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0 53. 북미 순행 =========================================================================
“참판! 동쪽 내러갠셋 부족과 친선을 잘 유지하고 있소?”
“그렇습니다, 전하. 레나페 족처럼 새원산 개척 초기부터 모피 거래를 했던 부족이며 저희에게 매우 순종적인 부족입니다. 요즘에는 동쪽에서 맨해튼 섬과 긴 섬을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먼 곳에 거주하는 다른 부족과 꾸준히 모피를 교역해서 맨해튼 섬으로 가져와 다른 물건으로 교환하기도 합니다.”
“상재에 밝은 원주민이라, 기특하군요.”
이조 참판이 어느새 주변 원주민 부족들과 우호를 유지하며 맨해튼 섬 주변 지역의 안전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기존 원주민 부족들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진 것 같았다.
맨해튼 섬부터 남서쪽 새강릉 건너편까지 레나페 족이, 맨해튼 섬 동쪽에는 내러갠셋 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레나페 족 입장에서는 거주지 양쪽 끝, 다른 부족과의 경계를 고산국이 장악한 셈이었다.
레나페 족은 새강릉 주변에 거주하는 포우하탄 부족처럼 고산국에 완전히 복속된 것은 아니었지만 고산국이 개척한 두 도시와 평화롭게 교역을 해서 거의 복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강릉 의사들이 레나페 부족 여러 마을을 돌며 전염병 예방 주사를 놔주었다.
“내러갠셋 부족이 그 동쪽 새함흥 주변에 사는 왐파노아그 부족과, 그 갈래 부족인 파두셋 부족을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이오.”
“그 순둥이 내러갠셋 원주민들이 다른 부족을 침략했단 말씀입니까?”
이조 참판이 꽤나 충격을 받았다. 포우하탄 부족은 일말의 자존심을 내세우려고 전사들을 무장시켜 새강릉에서 무력시위라도 했지만, 내러갠셋 족과 레나페 족은 그런 것도 없이 고산국 사람들을 환영했다. 지금은 마치 친한 이웃처럼 지내는 원주민들이 다른 원주민 부족과 무력 충돌을 했다는 말을 참판은 쉽게 믿지 못했다.
“우리한테만 순둥이였던 모양이오. 왐파노아그와 파두셋 부족도 매우 온화한 부족인 것 같았소.”
“역시 강한 상대에게만 친절하고 약한 상대에게는 매몰찬 것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니오. 내러갠셋 부족이 나쁜 짓이라고 생각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오. 내러갠셋이 이 지역에 정착한 지 가장 오래됐다니까 영토는 그들에게 우선권이 있겠지요.”
“알겠습니다. 추장들을 불러서 다른 부족들과 영역 싸움을 하지 말라고 말리겠습니다. 북쪽 모호크 부족을 비롯한 이로쿼이 연맹이 호전적이라니까 순둥이 부족들끼리 연합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마히칸 부족도 호전적이지만 내러갠셋 부족과 같은 알곤킨 연맹이라고도 합니다.”
흔히 모히칸이라 부르는 마히칸 족은 내러갠셋이나 레나페, 왐파노아그, 포우하탄 부족과 같은 알곤킨 연맹이고, 모호크 부족은 알곤킨 연맹과 적대하는 이로쿼이 연맹 소속이었다. 두 연맹의 세력권 중간에 위치한 모호크와 마히칸은 이름만 비슷할 뿐, 다른 연맹 소속으로서 서로 치열하게 싸웠다.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싸웠다고 한다.
모호크는 알곤킨어로 ‘사람을 먹는 자’라는 뜻의 멸칭으로 아주 오래 전의 관습이었다고 한다. 모호크 족은 스스로를 부싯돌의 사람이라는 의미로 카니엔케하카라고 불렀다.
“북미 원주민들을 가급적 빨리 정착시켜야겠소.”
“맞습니다. 식량문제만 해결되면 부족들 사이의 분쟁도 줄어들고 개척지와 철도에 대한 위협도 줄어들 것입니다. 농경지를 확보해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알곤킨 연맹과 이로쿼이 연맹의 분쟁을 종식시키더라도 오대호 북쪽에서 휴런 족이 점차 남하하고 있었다. 좋은 사냥터와 경작지를 두고 원주민 부족들끼리 끊임없는 싸움이 계속되는 곳이 북미 북동부였다.
그 사이에 아일랜드 이주민들을 항구에 내리게 해서 운동을 시켰다. 수송선이 충분히 커서 운동할 공간이 많았으나 그 동안 사람들이 많이 타서 실제 운동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해방 노예 2천여 명이 빠진 부두를 아일랜드 이주민 2천여 명이 채웠다.
“전하! 원래 아일랜드 이민들이 와서 노동일을 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이주민들을 새원산에 수용해서 교육 중이긴 합니다만 문제가 많습니다.”
“맞소. 아일랜드에 젊은 남자들이 씨가 말랐소.”
