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2 53. 북미 순행 =========================================================================
다음 날 아침은 이번에 새로 도착한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처음으로 교육을 받는 시간이었다. 항구 안쪽 12층 건물이 서 있는 관청 거리 중심에 위치한 대강당에 아일랜드 이주민 2천여 명이 아침 일찍부터 몰려들었다.
깨끗하고 커다란 새 집에서 첫 밤을 보낸 이들은 집 앞 길가에 나와서 잠시 기다렸다가 기다란 20인용 마차를 탔다. 북미 원주민이 모는 20인용 마차는 새강릉 시내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돼 있기에 가능한 운송수단이었다.
대강당 건물 앞에 마차를 세운 원주민 마부가 아이들을 차례로 안아서 내리게 했다. 마부가 아무리 미소를 지어도 아일랜드 아이들이 겁에 질려서 보기에 안쓰러웠다.
원주민 마부들이 눈치를 채고 얼굴에서 급히 전투용 화장을 지웠다. 새강릉에서 일하는 원주민 마부들은 나이가 많은 편이라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전시에는 모든 포우하탄 남자들이 전투용 화장을 한다고 대추장이 알려주었다.
“목욕은 몇 달에 한 번씩 하는 게 좋아요?”
“가능하다면 목욕은 매일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젊은 아일랜드 여성의 질문에 대답한 강사가 한숨을 팍 내쉬었고, 스페인어-게일어 통역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민호는 강당 2층에서 지켜보다가 속으로 웃었다.
이 시대에 유럽에서 목욕을 안 하는 것은 종교적 영향이 컸다. 중세 초기에 사람들이 온천이나 대규모 목욕탕에서 너무 난잡하게 논 탓에 그 반동으로 교황청에서 의도적으로 목욕이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목욕은 아침에 하나요, 저녁에 하나요?”
“하루 24시간 뜨거운 물이 나오니까 목욕은 편할 때 하세요. 농촌 마을에 배치되기 전까지 머물 주택에서는 모든 것이 무료니까 사용료는 걱정하지 마세요.”
새강릉 옆을 흐르는 강에 남대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량이 풍부해서 지평선을 넘어가는 널따란 논과 밭에 농업용수를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그리고 상류에서 수위 차가 생긴 곳에 수력 발전소를 세워 새강릉과 원주민 마을 몇 곳에 전기를 공급했다.
그러나 주택가 온수 공급과 난방은 석유를 때워서 해결했다. 새순천 동쪽에서 발견된 유전에서 산출되는 원유는 북미 동해안과 남해안에서 물 쓰듯이 써도 남을 정도였다.
“전기난로 사용법은 익히셨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동네 통장 아주머니한테 물어보세요. 이번에는 온풍기 사용법이에요. 머리를 감고 나서 말릴 때 쓰는 기구랍니다. 단추를 아래로 누르면 뜨거운 바람이 나와요. 자! 보세요.”
- 위잉~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화들짝 놀라 급히 성호를 그었다. 다행히 신부님들이 마법적인 흔적이 없다고 확인해주어 안심하고 지켜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주민들은 고산국 특유의 가전제품 사용법을 익혔다. 전화기 사용법 안내가 항상 맨 마지막이었고, 혼란의 절정을 장식했다.
“질문이 있어요. 농지는 얼마만큼 배분되나요?”
“가로 세로 1km가 기본이고 여력이 있다면 더 넓은 땅도 경작할 수 있습니다. 대략 가로 세로 1마일 곱하기 반마일 정도 되겠군요.”
새강릉에서는 농가마다 30만 평에서 50만 평 정도를 경작하게 했다. 조선에서 웬만큼 농사짓는다는 자작농이 경작하는 논밭의 열 배 이상 넓이였다. 현대 미국에서는 1마일 또는 천 야드 길이의 밭이 일반적인 규격이었고, 기업농이 아닌 농부라도 그런 밭을 몇 개씩이나 소유했다.
“남자가 없는 가구가 많은데 그렇게 넓은 땅을 일굴 수 있나요? 소나 말 두 마리가 일 년 내내 밭을 갈아도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경운차라는 농업용 수레를 공동 사용합니다. 밭 갈기나 파종, 수확, 운반은 기계로 처리하니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물주기와 김매기, 거름주기 정도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힘든 일은 원주민들이 많이 도와줄 테니 여러분이 할 일은 주로 농경지 관리에요.”
