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13화 (462/1,000)

00513  53. 북미 순행  =========================================================================

“장교는 보병 중대장 같은데, 저기서 뭐하는 거요?”

건너편 강둑에 올라 대화를 나누는 양측 대표들을 이민호가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폈다. 전쟁을 앞두고 최종 협상하는 것 같은 흔한 모습이긴 한데, 서로 무기를 겨눈 채 거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뜻밖에 이조 참판이 답을 대충 알고 있었다.

“예, 전하. 아마도 모호크 족이 레나페 족과 내러갠셋 족만 공격할 테니 고산국은 중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모양입니다. 모호크 부족에서 여러 번 새원산에 사절을 보내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호적인 부족을 내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리고 모호크를 비롯한 이로쿼이 연맹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소. 도로건설단과 우리 탐사대를 여러 번 기습한 자들을 어찌 믿는단 말이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응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민호는 잉글랜드에서 생산한 사냥용 화승총을 떠올렸다. 모호크 족의 기습으로 하마터면 탐사대원들을 잃을 뻔했다. 모호크 부족이 모피 무역의 독점을 노린다지만 고산국 소총을 갖고 싶어서 이번 전쟁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일단 맨해튼 섬 북단에 ‘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의 레나페 족 전사들을 상륙시켰다. 아군 함대가 도착하고 전사 천여 명이 내리자 레나페 족과 내러갠셋 족 전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함대와 증원군이 도착해 이쪽의 기세가 오른 반면 모호크 족 전사들은 급속히 위축됐다.

“전하! 복장이 다른 것으로 보아 모호크 부족 외에 다른 이로쿼이 연맹 소속 부족 전사들도 모인 것 같습니다. 적 전사들은 3천에 달합니다.”

“원주민들이 숲에서 싸울 때는 강할지 몰라도 들판에 나오면 어찌 되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오.”

이민호는 이때까지만 해도 가능하다면 적당히 협상을 해서 이로쿼이 원주민들을 근거지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저들도 나중에는 백성으로 받아들일 계획이라 피로 피를 씻는 복수전의 시작을 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어! 추장들이 공격합니다!”

- 타탕!

갑자기 총소리가 울리고, 고산국 장병들에게 창으로 찌르거나 도끼를 던지려던 자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갑작스런 교전 직후 고산국 장교와 통역, 호위를 맡은 병사들이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모호크 족 전사들이 화살과 돌도끼를 날리며 이들을 뒤쫓았으나 다행히 아군 십여 명 모두 배를 탈 수 있었다.

강 건너 모호크 전사들이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배를 향해 화살 공격을 퍼부었다. 작은 단정에 미리 준비한 나무방패를 세우고 병사들이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어 위험 지역을 빠져 나왔다.

- 타타탕!

강변에 늘어선 고산국 보병중대와 기병중대가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단정에 탄 아군 장교와 병사들을 구하기 위한 엄호 사격이었다. 기다란 활을 잡아당기던 모호크 전사들이 한꺼번에 수십 명씩 쓰러졌다.

그러나 이민호가 보기에 전투가 조금 답답하게 흘러갔다. 맨해튼 섬 남쪽 요새에 배치된 대포를 가져오지 못해 화력 부족을 실감했다.

그리고 모호크 전사들은 이미 화약무기를 아는 자들이었다. 총격이 시작된 순간 바위 뒤나 움푹 파인 곳에 뛰어 들어가 총탄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다른 이로쿼이 부족 전사들은 화약무기를 처음 겪어봤는지 멀뚱멀뚱 서 있다가 총탄에 맞아 숱하게 죽어나갔다.

모호크 전사들 중에서 화승총을 가진 다섯 명이 똑바로 서서 총구에 화약을 쑤셔 넣다가 하나씩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다섯 번째 모호크 총병은 화승총을 겨누다가 마지막으로 죽었다. 숲에서 기습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야전에서 화승총 몇 정 정도로는 아무런 전술적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쳇! 이제 빼도 박도 못할 전쟁이로군. 전단장! 함포를 쏘시오. 저들에게 최대한 인명 피해를 입혀서 나중에 보복에 나설 꿈도 못 꾸게 하시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순양함들이 함포 사격에 나섰다. 누가 봐도 원주민에게 지나치게 일방적이며 과도한 수준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이상, 적에게 최대한의 공격을 퍼붓는 것이 당연했다. 이번 공격이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숲에서 모호크 전사들과 싸우다가 숱하게 죽어갈지도 모를 아군 병사들을 최대한 많이 구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로쿼이 연맹 5개 부족은 아니더라도, 이로쿼이 어를 사용하는 투스카로라 족이 새강릉 남쪽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도 꽤나 호전적인 집단이라 조만간 고산국 개척민들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민호는 북미의 모든 원주민 부족들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흡수하길 원했다. 몇몇 부족을 상대할 때처럼 원주민 영토에 대규모 농경지를 조성해주고 관개시설을 마련해줘서 식량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준다면 영토 일부를 고산국 개척민에게 내주더라도 원주민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그러나 협상이 통하지 않을 호전적인 부족이 당연히 있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전쟁을 각오해야 했다. 비무장에 젊은 남자도 별로 없는 아일랜드 개척민들을 원주민들의 창칼 앞으로 들이밀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민호에게는 개척민들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었다. 북미에 토지는 무한히 넓고 인구가 극히 적은데도 이렇게 토지를 놓고 싸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 콰쾅!

