론 효율이 떨어지겠지만 사관학교나 해군학교가 없더라도 현장에서 교육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교육을 하더라도 역시 시간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승조원들이 제대로 된 항해 경험을 쌓으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고산국은 돈보다는 시간이 문제겠소. 그래도 봉급은 확실히 인상해주겠소.”

군인이 국가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명예를 먹고 산다지만, 군인의 가정생활을 지켜주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었다. 명예만 주고 돈은 아까워서 덜 주겠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부 심보이며 재능 기부하라고 강요하는 악덕 업주였다.

몇 년 전까지 훌륭한 직장이던 군대가 어느덧 힘들고 대우가 처지는 직종으로 변했다. 고산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뭐든지 변화하는 속도도 빨랐다. 아차 하는 사이 모순이 쌓였다.

“지금처럼 해군을 급속히 확장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아주십시오. 언제든 심각한 해난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며, 해전이 벌어졌을 때 예상보다 나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전하께서 훌륭한 함선과 무기를 만드신 것은 알지만, 황송하게도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장비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잘 알겠소.”

“제 충언이 껄끄러우시거든 언제든 저를 해임하십시오. 옥에 보내셔도 좋습니다.”

“무슨 소리요?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고맙소.”

독재자에게는 부하들이 좋은 말만 해주기 때문에 귀 먹은 바보가 된다고 한다. 권력을 쥔 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가 오히려 충신이라는 자들에 의해 차단되기 때문에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이민호는 오랜만에 제대로 충언을 해주는 신하를 만나서 고마웠다.

해군 소속 장교이거나 해군 출신 관료라면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단 해군이 확대되는 것 자체에는 절대 반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정된 해군이나 육군 소속이 아니고, 조선에서 수륙을 오가며 고달픈 군관 생활을 오래 한 병조 참판이라서 가능한 객관적인 조언이었다.

“충고할 게 또 있으면 말씀해보시오.”

“황공하옵니다. 현재 대서양 함대 소속 해군과 해병에게 가능하면 가족과 함께 북미로 이주를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동래는 요새와 부속 마을, 포도 농원 하나뿐이라 가족들이 살기에 좋은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새강릉에서 사는데 왕복에 이틀이 걸립니다.”

“가족과 같은 곳에 살아야 하는데 이곳은 힘들다. 알겠소. 내 실책이오.”

이민호는 새동래 자체를 아직은 도시로 키울 의향이 없었다. 그래서 순수하게 군사도시로 운영했는데 군인 가족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한 건물이었고, 교사들도 여러 과목을 여러 학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했다.

“참판은 대서양 함대 모항을 새강릉으로 옮기는 게 낫겠소, 아니면 이곳에 작으나마 도시를 건설했으면 좋겠소?”

“군사적 측면이라면 당연히 이곳에 배후 도시를 건설하는 편이 낫습니다. 뉴펀들랜드보다 이곳이 군사적 위협이 크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에게는 아닌 모양이구려. 하긴 군사도시에서는 군인 가족들이 직업 구하기도 힘들 것 같소.”

새동래를 본격적인 개척 도시로 확대시키기로 했다. 병조 참판이 마침 도시 건설에 대한 청사진을 여러 가지로 제시해서 쉽게 이뤄질 것 같았다. 이민호가 왕도에 돌아가면 새동래 건설 문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참판과 약속했다.

“그런데 요즘 주변 원주민들은 조용한 것 같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몇몇 과격한 원주민들이 도발을 해와도 저희가 꾹 참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포도 농원은 철저히 지키고 있으니 심려 놓으십시오. 최근 들어서 요새 상가에 물건을 사러 오는 원주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병조 참판의 안색이 안 좋기에 차마 말하기 어려운 참담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이민호가 대충 예상해서 물었다.

“설마 원주민들이 요새 상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거요?”

“죄송합니다. 걸핏하면 상품이나 가격에 트집을 잡고 상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우리가 만만하게 보였나 봅니다. 허허!”

“어이가 없소. 인원은 적더라도 북미에서 화력이 가장 강한 곳이 새동래인데 말이오.”