아일랜드 이주민들에게 밀농사를 주로 맡기기로 했다. 땅은 얼마든지 있었고 포우하탄 원주민들의 밭에 관개사업을 해주면서 빈 땅이 많이 생겨서 능력만 되면 더 넓은 땅을 일궈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을 농업 노동자로 활용하면 여자 가구주 홀로 넓은 땅을 경작할 수 있었다.
정오가 되기 한참 전부터 대추장이 주변 부족에서 급히 소집한 포우하탄 전사들이 새강릉에 몰려들었다. 원주민 전사들이 다들 전쟁용 화장과 문신을 하고 완전 무장해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새강릉을 지키는 고산국 병력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자못 긴장해야 했다.
고산국이 새강릉을 건설하면서 포우하탄 전사들은 전원 철제 무기로 무장했다. 전사들이 쥔 창날이 햇빛을 받아 번득였고, 허리에는 뱀가죽 또는 상어가죽 칼집이 매달렸다. 전사들이 허리춤에 돈주머니를 차고 다니게 된 것도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였다.
오전 늦게 장례식이 열렸다. 마차를 타고 시내 남쪽에 준비된 공동묘지로 향한 아일랜드 이주민들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었다. 신부의 집전으로 천주교 의례에 따라 장례식이 진행되는 것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은 아일랜드 이주민은 8명이었다. 의사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병사라고 사체 검안을 했지만 사실상 영양실조로 인해 얻게 된 질병으로 사망했다. 윤기가 나도록 검게 옻칠한 고급스런 관에 시신이 담기고 시신 주변이 꽃으로 장식됐다.
장례식 마지막에 깊게 판 땅속에 관을 옮긴 다음 흙을 퍼 넣고 평평한 석판을 얹어 마무리했다. 그리고 석판 앞에 크고 두꺼운 비석을 세웠다. ‘1594~1598’이라는 생몰연도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땅에 묻힌 아이의 어머니가 묘비 앞에 쓰러져 흐느꼈다.
“아이들이 몇 년 동안 굶주리다가 이제야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 순간 죽었다고 생각하니 더 안타까워요. 장례식 비용의, 아니 관 값의 절반이라도 예전에 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거여요.”
검은 상복을 입고 얼굴에 검은 베일을 쓴 비올레타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오늘 장례식을 치른 사망자 8명 중에 아이들이 5명, 젊은 여자가 2명, 노인이 한 명이었다. 성장기에 굶주린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각종 질병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어서 더욱 걱정스러웠다.
“잉글랜드 놈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인종 청소하면서도 도리어 아일랜드 사람을 혐오한다고 들었소. 미친놈들이오.”
“자기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어놓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혐오하는 거여요.”
중국인과 고산국인은 백인으로 대우하고, 아일랜드인들은 황인으로 차별하는 잉글랜드 인종차별주의자들을 혼내주고 싶었다. 이민호의 능력이라면 잉글랜드를 아주 가난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아일랜드인들이 가난하다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자들 대부분이 잉글랜드에서도 찢어지게 가난한 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아일랜드에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병된 잉글랜드 병사들 대부분이 얼마 안 되는 봉급을 받기 위해 모병에 응한 가난한 자들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잘 사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고, 유럽에서도 특히 잉글랜드의 빈부격차가 심한 편이었다.
그에 비해 프랑스 국왕 앙리 4세는 일요일에는 모든 백성이 닭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맹세해, 치세 말기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프랑스 귀족들이 사치와 방종에 정신이 나갔더라도 최소한 백성들을 굶기지는 않았다. 물론 프랑스 땅의 생산력이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전에 이주민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온 아일랜드 신부들에게 예수회 선교사들이 몇몇 성당을 인수인계했다. 새강릉에 거주할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늘어날 때마다 내륙 쪽으로 마을을 건설할 예정이며, 마을마다 성당을 지을 계획이었다.
앞으로 만성적으로 신부가 부족할 것을 우려해 멕시코에서 꾸준히 신부들을 초빙해왔다. 조만간 아일랜드 출신 신학생들을 뽑아 로마로 유학 보낼 계획을 세웠다.
에스파냐 무슬림 모리스코들이 주로 정착할 새원산에는 이슬람 모스크를 짓기로 했다. 다들 모국에서 종교적 탄압을 받았던 이들이라서 비슷한 처지였던 다른 종교 신도들과 잘 지낼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아직 첫 번째 배가 도착하지도 않았다.