포구에서 화염이 쏟아지고 뇌성이 울릴 때마다 모호크 전사들 사이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에 휩쓸린 모호크 전사들은 팔다리가 뜯겨 날아가기 전에 이미 목숨을 잃었다.

“으아악! 으아악!”

팔다리가 다 날아가고도 어쩌다 살아남은 전사가 비명을 질러댔다. 지독한 호전성으로 악명이 높은 모호크 전사들도 처참한 광경에 질려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평생 상상도 못한 전투에 휘말린 다른 이로쿼이 부족 전사들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오들오들 떨거나 기어서 도망치려 했다.

“저들에게 강을 건너 공격할 수단이 있소?”

“북미 원주민들은 통나무나 가죽으로 만든 작은 배를 이용합니다.”

“수백 척이라도 되면 모를까, 수십 척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오.”

아군이 방어선에 배치되고 함대가 서강에 버티고 있는 이상 원주민들이 맨해튼을 건너올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전단장에게 한 말이 씨가 됐다.

“강 상류에서 작은 배가 무수히 내려오고 있습니다. 수천 척입니다! 적의 대규모 공격입니다!”

함장의 보고에 이민호가 상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맨해튼 섬 북쪽, 작은 샛강 건너편에 모인 전사 3천은 미끼에 불과했다. 주력은 서강 상류에서 카누를 타고 내려오는 5천에 달하는 적이었다. 2인승 또는 3인승 카누 수천 척에 가려서 강물이 안 보일 정도였다.

“전하!”

“공격하시오. 지상에 있는 자들에게도 계속 공격하시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민호가 잠시 대답을 못하다가 지시했다. 원주민들이 탄 카누 2천여 척은 맨해튼 섬에 상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대를 공격하려고 준비된 것 같았다.

전단장이 순양함들을 약간 북상시킨 다음 가로로 배치해 강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구경을 가리지 않고 함포를 발사했다. 숫자만 많지 먼 거리에서 순양함을 공격할 수단이 없는 원주민들은 카누와 함께 폭사했다. 카누에 탄 이로쿼이 전사들은 동료들이 숱하게 죽어나는 것을 보면서 미칠 듯이 노를 저었다.

맨해튼 섬에서도 작은 샛강을 사이에 두고 도하 전투가 시작됐다. 카누를 머리 위에 올리고 달려온 이로쿼이 원주민들이 강에 배를 내려놓자마자 뛰어올라 노를 저었다.

카누에 탄 원주민 일부가 강 중간에서 활을 쏘았다. 새원산에 거주하는 민병대들도 총을 발사했다. 가죽 방패로 앞을 가리고 노를 젓던 원주민들이 픽픽 쓰러졌다. 웬만한 두께의 나무 방패도 관통하는 총탄이 가죽 방패를 못 뚫을 리가 없었다.

- 퍼엉!

폭이 넓은 서강에서도 전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커다란 물기둥이 치솟을 때마다 카누 서너 척이 뒤집혔다. 물에 빠진 원주민 전사들이 헤엄을 쳐서 자연제방인 강둑에 기어오르려 했으나 다른 카누에 치이거나 노에 찍혀 대부분이 물에 빠져 죽었다.

카누에 탄 자들과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함교 앞뒤에 배치된 기관총 2정이 불을 뿜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순양함들에 접근한 카누가 총탄을 뒤집어쓰고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일방적인 전투가 한참 계속되는데도 카누 수천 척이 꾸역꾸역 접근했다. 그리고 전투가 진행되면서 주인을 잃은 카누들이 순양함에 막혀 몇 겹으로 쌓였다. 빈 카누에 막힌 원주민 전사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서자마자 해병이 쏜 총탄에 맞고 쓰러졌다.

“이 정도면 원주민들이 후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전투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전단장이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계속 전투를 지휘했다. 일방적인 전투를 수행하며 다들 속으로 불편한 표정이었다.