이조 참판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고 이민호가 대답했다. 모리스코 35만이 올 예정이라 앞으로 철도와 도로를 부설할 노동력은 충분했다. 그래서 성인 남자가 부족한 아일랜드 이주민들의 정착지를 다시 고려해볼 필요가 있었다.
“개척 초기에는 아무래도 젊은 남자가 많은 편이 좋습니다.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자립할 때까지 보호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전쟁이 날 분위기인 이곳에는 어린이와 여자들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을 새강릉으로 이주시켜야겠소. 그리고 이곳에서 교육 받는 아일랜드 주민들도 아이들을 감안해서 조금 따뜻한 쪽으로 옮겨야겠소.”
“그게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많으니 새원산보다 안전하고 따뜻한 새강릉이 낫습니다. 현재 맨해튼에 거주하는 아일랜드 이주민이 1만여 명이 되어갑니다.”
“1만여 명을 초겨울에 이주시키기도 그렇겠소. 새강릉 주택 상황을 봐서 연락하겠소.”
“가능하면 빨리 이주시켜주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추위에 굉장히 약합니다, 전하.”
“예?”
이민호가 잠시 얼빠진 소리를 냈다. 처음에 이주 계획을 세울 때 아일랜드가 고위도에 위치해 아일랜드인들이 추위에 충분히 적응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도 춥지 않은 편이었다. 심지어 겨울에 풀이 시들지 않아 땅 전체가 푸른색이었다.
“알았소. 한 집에 서너 가족씩 입주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새강릉에서 바로 이주민을 받을 준비를 시키겠소.”
조립식으로 간단히 만드는 연립주택은 도로공사에 투입된 독신 남성들이 집단 거주하는 곳이었고, 가족 단위는 단독 주택에 살게 했다. 단독주택은 비록 면적을 많이 차지한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가족 단위의 주거에 더욱 이상적이었다. 방이 최소한 서너 개는 있으므로 겨울 동안만이라도 방 하나에 한 가족씩 입주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새원산뿐만 아니라 새강릉 시장도 저의 직무입니다, 전하. 새원산에 필요한 보급품 요청서를 제가 공문으로 보낸 다음, 새강릉에 가서 결재해주고 있습니다.”
“미안하게 됐소. 새원산 시장을 보낸다고 해놓고 사람을 못 구했소.”
“일이야 즐겁습니다만, 비리나 비효율이 발생할까봐 걱정입니다. 원주민 부족들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하니 무에 밝은 사람이 새원산을 맡으면 좋겠습니다.”
문무 양쪽에 밝은 인재라면 정문부가 떠올랐지만 그는 드넓은 호주를 거의 혼자서 관리, 개발하고 있었다. 무관 출신이며 용맹한 기병 지휘관인 오응태에게 맡기기에는 앞으로 새원산이 너무 중요한 도시였다. 오응태가 새진주 주변에 거주하는 체로키 족에게 압박을 가해 지금은 거의 수족처럼 부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보십시오, 전하.”
“이건 또 뭐요? 잉글랜드에서 만든 화승총이 왜 여기에 있소?”
이조 참판으로부터 받은 것은 뭉툭한 군용이 아닌 날렵하게 생긴 사냥용 화승총 2정이었다. 총열에 새겨진 글자와 나무로 된 개머리판에 낙인찍힌 글자는 영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세인트로렌스 강 하구를 탐사하고 돌아오던 탐사대가 모호크 족 전사 30여 명으로부터 기습을 받았습니다. 피해 없이 물리치긴 했지만 화승총 공격을 받은 것이 특이해서 이렇게 노획해왔습니다.”
“잉글랜드 어민에게 샀거나 탐험대를 몰살시키고 빼앗은 것 같소. 북미 원주민이 화승총을 보유해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북미 개척지 모든 곳에 전파시키시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고산국 출신들에게만 총기를 공급했는데 여차하면 명나라 노무자들과 유럽 출신 이주민들까지 총기로 무장시켜야 할 수도 있었다. 잉글랜드와 모호크 족은 이민호에게 여러 가지로 짜증나게 하는 족속들이었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설마 화승총을 제작하지는 못할 것으로 믿습니다. 원주민 부족들 중에 대장간을 보유한 곳은 아직 한 곳도 없습니다.”
“알 수 없는 일이오. 제철 기술을 금방 습득할 수도 있소.”
이로쿼이 부족 연맹이 거주하는 곳은 하필 노천 철광이 널려 있는 오대호 주변이었다. 철의 품위가 대단히 높아 석탄이 아니라 숯을 때서 철을 생산할 수도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백인들을 통해 북미 원주민들이 의외로 쉽게 화약무기를 입수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주민들이 직접 총을 수리하거나 제작하기도 했다.