정오가 거의 다 되면서 대추장 와훈수나콕이 말 탄 전사 500여 명을 직접 거느리고 왔다. 나머지 천 명은 보병으로서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온몸을 화려하게 치장했다. 남대천 건너편에 다른 길을 통해 모인 전사 50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포우하탄 전사들은 전쟁 중에 먹을 식량까지 준비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수송선에서 식사를 하게 되므로 전사들이 가져온 식량을 쓸 일은 없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포우하탄 원주민들의 식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 같았다.
“전하! 제 동생 오페차카나우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기병을 지휘하기로 했습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전하!”
체격이 아주 좋은 20대 후반 전사가 무릎을 꿇고 이민호에게 인사했다. 이민호가 이 나이에 받을 인사는 아니었지만, 원주민들은 좋은 말이라고 배워서 일단 써먹는 모양이었다. 새강릉 관리가 장난삼아 가르쳐줬을지도 몰랐다.
“다들 잘 왔다. 그러나 북쪽 새원산은 추워. 두꺼운 옷을 입도록 해.”
“당연히 겨울용 외투를 가져왔습니다, 전하.”
새강릉에 직접 왔거나 남대천 건너편에서 기다리는 전사 2천여 명을 말과 함께 수송선 세 척에 나눠 태웠다. 함대는 다시 새원산으로 향했다.
북쪽으로 가는 중에 해안에서 원주민들이 부르기에 만나보니 완전 무장한 레나페 족 전사들이었다. 자기들도 맨해튼 섬에 싸우러 가겠다고 태워달라고 해서 천여 명을 더 실었다. 레나페 족은 복장을 참으로 단정하게 입는 부족이었다.
평소 순둥이라고 생각했던 레나페 족에 대해 다시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쪽의 호전적인 이로쿼이 연맹 소속 부족들에게서 지금까지 영토를 지켜낸 이유가 있었다.
오후 늦게 새원산에 도착해보니 맨해튼 섬에서는 한창 전쟁 중이었다. 전령이 탄 배가 항구를 막 출발하는 순간에 함대가 입항했다.
“전하! 저는 새강릉으로 향하던 전령입니다. 현재 모호크 족과 여러 부족이 섬 북쪽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도로건설단은?”
도로건설단은 맨해튼 섬 서쪽을 흐르는 서강 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도로와 철도를 건설 중이었다. 이 공사에 투입된 명나라 노무자가 5천여 명에 달했고 북아프리카 노예시장에서 구조됐다가 새로 투입된 자들도 있었다. 여진족 2천여 기병은 주로 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그쪽과 연락이 끊겨서 정찰대를 보냈는데 중간에 막혀 돌아왔습니다!”
“알았다. 전단장!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시오. 수심 측량이 어디까지 됐지요?”
“서강은 북쪽 300km까지 탐사를 마쳤습니다. 강 상류도 폭이 넓고 수심도 충분합니다. 일단 맨해튼 섬 북단까지 이동하겠습니다.”
함대는 맨해튼 섬 서쪽, 폭이 1km가 넘는 허드슨 강을 따라 북상했다. 에스파냐 탐험가가 작성한 지도에는 히우 데 산 안토니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새원산 현지에서는 서강이라 불렀다. 1524년 피렌체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명을 받아 이 지역을 탐사했을 때에도 다른 이름을 붙였다. 프랑수아 1세는 자크 카르티에를 캐나다 지역에 보내 세인트로렌스 강 등을 탐험하게 한 국왕이었다.
맨해튼 섬은 포우하탄과 비슷한 어원을 갖고 있었다. 하탄이 폭포 주변 바위를 가리키는 모양이었다. 맨해튼 섬은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기고 북쪽 끝부분에 폭이 좁은 강이 사선으로 길게 이어져서 방어선이 너무 길었다. 방어하기에 좋은 곳이 결코 아니었다.
강을 따라 함대가 쭉 올라갔다. 맨해튼 섬 중간에서 무장한 민병대원들이 말을 타고 북쪽으로 급히 달리고 있었다. 함대를 발견하고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사람 하나를 봤다. 금방 일어나는 것으로 봐서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맨해튼 섬 북쪽에 도달했을 때, 레나페 족과 내러갠셋 족 전사 3천여 명이 고산국 기병과 보병이 진을 친 곳에 몰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포우하탄 연맹에서 들은 것처럼 모호크 족의 공격 계획이 파다하게 퍼져서 급히 새원산을 구원하러 달려온 우호적인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강 건너편에서 고산국 장교가 북미 원주민 추장들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양쪽 모두가 잔뜩 화난 몸짓으로 서로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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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교정 작업 때문에 오늘은 한 회만 연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못 올리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