새동래는 대서양 함대의 모항이기도 하고 다른 개척 도시에서 화력이 필요할 때 지원해주는 곳으로 지정된 요새이기도 했다. 그러나 새동래가 요새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동안 원주민들에게 약체로 낙인찍힌 모양이었다.

“새진주를 지키려고 오응태 대감이 체로키 부족에게 압박을 많이 가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미시시피 강에서 밀려난 체로키 족이 다른 부족을 밀어내고, 그 부족은 또 다른 부족을 밀어내는 식으로 여파가 여기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내내 새동래의 포도 농원에 불을 지르려고 여러 번 시도하던 원주민 부족은 얼마 전 북쪽에서 내려온 다른 부족에게 몰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요새 주변에 새로 자리 잡은 부족은 요새 안에 틀어박혀 있는 해군과 해병을 더욱 만만하게 봤고, 끊임없이 도발을 해왔다.

새진주나 새동래나 똑같은 고산국 도시인데 도발에 대응하는 정도에 따라 원주민들의 평가와 대응도 달라졌다. 새진주와 새동래는 원주민들이 보기에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

“그럼 요새 근처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기존에 거주하던 부족은 아니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새로 온 부족들은 피난민에 가깝습니다.”

임무에 집중시키기 위해 포도 농원 외에는 외부 활동을 금지시켰더니 새동래가 별 것 아닌 것으로 비쳐지고 올망졸망한 원주민 부족들 사이에 고립된 섬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바다를 지켜야 할 해군과 해병을 언제 끝날지도 모를 지상전에 투입하는 것도 곤란했다.

“원주민과의 우호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요새 내부 치안을 확실히 유지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요새와 근무 인원, 포도 농원에 대한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시오. 실탄 사격을 해서 사살해도 좋다는 뜻이오.”

“어명을 따르겠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족 위치가 어디요? 본보기로 마을 한두 개쯤 박살내서 소문이 퍼지도록 하시오.”

“원주민들에게는 우호와 친선을 우선하는 것이 북미에서의 정책 아니었습니까?”

병조 참판의 눈이 반짝 빛났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을 약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사이코패스, 아니 바보들이 있소. 한두 번 우정 어린 대화를 시도해서 안 통할 놈들에게는 우호를 계속 고집할 필요가 없소. 당하기 전에 먼저 힘을 보여주는 것이 요새의 안전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일 것 같소.”

“황공합니다. 그렇다면 당장 한 부족을 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끊임없이 요새를 공격하고 전선에 불덩이를 집어던졌던 부족입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플로리다 반도에 유입된 원주민 부족이라면 요새를 쫓아내거나, 약탈이 목적일 것 같았다. 그러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더라도 유분수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언제든 출전하시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병조 참판은 군인 출신 관료였다. 불합리하더라도 고집스럽게 어명을 수행하려는 것은 조선 무관들의 특성이라 답답한 것이 오히려 믿음직한 요인이었다.

대서양 함대와 요새 수비군이 요새 안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적의 규모와 위치 등 모든 정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참판은 해병들을 직접 선발해 당연하다는 듯이 밤이 깊어서야 병력을 이끌고 출전했다.

이민호는 새벽이 되어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총소리에 잠이 깼다. 그리고 아침 해가 동쪽 수평선에서 찹쌀떡처럼 뚝 떨어진 다음에야 지난밤에 출발했던 그대로 돌아왔다.

이민호는 참판이 고산국의 정체를 숨기고 원주민 마을 하나를 완전히 몰살시킨 줄 알았다. 그러나 참판이 보고한 내용은 예상 밖이었다.

“적의 마을을 반원형으로 포위한 다음 오두막에 불을 지르고 원주민 전사 절반 정도를 사살했습니다. 도주하는 자들에게 저희 모습을 확실히 보여줘서 소문이 널리 퍼지도록 했습니다.”

“그래야겠구려. 잘했소. 아주 잘하셨소.”

병조 참판은 말이나 행동거지가 꽤나 믿음직했다. 현임 병조 판서도 훌륭한 대신이지만 조만간 물러난다면 이 사람을 판서로 임명하고 싶어졌다.

============================ 작품 후기 ============================

다음은 새진주입니다.

밤 새고 이제 자러 갑니다...

감사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