북미 원주민들이 머스킷을 쏘며 습격하고, 백인 농장 주인은 석궁이나 활을 쏘아 저항했다는 우스갯소리는 실제 역사적 사실이었다. 자칫 고산국 개척민들이 그런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오나 이주민들에게 벌써부터 총을 나눠줄 수는 없습니다, 전하.”
“맞는 말씀이오. 그 대신 이주민들을 제대로 보호하려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할 것이오.”
“끄응! 윤당하십니다.”
“방어보다 공격이 경제적일 수도 있소. 만약 이로쿼이 연맹의 공격이 계속된다면 이 지역에 오랫동안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느니 차라리 그들을 쳐서 강제로 복속시킵시다.”
“그게 낫겠습니다, 전하.”
일이 많아지면서 이민호의 참을성도 줄어들었다. 거치적거리는 것은 부숴버리는 것이 당장은 효율적이었다. 이로쿼이 연맹이나 모호크 부족이 모피 교역으로 인해 얻는 이익을 독점하겠다고 욕심 부리면, 연맹이든 부족이든 해체 수준이 될 각오를 해야 했다.
다음 날 새강릉 항구에 함대가 도착했다. 항구에 12층 건물이 들어섰고, 항구 옆 공터에 못 보던 지난번에는 못 본 저유고가 생겨났다.
“그 사이에 많이 바뀌었구려.”
“일은 다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배에서 내리는 동안 이민호는 새로 지은 건물을 구경했다. 이주민들은 배에 탈 때부터 놀람의 연속이었다.
새원산에서부터 따라온 이조 참판이 이민호를 안내했다. 12층 건물에 도착해 승강기를 타고 천천히 옥상에 올라갔다. 승강기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머리칼을 날렸다.
“국왕전하! 어서 오십시오. 바로 이곳부터 오실 줄 예상했습니다. 멀리 바다 입구에 도착하실 때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대추장 아닌가? 여긴 웬 일인가?”
포우하탄 연맹의 대추장 와훈수나콕이 뜻밖에 12층 건물 옥상에 있었다. 그리고 일 년 사이에 조선말 구사 능력이 엄청나게 많이 늘었다.
“위험한 적이 쳐들어올까봐 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대추장이 할 일은 아닐세. 대추장은 백성들을 돌봐야 할 것 아닌가?”
“적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아래를 보게.”
이민호가 항구 쪽을 가리켰다. 아일랜드 주민들이 새강릉 관리들에게 안내를 받는 중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머리통만 보였다. 화가들이 바삐 스케치를 하는 모습도 위에서 다 보였다.
“저번에 말했듯이 백성들을 데려왔네. 포우하탄 부족에게 좋은 이웃이 될 거야. 젊은 남자가 부족하니 포우하탄에서 잘 보호해주면서 힘든 일도 대신 해줬으면 좋겠네.”
“아! 아일랜드 사람들이 드디어 왔군요. 걱정 마십시오. 농장에서 일할 일꾼들을 조직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머리 색깔이 참 다채롭군요. 수집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습니다.”
“죽이거나 노예를 삼으면 안 돼!”
“물론입니다. 다 똑같은 전하의 백성으로 대하겠습니다.”
별궁에 도착하자 베네치아 시녀들과 우크라이나 하녀들, 그리고 비올레타의 고향 출신 시녀들이 좋다고 뛰어다녔다. 부속 건물 숫자가 적어서 그렇지 본관과 정원의 화려함은 유럽의 왕궁 못지않았다.
밤이 되어 전기조명이 들어오는 순간 환한 조명이 밑에서 위로 비췄다. 그리고 분수대 물 아래에서 갖가지 색깔의 조명이 은은하게 비쳤다.
이민호는 이조 참판과 와훈수나콕의 가족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오랜만에 체사피크 만의 명물 청게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이민호가 유럽에 갔던 이야기를 해주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았다. 세 살짜리 포카혼타스가 두 살짜리 마르그레타를 언니처럼 잘 챙겨줘서 어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자기보다 작은 아기라고 마르그레타를 인형이나 장난감처럼 여기는 건 아니겠지요?”
“아기 때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작아도 여자라고 모성애가 발동될 걸요?”
포카혼타스가 마르그레타를 꼭 껴안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대추장의 딸에게 인형을 줬더니 잠시 비교하다가 다시 마르그레타를 껴안았다. 아빠인 이민호가 봐도 마르그레타는 인형처럼 예뻤다.
“전하! 이로쿼이 부족이 조만간 맨해튼을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게.”
“고산국이 아니라 레나페 족과 내러갠셋 족이 공격 대상입니다. 모호크 부족은 모피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다른 원주민 부족들을 몰아내길 원하고 있습니다.”
“협조를 잘해주고 있는 부족들을 내칠 수는 없지. 오히려 욕심을 부리는 모호크 족을 쳐야할지도 모르겠군.”
============================ 작품 후기 ============================
북미 살짝 살펴보고 본국에 돌아가겠습니다. 거의 끝나갑니다.
감사합니다.