원주민 전사들이 탄 카누가 아무리 많이 몰려들어도 함대에서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5인치와 3인치 함포 외에도 기관총까지 세 가지 화기가 거리별로 화망을 구성했다. 어쩌다 운이 좋아 함대에 접근하는 카누가 있더라도 해병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이봐, 대추장! 정신 차려!”

“아! 전하.”

이민호가 소리를 치자 국왕좌승함에 동승한 와훈수나콕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살핀 다음 포우하탄의 대추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기 볼을 꼬집어보는 것이었다.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은 꿈이 아니었다.

“대추장이 주변 부족들을 복속시켜 포우하탄 부족 연맹을 만든 이유가 뭐라고 했지?”

“저나 제 부하들이 싸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솔직한 대추장은 같은 알곤킨 어를 사용하는 친척 부족들끼리 무의미하게 싸우는 것을 막고 호전적인 이로쿼이 부족 연맹에 대항할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부족원들에게 그런 명분을 내세웠더라도 십 년 넘게 계속해서 주변 부족들을 쳐부숴 복속시킨 근본적인 힘은 대추장 개인의 욕망과 전사들의 신분 상승 욕구였다.

이민호는 대추장이 어쩔 수 없는 야만인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몽골족 전사들이 전리품을 얻기 위해 전쟁에 참가한 것을 두고 욕하는 것처럼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뿔뿔이 흩어졌던 부족이 다시 통합될 때는 어떤 이유든, 혹은 지도자 개인이든 강력한 동기가 있기 마련이었다.

“대추장에게 싸울 기회를 주겠다. 포우하탄 보병과 기병을 상륙시켜라!”

“예! 전하께 승리를 바치겠습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고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싸움을 즐겨!”

와훈수나콕이 씩 웃더니 호위 전사들과 함께 단정에 옮겨 탔다. 그 사이 전단장이 수송선에 지시를 해서 맨해튼 건너편에 포우하탄 원주민 전사들을 상륙시켰다.

천여 명의 포우하탄 원주민 보병 전사들은 예전보다 훨씬 정예화됐다. 3열 횡대의 느슨한 방진을 갖춘 전사들이 방패를 나란히 하고 창날을 앞세운 채 전진했다. 와훈수나콕이 마치 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여러 방진을 통제해 같은 속도로 전진시켰다. 그 사이 기병들은 적 주력의 퇴로를 차단하려고 멀리 우회했다.

용감한 모호크 부족 전사들이 포우하탄 부족이 구성한 방진을 향해 돌격했지만 그 즉시 창에 찔리고 화살에 맞으며 죽어나갔다. 모호크 족이 숫자가 더 많고 전사들이 계속해서 용감하게 돌격했어도 산발적인 공격에 그쳐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형편없이 뒤로 밀렸다.

초반에 함대의 포격에 의해 부족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분쇄된 직후라 모호크 전사들은 포우하탄의 방진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순양함에서 포격이 멈추면서 모호크 전사들이 수십에서 수백 명 단위로 진영을 갖춰나갔다. 아직 모호크 족이 포우하탄보다 숫자가 많기 때문에 전황을 역전시킬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끼요오~”

그러나 바로 이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포우하탄 기병들이 모호크 족 대열의 뒤에서 나타났다. 포우하탄 기병들이 모호크 전사들의 등짝에 창날을 꽂고 독수리 날개깃으로 장식한 머리를 향해 쇠도끼를 휘둘렀다.

기병을 처음 대적하는 모호크 전사들은 말에 탄 전사가 하늘 높은 곳에서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져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모호크 전사들 태반이 몸이 굳은 채로 기병의 공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았다.

맹렬하게 공격하는 포우하탄 기병에서 조금 떨어진 모호크 전사들은 저항을 포기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자기편끼리 뒤엉키고 앞뒤에서 포우하탄 기병과 보병이 계속해서 공격해서 싸우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몸을 돌려 도망치는 모호크 전사를 목표로 포우하탄 전사가 팔을 뒤로 한껏 젖히더니 장창을 던졌다. 모호크 족 전사는 방패를 등에 지고 달렸으나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창날이 그 방패를 뚫고 전사의 등에 깊숙이 박힌 다음 배를 뚫고 빠져 나왔다.

창을 던진 전사가 칼을 뽑아 다른 모호크 전사의 방패를 내리쳤다. 충격을 받은 모호크 전사가 방패를 쥔 채로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방패를 놓지 않았다. 포우하탄 전사가 계속 칼을 내려치자 방패가 너덜너덜해지면서 모호크 전사의 강인한 몸이 드러났다. 그 몸에 다시 칼날이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전투는 거의 끝났고 북미 원주민 정책에 관련된 내용이 이어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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